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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자료실

작성자 한 빛
작성일 2003-08-29 (금)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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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개신교'의 뿌리를 찾아서...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개신교”


우익 이데올로기의 뿌리를 찾아


박권일    
디지털말  


한국의 우익을 특징짓는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반공’이다. ‘수적 표현’을 동원한다면 ‘한국 우익들을 만든 건 팔할이 반공’인 것. 다른 나라 우익들 역시 공산주의에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외국 우익들의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반공’ 말고도 다양한 목소리를 함축하고 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전체주의, 보수성, 지식인에 대한 혐오, 시장만능주의, 극단적 자유주의 등 나라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위의 요소들을 비중 있게 포함한다.

그러나 한국의 우익 이데올로기는 ‘반공’을 빼고 나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조갑제의 ‘예리한 지적’처럼 그들이 “좌익보다 공부를 안 한” 탓도 있다.(그의 통찰력에 다시금 감탄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의 굴곡 많은 현대사, 그리고 분단이라는 현실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승만의 ‘거대한 업적’


반공 이데올로기는 한국전쟁 전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실 반공 이데올로기의 기원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제는 3·1 운동과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점차 고양되는 민족해방운동이 공산주의운동과 결합되는 것을 차단하고 궁극적으로는 민족해방운동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해, (조선인) 계급 간의 대립을 부각시키는 민족분열정책의 일환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확산하기 시작했으며 … 1930년대에는 이러한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시행해 나갔다.” (정영태, 「일제 말 미군정기 반공 이데올로기의 형성」, 『역사비평』16호)




즉 일제의 민족분열정책이

바로 한국의 ‘반공’ 이데올로기의 시원이었던 셈이다.

그 구체적인 예가

바로 치안유지법(1925년)과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1936년)이다.




© 국정사진실  


국민국가 차원에서 ‘반공’ 이데올로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이 정권을 잡은 직후부터라 할 수 있다. 지지기반이 협소했던 이승만 정권은 친일관료와 경찰, 귀속재산 불하를 보장받은 친미성향의 자본가들만이 유일한 우군이었다. 그는 좌익 혁명세력들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진압으로 대응하는 한편, 중도우익 등의 세력들에 대해서는 각종 보안사건 조작으로 탄압하는 ‘양동전술’을 구사했다. 반대세력의 힘이 컸던 그 시기에 이승만이 이런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를 키워준 나라,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루먼 독트린’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반소반공 정책의 천명은 이승만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겨우 24명밖에 당선시키지 못한 사실과 여순봉기의 민중적 참여 등에서 알 수 있듯 이승만 정권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했다. 결국 이승만의 ‘북진통일론’과 같은 반북반공 이데올로기는 국가보안법과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야 겨우 지탱되는 위태로운 것이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반공 이데올로기는 이승만 정권의 허약한 체제유지 이데올로기에 머물지 않고, 남한 민중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게 된다. 명실상부한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본격적인 작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왜곡된 정치·경제적 구조를 가져왔다. 그리고 전쟁의 끔찍한 참상은 사람들에게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화인’으로 남았다.


집단적 체험은 사회적 동의체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더구나 미군의 주둔과 원조, 그리고 월남한 실향민들의 ‘공격적 반공주의’와 맞물리면서 공고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친일파로 대표되는 남한 지배세력, 다시 말해 우익의 ‘태생적 한계’를 일거에 만회해버렸다.


이승만 정권은 전쟁 전의 방어적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반공’을 실천할 수 있었다. 전쟁과정에서 팽창할 수밖에 없는 군·경찰 등의 국가기구를 통해 정적을 제거해 나갔고, 대중동원과 억압의 수단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활용했다. 누군가의 책 제목이 떠오른다. 거대한 생애 이승만 90년. 과연 ‘거대한 생애’ 동안 이승만은 한국의 20세기를 지배한 이데올로기를 훌륭히 키워냈다. 그의 생애에 황혼이 깃들 무렵, 오랜 억압과 부패에 신물이 난 민중들은 4월 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게 된다. 그러나 박정희의 5월 군사쿠데타로 민중들의 열망은 또다시 짓밟혔다.



‘위대한 우익’ 박정희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의 군사혁명위원회는 강력한 원칙을 천명했다.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강화한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과의 유대강화, 자본주의적 경제건설에 주력한다.”


쿠데타 세력은 이러한 원칙의 실현을 위해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정당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기 시작했다. 1961년 5월 28일 통신사 정비정책과 언론통제, 6월 21일 ‘혁명재판소 및 혁명 검찰부 설치에 관한 법률’ 등 언론과 사회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으로 검거자가 속출하였고, 7월 3일 반공법, 1962년 국가보안법의 강화개정작업, 정치활동정화법, 정당법 등을 통해 이 기간 동안 구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용공분자란 이름으로 혁신계 및 학생운동권을 포함한 2천여 명을 구속했다. 특히 1961년 6월 10일 중앙정보부법에 의해 창설된 한국중앙정보부는 정보의 독점과 반대세력에 대한 사찰, 규제활동을 전담하게 된다.


박정희가 이승만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 중 하나는 남북분단을 경제적 경쟁관계로 치환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정치적 정당화에 봉사해 왔던 ‘반공’은 이제 새 옷을 갈아입게 되었다. 즉 ‘반공’에 반대하는 행위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인 경제성장에 반대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반공은 반북과 동일시되면서 ‘멸공통일’이 아닌 모든 통일논의는 죄악시되었다.


또 하나 박정희 정권의 차별성은 ‘병영국가’ 이데올로기였다.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야욕을 불태우고 있는 상황이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감내해야 하며, 더 나아가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것은 국가주도의 계획경제정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이데올로기였을 뿐 아니라 감시와 통제, 획일성, 집단동원체제 등을 정당화하는 전 국민의 계율로 작용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박정희의 ‘조국근대화론’은 독점과 특혜, 종속성의 심화, 권위주의적 군사문화라는 큰 상처를 남겼다.



박정희가 한국의 우익들에게 ‘초인’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까닭은 그가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권력을 거머쥐었고, 보기 드문 카리스마를 과시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루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남달랐던 점은 ‘적’과 ‘아군’을 명확히 구분하고 우익들이 그토록 목말라하던 ‘국가적 비전’을 확고하게 제시했다는 데 있다.




‘권세자들에게 굴복하라’ -개신교와 우익




오늘날 한국 개신교계가 대체로 보수적 정치이념을 대변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개신교의 이데올로기가 잘 나타나 있는 로마서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에게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로마서 13:1-7)

바울의 말이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국가 또는 사회지배세력에게 가져야 할 ‘모범적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우익이데올로기와 개신교와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교회가 선교과정에서 수용한 기독교 사상 속 이데올로기를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은

가장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성향의 미국 남부지역 교회 출신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일제 식민지 시기에 한국 교인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고’만을 설파했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그들의 성향 외에도

정치적 문제와는 철저하게 거리를 두어야 교세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현실판단도 작용했다.


그 결과 한국 교인들은

민족의 해방이나 사회개혁 따위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또한 서구적 질서(자본주의, 자유주의, 나아가서는 미국 그 자체)를

곧장 하나님의 그것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일제 식민지 시기 극히 소극적인 정치활동을 하던 개신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우익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승만의 한민당에 누구보다 개신교인들이 많이 참여했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개신교계에서 지지하기도 했다. 이승만의 지지세력들은 ‘독립촉성 기독교중앙협의회’를 만들어 미군정과 분단세력들에 동조했다. “해방 직후 이승만이 ‘반공’을 주창하고 나섰을 때 정권의 종교적 주체는 바로 개신교였다.”(서정민, 「해방 직후 한국 기독교계 동향」, 좬기독교사상좭, 1985)


개신교는 한국전쟁 직후 ‘반공’이 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된 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대한기독교 구국회’나 반공포로들이 결성한 ‘기독교 신우회’ 등의 각종 단체들은 전쟁을 거치면서 ‘우익의 상징’으로까지 간주되었다. 더불어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론’은 교회를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기도 했다(김사철, 「기독교계에 나타나는 반공 이데올로기」,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대한민국 우익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난 3월 1일의 ‘우익 궐기’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양동안 교수가 지난 1989년 ‘우익 총궐기’를 호소한 바 있고, 2001년엔 자유기업원이 “우익이 총궐기하여 좌익이 더 이상 국정을 농단치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대규모 군중들이 시청 앞에 모여서 세를 과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우익이념이 형성된 과정을 살펴보면 우익의 이번 ‘궐기’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지난 겨울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미군을 규탄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좌익’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뿐인가. 마침 북핵사태로 한반도에서는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우익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일들이 두렵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익’ 또는 이른바 ‘애국세력’을 지향하는 시민이라면 그동안 좌익이라며 이단시해 오기만 했던 ‘운동권’의 역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친미매국/반미애국 혹은 프롤레타리아트/부르주아지로 시민들을 날카롭게 갈라 세우며 매섭고 획일적인 대적 의지를 다졌던 운동권 일부 세력들이 1980년대가 저문 뒤 어떤 비운에 처했는지를 되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우익도 비로소 ‘합리적 보수세력’으로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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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기자 kipark@digitalmal.com


제 202 호 2003 년 4 월 발행
ⓒ 디지털말  
http://www.digitalm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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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인들이 바라본 기독교"  

출처:안티조선
이 름 트리니티
제 목 지성인들이 바라본 기독교 -동호회/지성방-
박광진님 / 나우누리



토인비

"나는 신의 본질에 대해서 유태의 개념(구약의 하나님)을 믿지 않을뿐더러 그다지 존경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신의 전능함을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 악마도 신이 만든 것이라고 보고 있어, 그러면서도 신은 자기가 만든 악마의 행위에는 책임이 없다는 거야"

"우주와 그 배후에 더 높은 존재가 있다고 믿습니다. ‥‥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높은 존재에 대한 동부 아시아나 인도적인 견해입니다."


루소

"구원받기 위해서 신을 믿어야 한다. 이 그릇된 교리는 잔인한 불관용의 원리이다."

"만약 지상에 단 하나의 종교가 있어서, 그것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고통만 있다면, 그런 종교의 신은 가장 부정한, 또 가장 잔인한 폭군일 것이네."

"나는 스위스에서 아들에게 종교(기독교)를 가르치지 않는 어머니를 보았다. 그 까닭은 이 조잡한 가르침에 만족해 버리고 이성에 깃들 나이에 이르렀을 때 보다 나은 가르침을 경멸하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소르본느에서 메시아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결부되어 있음은 대낮에 해를 보듯이 명백하네. 그러나 암스테르담의 유대교 율법교사들 사이에서는 같은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와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는 것 또한 명백하네."


아인쉬타인

"나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의 많은 부분이 사실일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열정적인 자유 사상가가 되었고, 국가는 고의로 젊은이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 이 태도는 근본적으로 내 일생을 통해 지속되었다."


B. 러셀

" 나는 그의 창조물인 인간을 상벌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

"우리가 기독교를 지키지 않으면 모두 다 악한 사람이 된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기독교를 지켜온 사람들이 대개 매우 악했습니다. ....저는 많은 교회로 조직된 기독교도의 종교가 세계의 도덕적 진보의 으뜸가는 적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을 신중히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기독교의 근본 교리는 수많은 윤리적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슈바이처

"예수는 머지않아 초자연적인 하나님 나라가 곧 출현하리라고 전했지만, 이 나라는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로서의 예수는 오류를 범했다."


"그리스 스토아 철학과 노자의 도덕경 사상을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보고, 이들을 진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종교단체(기독교)는
개인이 자신의 사색을 통해 신념을 얻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들이 미리 준비해둔 신념을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하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는 역사적 진리를 긍정하기는 커녕,

역사의 진리와 어긋날 때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거나 은폐하면서 그것을 얼버무리고 있다.

현대 기독교는
그 정신적 또는 윤리적 본질상 일할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볼테르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기독교를 공포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윌 듀란트

"기독교는 틀림없이 신성하다. 악행과 넌센스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17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기독교인들은 야만적인 최면술과 기만 속에 있으면서, 자기들이야말로 진실한 종교의 파악자라고 자만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교회의 기만적인 최면술에 사로잡힌 결과, 자기들에게 주입된 사이비종교를 진실하고 유일한 종교로 생각하고, 그 밖에는 어떤 종교도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무지몽매한 대다수의 민중"

"대다수를 점하는 일반 대중은 자기들에게 작용하는 이 최면술적 암시와 싸울 힘도, 가능성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이 현재 생활하고 있듯이 인간의 지고지순한 행복 - 인생의 진지한 종교적 각성 -을 결여한 채 헛되게 살다 헛되게 죽는다."


존 스튜어트 밀

"지옥을 만들어 내는 존재를 생각해 보라. 인류의 대다수가 끔찍스러운 영겁의 형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미리 분명히 알면서, 따라서 그렇게 할 의도를 가지고서 인류를 창조한 존재를 생각해 보라 ‥‥ 도덕적 선악을 조금이라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내 아버지만큼 분하게 여기면서 바라보게 될 시대가 가까워 오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니체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금욕주의의 탈을 쓴 잔인성 이것이 기독교적인 것이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에 대한 증오심, 복수심 , 암울하고 선동적인 생각들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내에서의 갈등 그 또한 기독교적인 것이다.

정신 , 긍지 , 용기 , 자유에 대한 증오 , 정신적인 사상가에 대한 증오가 기독교적인 것이다. 관능에 대한 증오, 육체에 대한 경멸 , 즐거움과 관능 일반에 대한 증오가 기독교적인 것이다.

기독교는 야만적인 개념과 가치로 중무장하고 필요하다면 주위의 민족을 야만인이라 단정하고 정복하는 것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선동한다. 첫 자식을 재물로 바치는 것 , 성찬식에서 피를 마시는 것, 이성과 지혜에 대한 경멸 , 육체적 , 비육체적인 것을 막론하고 온갖 종류의 고문 등등 이러한 것들이 기독교적인 것이다.

아직 유럽은 불교를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 불교는 문명의 종말과 피곤함 때문에 생긴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문명의 맹아도 아직 보지 못했다. 기독교는 필요하다면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다."



쇼펜하우어 : 인도의 「우파니샤드」를 읽고 나서 한 말

"아 이렇게 내 마음에 붙어 있던 유대인의 미신을 깨끗이 씻어 줄 수 있는가!"


라즈니쉬

"이제 기독교 신학자들조차도, 기독교 복음서가 사도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복음서에 서술된 산들은 실제 지명과 같지 않다. 강들과 호수들도 역시 실제지명과 같지 않다. 모든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김용옥

"오늘 우리 20세기를 회고해볼 때, 우리 20세기의 최대의 죄악은 바로 악마와 천사라고 하는 얄팍한 기독교적 사유 속에서 세상을 보았던 윤리적 이원성이다. 나는 깨끗하고 너는 더럽다. 그래서 죄는 너의 것이다. 이 사회의 죄악은 모두 너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나는 그 죄악의 피해자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저주하노라! 그 저주를 받지 않으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과연 우리 민족은 구원을 얻었는가? 20세기 기독교선교사의 결론은 무엇인가? 거대한 교회건물, 기도원에까지 수천만원짜리 코트를 입고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어리석은 여인들! 그것이 우리 20세기 기독교선교사, 순교사의 총결론이었던가?"

"기독교는 교리에 문제가 있다. 그 교리가 저급하게 유치하고 모순투성이며 독선적이며 배타적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유치성과 모순성, 배타성 때문에, 그러한 허약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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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인 :  자유로니라면 베를린 리포트의 운영자일텐데, 지금 이 사이트의 성격을 스스로 규정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자신의 생각과 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을 빌리는 저급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위의 글을 읽으며 마치 필요한 부분들을 발췌하여 자신의 논리를 세우는 이단종파의 교리를 보는듯 하여 찝찝하다. 지성과 진보 뭐 그런 말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들의 그것을 보는 것은 불쾌함을 갖게 하는 일이다.   2002/08/08  


곱실메 :  이 글들은 매우 신뢰도가 높다고 봅니다. 니체나 쇼펜하우어나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은 확연히 저런류의 것이죠. 저도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종교는.. 특히 기독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포장되고 수식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침범할 수 없는 신성이 특히나 그렇죠.
아무튼 아주 좋은 자료인거 같습니다. 기존의 때를 청소하는.
자유로니님이 베리의 운영자이시긴 하지만 그 분도 글을 올리는데는 베리의 다른 멤버들과 다를바 없다고 봅니다. 자신이 가진 이념과 사상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걸 걸려내려는 지성인님의 의도는 도대체 뭐죠? 그럼 지성인님의 구미에 맞는 그런 글들만 올리길 바라십니까? 지성과 진보 운운하셨는데 혹시나 우월주의에 빠져계신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2002/08/08  


Didi :  윗글에 이름이 나열된 "지성인"들이 도대체 성경을 제대로 한 번 읽어나 본 사람들인지 의심이 갑니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김용옥씨의 글은 중학생 정도의 수준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비평을 하려면 비평의 대상이 되는 객체를 확실히 파악하고 해야 제대로 된 비평이 될 것이며 글을 읽는 사람들을 오도하는 오류도 막을 수 있습니다. 아래는 마태복음 7장 21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폼이나 잡으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랑, 자비, 측은한 마음,... 이 세상에서 행할 수 있는 모든 선(善)입니다.   2002/08/08  



(추신) 위의 글은 '안티조선'에 실렸던 내용을 그대로 기재하였습니다.
부득이, 김용옥씨의 글도 포함되어 있는 점은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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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교회 (asda@hanmail.net)
2002/7/14(일)


“교회는 이런 잘못을 했다” 고백록


지난 3월5일 로마교황청은 중대 발표를 했다.기독교 탄생 2000년을 맞아 기독교가 과거 2000년간 인류에 끼친 각종 해악을 자기 과오형태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한 것이다.


‘교회의 과거범죄’라는 부제를 단 이 문건은 피로 얼룩진 십자군 원정,중세의 각종 가혹한 형벌,선교를 가장한 신대륙 원주민 말살,교회의 유대인 학살 방조 등 주로 4부문으로 나뉘었다. 이는 개신교와 가톨릭이 분리되기전 가톨릭 교회가 저지른 죄였지,개신교의 범죄는 아니라고 개신교 한편에서는 잘라 말한다.하지만 많은 교회사가들은 이같은 부정에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개신교는 분명 가톨릭에서 비롯됐으며,종교개혁 이후 태동한 개신교 역시 인류에 끼친 과오가 적지 않다고 교회사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논란의 와중에서 기독계의 원로가 교회의 과거 범죄를 솔직이 고백한 책을 출간했다.조찬선 박사가 ‘기독교 죄악사’(평단문화사)라는 제목으로 최근 펴낸 책에는 과거 2000년간 교회가 인류에게 끼친 해악이 고스란히 담겨있다.저자인 조찬선 박사는 도쿄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감리교 신학대와 이화여대 등에서 교수를 역임한 한국 기독교계의 거목.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활동하던 조박사는 은퇴뒤 저술에 들어가 지난 98년 집필을 끝냈다.


한국 기독교의 거목이 교황청에 2년 앞서 기독교의 과오를 낱낱이 인정한 것이다.

조박사는 머릿말에서 “인생 80을 넘겨서야 지난 2000년간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순교자의 자세로 할 수있었다”며 “통렬한 과거 참회를 통해 교회가 예수를 진정으로 실천할 수있기를 바란다”고 출간동기를 밝혔다. 이 책은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해 쓰였다.영어 일어 라틴어에 능한 조박사가 중세 교황청 시종의 일기,미국 초창기 이민사 등을 참조해 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한 교회 비판서를 넘어 정직한 문화인류서이기도 하다.이를테면 십자군 원정의 경우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교과서와는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국내 교과서 대부분은 십자군 원정을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하려한 기독교도의 투쟁으로 그리고 있고,이로 인해 동서문물의 교류가 확대됐다고 규정짓고 있다.서양사가들의 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하지만 숨겨진 이면은 추악하기 그지 없다.성지회복이라는 명분아래 십자군은 회교도를 무참하고 잔혹하게 살해했다.1차 원정 당시 예루살렘 성안은 회교도의 피로 무릎까지 잠길 정도였다.중세 회교권의 영웅 살라딘이 패주하는 십자군에게 식량을 제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영토 확장욕에 젖은 교황의 탐욕으로 수많은 젊은이가 희생됐고,12세 내외 소년소녀들로 구성된 아동십자군은 매춘부나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종교재판에서 비롯된 각종 고문형과 마녀사냥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끔찍한 종교재판이 계속되면서 16세기 스페인 인구는 2000만에서 600만명으로 줄었다.신앙고백의 한 형태로 시작된 마녀재판은 19세기까지 근 4백년이나 지속됐다.마녀로 규정된 사람은 사지찢기,끓는 기름에 튀기기,끓는 납을 귀와 코에 붓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잔혹사 연구가인 미국의 콜린 윌슨조차 자신의 저서인 ‘사형백과’에서 중세의 마녀사냥을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있나 극명히 보여준 형벌이라고 탄식했다. 조박사는 성직자의 문란한 생활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수많은 첩을 거느린 15세기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자신의 아들을 추기경으로 임명키 위해 딸을 매춘에 가담시키기도 했다.중세 유럽을 휩쓴 매독이 교회및 상류층으로부터 급속히 전파됐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종교개혁의 아버지 마틴루터 역시 처첩을거느렸으며 수녀와사이에 자식을 낳기도 했다.



개신교인들의 인디오 살륙 역시 씻을 수없는 죄악이다.만화영화로도 제작된 포카혼타스 공주는 역사상 실제 인물이다.17세기 미국에 상륙한 영국인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절도를 일삼다 인디오들에게 사로 잡혔다.당시 인디오 공주 포카혼타스는 사형위기에 놓인 이 이방인을 불쌍히 여겨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목숨을 부지한 이들 영국인은 뒷날 포카혼타스를 사로 잡아 성적 노리개로 전락시킨뒤 결국 매독으로 영국에서 객사하게 했다. 이들 서방이 복음과 신대륙 개척이라는 이름아래 학살한 인디언 수가 모두 2000만명이 될 것으로 저자는 추정하고 있다.금세기에도 교회는 유대인 학살 방조,흑백차별,남녀차별 등의 과오를 범했다.국내에서도 신사참배 협조,유신체제 옹호 등 교회는 시대의 이단아였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조박사는 통탄하고 있다.


[2000년 8월 29일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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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독교죄악사, 교회는 죄인을 만드는 곳인가?


2001년 3월 5일


오늘날 교회는 부흥회, 산상기도, 성경공부, 교회건축 등 교회행사에 온갖 정성을 다하면서도 교회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문제는 소홀이 하고 지엽적인 사소한 문제를 중요시하는 잘못된 교육을 하고있는 듯한 면들이 있다. 십일조를 바치고,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여 많은 직분에 충실하면서 모범적인 교인이요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자타가 공인하고 마치 그것이 기독교인의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많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화를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의 현주소를 함께 진단해 보자. K 집사는 옛 친구를 만나 맥주파티를 하나가 같은 교회 장로에게 우연히 발각되었다. 그 장로는 교회에서 암암리에 K집사를 가짜 집사라고 비난하였고 발 없는 말은 천리를 갔다. 그리하여 그 집사는 맥주한잔으로 평생가짜 신자로 몰려 장로 진급의 길도 막히고 또 위선자로 낙인찍혀서 가는 곳마다 암암리에 죄인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장로는 하루도 술 없이는 살지 못하는 술 고래였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숨어서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장로라는 신분 때문에 위선과 기만을 계속해야만 했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점은 맥주와 술을 경계하기보다는 위선과 기만이 교회라는 구조속에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심각함이다.


오늘의 현실은 집사, 장로 그리고 목사도 교회라는 틀 안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위선과 기만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라는 조직속에 속하기 위해서는 위선과 기만으로 성인군자를 가장하면서도 속으로는 평생을 죄의식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장로가 집사의 비리를 폭로하였을 때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 아니면 교회라는 구조 안에 적응하기 위해서 양심까지 저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문제의 집사와 장로가 교회 바깥에서 살았다면 그들의 음주는 위선으로 가장할 필요가 없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유명한 마틴 루터의 결혼청첩장의 내용을 소개한다.


"내 결혼식에 오소. 천사들은 폭소하고 마귀들은 울리라. 제일 가는 맥주나 한 통 가지고 오소"


심각한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오늘날 교회는 주홍빛 같은 죄를 흰눈처럼 씻어주는 곳이 못되고 도리어 성도들을 평생동안 죄인을 만드는 곳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지는 않는가? 교회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성도들이 기쁨과 화평과 희망 속에서 살아가게 하기보다는 도리어 죄의식을 심어주고 죄인으로써 불안하게 살아가게 하는데 주력하여 온 것 같다.


그 증거의 하나로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성도들이 목이 터지게 통곡하며 죄를 회개하는 모습을 들 수 있다. 인간의 면죄를 위해서는 그런 기도가 필요하다고 누군가가 강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통성기도 시간에 더욱 뚜렸하게 나타난다. 기도할 때는 대체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죄인"이나 혹은 "부족한 종, 이 죄인" 등으로 시작한다.


즉 성도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그리고 노예로 스스로를 전락시키고 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셨건만 그 삶에 대한 기쁨과 감사는 어디로 가버리고 죽을죄인, 이라고 고백하고 통곡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교회가 성도들에게 죽을 죄인으로 살아가도록 죄의식을 심어 주었다는 증거로 보면 지나친 표현일까?. 죄의식을 강조하여 인간을 어둡고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종교의 사명이 아니다. 또 인간들의 죄를 역설하여 사회와 인류의 말세나 종말을 예언하여 현세도피를 꾀하는 것도 잘못이다.



종교는 고민속에서도 기뻐하고 억울한 처지에서도 인생을 감사로 살아가며 절망속에서도 희망과 보람을 찾아 현실을 극복하는 힘을 주어 사회를 밝고 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에게서 밝은 표정보다는 어두운 면을 더 많이 볼 수 있으며 죄의식에 사로잡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요 노예로 자처하며 새벽마다 통회의 눈물만을 숭상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신앙의 자세일까? 예수께서는 우리를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요15:15)라고 하였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을 친구로 믿고 기쁨에 넘쳐 미소짓는 기도를 드린다면 그 기도를 받으시는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아니라 사랑과 보혈로 구원을 받은 백성으로 주님을 존경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로 모시고 삶을 즐기는 성도의 모습을 주님은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그런데 그 기쁨의 도리를 버리고 매일 새벽마다 또 통성 기도 때마다 가슴을 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죄인을 부르며 통곡하는 것이 과연 주님의 뜻에 합당한가? 이 기쁨의 도리를 통곡의 도리로 왜곡시킨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교회인가, 성직자인가.


부흥회가 열리면 그때는 교회가 애매한 성도들을 모두 죄인으로 만드는 '즉석죄인대량생산공장'으로 변한다. 부흥강사는 성경을 펴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다. 그때 사용되는 주무기는 물론 하나님의 이름과 뜻이라고 은근히 공갈협박으로 위협한다.



이 공갈 협박에 넘어간 순진한 성도들은 스스로를 천하에 없는 죄인으로 자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죄의식이 없는 성도들도 군중심리에 이끌려 통곡의 소리는 더욱 높을 수도 있다. 여기서 성도들은 그들의 죄의식이 깊어지면 질수록 그만치 은혜가 넘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교회에서는 은혜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은혜로 죄의식이 깊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죄에서의 해방을 뜻하는 은혜가 아니라 반대로 죄의식을 심어주는 것에 우리도 모르게 익숙해져있는 것이 오늘날 신앙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죄를 사하는 곳이 아니라 죄인을 만드는 곳으로 변모한 오늘날 많은 교회들, 과연 이것이 교회의 정당한 모습일까?


(기독저널 기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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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독교 죄악사 2001년 2월 18일


성직자들이 장사하는 집으로 전락하는 교회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관찰되고 평가될 뿐만 아니라 승자의 논리대로 기록되기 때문에 패자 편에서 보는 역사는 말살되거나 가려지기 마련이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세계사와의 관계에 있어 강자의 정의라는 논리에 입각하여 ‘위선의 역사’가 진실의 역사로 탈바꿈한 경우가 허다하다 하겠다.

본보(기독저널)는 편견없는 역사관에 입각하여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기독교의 부끄러운 과거를 정확하게 조명하여 그 정확한 토대를 기초로 수많은 교회와 평신도들의 각성을 기대하며 ‘기독교 죄악사’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예식과 교리 면에서도 변질되어 그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이를
안타까워하는 애통이 뜻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짓누르고 있다
질문: 교회의 존재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비둘기 파는 사람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하시니 .”(요2:16)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눅19: 45-46)



백범 김구 선생은 “경찰서 열 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를 세우는 것이 사회에 더 유익하다”고 하였다. 백범의 말대로 교회는 과연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오늘날 우리사회에 필요하고 유익한 존재인가? 혹은 그와 정반대로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날 수 없이 많은 교회와 인적, 물적 조건을 갖춘 강력한 기독교라는 집단이 인류사회에 얼마나 크고 깊은 영향을 주고 있는가? 분열, 대립된 인류사회를 서로 사랑하고 돕는 화목한 사회로 통일되게 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와는 반대로 독선과 차별을 제도화하고 분열과 대립분쟁을 장려하며 격화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등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초대교회는 사랑과 평화와 행복과 믿음이 충만하여서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넘쳤다고 한다. 따라서 그와 같은 교회가 서는 곳의 사람들은 교회의 밝은 사랑의 빛으로 마음과 신앙에 변화를 받고 사랑, 화평, 행복, 희생, 봉사의 정신으로 기쁨이 넘치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어떠한가? 사랑으로 충만했던 초대교회가 약 2000년 동안 성장해 오면서 원래의 모습을 잃고 변모되었으며 예식과 교리 면에서도 변질되어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를 안타까워하는 애통하는 마음이 뜻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짓누르고 있다.



천주교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을 개혁(Reformation)이라고 하지 않고 기형, 변형(Deformation)이라고 비꼬는 것처럼 오늘의 교회는 기형적 불구의 교회로 치닫고 있는 듯한 증세가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한인들의 상권이 밀집해 있는 플러싱 지역, 그 가운데서도 유니온 상가의 경우를 보자 한 건물 안에 교회의 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밀집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보여지는 교회의 간판이 과연 어떻게 보여질까?




이외에도 현재 뉴욕지역에는 6백여 교회가 있으며 2천 여명의 목사들이 교회개척을 위해 지금 이 시간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교회가 장터로 변하고 있는 듯한 현상`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좀더 현실적으로 표현한다면 교회의 상업화 혹은 성직자가 교회를 밥벌이하기 위한 장터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말이 설득력있게 들린다.



한국교회 100주년 종합조사연구보고서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지출예산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교회건물관리비 24.2% △성직자 생활비 38.5% △교육사업비 16.8% △상회비 5% △선교사업비 15.5%



이 조사 결과는 성직자의 생활비가 총예산의 약 4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면 교회가 성직자들의 구멍가게라는 비난의 소리도 웃어넘길 일 만은 아니다. 또 성직자의 생활수준에 대해서도 많은 일반인들이 ‘사치스럽다’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단지 한국뿐이 아니라 미국 교회의 성직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크리스챤투데이’의 발표자료를 보면 1천2백여 교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직자의 생활비가 교회 총예산의 41%로 나타났다. 결국 성도들이 정성들여 바친 헌금의 40%가 성직자들의 사치스런 생활비로 충당된다는 통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전요섭의 “통계와 숫자로 보는 예화자료집”을 보자 거기에는 성직자의 생활비가 전체 교회예산의 75%를 차지하는 교회도 등장한다. 성도들이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바친 헌금의 75%가 성직자의 사치스러운 생활비에 지출된다고 불평하는 교인을 누가 탓할 수 있을 것인가? 또 목회자 중에는 타 교회의 부흥강사로 초청 받아 가면서 본 교회로부터 출장비까지 받아 이중수입을 올리는 철면피도 있다고 한다.



목사에게 인색하면 축복 받지 못한다는 교육을 받은 그 교회 회계는 쓴맛을 다시며 수표를 발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복음전파, 하나님나라 건설 등의 공동목표를 지향하는 수 많은 교회들, 서로 협력하여 사랑과 기쁨으로 양보하고 희생봉사의 정신을 발휘하여 공동목표를 향하여 전진하여야 함이 마땅한데 과연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배경도 알 수 없는 수 많은 교회들의 모습과 그리고 교단적 배경을 자랑스럽게 내걸은 교회들 과연 그들의 목적은 무엇이며 교단은 어떤 정책으로 그 비좁은 틈에 교회를 설립하였는지 묻고싶다. 양식있는 목회자와 양식있는 교단이라면 분명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독저널 기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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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죄악사"와 자기 비판



송태현


근자에 내가 구독하는 신문에 어떤 책 광고가 여러 차례 실렸다. 그 광고는 나의 시선을 끌었는데, "기독교 죄악사"라는 책에 관한 것이었다. 흥미로운 주제가 많을 것 같아 인터넷을 통해 책을 주문하여 읽어 나갔다.


이 책의 저자는 팔십 줄에 접어든 조찬선이란 노(老) 목사이다. 그는 한국 교회의 현 상황을 (간략하게) 비판적으로 고찰한 후, 세계사를 통해 저지른 기독교의 '죄악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었다.
콜롬부스의 소위 '신대륙 발견'(아메리카 원주민 입장에서는 '신'대륙도 아니며 '발견'도 아니다), 아홉 차례에 걸친 십자군 봉기, 면죄부, 교황들의 부패한 성(性)생활, 천주교도의 중남미 침략, 중세의 마녀 사냥, 장 칼뱅의 세르베투스 화형(火刑), 청교도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정복 등의 사건들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악을 범하였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음과 같은 반박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이 책은 전문적인 학술 서적이 아니며, 엄격한 학문성이 결여되어 있다. 사실 이 책은 방대한 주제를 다루는 만큼 한 사람의 연구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둘째, 각 사건에 대해 '죄악'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이 흐려지며, '죄악'의 면모가 과장될 우려가 있다. 가령 칼뱅의 '세르베투스 화형' 사건의 경우, 칼뱅이 형벌 가운데 화형이라는 방법을 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칼뱅은 화형을 피하고자 노력했으나 당대의 관습과 성난 군중들을 제어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


셋째, 선교에 대해서 저자가 취하는 신학적 입장은 종교 다원주의로서, 복음주의 견지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점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책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범한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 인정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기독교 죄악사'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어내는 일이 의미가 있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동일한 오류를 범하기 쉬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남의 죄에는 민감하지만 자신의 죄에는 둔감한 법이다. 오늘날엔 모두가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비판하지만, 히틀러 당시에 독일 개신 교회는 히틀러를 옹호했음을 기억하자. 일제 때 한국 교회 역시 전(全)교단적으로 신사참배를 의결하지 않았는가? 해방 후에도 "불신자 대통령을 억지로 조찬기도회에 불러 놓고 서로 경쟁적으로 아첨 떨던" 해프닝들이 반복되지 않았는가?



'지금 여기에서' 진행되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객관화하지 못한다. 그러기에는 우리 자신이 너무 깊숙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말씀에 비추어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순 없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범하는 과오를 누군가가 지적해준다면 반성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히틀러를 옹호했던 독일 교회와 신사 참배를 의결했던 한국 교회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 조찬선 목사는 오늘날의 한국 교회에도 따끔한 비판을 가한다. 그는 교회가 "성직자들의 장사하는 집으로 전락"함과, 그리스도인의 일상화된 위선과, 성직자가 "순종이란 미명하에 맹종을 강요"함과, 신앙을 생활화하는 일에 무관심함과, 자신들의 "세력과 권위와 지위를" 추구하는 타락한 성직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몇 가지 예만 인용해보자.



서울의 어느 빌딩에 교회 간판이 15개나 걸려 있다.


어떤 교회 주일예배에 처음 보는 초신자 가족이 들어왔다. 안내원들이 친절을 베풀고 있을 때 옆 교회의 청년 수 명이 달려와서 그 새 가족을 끌고 가 버렸다. 남달리 정통을 부르짖는 목사의 특명을 받은 청년들이 사전에 남의 교회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그 교회를 찾아온 고객을 자기 교회로 데려간 것이다.


어떤 성직자는 신도 가정에 심방을 가서 차 한 잔을 마실 때도 5분씩이나 긴 기도를 드렸다. 식사 때만 기도하는 줄로 알았던 신도들은 차 마실 때도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속으로 감탄하며 그 성직자 앞에서는 차 마실 때도 긴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그 성직자가 없을 때는 기도하지 않고 마셨다. 그 성직자도 자기 집에서 차를 마실 때는 기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교회에서는 성직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경을 펴 들고 십일조를 강요하며 공갈 협박을 해댄다. 십일조를 안 바치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까지 목에 힘주어 협박한다. 이 협박에 넘어간 순진한 신도들은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십일조를 바치게 된다. 또 창고가 넘치도록 수백 배의 보수를 기대하면서 바치는 신도도 있을 것이다.


지각없는 성직자는 순종이란 미명하에 맹종을 강요하여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없는 맹신도, 즉 일종의 정신적 노예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한다.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던 정당이나 정권,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국가 통치에 관여하였던 사람들이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부패하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타락한 성직자도 타락한 교회에서 제법 목회에 성공할 수 있다. 타락한 목자는 타락한 신도를 양성하여 서로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직자가 더러운 정치 운동으로 큰 교회를 담임하여 호사스런 목회를 하다가 갑부가 되어 은퇴하였다고 치자. 그러면 그와 그 교회는 세상의 영리기관 사업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혹자는 교회 비판이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맹목적인 비판, 비판을 위한 비판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 대한 애정이 담긴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지상의 어느 개인, 어느 교회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판으로 개혁해 나가야 할 상황에서 비판하지 못하게 입을 막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사단은 비성경적인 요소가 고착화되고 사람들이 거기에 길들여지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제2의 종교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나는 이것이 도래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비리와 부조리가 더 쌓이고 쌓여 제2의 종교 개혁으로 폭발하기 전에 교회는 지속적으로 갱신해 나가야 한다.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개혁교회의 모토만 해마다 종교 개혁 주간에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중세의 부패한 성직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종하는 나의 마음, 이들을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는 나의 마음, 나와 내 가족의 이익을 공동체보다 더 앞세우는 연약함, 때로는 이기적인 욕심을 추구하면서도 '주의 이름'과 '주의 뜻'을 내세우는 나의 어리석음과 뻔뻔스러움, 이런 것들이야말로 개혁의 대상인 것이다. 종교 개혁은 결국 자기 부정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보다 더 사랑하는 '나와 내 가족이라는 우상'의 타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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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7
시사저널(펌)


종교로 장사를 하는 법



순복음교회 ‘헌금의 비밀’  



순복음교회 신도들로부터 거둔 헌금이 당회장인 조용기 목사의 가족 사업에 유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교회 안팎에서 제기되었다. 국내 최대 교회이자 한 해 헌금액만 1천7백억원에 이르는 이 ‘거대성전’에서는어떤 일이 벌어 졌을까.  

 
지난 10월18일 ‘교회개혁실천연대’(교회연대)는 조용기 목사(69·순복음교회 당회장)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교회 헌금 유용 의혹과 조목사의 후계자 문제 등 교회 시스템과 조목사 여자 문제에 관해 물었다. 교회연대 사무국장 구교형 목사는 “순복음교회가 그 크기만큼이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질의서를 보냈다”라고 말했다.


순복음교회측은 11월17일에야 입을 열었다. 답변 기일인 11월6일을 한참 넘긴 후였다. 순복음교회 관계자는 “교회의 공식 답변이 아니라 성의를 보이기 위한 실무자 차원의 설명이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의는 없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교회연대의 다른 관계자는 “답변은 지극히 형식적이었다. 조목사 사생활과 후계 작업 등에 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순복음교회 개혁 문제는 2000년에도 불거진 적이 있다. 당시 교회사랑모임(교사모)의 장로들이 교회 헌금이 유용되고 있다고 주장해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교회연대가 다시 순복음교회 개혁을 거론하는 이유는 조목사의 전횡과 불투명한 시스템으로는 순복음교회에 미래가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더구나 교회 당회장 은퇴를 2년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조목사가 다시 집권을 연장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36쪽 기사 참조).


교회가 재산을 유용한다는 의혹 또한 전혀 가시지 않았다. 교회연대측은 “70만 신도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교회인 순복음교회와 조목사가 한국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개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순복음교회에 제자리를 찾아주겠다”라고 말했다.


순복음교회에 대한 의혹의 핵심은 교회 재산과 헌금이 불투명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조원에 이르는 순복음교회 재산과 한해 1천7백억원에 달하는 헌금 가운데 상당 부분이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용되었다는 주장이다.




■ 의혹 출발점 된 장남 희준씨의 국민일보 경영




의혹은 순복음교회가 100% 출자한 국민일보에서 시작된다.

1997년 조목사 장남 희준씨가 서른한 살의 나이로 국민일보 사장으로 취임했다. 1998년 희준씨가 국민일보 회장에 오르자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는 국민일보 주식 100%를 국민미디앤드컴(넥스트미디어코퍼레이션)에 넘겼다. 당시 넥스트미디어코퍼레이션 주식은 희준씨가 59.8%,조목사가 30.4%를 소유하고 있었다.

순복음교회 교인들이 10년 넘게 모아준 헌금으로 설립한 국민일보가 조목사 부자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때까지 국민일보에는 6천4백억원이 넘는 돈이 투자되었다고 순복음교회 관계자와 국민일보 관계자는 말했다. 당시 언론개혁시민연대(상임대표 김중배)는 ‘국민일보가 족벌 세습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민일보를 손 안에 쥔 조희준씨는 자꾸만 회사를 쪼갰다.

1998년 총무국 시설관리팀을 시작으로 평생고객서비스본부·멀티미디어팀·컴퓨터 신문제작 운영실 등 재산이 있거나 국민일보로부터 돈을 벌 수 있는 부서는 줄줄이 희준씨 개인 회사로 빠져나갔다. 구로동 윤전기마저 매각하고 넥스트미디어의 윤전기를 써야 했다. 국민일보도 석간으로 전환하고 판형 변경 조처를 취했다.

국민일보 한 중견 기자는 “조희준씨 사업은 국민일보가 돈을 다 대야 하는,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이었다. 국민일보는 윤전기를 쓰는 대가로 희준씨에게 연 60억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넥스트미디어로 국민일보의 자산과 인력을 이동시킨 희준씨는 문어발식 확장에 나섰다. 1999년 스포츠 투데이를 창간했고 케이블텔레비전 현대방송을 사들였다.

2000년에는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 뉴스를 창간하기도 했다. 넥스트미디어 한 관계자는 “불과 2년 사이 희준씨는 계열사 20여 개를 지배하는 미디어 재벌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 교회 담보로 은행 대출도




2000년 6월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가 국민일보 주식 100%를 사들임으로써 국민일보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국민일보 재산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미 주인이 바뀐 상태였다. 당시 국민일보 노조위원장이었던 김용백씨는 “회사의 10여개 사업 분야를 임의로 분사해 국민일보는 껍데기만 남았다”라고 말했다.


교회 재산을 빼내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했다는 비난을 듣는다. 교회를 잡히고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는 것이다.

교회 재산은 원칙적으로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 명의로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 이 재산은 문화관광부의 감시·감독을 받는다. 교회측은 교회 건물의 상당수를 ‘여의도순복음교회 대표자 조용기’로 명의를 바꾸었다. 그리고는 근저당을 설정하고 은행 돈을 빌려 썼다.

1999년에서 2000년에 걸쳐 순복음교회 본관과 국민일보가 위치한 CCMM빌딩에 설정된 근저당 액수는 1천억원이 넘었다. 이 가운데 넥스트미디어에 대출된 금액이 6백억원이 넘었다. 순복음교회 당회의 회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이루어진 대출이었다. 순복음교회가 교회연대측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넥스트미디어가 국민일보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대출은 실행위원회 등의 의결을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교사모 소속 한 장로는 “장로들은 실행위원회 개최 여부도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절차에 어긋나거니와 교회 본관을 담보로 사기업에 대출해준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 비판 앞장선 장로들 출교 또는 제명




2000년 9월 교사모 장로들이 헌금이 유용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자 조목사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국민일보에 전문경영인이 없어 적자가 누적돼 허덕이는 바람에 내가 봉사해 달라고 해서 온 것이다. 아들은 실제로 월급을 한푼도 안 받고 2년 동안 일했다.” 조목사는 “희준이는 일본 노무라 증권을 통해 2천여억원을 벌 정도로 금융에 관한 한 천재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희준씨 자금의 출처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희준씨의 외화가 들어온 경로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한 금융감독원 고위 인사는 “2천억원이 일본에서 들어오면 모를 수 없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일본 증권가와 노무라 증권에 알아본 결과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오히려 희준씨가 주식 투자로 거액을 날렸다는 소문만을 접할 수 있었다.

 
교사모 소속 한 장로는 “‘장남이 돈을 다 날리고 거지가 되어 한국에 들어왔다’고 조목사가 여러 번 걱정했다”라고 말했다. 다른 장로는 “희준씨가 한국에서 돈을 마련해 일본 채무 관계를 정리하고 사업 기반을 닦은 것으로 보인다. 2000년 2월 교회 재산을 근거로 희준씨는 31억 엔(한화 약 3백1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엔화를 빌린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교사모 소속 장로들의 폭로 이후, 순복음교회측은 교사모 소속 장로들을 중징계했다. 장로 4명을 출교 처분하고, 10명을 제명했다.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당회장의 뜻에 역행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 뒤 교회측과 희준씨는 교사모의 주장대로 건물을 담보로 빌린 돈을 일제히 갚기 시작한다. 2000년 11월에만 3백억원이 넘는 돈을 갚았다. 문제는 실제로 돈을 빌린 넥스트미디어와 희준씨에게는 그만한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넥스트미디어의 한 관계자는 “2000년 당시는 숨가쁘게 기업을 확장한 단계여서 수백억원을 끌어들일 여력이 없었다. 2000년 7월 일본 히다치 맥셀 사로부터 3백억원 가량을 끌어왔지만 불리한 조건이었고 액수도 턱없이 부족했다”라고 말했다.

교회가 은행에 변제한 돈의 출처는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만약 교회가 이 돈을 갚았다면 교회 헌금으로 사기업 빚을 갚아준 꼴이다.





■ 가족과 사돈이 ‘교회 경영’ 선봉  




2000년 국민일보 창간 12주년 기념식에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맨 왼쪽)·이한동 국무총리(맨 오른쪽) 등이 참석했다.  


조용기 목사가 가장 많이 비판받는 부분은 온 가족이 교회 경영에 나섰다는 점이다. 조용기 목사의 부인 김성혜씨는 순복음교회 재단 소유의 한세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고, 베데스다 대학 부이사장을 맡기도 했다(42쪽 딸린 기사 참조).


동생 용우씨는 1대 국민일보 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노승숙씨가 국민일보 사장, 차남 사무엘민제씨가 부사장을 맡고 있다. 노승숙씨는 사무엘민제씨의 장인이다. 3남 승제씨(33)도 CCMM 빌딩을 근거로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셋째 매제 김원태씨는 순복음교회 총무·경리국장을 맡아 한때 교회 살림을 책임졌다. 넷째 매제 설상화씨도 순복음교회 총무국장을 역임했다. 설씨는 국민일보 판매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엘림복지원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목사의 누이들은 순복음의 장례 사업과 기도원의 식품 사업에 참여하는 등 가족 거의 대부분이 순복음교회와 연관된 일을 하고 있다. 희준씨의 세 번째 부인의 아버지인 장 아무개씨도 CCMM 빌딩 관리 업무를 하다가 딸이 이혼하자 그만두었다. 한 순복음교회 관계자는 “조목사와 틀어진 동생 조용목 목사(은혜와진리교회)를 제외하고 가족과 사돈 거의 대부분이 교회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국민일보 경영권, 차남이 승계




교회연대는 순복음교회의 재정 운용이 날이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희준씨는 국민일보에서 손을 떼고 스포츠 투데이 발행인으로 옮기고 난 후에도 국민일보에서와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수많은 계열사를 만들고 이름을 바꾸거나 없앴다. 스포츠 투데이 총무부에 3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나 노조 간부, 편집국 간부 가운데서도 계열사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이는 국민일보와 순복음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순복음교회 관련 재단·단체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다. 기자가 수 차례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순복음교회측은 교회 관련 단체의 이름조차 밝히기를 거부했다.



결국 조희준씨는 2001년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조목사로부터 돈을 받고 증여세 등 25억원을 포탈하고 회사 공금 1백70여억원을 횡령한 혐의이다. 희준씨는 회사 인쇄용역비를 장부에 올리지 않고 빼돌려 1억원짜리 운동용품을 사기도 했다. 희준씨는 조세포탈 및 회사 자금 횡령 혐의로 고법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및 벌금 50억원, 2백4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2002년 보석으로 풀려난 희준씨는 일본으로 출국했다. 현재 스포츠 투데이는 수백억원의 자본이 잠식된 상태이고 직원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 투데이가 수차례 부도설에 몰렸지만 희준씨는 귀국하지 않고 있다.


국민일보 경영은 노승숙 사장(조목사 사돈)이 맡고 있고 그 뒤를 조목사의 차남 사무엘민제씨(34)가 받치고 있다. 2002년 5월 국민일보 상무로 나선 사무엘민제씨는 그해 9월 국민일보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는 기독문화진흥(구 국민일보판매) 사장으로 취임했다.

기독문화진흥은 국민일보와 스포츠 투데이, 파이낸셜 뉴스를 인쇄하는 윤전기와 함께 국민일보의 평생독자 회비를 소유하고 있는 국민일보의 지배회사이다. 기독문화진흥은 또다시 이름을 국민지주로 바꾸었다. 사무엘민제씨는 신문조판시스템 CTS 회사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한 국민일보 기자는 “국민일보는 기자와 제호만 있다. 신문사와 관련해 영양가 있는 부서는 모두 조민제 부사장 회사로 나가 있다”라고 말했다.


순복음교회의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교회와 관련된 수많은 단체·재단과 의심쩍은 거래를 하는 등 방식은 오히려 교묘해졌다.





■ 교회와 관련 단체·재단 ‘수상한 거래’ 계속




CCMM빌딩의 지하 1층 101호와 지하 2층 202호는 영산아트홀로 원소유권은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에 있었다. 그런데 2000년 2월2일 영산아트홀의 소유권이 ‘여의도순복음교회 대표자 조용기’ 명의로 넘어갔다. 그리고 며칠 후인 2월18일 영산아트홀은 한빛은행에 근저당되고 넥스트미디어가 채무자로 일화 17억 엔(한화 약 1백70억원)을 대출받았다. 2000년 11월8일 교회는 영산아트홀을 1백58억4천1백만원을 들여 사는 형식으로 근저당을 풀었다. 교회측은 2002년 12월31일 ‘재단법인 영산기독문화원’에 영산아트홀을 매매했다.



순복음관계자와 영산아트홀 관계자 10여 명에게 물었지만 ‘재단법인 영산기독문화원’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영산아트홀은 2003년 5월27일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에 증여되었다. 다시 원소유주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몇 번의 거래를 거치면서 교회는 1백58억4천1백만원을 썼다. 자기 물건을 자기 돈 주고 산 셈이다. 이와 관련해 순복음교회측은 교회연대에 답변한 문건에서 ‘국민일보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순복음선교회 사이의 정당한 거래였다’고 밝혔다.



한 교회 관계자는 “한 해 1천5백억원 가량의 예산을 집행하는 교회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규정과 절차가 구멍가게만도 못하다. 조목사 이외에는 그 누구도 돈의 흐름을 정확히 모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한국을 대표하는 목사는 법치의 바깥에서 산다.  



ㆍ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790호 | ㆍ

등록일 : 2004/12/07 16:01 | ㆍ수정일 : 2004/12/0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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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자국 없는 2백억원의 행방





순복음 계열 미국 베데스다 대학, 이주비 송금 과정 불투명  


 

미국 캘리포니아의 애너하임 유클리드 거리에 있는 베데스다 신학대학은 최근 두 가지 뉴스로 국내 언론에 오르내렸다. 하나는 병역 기피자로 국내 입국을 거부당하고 있는 가수 유승준씨가 올해 가을 학기 이 대학에 입학했다는 뉴스다. 다른 하나는 미국 베데스다 대학의 한국 캠퍼스인 서울 양재동 소재 베데스다 대학이 교육부 미인가 교육시설로 드러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뉴스다.



서울과 미국의 베데스다 대학 모두 순복음교회 조용기 당회장이 세운 학교이다. 조목사는 얼마 전까지 베데스다 신학대학의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1999년 3월 설립된 베데스다 대학 서울캠퍼스는 5년 동안 교육부 인가를 받지 않고 운영하면서 학생들로부터 한 학기당 수업료로 3백20만 ~4백만 원을 받아왔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10월 초 조용기 목사를 약식 기소했다. 검찰측은 “실정법 위반이기는 하지만 조용기 목사측이 올해 6월 자진 폐교한 점을 감안했다”라고 말했다.




가수 유승준, 올 가을에 입학



그런데 이 베데스다 대학과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의혹이 하나 있다. 이 대학은 최근 거액을 투자해 빌딩과 땅을 사들였는데, 도대체 대학이 어떻게 해서 그처럼 막대한 돈을 조달할 수 있었는지 불분명하다.


미국 베데스다 대학은 최근 애너하임에 있는 캠퍼스를 인근 토랜스의 해밀턴 가에 있는 빌딩으로 이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실제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베데스다 대학은 11월 초 토랜스의 해당 주소에 있는 빌딩과 땅을 1천1백90만 달러(1백20억원)에 구입했다. 여기에 리모델링 비용이 8백만 달러가 넘게 소요된다.


문제는 2백억원이 넘는 거액을 대학이 어떻게 마련했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 베데스다 대학 관계자(목사)는 자금 출처에 관한 질문에 대해 “액수를 어떻게 알았느냐?”라며 당황해 했다. 그는 “자금 문제 담당자가 출장 중이어서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보낸 자금이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법적(외환관리법)으로 힘들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한 관계자는 “평소 해외선교비가 연간 45억원 정도 책정되는데 올해 갑자기 2백억원이 넘게 책정되었다. 이 돈은 대부분 미국 베데스다 대학 이전·개축 비용으로 쓰인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현행 외환거래법으로는 2백억원 이상의 거액을 신고하지 않고 송금하면 징역 1년 이하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와 미국 베데스다 대학은 이 의혹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1976년 설립된 미국 베데스다 대학에는 신학대학원·음악학부·유아교육학과·디자인학부가 개설되어 있다. 처음에는 무인가로 운영하다가 1983년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대학 인가를 받았다. 학생의 90% 이상이 한국 교민이어서 수업도 대체로 한국어로 진행한다.





조목사 측근, 이 학교 출신 많아



조용기 목사의 측근 가운데에는 이 대학 출신이 많다. 아내 김성혜 한세대 총장은 이 대학에서 신학 과정을 마쳤다고 자신을 소개해왔는데, 정확한 수학 연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성혜씨는 1999년 이 대학 부이사장을 맡았고 2001년에는 ‘명예 총장(Chancellor)’에 취임했다. 조용기 목사의 오른팔인 최성규 목사도 베데스다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목사의 약력에는 ‘미국 베데스다 대학 이사장’ 직함이 있었다. 11월 중순 현재 미국 베데스다 대학 홈페이지 이사회 명단에는 조용기 목사가 이사장이 아니라 ‘설립자’로 표시되어 있으며, 신정철재(주) 박종근 대표이사가 이사장으로 되어 있다.

한편 미국 베데스다 대학은 가수 유승준씨가 올해 등록은 했지만 실제 학교에 다니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790호 |

ㆍ등록일 : 2004/12/07 15:34 | ㆍ수정일 : 2004/12/07 18:35  





전현정: 자신또한 지독한 우월주의에 빠져있는것은 아닌지.. 먼저 돌아보시길.  [12/06-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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