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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자료실

작성자 한 빛
작성일 2003-05-17 (토) 14:32
ㆍ추천: 0  ㆍ조회: 4362      
한국, 억압의 문화를 극복하자!


시사월간 피플 (펌)
http://www.zuri.co.kr


인터뷰/권혁범(대전대 정치학과 교수)

“억압의 문화를 읽어라”

기사작성일: 2003-05-06

송복남 편집장 people@zuri.co.kr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밀실 본능이 있는데, 이것을 고려하지 않은 공동체는 3개월과 3년은 갈 수 있어도 30년은 못간다. 사회주의라는 게 거대한 공동체를 시험한 것인데 결국 실패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는 개인주의가 부족한 것이고 반면에 문제는 이기주의가 넘쳐나서 생기는 것들이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화에 녹아있는 억압적인 것을 읽어내고 그것을 씻어내려는 노력이 없으면 행복한 개인이 만들어지기는 어렵고 건강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행복한 개인 없이는 건강한 공동체도 없다



“현재의 복잡하고 혼란상황을 진단하고 극복하는 데 있어 과거 진보좌파적 패러다임은 상당부분 유실됐다”.


권혁범 교수의 탈진보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권 교수의 탈진보론은 인간의 복잡성과 비합리성 그리고 사회적 다양성과 다원화에 의해 어느 하나의 잣대로만은 제대로 읽어낼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특히 사회학자나 정치학자가 이런 부분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으므로써 스스로 반진보적으로 퇴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매카니즘이 집단주의라고 진단하고 이 집단적 억압이 인간의 근본적 행복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사적 조류가 오히려 계급적 시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자체가 복잡한 구조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기존 좌파적 시각이 아닌 또 다른 다양한 시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과 공통체의 관계에 대해서는 문화 속에 녹아 있는 억압적 구조를 읽어내고 이를 해결하지 않는 한 행복한 개인은 생산될 수 없으며, 이는 건강한 공동체의 무산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문화정치학과 성정치학을 강의하고있는 그를 지난 4월 16일 연구실에서 만나봤다.



한국사회 관통 이데올로기는 집단주의


-당대비평 편집위원을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1월에 그만뒀다. 사실 편집위원 한사람이 그렇다면 넘어갈 수 있는 문제지만, 지금까지 당대비평이 줄기차게 3년 동안 진보좌파를 시비걸고 공격해왔는데, 수구세력인 조선일보와 손을 잡고 글을 쓰면 당비가 좌파를 공격했을 때 누가 우리 얘기를 들을 게 있다고 보겠는가. 결국 당대비평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본 것이다.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조선일보가 앞으로 이념으로 삼아야 할 지평으로 보수주의가 아닌 자유주의를 주장한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매력적인 생각인데, 당대비평에 대한 조선일보의 시도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그렇게 볼 수 있다. 조선일보가 실제로 그런 시도를 작년 가을부터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진짜 그런가 해서 신문을 자세히 보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인적 구성원의 한계일 수 있다. 정말 자유주의 세력이라면 자유주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한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요즘 반핵반김을 주장을 하는데 반핵주의자로서 인정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핵무기도 반대하고 개발독재로 이어지는 박정희 전두환 등 남한의 독재자들과 결별 선언을 하고 수구들과도 결별하겠다라고 해야 한다. 그보다 사실 우리나라에 자유주의가 있는가. 조선일보의 자유주의는 수구주의를 포장하려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탈진보를 누차 얘기해 왔다.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보는가?


한국사회를 이끌어 가는 단위 이데올로기는 없다.

지금까지는 여러가지 헤게모니가 있었고 이에 저항하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이데올로기인 국가안보주의나 반공주의 보수주적인 민족주의와 충돌하면서 87년 이후에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세가 약화되어 왔다.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지형이 바뀌었다. 그것의 구체적인 표현이 노무현 정권이다. 현재 상황은 과거 이데올로기가 자리를 내줬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국가주의와 반공이데올로기가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다고 본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과정을 보면 어느 한쪽이 어느 한쪽을 압도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충돌은 점점 심화될 것으로 본다.

개혁자유주의 세력이 정권의 꼭대기는 차지했는데 한국의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는 여전히 과거의 세력이 잡고 있다.

교육 언론 등은 물론이고 이를 지원하는 세력이 전면전에 나섰다고 본다. 시청 앞의 시위도 그렇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과거세력이 나라를 빼앗겼다는 상실감에서 그런 것도 있고 이것을 기화로 전면전에 나선 것이다. 관제 집회 이후의 최대 우파 집회는 이들이 그만큼 흔들렸다는 증거이고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자신들이 이렇게 집결을 하지 않아도 국가가 알아서 해줬는데 지금은 국가의 꼭대기를 놓친 상태에서 스스로 그걸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지방의 구조를 보면 그게 곧 한국사회를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지방사회의 헤게모니 구조가 한국사회의 구조다. 어떻게 보면 민주화 운동은 이제 시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탈진보를 주장하는 것이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나?


그렇다. 이런 혼란상황을 진단하고 극복하는 데 있어 과거 진보좌파적 패러다임은 상당부분 유실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일담 소설에서 나타나는 식으로 7, 80년대 운동을 공격하고 훼손하는 식의 비판 방식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포스트를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7, 80년대의 피와 땀이 바탕이었다.

전적으로 과거 좌파적 시각의 패러다임이 무효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현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이 시대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계급문제가 남아있고 분단과 내이션이라는 패러다임은 남았다. 그런데 이런 걸 몽땅 그려 말하면 평등의 문제가 된다. 내가 지적하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이 이것만을 본질이라고 말하고 위계라고 선험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환경이나 젠더, 섹스얼리티, 여성, 문화문제 등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관심과 상황이 있는데, 이를 한가지만 가지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삶을 살면서 개인과 집단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범주라는 게 있다. 어떤 것을 축에 놓고 바라보고 바꿔나간다는 것은 개인이나 집단에 따라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과 개인에 따라 본질과 비본질 그리고 우선이나 부차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한국사회의 전체운동의 위계를 선정하고 이것은 먼저하고 이것은 나중에 하는 식의 질서를 부여한다는 것이 위험하고 억압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성노동자에게 계급을 얘기하면 맞는데 중산층 여성들에게 계급을 얘기한다면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이런 여성에게는 젠더문제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먹을 게 없어서 싸우는 노동자에게 당신 젠더문제가 부족하다고 말하면 되겠는가. 또 여성운동하는 사람도 독재사회에선 여성문제보다는 민주화운동을 하게 되듯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운동은 다양하고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교조주의적인 진보좌파가 세력으로 존재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과거의 진보주의적 사고의 틀을 간직한 사람은 많다.





특히 남자 지식인들은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자기훈련이 안되어 있다. 이런 문제로 들어가면 오히려 여성 지식인들과 더 얘기가 잘 통한다. 내가 여성학자들과 친한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얘기가 통한다. 이들이라고 민족이나 이념에 대한 사고가 뒤쳐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복잡하고 정교하다. 우리나라가 남성중심 사회다 보니까, 이들의 목소리가 안들리는 것뿐이다. 한국진보지식인들의 이런 것에 대한 노력은 굉장히 아마추어적이다. 얘기를 듣고 거참 맞는 얘기다 하는 수준이지,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복잡한 문제를 탐구해서 자신의 지식패러다임으로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공적인 공간에서 공론을 만들어내는 지식인이라면 사회학이나 심리학이나 여성, 환경문제를 다양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하고 수용해야 한다. 여성지식인은 반면에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하고 복잡하다. 여성학이 오히려 주변학문을 흡수하고 있다. 사회과학쪽의 진보주의자가 말하는 지역이나 민족, 국가 틀로 이해할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삶에 대한 구체성과 복잡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하다. 그렇잖은가.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복잡한가.

이런 것을 고려한 진보가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대중적 지지도 얻을 수 없다. 자칫하면 80년대의 오류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탈진보라는 말을 쓴 것이다. 지금은 진보라는 말이 너무 오염이 되어 있다. 탈진보라는 말자체는 진보를 비판하고는 있지만 과거진보을 부정하거나 해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탈진보란 말은 지적노력에 대한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노동문제를 바라보면 민주적 자유주의사회에서 보장해야 하는 노동 3권이 보장되고 있냐하면 그렇지 않다. 또 아무리 보장된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구조하에서는 계급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기 때문에 진보의 유효성은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기업 노조들이 주장하는 것과 비정규직 아줌마들이 하는 주장을 같은 계급으로 포괄할 수 있는가. 그러기에는 사회가 너무 복잡하다. 더구나 대기업 노조가 이들을 포괄하고 있느냐 실은 그렇지도 않다.



계급적사고만으로는 다양한 소수 못본다.


-소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말하는 것 같은데, 탈진보가 곧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말하는 것인가.

한국사회의 진보주의는 장애인이나 여성, 동성애자, 청소년, 노인, 입양아 문제 등에 있어 거의 문을 안열어 놓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진보주의가 뭐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가 이들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진보담론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일본의 경제학자 다끼무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재한국인은 일본사회의 축복이며 핵심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60만 재일한국인은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선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본군국주의의 결과물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일본사회가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인간답게 살고 민주주의가 굉장히 발달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소수자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비정규직이라든가 장애여성이나 중년 여성노동자 등 소수자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그런 것도 중요해 그러면 연대해, 식의 단선적 사고로는 진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화정치학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관심이 가는 단어인데 문화정치학이란 뭔가.


기존의 한국의 정치나 사회과학 전체가 전반적으로 정치경제가 사람의 삶이나 조건을 규정하는 부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족보를 따지면 그람시의 헤게모니로 돌아가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이나 그 안에 녹아있는 문화적인 형식이 그 삶을 규정하고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측면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지식인이라면 빵을 보다 공평하게 나눠먹고 권력을 보다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에 기본 목표를 세우고 있는데 지금 세계의 근대사가 보여준 것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문화적 형식이 변하지 않으면 억압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뽑는 것은 민주주의는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걸 했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이 일상생활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 경제적 민주화의 부족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문화를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훈련을 안받아서 그런 것이다. 예를 들면 우파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그렇다. 그들이 어디서 밥을 먹고 밥 먹을 때 자리배치를 어떻게 하고, 장애인과 여성과 어떤 식의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지, 자기 조교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배우자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구어체로 얘기를 하는지 기존 사회과학에서는 전혀 거론이 안됐고 중요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80년대 이후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하고 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지곤 있지만 이 부분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름만 대면 다알만한 진보지식인 얘기다. 정치학회에서 윤리강령을 만드는 제정위원회모임이었데, 그가 프랑스에서는 치즈 한조각 놓고 4,5시간씩 토론을 벌이고 그런다는 얘기를 하면서 각자 유학시설 얘기를 하게 됐다. 그러다 일식집에서 나와 밥을 먹고 2차를 갈려고 하는데 그가 전화로 6호실 비어있나? 그러더니 단란주점으로 가는 분위기가 됐다. 그때 나는 그게 충격이었다. 그저 대학 때 운동하던 친구가 회사다니면서 그러면 짜식 옛날엔 운동하고 그러더니 변했구나 그러면 그만인데, 소위 윤리강령제정위원회 사람들이 아닌가. 혼자 가면 사생활이라고 생각하고 그만인데 이건 공식적인 모임이 아닌가.


문제는 단란주점을 간다는 자체에 대한 자의식이 없고 이런 일상에서의 행동을 자신의 지식 안에 녹이려고 하는 노력이 전혀 없다. 왜 그런가 하면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은 한 번도 그런 공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고민이나 자의식이 가장 강한 사람들이 인류학자와 여성학자들이다. 사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국제정치학이 어떻고 하는 얘기보다, 건강한 시민을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진보적인 사회학자나 조선일보나 일상에서는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에 이런 논리를 갖다 대면 문화경제학 문화사회학이란 말도 가능하다고 보는데.


문화에 녹아 있는 정치적인 의미와 형식을 읽어내는 것이 진보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일상적 파시즘이란 말이 있는데 일상적 파시즘을 주장할수록 조선일보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적 파시즘을 주장한 사람들이 조선일보와 손을 잡았으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거시적 파시즘은 여전히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고 문화적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는 미시권력의 매카니즘을 읽어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진보지식인도 반진보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 아직 진보 보수경쟁관계 아니다.


-일상에서 한 개인이‘나’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치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는 얘긴데.


사실 이런 얘기는 문화인류학이나 여성학에서는 전혀 생소한 게 아니다. 내가 문화정치학이라고 말을 붙인 것일뿐이다. 문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런 훈련이 어느정도 되어 있기도 하다. 정치학자들은 문화정치학이란 말이 있는 것조차 모른다. 사회과학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운동이 이제 점점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연대에서 문화정치학 세미나가 있었는데 정치학자는 나 혼자였고 모두 문화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이었다.


-한국사회가 진보와 보수가 건전한 경쟁관계로 가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건전한 것은 모르겠다. 한국사회의 토양이 거칠기 때문에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만 진보는 세력으로 보면 여전히 소수다. 민노당이나 사회당의 위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은 개혁적인 자유주의 대 극우+봉건의 싸움이다.

노무현의 승리 자체가 자유주의의 승리지 진보는 아니지 않은가. 한국사회에 보수자유주의는 없다. 수구세력-이 안에는 보수주의자는 없다-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보 대 보수의 양축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는 자유주의가 너무 부족하다. 한 예로 지방시민사회에 자유주의는 없다. 교수회의를 봐도 마찬가지다. 회의방식은 모두 봉건적이고 비민주적이다. 노무현 세력에는 보수적 자유주의자도 있고 -관료출신들이 그렇다-개혁적 자유주이자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개혁적 자유주의가 중심이다. 국가와 시장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한 사회의 틀을 알 수 있다. 개혁적 자유주의자들은 국가개입을 원할 것이고 보수자유주의자들은 국가개입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계급문제가 다시 중요하게 부상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탈진보는 여전히 유효한가.


오히려 더 그럴 것 같다. 현재의 글로벌주의가 지금까지 국민국가의 틀이 생각했던 모든 경제가 깨져나가고 있고 과거의 진보적 시각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더 많이 생겼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결과가 결국 사회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를 읽기 위해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시각만으로는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신자유주의 사회가 복잡해지고 그만큼 이것을 읽어내는 시각이 다양해 질 수밖에 없다.


억압사회는 행복한 개인 생산못한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이 신자유주의 때문이며 이것이 곧 계급문제가 아니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 반세계운동 같은 게 많이 일어나는 데 조심해서 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쁜 것은 신자유주의 틀에 끼워넣는데 실은 같이 취급될 수 없는 복잡한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외국계 기업은 비명문대학생이나 여성들이 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런 경우 이것을 외국자본이기 때문에 반대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미국에서 만난 장애인 부부가 있다. 한국에 있을 때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한국에 절대 들어오지 않겠다면서 결국 미국시민이 됐다.


장애인인 자신들에게는 한국이 미국보다 나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국민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예가 너무나 많다. 민영화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나도 대체적으로 반대하지만 다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이 낸 세금 관료엘리트들이 다 해먹는데 그런 건 당연히 민영화하는 신자유주의가 맞다. 민영화하지 않는 것이 다 민중을 위한 것인가. 과연 그게 옳은가. 재벌들이 그런 짓을 많이 하는데, 민족자본 죽는다 외국자본의 음모다,해서 떠드는 것은 분명히 구별을 해줘야 한다. 그런 식으로 민족과 계급을 동원해 비효율적이고 특권집단을 방어하려는 것은 경계를 해야한다. 솔직히 우리나라 교육시장 개방은 해야한다고 본다.


교육시장 개방 반대하는 세력들이 사학인데, 우리나라 사학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현시점에서 교육시장 개방을 막을 명분은 없다고 본다. 사학시장 망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누군가. 바로 사학시장 주인들이다.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는 개방을 해서 망해야 할 사학은 망하게 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들고 일어나 반대하면 막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은 것인가? 교육현장에 있으며 너무나 많이 느끼는 것인데, 방법이 없다. 사학족벌체제가 중·고·대학까지 한국교육을 다 잡아먹고 있다. 무시무시한 집단들이 여야 정치권에서 사립학교법 다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데, 이런 상황에서 효율적인 외국 교육자본이 들어오는 것은 환영한다. 얼마 전 이중국적 문제로 장관 얘기가 나왔는데 나는 웃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너는 영어할 줄 아니까, 미국에서 공부했으니까, 이런 식으로 나온다. 논리 가지고 싸울 생각을 안하고 정서 가지고 싸울 생각을 한다.


시민사회에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본다.


근대성의 세 가지 요소는 합리성과 과학기술주의 제도적인 차원의 산업근대국가이다.

또 하나는 주체로서의 개인의 등장이다. 다른 말로는 개인해방이다.

한국에서는 두 번째 것은 옳건 그르건 확실하게 얻었는데, 개인의 해방은 상당히 지연되고 있다. 이것이 안되면 근대국가가 되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한국사회의 기본적인 이념체계는 집단주의다. 군사주의 봉건주의 가정주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집단주의가 된 것이다. 이것이 한국사회가 근대로 진입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요소이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억압의 많은 중요한 부분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우선시하지 않는 집단주의문화 때문이다.


젊은학생들조차 그렇다. 나는 학생들이 왜 꼭 엠티를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안가면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왜 가냐고 하면, 단결을 위해서 간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가 무슨 해병대냐, 단결을 해서 뭐하냐는 것이 내 얘기다. 대학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이고 그것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사회가 대학사회인 것이다. 그런 의식이 가정이나 학교나 회사나 억압적으로 깔려 있다. 사람의 근본적인 행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우리사회는 서구의 개인주의가 무분별하게 들어와 범람하여 어쩌구하는 교육을 시킨다. 그렇다면 그 증거를 대봐라, 그게 사실 서구의 개인주의 때문인가. 반공주의와 국가주의, 가부장적문화 때문이 아닌가.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집단주의를 구분하고 개인의 권리공간을 최대한 우선시하고 확장하는 이것이 절대적 우위에 있다는 인권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권의 기본은 핵심은 개인이다. 그런데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에 가보면 공동체라는 이유로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공동체가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는 공동체가 많은데, 이들 공동체에는 전체회의나 모임이라는 게 없다. 개인을 존중하는 이런 공동체가 오래 간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동체에 가보니까 전체회의나 모임이 수시로 있다. 공동체생활이라는 것은 수준이 무척 높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잠자는 시간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인가. 사람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인데, 이게 쉽겠는가.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밀실 본능이 있는데, 이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3개월과 3년은 갈 수 있어도 30년은 못간다. 사회주의라는 게 거대한 공동체를 시험한 것인데 결국 실패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는 개인주의가 부족한 것이고 반면에 문제는 이기주의가 넘쳐나서 생기는 것들이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화에 녹아있는 억압적인 것을 읽어내고 그것을 씻어내려는 노력이 없으면 행복한 개인이 만들어지기는 어렵고 건강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빛: <구체적인 현실!>에서 <진리>가 나옵니다.    [05/17-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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