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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자료실

작성자 한 빛
작성일 2003-06-18 (수) 07:17
ㆍ추천: 0  ㆍ조회: 6211      
'체 게바라'와 '김 산'에 대해서...


나의 삶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먼저 나는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잭 런던이 쓴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임박한 주인공이
마음속으로
차가운 알래스카의 황야 같은 곳에서
혼자 나무에 기댄 채
외로이 죽어가기로 결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 체 게바라-



(노래 듣기)

* 클릭 --> Comandante Che Guevara~







'Song of Ariran'

In Korea we have a folksong, a beautiful ancient song which was created out of the living heart of a suffering people.  It is sad, as all deep- felt beauty is sad. It is tragic, as Korea has for so Long been tragic. Because it is beautiful and tragic it has been the favorite song of all Koreans for  three hundred years.
It is a song of death and not of life. But death  is not defeat. Out of many deaths, victory may be born.

조선에는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려 주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을 담고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300년 동안이나 모든 조선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
이 노래는 죽음의 노래이지 삶의 노래는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서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다.

- 김 산 (장지락) -




(노래 듣기)

* 클릭 --> "김산(희망)의 아리랑"








체 게바라와 김 산의 비극적인 최후


체 게바라의 최후

"쏘아, 겁내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 - 체 게바라 -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에 대해 의연했던 남미의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1928 -1967)는  1967년10월9일 39세의 나이에 자신의 세계 혁명 마지막 모험지인  볼리비아의 이름 없는 작은 촌락 라이게라(La Higuera)에서 미국 CIA 첩보원에 의해 총살당했으며, 비밀리에 매장된 체 게바라의 시신은 30년이 지난 1997년에야 발견되어 쿠바에 안치되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체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끌었으며, 쿠바 혁명 성공 후  소련, 중국,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을 돌아다니면서 제3세계 민중들의 연대를 모색하였으며, 아프리카 콩고 내전에도 참여했고 자신의 마지막 혁명지인 볼리비아에서 최후를 마치게 된다.



김 산의 최후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 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내 자신에 대하여-승리했을 뿐이다." - 김 산 -

'아리랑'의 주인공 김 산 (장지락, 1905-1938)은 님 웨일즈와 만난 직후인 1938년 중국혁명과 아시아 혁명의 성지라는 연안에서 중국공산당 특무의 거두인 강생에 의하여 일본첩자이며 트로츠키파 라는 죄명으로 처형당했다.

중국혁명을 통해서 조선혁명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으며 온 몸을 중국대륙에서 불태웠던 불요 불굴의 위대한 혁명가 김 산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중국공산당에게 처형당하는  비극적 최후를 마친다.

그의 억울하기 짝이 없던 죽음은 1983년에 드디어 무죄로 밝혀진다.
김 산과 부인 조아평(趙亞平, 1989년 작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고영광(65)씨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부에 부친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사를 요청해 1983년 ‘김 산에 대한 사형은 특별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 발생한 잘못 처리한 안건’으로 공식 확인 받고 김 산의 당 적 회복을 받아냈다. 즉, 처형 당한지 무려 45년만에 명예 회복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진/ 옥에 갇힌 27살 때의 김 산(왼쪽)과 30대의 님 웨일스. 그들은 20여 차례에 걸쳐 집중적인 대화를 나누고 그 결과를 <아리랑>에 담았다.




체 게바라와 김 산 (장지락)의 약력


체 게바라


1928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시의 중류 가정에서 태어났다.

2살 때 발병한 천식은 그를 평생 괴롭히게 되는데,  공기 좋은 곳에 이사를 다녀봐도 증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초등학교 과정은 결국 어머니 곁에서 자택 학습으로 이루어졌다.
일찍이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 프로이드의 저서에 심취했으며 1941년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문학과 체육 과목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47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의과대에 입학하고 재학 중(51년- 52년) 친구인 알베르토 그라나도 (후에 생화학자가 된다)와 칠레, 페루, 에콰도르 등 남미 대륙을 여행하면서 피폐하고 억압받는 민중의 생활상을 목도하게 된다.

1953년 의학박사가 되지만 페론의 독재를 피해 남미 제국을 돌아다니다  1954년 과테말라 혁명의 실패를 눈으로 목격하면서 이듬해(1955년) 게바라는  중요한 반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체계적으로 확립하고, 1955년 당시 멕시코로 망명해온 '피델 카스트로(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나게 된다.  

1956년 카스트로와 함께 그란마호로 쿠바에 건너가 제2부대의 지휘관으로서 게릴라전을 이끌어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을 성공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1959년 설날 아침에 아바나에 입성함으로써 마침내 쿠바 혁명은 성공하게 되고 카스트로에 이어 쿠바의 제2인자가 된다.

혁명 성공 후 1959년, 쿠바 국립은행 총재를 지내고, 1961년 산업부 장관, 1962년 쿠바 통일혁명 조직 간부회 멤버 등을 역임하고 외교 활동 무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완수하던 1965년, 자신은 혁명가이지 정치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쿠바 제 2인자로서의 안정되고 보장된 요직을 뒤로 한 채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 콩고와 남미 볼리비아의 혁명 현장으로 떠난다.
1967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 중,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잡혀 미국 CIA의 지시에 의해 39세의 나이로 최후를 맞는다.

프랑스의 사상가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일컬어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 이라는 평가를 하였다. 이는 그가 '언행 일치'의 삶을 살았으며 스스로 세운 혁명 권력을 향유하기를 거부하고 밀림의 혁명 현장으로 다시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전 세계 혁명 역사상 유래가 없는 파격인 것이다.



김 산 (본명 장지락)


1905년 3월 러일 전쟁 기간 중 평북 용천의 농가에서 출생했다.
1912년 소학교에 입학하고 1916년 11세에 가출하게되는데,
어린 시기 기독교 계통 교육의 영향을 받는다.
1919년- 1920년 무정부주의에 심취하여 무정부주의자가 되겠다는 서약까지 한다.
1921년 일본에서 고학으로 유학 생활함.
1921년 황포 군관학교 수학하고 손문(중산) 대학 경제학과에서 수업한다.
1922년 김충창(본명 김성숙)으로부터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시사 받고
공산당에 입당한다.
1923년 <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여 중국 최초의 공산주의 잡지인 <혁명> 간행에
참여한다.
1925년 <중국대혁명>에 참가한다.
1926년 <조선혁명청년동맹> 조직위원 기관지 <혁명동맹> 부 주필로 선언문을 작성하고
<동양민족연맹>을 결성함.
1928년 홍콩과 상해에서 활동함.
1929년 북경에서 활동함.
1930년 6월 시 '동지를 조문함' 작시함.
1930년 11월 북경 경찰에 체포되어 일본 영사관에 넘겨져 조선에서 심문 당함.
1931년 4월 석방되어 6월 북경으로 돌아옴.
1932년 보정 제2사법학교 교사 생활. 고양 소학교 교사(은둔 생활)
1933년 4월 북경 경찰에 체포되어 북경에서 심문 당함.
1934년 1월 북경으로 탈출하여 당의 <북부지구위원회> 활동함.
중국 여인 조아평과 결혼하여 잠시 철도 노동자 생활을 함.
1935년 5월 상해에서 활동 시작함.
1936년 7월 상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 창설함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이 참여함.)
1936년 8월 <조선해방동맹>과 조선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조선혁명가 대표로 선발됨.
1937년 항일군정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수학, 일본어, 조선어를 강의함.
조아평 에게서 아들을 얻음(고영광)
에드가 스노우의 부인 님 웨일즈(본명 : 헬렌 포스터 스노우)와 만나 'Song of Ariran' 초고
1938년 강생의 지시로 '트로츠키 주의자', '일본 스파이' 죄목으로 처형당함.
1978년 아들 고영광이 당 중앙본부 조직부에 아버지 김산의 당권 회복 조사 요청함.
1984년 1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국은 공식적으로 김산의 명예를 회복시켜줌.
(참조 : 1985년 4월 25일 길림신문)



김산의 저서

소 설  : <백의 동포의 영상>
번역서 : 1932년 <포이어 바흐, 마르크스, 레닌의 인생관> (사노 마사부 저)
시     : 장시 <한 해 동지를 조문하여>,
1993년 한국의 '시사저널'에 최용수 교수(북경대)가 발표함.
<동지들이여 싸우자> (중국어),
1989년 최용수 교수(북경대)가 중국에서 <중국 조선 민족 발자취 총서 3>에 발표함.




영어가 원전인 김 산과 님 웨일즈의 "Song of Ariran"(아리랑)은 한국인 뿐만 아니라
한 시대를 대표한다할 수 있는 전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책으로, 미국 USC, UCLA 등 20여 대학의 동양학 관련 학과에서 교과서로 채택되기도 하는 책이다.


재미 작가인 김 영희에 의하면, 신부, 신학자, 고고학자로 현대 진화론의 대가로 꼽히는 떼아뜨로 샤르탱은 김산을 '새 시대의 새 인간'이라고 평했으며, 쿠바의 카스트로도 김 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체 게바라의 '정체성'에 대하여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하여 타국인 쿠바의 민중을 위해 혁명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여 성공한다. 이 후 혁명 정부의 2인자로서 요직을 두루 맡으며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국정을 운영해 나가다가, 제 2인자로서의 권력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제 3세계 민중을 위해 다시 혁명의 현장으로 뛰어들어가게 되나 결국 볼리비아에서 39세의 나이에 총살당하게 된다.

체 게바라의 정체성은, 핍박받는 세계 민중을 위한 '휴머니즘'을 가슴속에 품으며 '언행 일치적인 삶'을 살았던 '행동하는 지식인', '진정한 국제주의자(공산주의자)'로 압축해서 얘기할 수 있다.



김산의 '정체성'에 대해서

'순수하고 강한 영혼의 힘!'

20세기 초 격동하는 세계사의 현장인 중국 대륙에서 조국의 해방과 인류의 진보를 위하여
자기 자신의 온 몸을 모두 불태우며 33세의 나이에 황색 예수처럼 지상에서 사라져간
불요 불굴의 혁명가 김산!

국제 연대의 물결이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일어났고, 동양과 서양, 좌와 우, 개인과 사회, 가진 자와 없는 자, 남과 여 등 세계사를 통해 유례가 없었던 양 극 간의 갈등이 치열하게 시작되었던 20세기초, 격동의 동아시아에 뛰어들어 중국 혁명을 통하여 조선 혁명이 가능하다는 강한 신념을 품으면서 인간의 본성이 변할 수 있다고 믿으며 온 몸을 타국 중국에서 불태웠던 혁명가 김 산!
그러나, 그는 어이없게도 중국 공산당에게 처형당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민족주의자였으나 국제주의자였고, 무정부 주의자였다가 마르크스주의자로 삶을 최종 마감한다.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 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 나 자신에 대하여 -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은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경험했던 비극과 실패는 나를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는 환상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있다." - 김 산 -




체 게바라와 김 산은 현재의 우리 코리안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와 김 산은 현재의 남북 코리안들에게 아래와 같은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혁명이 필요하다!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의 앞잡이들이 뿌려놓았던 씨앗에서 태어나 강한 뿌리를 내리며 우뚝 서서 버티고 있는 기회주의적이며 반민족, 반민중적인 수구, 파시즘 세력들을 무너뜨려서 올바른 정신, 정의가  바로 서는  '정치 혁명', '문화 혁명'이 성공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한국과 북한의 집권 지도층, 특히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에게 아래와 같이 경고하고 있다.

" 자신의 권력 유지에 집착하지 말아라! 자기 자신보다는 민중, 인민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실천에 옮겨라!"

물론, 남북한 사람들 개개인 모두에게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남한, 북한의 민중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핍박받는 민중의 편에 서서 일하라!"


2003년 6월 18일

'한 빛 코 리 아'  대 표   최  동  국



한 빛: 김산의 아들 고영광씨, 리영희씨, 조정래씨의 대담 내용  
* 클릭 -->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7/board.php?board=hbboard&search=김산&shwhere=subject&command=body&no=63  [06/18-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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