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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자료실

작성자 한 빛
작성일 2003-12-26 (금)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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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역주의의 실상과 문제점에 대해서..


지역간 거리감을 통해서 본 지역주의의 실상과 문제점

최준영·김순흥


1. 머리말


지난 4·13 총선은 한국정치가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영남은 전체 65석 중 무소속 1표를 제외한 64석을 한나라당이 휩쓸어 과거보다 훨씬 강한 특정 정당 지지 양상을 나타냈다. 이런 결과는 그간 영남의 선거결과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15대 총선을 보더라도 신한국당이 전체 70석 가운데 80%인 56석을 얻는 데 그쳤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영남 싹쓸이가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 과거 지역주의가 가장 강한 지역으로 여겨졌던 호남에서는 민주당 공천자 중 4명이 낙선함으로써 특정당에 대한 몰표 성향이 어느 정도 완화된 경향이 있다. 물론 무소속으로 당선된 인사들도 당선 후 민주당에 입당하겠다고 공언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려운 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와 같은 무조건적 지지가 외견상으로나마 약화된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충청권은 전통적 강세를 보였던 자민련이 24석 중에서 11석만을 차지함으로써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상당히 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강원도에서도 민주당이 과반수 이상을 확보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이를 충청도와 강원도의 지역주의가 약화된 것으로 해석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강희경·민경희(1998)가 청주지역의 권력자원 연구에서 밝힌 것처럼 이 두 지역의 지역주의는 '집권당 우선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으로 여권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높았기 때문에 지역적 연고를 가진 인사가 여권의 공천을 받으면 밀어주는 형식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역적 편파성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선거결과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이 이번 선거를 통해 재확인된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선거 전에 총선시민연대를 위시한 각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및 입후보자의 자질 시비가 일면서 이번에는 당이나 출신지역 편향을 어느 정도 탈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서울과 경기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렇지 못했다. 결과만 보면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는 예전 그대로, 혹은 더욱 심화된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한나라당에게 압승을 가져다 준 영남지역에 대해서는 과거 호남지역에 내려졌던 것과 비슷한 비판이 일각에서 일고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과거의 야당이 호남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명찰을 달았듯이 이번의 야당은 영남당이라는 명칭을 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론은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선거결과라는 것이 당선 아니면 낙선이라는 양자택일이기 때문에 당선자 수만을 가지고 지역주의가 심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남권에서도 과거에는 거의 힘을 못쓰던 민주당이나 진보성향의 후보가 상당한 선전을 한 지역들이 있다. 호남에서 민주당 몰표가 상당 부분 사그러든 것이나 충청/강원권에서 표가 분산된 것 등은 오히려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징후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20년 간 우리 사회에 지역주의 혹은 지역감정처럼 많은 논란을 가져온 용어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많은 정치·사회적 사건의 배경을 보면 지역감정이 중요한 결정요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역안배에 의한 경제의 불균형 발전이나 인사차별 외에도 각종 국가정책의 결정도 특정 세력이나 지역의 이익을 배려해 내려진 경우가 많다. 일반 국민들도 선거에서 나타나듯이 평소에는 조용한 듯 하다가도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가 되면 다분히 지역주의적 성향을 띠게 된다.

이와 같은 지역주의적 성향은 우리 문화의 지역공동체적 성향과 연고주의가 근대화와 더불어 사회·경제·정치적 분야로 확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농경사회가 무너지면서 친족 중심의 관계망에서 점차로 친교나 우정과 같은 개인적 관계가 부각되면서 이것이 지역적 연계망으로 확대된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전할 때 사회의 연계망은 연고주의적 경향이 약해지고 합리성에 의거한 규범적 관계가 강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연줄망은 아직도 혈연이나 지연에 근거한 연고주의적 경향이 다분히 강하다. 특히 사회적으로 중요한 관계가 될수록 연고주의적 색채는 강해진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의 인사 충원유형이나 혼인관계를 보면 여전히 연고주의적 관계형성이 중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김용학, 1990). 이는 일반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대도시 직업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경험적 연구에서 김선업(1992, 1996)은 우리 사회의 연줄망(network of networks) 형성의 가장 큰 근거가 학교동창임을 발견하였다. 전체적 연줄망에서는 학교동창이 다른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핵심적 연줄과 도구적 연! 줄망으로 가게 되면 친족의 중요성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를 보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관계가 될수록 친족이나 동창과 같은 강도와 통합성이 높은 연고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연줄망이 혈연이나 지연과 같은 개인적 연고를 중시하는 연고주의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서구와는 질적으로 다르고 급격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사회적 관계망이 형성될 때 집단형성에 중요한 가교역할을 하는 것은 혈연과 지연이다. 전통적 유대관계에서는 혈연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지연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활동영역이 확대되면 제한적인 범위의 혈연보다는 관계망이 넓은 지연의 역할이 중요하게 된다. 산업화와 더불어 1960년대 도시로의 이농현상이 확산되면서 지연의 역할이 점차 중시되었을 것이다. 김선업의 연구 결과는 이러한 지연의 특수형태로 고등학교 동창이 연줄망의 중요한 기반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서울과 같이 익명성이 높은 대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기반은 지역적 연고, 특히 유대감이 높은 고교동창이었던 것이다. 타지 생활에서 자신들의 지위상승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이 지역기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처럼 지역적 연고를 중시하는 유대관계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어떤 사회든지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과 친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지역적 연고는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의 기반이다. 문제는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강화되어서 타 지역에 대한 배타성을 띄게 될 때이다. 연고주의가 강해지면 사적인 친분관계에 의해 의사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우리 사람'끼리 뭉치게 된다. 결과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부재와 타 지역에 대한 차별이다. 정책의 건전성이나 인물의 능력보다는 개인적 친분이 중시되는 편파적 결정은 그 집단 뿐 아니라 전체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연고주의적 폐단이 수시로 지적되어 왔고 이를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다시 지역적 편향으로 회귀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번의 16대 총선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2. 지역감정, 지역갈등, 지역주의

지역간의 갈등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역감정은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다. 개념 자체만 보면 자기 지역이 아닌 타 지역과 그 지역민들에게 느끼는 주관적 감정을 말한다. 여기에는 긍정적, 부정적, 중립적 의미 모두가 포함된다. 예를 들면, 호감, 사랑, 존경, 적대감, 증오, 천시, 중립적인 감정 등이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감정은 주로 부정적인 측면이다. 즉 타 지역(민)에 대한 부정적·배타적 감정 및 시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타 지역민에 대한 부정적 의식은 대부분 편견이며 고정관념화 되는 것이 보통이다. 편견이기 때문에 정당한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식은 쉽게 고정관념이 되어 사람들의 행동과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역감정은 이러한 편견이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다른 편견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지역감정도 한 집단의 타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일방적(one-way)인 경우가 많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의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백인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 민족중심주의 등을 보더라도 한 집단이 타 집단을 일방적으로 차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역갈등(regional conflict)은 둘 이상의 지역간에 정치, 사회, 경제적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서로가 상대를 경원시하고 적대적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지역감정은 관점의 차이에 따라 어느 곳이든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감정이 있다고 해서 지역갈등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갈등은 실질적 이해관계로 인해 상대방을 서로가 적대시하기 때문에 다분히 쌍방향적이다. 대부분 지역간의 관계가 사회문제시 되는 경우는 지역감정이 발전하여 지역갈등의 형태를 취하게 될 때이다. 어떤 이해관계로 인하여 양쪽에서 동시에 지역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간 타 지역으로부터 일방적 배척을 받았던 집단이 어떤 계기로 인하여 상대방을 배척함으로써 양자간에 갈등관계가 생길 수도 있다.

특정 지역 사람들을 차별하고 관계(官界)에 등용하는 것을 억제한 지역차별은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에도 존재했었으며, 해방 이후에도 지역차별은 엄연히 존재해 왔다는 주장이 많은 연구에서 제기되고 있다(김문조, 1993; 남영신, 1992; 이병휴, 1991). 그러나 여기서의 차별은 특정 지역들간의 항구적인 갈등관계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지배층이 변함에 따라 특정 시기에 특정 지역 출신들이 세도를 잡으면서 타 지역 출신들을 배척함으로써 나타난 한시적 현상이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이병휴, 1991).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통일신라 이후 특정 지역 출신들이 계속해서 세도를 잡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중앙집권체제로 인한 서울과 지방, 즉 경향간의 세력갈등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나아가서 이러한 지배층간의 갈등관계가 일반 민중들에게까지 확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주의는 위의 두 개념보다는 약한 개념이다. 약하다는 것은 갈등이나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나 무시같은 직설적인 대립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다. 지역주의는 지역중심주의, 지역이기주의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자기 지역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이 강화되면 지역이기주의가 되고, 극단적으로 가면 지역패권주의(남영신, 1992)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타 지역을 무시하고 억압하면서 자기 지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형태다.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 지역주의가 존재했었는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그것이 사회의 표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견해가 일치한다. 바로 1960년대부터이다. 지역주의가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분야가 정치분야다. 정치분야 중에서도 지역주의의 영향을 비교적 쉽게 측정할 수 있는 분야는 전국적 표의 분포를 봄으로써 특정 후보에 대한 지역적 선호를 알 수 있는 대통령 선거다.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선거의 관건이 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온만금(1997)의 연구를 보면 박정희, 윤보선 두 후보가 격돌한 1963년의 대선 때 지역주의가 발생했다고 한다. 북쪽으로 갈수록 윤보선 후보가, 남쪽으로 갈수록 박정희 후보가 높은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후 1971년의 대선에서는 김대중, 박정희 두 후보에 대한 지역주의적 성향이 더욱 심해지는데 특히 영호남 두 지역에서 두 후보에 대한 지지기반이 동서로 확연히 구분되고 있다(온만금, 1997: 744∼745). 온만금의 분석에 의하면 호남지역에서의 지역적 편파성향은 1971년의 대선부터 나타났으며 1987년과 1992년 대선으로 가면서 급격히 높아지고 ! 있다. 반면에 영남지역은 1967년부터 이미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즉 영남은 이미 박정희 정권이 탄생한 1960년대부터 지역주의가 등장하였지만, 호남은 김대중 후보가 나선 1971년에 지역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1980년대에 이르러 급격히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1980년대 이전까지는 지역주의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된 것은 아니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1980년 5·18 이후이다(남영신, 1991; 김종철, 1991). 그리고 이것이 대중적 행동으로 표출된 것은 1987년 대선과 이듬해의 총선이다. 그 전에는 막연한 한(恨)이나 심리적 박탈감의 형태로 존재하던 것이 시민들의 투표행위를 통해 정치적 의사표시의 형태를 띄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부터 특정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5·18의 상처를 받은 광주 및 호남지역에서는 김대중과 평민당, 민주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가 지역 몰표의 형태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후 이러한 지역적 편향은 영호남뿐만 아니라 충청도까지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거의 모든 선거에서 후보의 지역성은 당락을 결정짓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지역주의가 이처럼 팽배하면서 지역적 편견은 이제 지역갈등의 양상을 띄게 된다. 과거의 지역감정은 기득권을 가진 한 집단이 그렇지 못한 타 집단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일방적 측면이 강했던 반면, 1980년대 이후의 지역감정은 쌍방향적 또는 다방향적 성격을 지닌다. 한 지역(혹은 지배집단)이 타 지역(들)을 차별하는 일방적 관계를 떠나 둘 또는 그 이상의 지역들이 서로를 경원하는 쌍방향적 지역감정, 다시 말해서 막연한 지역감정의 단계를 떠나 구체적인 지역갈등의 양상을 띄기 시작했던 것이다.

1980년대 이후의 지역감정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5·18 이후 광주를 위시한 호남인들의 지역적 정체감이 강화된 것을 무시할 수 없다. 5·18에 대한 피해의식과 소외감은 기득권층에 대한 반발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특정 당이나 인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체성의 강화는 광주의 이미지를 배타적이고 과격한 것으로 만들었다. 지역이미지는 하나의 상징물이다. 지역의 실상과는 또 다르게 사람들에 의해 해당 지역에 대한 의미가 구성되면서 하나의 사회적 구성물이 되는 것이다. 1995년의 한 조사(전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부산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1995)에서 보면 전남인(광주·전남)을 제외한 일반국민의 91%가 전남인은 단결이 잘된다고 응답하고 있다. 배타성에 대해서도 73%가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반면에 전남인은 각각의 질문에 59%, 45% 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김순흥 등이 행한 최근의 연구(1999)에서도 일반국민의 34%가 전라도인을 배타적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지역적 단결력! 이 높다는 응답을 보면 전라도(86.0%), 경상도(42.7%), 충청도(28.9%)로 나타나고 있어 전라도 사람의 단결력이 높다는 응답이 타 지역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다.

이처럼 일반국민들에게 광주와 전라도는 좋게 표현하면 개성과 지방색이 강하고, 나쁘게 표현하면 단결력과 배타성이 강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다가 그간 5·18 문제 해결을 위한 각종 사회단체의 시위와 지역 정당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호남인들의 단결력과 배타성을 강하게 인식시켰다. 그것이 5·18과 지역차별의 영향이라는 데는 이의가 별로 없다. 한 예로, 광주시민이 다른 지역보다 시위를 더 많이 했던 이유로 호남과 영남을 제외한 일반국민의 37%가 5·18의 영향을, 그리고 26%가 정치·경제적 차별과 소외를 지적하고 있다(김동원, 1998). 이러한 응답은 광주시민의 행동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데 많은 일반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정작 호남의 이미지 형성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강한 단결력과 배타성이 호남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몰고 가는 측면이 있다. 그 결과 호남은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지역이기주의가 팽배한 곳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광주와 전라도를 실제로 방문했거나 거주 경험이 있는 외지인들이 받는 인상은 그처럼 부정적이지 않은데도 전체적 이미? 測?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최상진·한규석, 1998).


3. 지역간 사회적 거리감

이 연구는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의 양상을 사회적 거리감을 이용해 조사한 것이다. 지역감정에 대한 조사는 그간 언론사 및 여론조사 기관 등에서 부단히 해왔으나 대부분이 특정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일회성 조사인 경우가 많아서 결과가 축적적이지 못하다. 또한 질문이 너무 직설적이거나 일반적이어서(예를 들면, "○○ 지역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역감정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등) 지역감정의 정확한 강도나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다.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의식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사례에 대한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집단간 배타성을 측정하는 도구로 사회적 거리감(social distance)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감이란 상이한 계층이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을 말한다. 원래 이것은 보가더스(Bogardus, 1971)에 의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인종, 종교, 계층 등의 사회인구학적 특성을 대상으로 각각 하위집단간의 친근감 혹은 거리감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이를 우리 사회 각 지역민들간에 존재하는 심리적 거리감으로 표현하면 지역적 거리감이다. 지역적 거리감의 의미는 상대 지역민을 인정하고 관용하는 정도를 말한다.

한국사회의 지역간 거리감을 조사한 연구는 주로 198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초기의 연구들(김진국, 1987; 김만흠, 1987; 조경근, 1987; 김혜숙, 1988)은 제한된 표본(주로 대학생)을 사용하였거나 문항의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어 일반화의 정도가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들의 결과는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호남인 보다도 영남인들이 타지역에 대한 거리감이 높게 나타나며, 둘째는 영호남을 제외한 타 지역에서 호남인에 대한 거리감이 영남인에 대한 거리감보다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리감의 근저에는 항상 고정관념화된 지역적 恣像?존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나간채(1991)의 연구는 위 연구들의 단점을 보완하고 일반화의 정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전국 10개 지역 20세 이상 성인남녀 2,020명을 대상으로 하여 가족관계(가족의 배우자), 친구관계(가까운 친구), 근린관계(가까운 이웃), 사업/직업관계(사업의 동업자) 등 4가지 항목에 대해 타 지역민에 대한 거부감을 조사하였다. 예를 들면, 가족관계라면 타 지역민을 가족의 배우자로 맞아들이는 데 찬성하겠는가 반대하겠는가를 물어 보는 것이다. 위의 네 가지 문항 중 한가지 이상의 관계에 대해 타 지역민과 관계를 맺는 데 반대하는 사람의 수를 측정하여 이를 사회적 거리감의 지표로 사용하였다. 결과는 이전의 연구들과 비슷하게 나타났다: 1) 호남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높고, 충청도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낮았으며, 2) 호남인에 대한 거부감은 호남을 제외한 거의 전 지역에서 높게 나타나는데 반해, 영남인에 대한 거부감은 호남지역에서만 높게 나타났다. 수치를 보면 전남과 전북에 대한 거부감을 보인 응답자의 비율이 각각 38%와 3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경상도에 대해서는 15%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호남! 인의 영남인에 대한 거부감은 약 30% 정도인데 반해, 영남인의 호남인에 대한 거부감은 50% 이상일 정도로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호남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높게 나타난 원인으로 그는 1) 상대적으로 낮은 생활수준, 2) 다른 도지역에로의 높은 인구이동율, 3) 집권세력의 적대시, 4) 사회화기관(대중매체)의 영향을 들고 있다. 이 외에도 역사적 배경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실제로 응답자의 22% 정도가 지역감정이 조선시대 이전부터 뿌리내린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역감정이 심화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기로는 응답자의 92%가 1960년 이후를 지적하고 있어, 지역감정이 우리 사회의 표면에 등장한 것은 196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역대 대통령 선거를 분석한 온만금(1997)의 연구와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전의 사회적 거리감 연구들은 각 거리감 항목에 대해 주로 응답자의 호/불호를 이분법적으로 물어보았다. 예를 들면, '○○ 지역 사람과 결혼할 의향이 있습니까'에 대해 '예/아니오'로 응답을 하도록 물어본 것이다. 나간채의 연구도 네 가지 항목 중 한가지 이상의 항목에 부정적 응답을 한 사람의 빈도를 계산하여 이를 부정적 거리감의 척도로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각 지역간 거부감의 수치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항목에 대한 응답을 둘 중의 하나로 제한함으로써 응답자들의 태도를 어느 한쪽으로 강요한다는 단점이 있다. 지역감정처럼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의견이 좀 더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항목을 늘려서 응답자들의 태도를 좀더 정확하게 측정하려고 하였다. 예를 들면, 특정 지역 사람과 자녀의 결혼에 대해 찬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찬성한다', '상관없다', '찬성은 안한다', '반대는 안한다', '반대한다' 등의 항목을 제시하여 응답자들의 다양한 심리적 태도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면 거리감 척도를 일괄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측정의 신뢰도를 높일 수 ? 獵募?장점이 있다.

이 연구에서도 지역간 거리감 척도로 네 항목을 응답자들에게 제시하였는데 친구관계는 여타 연구와 비슷하고 나머지는 약간 다른 항목을 사용하였다. 근린관계에서는 가까운 이웃이라는 개념이 약간 모호하기 때문에 아예 특정 지역사람에게 집을 세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다음에 가족관계도 보다 구체적으로 본인의 자녀가 특정 지역 사람과 결혼하는 데 대한 의견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도가 높은 질문으로 본인의 결혼을 포함시켰다. 즉, 특정 지역사람과 결혼할 의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하면 척도간 강도가 확연히 차별되기 때문에 응답자들의 태도를 좀더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본 조사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조사들이 있다. 『전남이미지 실태연구』(전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1995),『전라도 타화상 조사』(김순흥·최준영·양철호, 1997),『무등일보 신년특집 여론조사』(김순흥·최준영·양철호, 1998) 등이다. 본 조사와 관련있는 항목에서 각각의 연구 결과들을 비교하여 제시하였다.


3.1 조사설계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20세 이상 60세 미만의 성인남녀 1371명(광주지역 400명, 여타지역 971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실시하였다. 지역별 인구수에 따라 쿼터를 할당한 다음 지역별로 전화국을 무작위로 추출하고, 각 해당전화국 내에서 RDD(random digit dialing)방법으로 전화번호를 선정하였다. 표집설계에 의해 추출된 가구를 조사하되, 각 지역의 성별 및 연령별 인구맑볶炷꼬?따라 쿼터를 배정하였다(<표 1>). 광주는 인구비율에 맞추어 원래 29명으로 쿼터를 배정하였으나 광주가 호남 정서의 중심지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이를 타지역과 비교하기 위하여 400명을 조사하였다. 그러나 전국 분석에서는 전국인구분포에 따라 29명으로 가중치를 조정하였다. 그 결과 전체 사례수는 1,000명이 된다. 조사기간은 1998년 9월 11일부터 15일까지이다. 표본오차의 최대허용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3.2%이다.

<표 1> 응답자의 사회인구학적 특성


3.2. 조사결과

3.2.1. 친구삼기

먼저 전국을 대상으로 경상도인과 전라도인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을 보기로 하자. 친구삼기를 보면 친구로 삼겠다는 응답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경상인 92%, 전라인 89%). 거주지별로 약간의 편차는 있었으나 전 지역에서 90% 내외의 호감도를 보이고 있었다. 충청지역(충북 78%, 충남 81%, 대전 79%)에서만 전라도 사람을 친구삼겠다는 응답이 타 지역에 비해 10% 정도 낮게 나오고 있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친구삼지 않겠다는 부정적 응답도 경상도를 포함한 타 지역은 모두 10% 미만인데 이 세 지역에서는 10%를 상회하고 있었다(충북 12%, 충남 17%, 대전 10%).


3.2.2. 집세주기

집 세주기를 보면 경상도사람에게 세를 주겠다는 응답은 77%, 전라도사람에 대해서는 69%로 나타나 8%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친구삼기 보다는 강도가 강하기 때문에 찬성율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이가 조금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상도사람에게 세를 주지 않겠다는 응답은 전국적으로 7.7%를 나타내고 있는데, 가장 높은 곳은 전남의 13%이며 그 다음 인천(7.5%), 충남(7.3%), 대전(6.9%), 강원(6.1%)의 순이다. 반면에 전라도사람에게 세를 주지 않겠다는 응답은 전국 평균 11.4%이며, 강원도(21.2%), 충남(19.5%), 충북(18.8%), 대전(17.2%) 등지에서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었다. 참고로 이 네 지역의 부정적 응답의 평균은 경상도사람에 대해 10%, 전라도사람에 대해 19%로 전라도사람에 대한 반대율이 두배 정도 높은 셈이다. 질문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부정적 응답이 높아진 동시에 친구삼기와 마찬가지로 충청/강원 지역에서 부정적 응답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 두 지표로만 볼 때, 대전/충청/강원이 두 지역에 대한 거리감이 가장 큰 지역이라 할 수 있다.


3.2.3. 자녀의 결혼

자녀결혼에 대한 찬반 여부를 보면 찬성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이도 51%와 41%로 10% 정도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반대율이 높은 것은 아니다(경상도 7.7%, 전라도 13.7%). 많은 응답자들이 자녀 배우자(사위나 며느리)의 지역성에 대해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경상도 30%, 전라도 32%). 경상도에 대한 찬성 응답을 권역별로 보면 서울/경기지역이 39%로 가장 낮고, 그 다음이 충청/강원(56%), 호남(60%)의 순이다. 그러나 서울/경기지역은 '상관없다'는 응답도 37%로 가장 높다. 반대한다는 응답을 지역별로 보면 대전(20.7%), 전남(14.9%), 인천(13.2%), 강원(12.1%), 전북(11.6%), 서울(11.2%)의 순이다. 여기에 약간 소극적인 반대의사('찬성은 안한다')를 합해 보면 충남(22%), 인천과 대전(각각 21%), 전남(19%), 강원(18%) 등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지역들에서는 5명 중 1명 꼴로 자녀가 경상도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자녀가 전라도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비율을 보면 대전/충청/강원 지역이 21%로 가장 높고, 부산/경남 15%, 서울/경기 15%, 대구/경북 10%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수치에 '찬성은 안한다'를 더했을 때도 순서는 그대로였다(각각 28%, 19%, 18%, 12%). 이렇게 볼 때, 충청/강원 지역은 10명 중 3명 꼴로 반대하는 셈이다. 이 지역을 세분해 보면 충남 34.1%, 강원 27.3%, 충북 25.1%, 대전 24.1%의 순이다. 경남(부산 제외)과 경기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든 지역이 20% 미만의 반대율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특히 충청/강원 지역에서 전라도인에 대한 거리감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본 조사의 결과만을 두고 볼 때 경북지역이 전라도에 대해 가장 강한 적대감을 갖고 있으리라는 세간의 추측은 상당히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라도 타화상 조사(김순흥·최준영·양철호, 1997)]­경인지역과 충청/강원지역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경상도 사람과 자녀의 결혼에 대해 찬성 90%, 반대 7%로 나타나 본 조사의 결과보다 호감도가 높게 나오고 있다. 반대하는 비율은 인천/경기가 9.5%로 가장 높고, 다음이 충청/강원(8.4%)의 순이다. 전라도에 대해서는 찬성 82%, 반대 17%로 나타나 역시 본 조사보다 약간 높은 반대 응답을 나타내고 있다. 반대비율은 충청/강원(24%)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인천/경기(17%)이다. 본 조사의 결과와는 달리 경상도에 대한 배타성은 인천/경기가 가장 높고, 전라도에 대한 배타성은 충청/강원 지역이 가장 높은 셈이다. 전라도 사람과 결혼시키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찬성 82%, 반대 17%로 나와 본 조사의 결과와 비슷하다. 역시 충청/강원(24%)이 가장 반대하는 비율이 높고, 그 다음은 인천/경기(17%), 서울(11%)의 순이다.

[무등일보 신년특집(김순흥·최준영·양철호, 1998)] - 무등일보 신년특집 조사는 대통령 선거 수일 후인 1997년 12월 말에 있었다. 호남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질문한 결과 자녀를 경상도 사람과 결혼시키는 것에 대해서 찬성 91%, 반대 8%로 나타났다(모르겠다 1.2%).

남자(2.9%) 보다는 여자(12.7%)가 반대의견이 높다. 40대와 50대에서 반대하는 의견이 높게 나왔다. 자녀와 전라도 사람과의 결혼에 대해 영남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질문한 결과, 찬성 87%, 반대 11%로 나왔다(모르겠다 2.2%). 여기서도 남자(7.9%) 보다는 여자(14.7%)가 반대 의견이 높았으나 호남지역 보다는 격차가 적다. 연령별로는 역시 40대(18.7%), 50대(21.6%)가 특히 높았다(20대 6.6%, 30대 5.8%).

경상도와 전라도를 제외한 지역(기타 지역) 주민 590명에게 경상도 사람과 자녀의 결혼을 물어 본 결과, 찬성 94%, 반대 5%로 나왔다(모르겠다 1.1%). 남자(3.4%) 보다 여자(6.4%)에게서 반대 의견이 많았다. 전라도 사람과의 결혼에 대해서는 찬성 90%, 반대 9%이다(모르겠다 0.6%). 여자(12.8%)가 남자(5.9%) 보다 부정적인 의견이 높다. 연령별 차이는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3.2.4. 본인의 결혼

마지막으로 본인의 결혼에 대해서는 경상도사람과의 결혼에 찬성하는 비율이 47.4%, 반대하는 비율이 24.6%이다(<표 2>). 반대율을 출신연고별로 보면 영남 출신은 12.4%, 비영남 출신은 31.7%로 나타나고 있다. 비영남 출신 10명 중 3명 정도가 경상도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전라도에 대해서는 찬성 39.4%, 반대 29.1%로 경상도보다 반대율이 5% 정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표 3>). 출신연고별 분포를 보면 경상도의 경우와 비슷하다. 호남출신은 13% 정도가 반대하는 데 반해, 비호남 출신은 36%가 반대하고 있다.

경상도에 대한 반대를 권역별로 보면 역시 대전/충청/강원이 36.3%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서울/경기(30.9%), 호남(29.1%)의 순이다. 세부적으로는 충남이 46.3%이며 강원(36.4%)과 대전(34.5%)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강도가 약한 지표에서와 마찬가지로 충청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경상도인에 대한 거리감이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응답율도 35%를 넘을 정도로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전라도사람과의 결혼 반대의사를 보면 역시 대전/충청/강원(43.0%)이 가장 높고, 그 다음 서울/인천/경기(32.6%), 부산/경남(28.7%), 대구/경북(26.1%)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충청/강원을 세분해 보면, 충북(46.9%), 충남(43.9%), 강원(42.4%), 대전(37.9%)의 순이다. 그 다음으로 반대가 높은 곳은 경기도(37.2%)와 인천(35.8%)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경상도의 경우와는 달리 전라도 사람에 대해 남녀간 견해차가 크다는 것이다. 남성은 전라도사람과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응답이 19.5%인데 반해, 여성은 그 두 배인 38.8%나 되는 것이다. 이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결혼하면 남성은 자신의 인생을 나름대로 개척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자의 출신이 별 문제될 것이 없지만 여성의 경우 전라도라는 타지로 시집가서 낯선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전라도 타화상 조사(김순흥·최준영·양철호, 1997)] - 전라도와 경상도 거주자를 제외한 590명을 대상으로 본인의 결혼관을 질문한 결과, 경상도 사람과 본인의 결혼에 대해서는 찬성이 75.7%, 반대가 21.3%로 나왔다. 반대 응답을 지역별로 보면 인천/경기(23.5%), 충청/강원(20.6%), 서울(19.6%)의 순이다. 본 조사에서 경상도 주민들을 제외한 결과와 비교해 보면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응답이 본 조사 보다 10% 정도 낮게 나오고 있다. 전라도 사람에 대해서는 찬성 69.4%, 반대 27.4%로 역시 본 조사와 비슷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반대하는 의견을 지역별로 보면 충청/강원(38.3%), 인천/경기(30.2%), 서울(18.5%)의 순으로 본 조사의 결과와 비슷하다.

[무등일보 신년특집(김순흥·최준영·양철호, 1998)] - 본 조사와 비슷한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경상도에 비해 전라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높게 나타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본 조사와의 차이도 있다. 영남과 호남을 제외한 전국 주민들의 응답을 보면, 전반적으로 두 지역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의 비율이 본 조사에 비해 낮게 나오고 있다. 한 예로 본 조사에서는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응답이 경상도 사람 25%, 전라도 사람 29%로 나왔는데, 무등일보 조사에서는 각각 10%, 15%로 비교적 낮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전라도 지역에 대한 거리감이 경상도에서 여타 지역보다 약간씩 높게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는 본 조사의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전라도인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은 충청도, 강원도, 경기/인천 지역에서 가장 높은 셈이다. 이는 김순흥 등이 광주사회조사연구소에서 수행한 이전 조사들에서도 비교적 일관성 있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특히, 본 조사에서 충청도는 거의 45% 정도가 전라도사람과의 결혼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 호오도(好惡度)가 거의 반반에 이르고 있다. 2명에 1명 꼴로 반대하는 셈이다. 또한,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훨씬 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만 하다.

위의 분석결과가 제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경상도와 전라도에 대한 거리감이 가장 먼 곳은 충청과 강원, 그리고 인천/경기 지역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영·호남으로부터의 유입인구가 많다는 것을 이유로 들 수 있을지도 모르나, 부산이나 대구와 같은 영남의 중심도시에서도 전라도 사람에 대한 반발감은 전국 평균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도시로 갈수록 사회적 거리감으로 본 지역감정의 강도가 낮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도시로 갈수록 익명성이 높아지면서 실질적 이해관계가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 지역민들을 쉽게 대할 수 있게 되면서 출신 지역에 근거를 둔 막연한 고정관념이 희박해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흔히 생각해오던 것과 달리 영·호남간의 지역대립은 상대적으로 낮고, 오히려 충청/강원처럼 예상치 않았던 지역에서 전라도 뿐만 아니라 경상도에 대해서조차 지역감정이 높게 나타난 것은 이 조사에서 나타난 특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첫째로 그간 정치무대에서의 소외감이 표현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즉, 이전에는 호남지역이 소외당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나 199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짐으로써 이제는 자신들만 소외당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의 선동도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충청도 핫바지론'이나 '충청도 임금'과 같은 정치적 구호들이 이들의 소외감과 반발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해석은 지역감정의 근원이 서울과 지방의 구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역사적으로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과거부터 지방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었다. 서울이 지방을 차별하고, 인접 지역인 충청도나 강원도는 서울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전라도나 경상도와 자신들을 구분하려 했고, 그에 따라 서! 울 인접지역의 타 지역(지방)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강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인과의 결혼에 대한 전국 응답자의 찬성/반대율이 <표 4>에 제시되어 있다. 관계의 강도 혹은 심각성이 높아질수록 찬성은 낮아지고 반대가 높아짐을 알 수 있다. 특히 본인의 결혼에서는 상당수의 응답자들이 전라도나 경상도 사람과 결혼하기를 꺼려하고 있어 아직도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적 편견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경상도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전라도보다 높은 편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것보다 크지는 않다. 찬성은 10% 미만, 반대는 7% 미만의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이전의 연구에서 보는 것처럼 전라도에 대한 일방적인 배척감은 많이 약화된 셈이다.


3.3. 경상도와 전라도간의 지역감정


우리 사회에는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이 만연되어 있는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언론을 위시한 각종 매체가 그렇게 보도하고 있고 정치권, 시민단체들, 그리고 일반 국민들도 대부분 이에 공감하고 있다. 이번 16대 총선에서 영남지역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한 것은 '반 DJ정서'가 가장 큰 요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DJ라는 상징은 결국 호남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호남에 정권을 빼앗긴 상실감이 영남인들을 뭉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이 부각되는 이유는 우리 정치의 양대 세력을 두 지역이 대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간 한국 정치의 지배층이었던 영남세력에 맞설만한 대표적 지역집단은 호남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영·호남 사람들 간에는 어느 정도의 배타적 감정이 존재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이미 앞의 분석에서 나타났듯이 양 지역간의 지역감정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호남이나 영남에 가장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지역은 충청/강원이며, 그 다음이 경기지역이다. 이와는 달리 나간채(1991)의 연구에서는 두 지역간의 거리감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김혜숙(1988)의 연구를 보면 호남인에 대한 부정적 거리감에서 영남인과 비호남인들 사이에 뚜렷한 차이를 볼 수는 없다. 1997년의 광주사회조사연구소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김순흥·최준영·양철호, 1998). 본 연구를 포함해서 비교적 최근에 수행된 연구결과들은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이 예상보다는 심하지 않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결론이 민경환(1991)의 연구에서 제시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은 개인적 수준에서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호남에 대한 배타적 감정은 영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영남인들에 대한 호남인의 태도도 비영남인의 태도와 유사하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간의 연구를 보면 호남인이 유독 영남인을 싫어한다는 근거는 별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적 수준에서는 영호남간의 갈등이 확실히 존재한다. 이는 정치·경제적 영역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집단적 배타성이 표면으로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마치 선거에서 후보의 인물보다는 출신지역이나 당을 문제삼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민경환의 논의는 본 연구의 결과와 상당 부분이 일치하고 있다. 호남인에 대한 타지역의 편견이 만연되어 있으며, 영남인에 대한 태도가 호남과 비호남에서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이 실상보다 과장되어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연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연구들이 주로 호남인에 대한 편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호남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의 결과를 보면 영남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도 상당 수준 만연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충청/강원 지역에서 영남인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높은 점은 특기할 만 하다. 따라서 본 연구의 결과만을 볼 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영호남 양자가 모두 지역적 편견의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4. 맺는 말

본 조사의 항목 중 지역간 거리감을 가장 명료하게 나타내는 것은 지표의 강도가 가장 강한 본인의 결혼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비율이다. 일반 국민중 경상도 사람과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비율은 충청/강원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경인지역, 호남의 순이다. 이에 비해 전라도 사람과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비율은 충청/강원, 경인지역, 부산/경남, 대구/경북의 순이다. 다른 항목들(친구삼기, 집 세주기 등)을 보더라도 결과는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경상도와 전라도에 대해 가장 사회적 거리감이 먼 지역은 충청/강원이고 그 다음은 경인지역이다. 본 조사의 결과를 볼 때, 영남과 호남 지역의 주민들이 상대 지역민에 대해 느끼는 사회적 거리감이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만큼 높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호남이 서로 지역감정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주장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과장되어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전라도 및 경상도 모두에 대해 가장 큰 사회적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 지역은 충청/강원 지역이라는 것이 본 조사의 결과이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지역감정의 근원은 서울과 지방의 구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의 여건상 역사적으로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과거부터 지방을 차별하는 관습이 내려왔을 것이다. 서울 및 인접 지역(경인, 충청, 강원)에서 전라도와 경상도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이 가장 크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서울이 지방을 차별하고, 인접 지역인 충청도나 강원도는 서울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여타 지역과 자신들을 구분하려 한다. 이에 따라 타 지역(지방)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강했을 수도 있다.

물론 경상도에 비해 상대적 낙후지역인 전라도가 부정적인 취급을 더 많이 받기는 했지만 경상도라고 해서 무조건 긍정적인 취급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 조사의 결과를 보면 두 지역 모두 피해자인 것이다. 그래도 경상도 지역은 그간 집권 세력을 많이 배출함으로써 이를 어느 정도 무마해 온 반면, 전라도 지역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부정적 취급을 더 많이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충청도나 강원도 지역은 서울과 동일시하려는 경향 외에도 앞에서 언급한 집권당 우선주의 경향(강희경·민경희, 1998)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16대 총선에서도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권력의 핵심에 한 번도 이르지 못하면서 이를 동경하는 태도가 확산되어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지역주의의 한 형태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사회의 특성상 지연이나 학연으로부터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출신지역을 등에 업지 않고 성장하기 어려운 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문벌, 족벌주의의 폐단이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공동체적 지향이 강한 우리 문화의 정실주의적 특성이 근본 요인이다. 소위 오랫동안 한 지역에 정착한 민족적 특성의 반영일 수도 있다. 따라서 현실 생활에서 지역주의를 단시일 내에 없애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것은 지역주의(혹은 지역이기주의)지 지역갈등은 아니라고 본다. 갈등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관점이 다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각 지역민들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볼 때 갈등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지니고 있는 것은 자기 지역의 이권을 향한 관심이지 타 지역에 대한 적대감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에서 '지역'의 대상은 '다른' 지역이다. 그러나 지역이기주의에서 '지역'은 '내' 지역이다. 지역감정이 다른 지역을 미워하고 배척하는 것이라 한다면 지역주의는 내 지역을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지나친 지역주의의 강화는 지역이기주의나 지역패권주의로 발전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지역적 편향은 지역이기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타 지역을 미워한다기보다는 자기 지역의 이해에 집착하다보니 이기적 행동이 표출되는 것이다. 물론 서로 다른 지역의 지역이기주의가 불가피하게 대립하면서 지역감정이나 지역갈등의 형태로 발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 정도로 심각한 지역간 배타성과 적대감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지배계급이나 지역의 영주들간의 권력과 영토를 둘러싼 분쟁의 형태로 지역갈등이 존재해 왔지만 이것이 일반 평민들에게까지 전이되었던 것은 아니다. 즉, 지배층의 권력다툼일 뿐 주민들간의 지역갈등은 아니었던 것이다(이병휴, 1991). 우리 사회에 지역간 대립이 팽배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극명하게 표출되는 것은 선거철일 뿐이다. 평소에는 오히려 지역간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민관협동으로 서로 교류를 확대하고 협력하고 있다. 또한 개인적인 만남의 장에서 특정 지역간의 지역감정이 표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선거 때만 되면 다시 지역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남영신(1992)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는 '지역패권주의' 이데올로기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자기 지역의 공동이익, 나아가서는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집단적 행동이 필요할 때는 의식적으로 그에 걸맞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럴 때는 합리적 사고가 지역이기주의에 밀리게 된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내 지역의 이익을 위해 내 한 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지역주의적 투표행위가 나타나는 것이다. ! 그렇다면 현재의 지역갈등도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지배세력간의 분쟁의 와중에서 지역주의가 형성되고 이것이 지배세력 간의 갈등을 거치면서 강화되고 이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주의를 개탄하고 이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데도 왜 지역주의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가. 이는 이미 지역주의가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데 일차적으로 기인한다. 태도가 고정관념화되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다음은 한 개인의 태도와 실제 행동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이 연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태도연구들이 개인들의 '진실된' 태도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된' 태도를 측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추후 행동을 정확히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지역감정처럼 민감한 사안에 대한 태도를 표현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태도를 위장해서 표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실제 태도는 반지역주의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확고하지 않다면 선거 당일의 투표행위는 지역주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만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1933년부터 1963년까지 30년 간 미국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를 분석한 Rossi(1966)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결론을 내렸다. 비록 우리와 환경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지만 충분히 음미할 만한 내용이다.

(1) 선거의 이슈는 투표행위의 중요한 결정요인이 아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자신이 평소 지지하던 당이나 후보의 입장에 따라 이슈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

(2) 선거운동 기간 동안 지지하는 후보를 바꾸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 지지후보를 바꾸는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선거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3) 선거운동 기간 동안 대중매체는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4) 개인적인 변수들(인성, 태도 등)은 지지하는 정당의 선택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주변 환경과 전통적 성향이 투표행위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5) 정당의 선택은 특정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나 사회적 범주(예를 들면, 종교나 인종)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6) 한 개인의 전통적 투표성향을 결정하는 것은 일차적 집단(가정, 직장 등)이지 개인의 인성구조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위의 결론이 모두 타당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투표행위를 너무 결정론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미국과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유권자의 투표성향이 후보자의 입장이나 행태, 그리고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급작스럽게, 혹은 점진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의 주장만으로는 이를 설명하기 힘들다는 비판도 있다(Sears, 1977). 그러나 우리의 상황에서는 Rossi의 분석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보인다. 이번 16대 총선을 보더라도 후보가 어떤 이슈를 들고 나오더라도 지역성이 강한 지역의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미국의 집단이나 범주를 한국의 지역으로 바꾸면 우리 국민들의 투표성향이 바로 지역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인 성향이나 태도, 혹은 정치적 입장은 이차적 요인일 뿐이다. 또한 한번 형성된 투표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 연구의 조사시점이 1998년 후반기이고 16대 총선은 2000년 4월에 치뤄졌다. 이전의 연구와 이 연구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적 경향이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다시 지역주의가 매우 강하게 나타났다. 두 시점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의 논의를 상기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역간 거리감은 개인 수준에서 각 지역민들 간에 느끼는 태도를 측정한 것이다. 대외적인 입장에서 지역감정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조사결과는 일반국민들의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하고 있다. 영남과 호남과의 갈등도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높게 나타나지 않았다. 실제로 개인적인 만남에서 상이한 지역민들간에 갈등이 표출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지역화합을 위한 각종 교류활동을 보면 참가자들의 열성도 높고 보람도 크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볼 때이다(민경환, 1991). 투표행위는 비록 그것이 개인적인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가 자기 소속 집단의 이해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태도(혹은 표현된 태도)와는 다! 르다. 공동의 이해일 뿐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결과가 중시되는 행동 표현에서는 결국 지역주의를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한 지역주의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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