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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자료실

작성자 한 빛
작성일 2003-06-12 (목)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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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정권의 해체 없이는 개혁 개방 불가능


駐韓 미군사령관 특별고문 스티븐 브래드너 논문 (북한의 전략)


金正日 정권의 해체 없인 개혁·개방이 불가능…

●對北지원은 金正日에게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없앤다
●북한 정권의 본질은 金家狂信 범죄 집단
●金正日은 남한內 친북세력 동원, 駐韓미군을 물러나게 유도할 것
●원조받으면서도 적대행동은 계속할 것
●한국측은 북한의 위협을 부인하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목차

I. 상황
II. 북한 정권의 특징과 한계
III. 북한 정권이 할 수 없는 것
IV. 전략적 선택
V. 대량파괴 무기와 미사일의 심각성
VI.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
VII. NPEC(Nonproliferation Policy Education Center)의 질문 검토
1. 현재의 모든 전략에서 기준으로 삼아야 할 미국의 영구적인 전략은 무엇이고, 미래에 관
한 우리들의 전략적 사고를 조정해야 하는 중요한 기본적인 假定(가정)은 무엇인가?
2. 全세계적인 전략환경에서 進化(진화)되고 있는 특성은 무엇인가? 다음 15~20년 동안에
가능한 代案(대안)은 무엇인가?
3. 우리가 선호하는 代案은 무엇인가? 우리가 회피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4. 현재와 미래에서 우리들의 경쟁자는 누가 될 것인가? 주요 제3자는 누구인가?
5. 우리 경쟁자와 주요 제3자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6. 현재의 경쟁상황은 어떤 상태인가? 어떤 미래의 상황이 가능하고, 어떤 것을 우리가 선호
하는가?
7. 우리 경쟁자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 지속적인 약점 또는 기타 諸약점은 무엇인가?
그들의 강도는 어느 정도인가?
8. 모든 상황에서 그 경쟁에 대해서, 우리들의 전반적 및 보조적인 단계적 목표는 무엇인가?
9. 경쟁에서 제기되는 도전에 대한 우리들의 지속적인 강점을 포함,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이점이나 영향력의 분야는 무엇인가? 우리들의 한계나 약점은 무엇인가?
10. 어떤 기본적 능력이나 핵심적 실력을 개발, 유지, 적응, 보호하고, 이용할 계획을 해야
하는가?
11. 주요한 경쟁과 미래의 추세 및 사건에 영향을 끼치거나 그것들을 지배할 수 있기 위해
서는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하는가?
12. 경쟁자와 제3자가 취할지도 모를 대응조처의 범위는 무엇인가? 북한의 반응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VIII. 駐韓미군의 역할과 북한의 非대칭적 대응
IX. 2000년 6월의 남북 頂上회담
X. 정책의 딜레마






Ⅰ. 상황

북한은 국제적으로 인기가 없고, 사회적 기본시설이 붕괴되었으며, 주민은 영양부족 상태에 있고, 젊은 세대는 발육이 부진하지만, 경제가 다시 살아날 뚜렷한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나라는 건국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대량파괴 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증강하면서, 현대 공업사회로서는 일찍이 없었던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에 대해서 어떤 조처를 취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것들은 기본적인 의문이다. 북한이 이런 곤경에 빠지게 된 과정은 그들의 장기적 전략 선택뿐 아니라, 단기 내지는 중기적으로 그 곤경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규정하고 제한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북한 정권의 전략적 개념을 형성하고 있는 金家政權(김가정권)의 특수한 성격과 그 정치적 문화에 연결시켜 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정권의 지속적인 성격과 이 정권의 전략적 선택, 대량파괴 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의 중대성, 金家체제의 핵심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미국과 북한의 중대한 정책적 딜레마를 검토할 것이다.


Ⅱ. 북한 정권의 특성과 한계

金日成의 經濟觀-전쟁도구의 생산

군사적 사고방식의 구심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끝이 없다. 청년 시절 일본군에 대항한 게릴라 전사의 경험으로 형성된 金日成의 인생관은 레닌식 「투쟁-협상, 투쟁-협상」 철학과,싸우지 않는 유기체는 죽는다는 「나의 투쟁」의 주장을 혼합한 것과 비슷하다. 金日成에게 경제는 전쟁의 도구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고, 교육은 유능한 병사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이념은 주민들에게 전쟁의 불가피성과, 궁극적으로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으로 찬양을 받도록 만든 군사지도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필요성을 확신시키는 것이었다.아드리안 부조는 그의 역작 「게릴라 왕조」에서 게릴라적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두 권으로 된 저서 「한국의 공산주의」에서는 그 생각을 再확인하고, 새로운 정보를 추가했다. 다음은 그 2권에서 인용한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충성과 헌신이 결정적이었다. 「당」은 완전히 군사적 성격을 지니게 되어, 규율과 위계질서가 소수의 단호하고, 때로는 필사적인 무리의 同志意識(동지의식)으로 얽혀 있었다>
<따라서 게릴라에서 집권당으로 변신하는 데는 단순히 작전양식이나 정서를 바꾸는 것 이상으로 광범위한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金日成 정권은 남쪽에 있는 어떤 정치적 권위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적대감을 가지면서 수립되고 성장했다. 남쪽은 미국의 植民地(식민지)에 불과하고, 남쪽의 관리는 그 식민통치자의 追從者(추종자)에 지나지 않았다. 반세기 이상이 지나는 동안, 북한은 남쪽 관리집단에 대해서 호의적인 발언을 한 일이 없고, 남쪽에 있는 정부는 정부로서 특별한 정통성이 없는 많
은 조직 중의 하나로 보았으며, 대체로 상대를 하지 않거나, 공격을 하고, 가능하면 전복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 정권은 일종의 宗敎的 狂信徒와 家族犯罪組織을 합쳐놓은 것(religious cult-crime family gang) 같이 행동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卽決處分(즉결처분) 같은 폭력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실질적인 법률 위반보다는 정치적 異端行爲(이단행위)에 대해서였다. 이 정권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정책도구로서 위조지폐, 마약밀수, 강탈, 납치, 암살 같은 범죄집단의 수법을 사용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소유 토지에서 살고 있는 보통 시민의 福祉(복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표시하지 않았고, 통제를 유지하는 방법, 자기의 안전과 즐거움을 위해서 도움이 될 것을 약탈하는 방법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이 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양의 神話(신화)와 造作(조작)이다. 金日成의 첫번째
커다란 신화는 金日成과 그의 게릴라부대가 1945년에 일본을 북한에서 축출했다는 것이다.이밖에도 현재의 북한사회가 「지상낙원」이며, 한반도의 統一(통일)은 金日成이나 그의 아들 金正日에 의해 달성된다는 두 개의 기본적 신화가 있다. 물론 金正日이 백두산에서 태어났다는 신화와 金日成 및 그 아들이 모두 초자연적인 魔力(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신화도 있다.
따라서 당연한 일이지만, 이들은 전체사회를 사실상 고립된 상태로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 모든 신화는 도전을 받아 와해되고, 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信仰體系(신앙 체계)에 심각한 손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경제는 쇠퇴하지 않을 수 없다. 상호교류 압력이 강력한 세계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그들이 기도하고 있는 것처럼 상대적 고립을 유지하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理念의 참호는 너무 깊고 넓다

끝으로 이 정권이 타협의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남쪽에 있는 라이벌과 제로섬식 정권 생존경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쟁이 제로섬식으로 되지 않을 수는 없을까?
첫째, 지난 2세기 동안 분단된 주요국가의 시나리오를 돌아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는 넓은 해협이 있기 때문에 그 시나리오가 다를지도 모르지만, 예멘 베트남 독일은 두 번, 그리고 19세기 미국 등의 사례에서 비록 분단이 한없이 계속될 것처럼 생각되었어도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하려는 힘을 저지할 수 없었
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그러나 통일이 된다고 해도, 그것은 양측 지도층의 이익과 재산을 존중하고 보존하는 공정하고 균형된 타협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양측이 모두 만족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쪽이 지배하고 명령을 하며 다른 쪽은 복종을 하는 형식이 된다. 이런 사례는 고대 아테네의 「强者(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弱子(약자)는 당해야 할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受難(수난)의 정도는 문제 지역의 정치적 전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의 경우라면, 패배한 쪽의 지도자는 10년 전 동독의 지도자들이 받았던 것처럼 관대한 대우는 받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둘째, 한국의 비무장지대를 두고 대립하고 있는 두 개의 사회는 거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다르다. 정치, 경제, 교육, 법률체계, 종교에 대한 접근방식과 삶의 의미까지도 남과 북은 아주 다르다. 북한의 주민은 「위대한 지도자」를 위한 헌신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교육받고 있다. 남한은 고도의 전제적 지배를 겪었지만, 결정적인 고비를 맞을 때마다 사람들은 독재국가의 모델보다는 비록 완전하지는 않아도 민주주의와 지도자가 책임을 지는 제도를 선택했다.
몇 년 전, 한 익명의 남한 사람은 『북한에서는 지도자를 神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지도자를 감옥에 집어넣는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것은 사소한 차이가 아니며, 북쪽의 지도층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법률제도, 인도주의적 성과, 성공적인 경제모델, 정치적 사상 등에서 남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북한의 제도는 거의 찾아내기 힘들다.
한 마디로 한국을 분단하고 있는 塹壕(참호)는 독일의 경우에 비해서 훨씬 깊고 넓다. 공산주의자의 두목은 모스크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양에 있고, 공산주의가 동독인에게 미친 영향 이상으로 金가족의 이념은 북한인의 사고방식에 밀접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대한민국의 언론은 북한 주민에게 접근할 수 없으며, 통일 이전 100만의 서독인이 경계선을 넘어 동독으로 여행했던 것과 같은 일은 불가능하다. (북한 주민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全독일에서 일어났던 현대적이고, 공업화된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던 노력 같은 것도 함께 경험하지 못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일은 회피할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전쟁을 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1945년 이전까지 유지했던 공통의 문화적 유산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의 차이는 심각할 정도이며, 한국 미국 일본의 정부가 힘을 합쳐 지혜를 짜낸 정책으로도 그것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Ⅲ. 북한 정권이 할 수 없는 것

18홀 코스에서 34타를 칠 정도로 과오가 없는 金正日?

현재 북한의 지도자들이 자체적으로 북한 경제를 개선하거나, 합리적인 선택으로 세계에 합류하여 화해의 「소프트랜딩 방식」, 개혁, 개방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믿을 수 있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소프트랜딩(Softlanding)」이 한반도의 대결상태를 궁극적으로 전쟁 없이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런 생각은 현실적인 전망을 크게 歪曲(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金가족이 북쪽에 건재하면서 대결을 해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H.라이더 해거드의 팬터지 소설과 같은 부류에 속하게 될 것이다.「소프트랜딩 방식」은 왜 어려운가? 美 국무장관이 1997년 초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남북한이 협상으로 한국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문제는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북한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느끼고 있고, 분단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평화적 해결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해야 할 「북한인」의 정체다. 우리들의 검토 대상은 매일매일 생존을 위해서 전국을 헤매고 있는 2200만 명의 주민들인가? 하나의 국가로서 북한인가? 북한을 지배하고 있으면서, 북한이 하나의 국가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모두 결정하고 있는 권력구조 꼭대기에 있는 특수층인가?
몇 년 전, 어느 한국의 정치학자는 「객관적 방식」을 위해서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서 볼 객관적인 필요성은 누구나 가정할 수 있지만, 연착륙(소프트랜딩)의 객관적 필요성과 그런 방식을 선택하려는 金正日 정권의 意思(의사), 치명적인 피해의 수반 없이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간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화해에 수반되는 문제는 무엇인가? 북한의 지도자들은 자신과 그 인민들에게 朝鮮(조선)의 진정한 주권과 애국심은 1930년대와 1940년대 항일게릴라 투쟁의 계승자에게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믿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金日成과 그의 戰友(전우), 그 후손 및 그 동맹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의 정체성은 이것으로 정의된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조선이다. 그들이
「하나의 조선」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그들이 領導(영도)하는 조선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어느 곳에 「동등한 지위」에 있는 다른 일단의 조선인이 있고,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교리, 전략, 이념, 정서 등 사실상 모든 측면에서 혐오스럽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나 탈북자의 보고, 수집된 정보가 갑자기 그 가치를 상실하지 않는 한, 2000년 6월의 頂上회담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고 자신 있게 예언할 수 있다.
改革(개혁)의 가능성은 어떤가? 몇 년 전 북한의 미디어는 金正日이 18홀 골프코스에서 PGA 공인기록보다 25타나 적은 34타를 쳤다고 발표한 일이 있다. 그는 과오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 개혁을 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 이런 것을 웃어넘길 수 있지만, 북한에 살면서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웃을 일이 아니다.개혁이란 말에는 무엇인가를 고쳐야 한다는 개념, 다시 말해서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절대로 오류가 없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개혁을 인정하려면 金正日 자신은 절대로 東유럽식 과오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주체사상을 버려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아버지까지 비판해서 자기 아버지의 올바른 정책을 따르는 효성 깊은 아들로서의 합법성까지도 내버려야 한다.이런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개혁을 추진하자면 일련의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경직된 전제적 정권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예를 들어, 개혁을 시작할 때 언제 시작하고 어느 분야에서 시작하고 얼마나 빨리 해야 하고 다른 분야에는 언제 도입 하고 그 책임자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다른 전제주의 제도의 경험에서 보면, 이런 과정에서는 조만간 개혁이 올바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올바른 사람이 추진하고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단 한 사람만이 옳고 그른지를 논할 수 있는 사회
에서 일어나는 모순이다.

남한의 흡수통일 가능성 높아져

개방은 똑같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북한사람들은 수십년 동안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해방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아왔다. 이것은 이들 신앙체계의 기본적 도그마이므로 바꿀 수가 없다.
북한사람들이 그런 교육이 거짓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남한동포가 金가족의 「낙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구조와 지도층에 대한 안전에 어떤 결과가 생기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이 법적 보장, 금융기관, 전문가 등 개방에 필요한 하부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북한의 이른바 「기술관료」는 대부분 MIT, 아이비 리그, 스탠포
드, 런던스쿨 같은 곳이 아니라, 金日成 대학과 모스크바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그들이 북한을, 21세기의 유동적이고 격동적인 세계경제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데 있어 얼마나 도움이 되는 교육을 받았는지는 의심스럽다.예컨대 이런 선택은 국가로서의 북한에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모두 이 정권이 실행할 줄 모르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흘수선(吃水線) 아래에 구멍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겹칠 수도 있다. 이 개방정책을 도입하면 북한 지도자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목에 로프를 감는 것이고, 그에 따르는 변화는 그들이 올라서 있는 발판을 떨어뜨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상되는 결과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金家정권은 조심스럽게 몇 가지 제한된 위험한 실험을 할지도 모르지만, 적대적으로 보고 있는 남쪽 세력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활성화의 길로 나아가기보다는 주민들에게 계속 경제적 실패의 고통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둘째, 전쟁을 제외한다면 군사적 측면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남쪽의 우위는 계속 증대될 것이고, 북한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남한의 우위를 알게 될 것이다.
셋째, 통일이 전쟁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경제가 지배하게 되어 경제적으로 우월한 남쪽이 再통일의 과정을 주도하면서 과거의 정치적 통일노력에 우선해서 그것을 포용하여 계속하게 될 것이다.

軍事 이외엔 생존방법이 없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전체적인 기간은 과도적인 조건에 불과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기간은 길수록 남쪽의 우위는 명확해지고, 마지막 결과도 더욱 불가피해진다. 이 과정이 전개됨에 따라 북한 정권의 지도자들은 점점 더 권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들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식이나 자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이 모든 과정 뒤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가 따른다. 金家정권은 성격상 군사적인 것 이외에는 장기적인 생존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생각은 그 자체로서는 정책수립자나 다른 많은 관측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새로운 한반도 전쟁에 따르는 엄청난 비용을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그러나 평화공존이 오래 계속되면 남한의 매력이 증대되고 북한에서는 인민의 지지가 점차 감소되는 것 이외의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북한정권이 그런 종말을 회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지만, 협상을 통해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는 사실상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생각이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해도, 金家정
권에게는 장기간에 걸쳐 실행할 논리를 제공한다.
끝으로 북한 정권이 앞으로 무엇을 하려 하고 하지 않을지를 분석하고 예언하기 위해 이밖에 다른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잘못된 기대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Ⅳ. 전략적 선택

가장 위험하나 가장 효과적인 정책 대안은 전쟁

현재 북한은 네 가지 광범위한 전략적 선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 중 두개는 장기적 생존의 전망을 제공하지만, 어렵고 위험하다. 다른 두 개는 잠정적인 생존의 방법을 제공할 뿐이다.
첫째 선택은 공격을 해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 전략의 이점은 완벽한 승리의 가능성이다. 만약 金家정권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할 수 있게 되면, 경제적 실패는 정치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거나, 된다 해도 중요성은 떨어진다. 한반도의 분단은 종식되고,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및 정치적 도전도 사라진다. 물론 단점은 그것이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전면적인
패배와 죽음의 위험이 있고, 적의 손에 운명을 맡기거나, 수치스럽게 도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선택은 1954년에 채택된 「평화통일」 구호에 나와 있는 대로 顚覆(전복)과 革命運動 (혁명운동)이다. 이 전략의 이점은 최소한의 위험으로 완전한 승리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실행하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성공의 가능성도 극히 낮다는 것이다.1960년대 중반에서 말기에 걸친 게릴라작전은 실패했고, 다시 그것을 부활하려는 기도는 없었다. 전복에 대해서 보면, 그들에게 포섭된 사람이 있고, 反국가단체가 결성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의 사회는 전반적으로 너무 크고 다양해서 무너뜨릴 수가 없다.물론 이 방식에서 실패 가능성의 중요한 이유로서는 金家정권의 호소력을 감소시킨 다음 네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1)북한 경제모델의 명백한 실패, (2)남한에 대한 길고도 계속적인 테러 前歷, (3)남한사람들이 우스꽝스럽고 시대착오적으로 본 왕조승계, (4)민주투사를 가장한 극렬 학생분자의 정치적 가면을 박탈한 남한의 정치적 민주화 등이다.
셋째 방식은 이른바 「소프트랜딩」 또는 「합리적 선택」, 즉 화해와 경제협력, 개혁, 개방이다. 이 점은 장차 이 모든 것이 북한을 경제적 및 사회적으로 回生(회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이미 지적했던 것처럼, 불가피하게 정권의 기반을 잠식해서 金家體制를 붕괴시키고 종말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방식은 당분간 남쪽의 위협을 저지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건재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우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방식을 계속 추구하면, 앞서 열거한 두 가지 방식은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넷째 선택은 개혁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거나 전혀 하지 않고 援助(원조)에 기초를 두는 생존방식이다. 현재 金家정권이 채택하고 있는 중심적인 전략선택은 바로 이것 같다. 이 방식의 이점은 크다. 그것은 내부적 변화의 혼란을 피할 수 있다. 대한민국과 광범위한 연결을 가지는 위험을 피하면서, 그들이 선택한 대한민국의 기업체가 북한에서 활동을 하게 할 수도 있
다. 이 방식은 계속 군사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앞서 열거한 첫째 및 둘째의 선택을 남겨놓는다. 불리한 점도 상당히 많다.
우선 維持(유지)의 문제가 있다. 외부세계가 장기간에 걸쳐 충분한 원조를 제공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건재하고 또 우위에 있다. 북한 정권은 붕괴할 수도 있고, 1950년대 초에서 중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이 유사한 전략을 채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패가 만연되어 있다.

북한軍은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첫째 선택을 다른 각도에서 보자. 최근 북한의 목표를 生存(생존)이라고 보는 견해가 인기가 있다. 북한의 경제적 실패와 남북 간의 증대되고 있는 격차를 고려할 때, 생존을 하려면 방위적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비록 지도층은 노선을 바꾸고, 남한에 대한 적대행위를 포기하며, 개혁하고, 개방하고, 남한이 제공하는 원조를 수락해야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북한의 군사기구는 경제 및 다른 분야와 함께 쇠퇴했을 것이고, 북한 정권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기껏 정보통제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견뎌나가는 것이라는 가정이 있었다.이런 가정 뒤에는 북한이 더 이상 군사적 위협이 아니며, 북한정권은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려는 목표를 포기했다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남한에 대한 어떤 공격도 자살적인 것이고, 불합리한 결정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철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은 그들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경고의 여유를 주지 않고 공격을 할 수 있으며, 그들의 野砲(야포)는 (한국군) 전진 방어진지를 격파하고 수비군의 士氣(사기)를 파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남한의 도로가 피난민으로 막혀서 韓美연합군이 기동을 할 수 없게 되리라고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잘 훈련된 대규모 特殊部隊(특수부대)로 후방에 혼란을 일으키고, 화학무기와 생물학 무기를 함께 사용하면 병사나 민간인들의 사기가 모두 떨어지고, 恐慌狀態(공황상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끝으로 대한민국 해군이 1999년에 서해에서 훌륭한 戰果(전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쟁이 발발하면 수비군의 상당수가 도망하거나 熱意(열의) 없이 싸울 것이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둘째, 북한의 지도자들은 장차 어느 시기에는 미국이 다른 지역, 다시 말해서 중동이나 대만 해협 사태에 묶여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바다를 건너 증강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셋째, 그들은 미국이 어떤 종류이든, 큰 희생을 낼 수도 있는 개입은 피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초기에 강력한 공격으로 처음부터 커다란 희생자를 내게 만들면 미국 정부는 증강하기보다는 철수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받게 되리라고 계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넷째, 우리가 북한군의 배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는 북한이 군사적 선택을 포기했거나,그들의 전반적인 태세가 공격적이기보다는 방어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1980년 이래, 북한은 지상군을 70만에서 100만 이상으로 증강시키면서, 전투부대를 꾸준히 전진배치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기계화부대와 야포부대가 남쪽으로 再배치된 것이 중요한 변화다.
오늘날 병력 70만, 전차 2000대, 야포 8000문 등 全전투부대의 70%는 평양-원산선 이남, 즉 비무장지대에서 100km 이내에 배치되어 있다. 1980년에는 전진 배치된 병력이 40%였다. 이들의 포병전력에는 지난 10년간 배치된 500문의 장거리포 체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장거리포 체제가 비무장지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은 서울 全域(전역)이 파멸적인 위협에 직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들은 야포를 현 위치에서 이동하지 않고도 시간당 50만발을 몇 시간 동안 韓美연합군 방위진지에 퍼부을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군의 위협은 미사일과 특수부대 작전을 서울의 주요지역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력은 지하시설로 보호되고 있다. 前方에는 이런 시설이 4000개나 된다. 이들은 현재의 위치에서 준비할 시간을 거의 주지 않고 공격을 할 수 있다. 북한군의 전술교리는 기습, 화력, 기동성으로 戰場(전장)을 지배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북한군이 성공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 것은 비밀, 극히 좁은 전방지역에 대한 대량의 화력집중, 대량파괴 무기의 광범위한 사용, 공격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증원군 및 전 과확 대부대의 조직적 투입이다.

7일 이내에 서울 고립 계획

북한의 전투계획은 7일 이내에 韓美연합군 전방 방위진지를 유린하고, 서울을 고립시키며,그 다음에는 작전을 나머지 한반도로 확대해서 한국군을 패배시키고, 미군이 도착할 수 없도록 공항과 항구를 봉쇄하는 것이다.북한군의 배치에도 분명히 방위적인 성격을 가진 것도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전방지역의
해안방위가 개선되었고, 평양과 비무장지대 간의 주요도로를 따라 전투진지가 건설되었으며,對전차장애물이 전방지역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런 배치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유연성과 속도, 깊은 縱心(종심)을 공격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적(한국군+미군)에 대해서 공격을 하자면, 북한은 종합적 공격계획에서도 방위작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보면 북한군의 배치는 방위를 위한 것이 아니다. 첫째, 그들의 야포는 대부분 전방에 깊숙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기습당했을 때 취약하고, 방어작전에는 소용이 없다. 둘째, 비무장지대 북쪽에는 남쪽의 FEBA(Forward Edge of the Battle area·최전선) A, FEBA B, FEBA C 같은 방어선이 없다. 셋째, 비무장지대의 지하터널은 공격 이외에는 쓸모가 없다.작년 한 해 동안 북한은 지상군의 전력을 개선하기 위한 의욕적인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 계획에서 초점은 대량의 240mm 다연장 로켓발사체제와 170mm 자주포를 비무장지대에 가까운 强化진지에 배치한 것이다. 이밖에도 그들은 미사일 지원시설 건설, 장거리미사일 시험준비, 이미 상당한 수준에 있는 위장, 은폐, 기만활동의 강화 같은 것이 있다.미사일, 항공기, 잠수함, 야포 등 군사장비의 생산은 계속되었고, 작년 여름부터 훈련의 수준도 새로운 기록을 수립했다. 이 모든 것은 軍에 계속 우선권을 두고 있고, 전반적으로 심각한 경제부진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많은 자원을 이 분야에 배정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아시아에서 당한 네 번의 기습을 상기하라

북한이 공격을 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옳을지 모른다. 金正日이 주저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는 원조에 기초를 둔 생존전략이 무한히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군사력 유지능력을 우려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는 同盟(동맹)을 분열시키려는 노력이 성공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미국의 公約(공약)이 약화되거나, 미국이 다른 지역에 매이거나, 駐韓미군이 철수하도록 영향을 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는 세계수준의 안보체제를 활용해서 무한정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우유부단해서 사실상 너무 늦을 때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그러나 북한이 너무 약해서 생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리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20세기에 아시아의 적대국이 네 차례나 미국에게 엄청난 놀라움을 안겨 주었던 사실을 회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진주만 공격, 한국의 경악(1950년 6월25일 침공뿐만 아
니라 북한군의 기술과 전투열의), 1950년 말 중공군의 개입, 1968년 베트남의 舊正공세 같은 것이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예언하는 사람이 있지만, 기성체제는 그것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이 네 가지 사례에서는 아시아의 적대국에 대한 미국의 蔑視(멸시)와 자신의 능력을 過大評價(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사례에서, 적에게는 공격할 능력이나 의도가 없다는 합리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가했고, 미국은 커다란 대가를 지불했다. 이런 사실을 뒤돌아보면, 적이 우리 전쟁 敎理(교리)가 아니라 그들의 교리에 따라 싸우지 않을 수 없도록 (우리에게 상황을) 강요할 수 있는 힘과 의지, 독창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도) 득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이 네 가지 광범위한 전략적 선택의 사례에서 보면, 金家정권은 지도층, 특히 金正日 자신의 안전과 安樂(안락)을 확보하고 내부적 통제를 유지하는 데 일차적인 중점을 두리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부차적으로 이 정권은 중국이 계속해서 모든 선택을 지원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 모든 선택에서 「소프트랜딩」 방식을 제외하고는 일차적인 중점은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제거하는 데 놓여질 것이다. 북한은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誹謗宣傳(비방선전)과 암살, 납치, 협박 등을 통해 대한민국 내의 보수적 세력을 공격할 것이다. 북한은 대한민국에 대해서 계속 간첩과 정찰활동을 할 것이고, 남쪽에 있는 극렬 및 전복 조직을 지원 및 지시할 것이며, 한국군 조직의 評判(평판)을 떨어뜨리고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북한은 대한민국의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韓美동맹을 균열시키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주권문제, 韓美행정협정, 재판관할권,토지문제에 대한 선전과 선동을 통해 駐韓미군의 신뢰를 떨어뜨려서 駐韓미군을 철수시키려
할 것이다.

韓美 離間 통한 주한미군 철수 기도

북한은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한반도의 냉전구조」 제거를 추진하고, 모든 기회를 이용해서 그들의 「民族大團結(민족대단결)」 원칙에 따른 자주평화통일 3大 원칙을 전면에 내세우려 할 것이다. 그들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인 대량파괴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代價를 치르더라도 추진할 것이다. 이미 수백 마일의 지하터널과 시설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호시설을 가진 잠재적 적대국 북한은 지하시설 건설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공격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선택을 위해서, 북한은 외교와 선전으로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고, 최대의 적인 미국 및 일본과 관계정상화를 통해, 前者로부터는 원
조가 계속 유입되도록 하고, 後者로부터는 최대한의 배상금을 얻어내려고 할 것이다.
(그들이) 「소프트랜딩」을 선택한다면 군사력에 우선권을 주고 대한민국이 정통성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은 별로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金家정권의 기본적인 敎義(교의)이고, 오늘날까지 이 정권의 행동기록을 보면 (그런 것들을) 포기할 수도 없으므로, 결국 「소프트 랜딩」은 환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정권은 원조에 기초를 둔 생존전략을 추구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당근과 몽둥이를 가지고 있다. 당근은 대량파괴 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대한 투명성 提高, 지하시설 접근 완화, 지하시설 파괴, 시험 및 배치 중지, 신뢰구축 수단의 시작, 선전공격의 완화, 대한민국과 정식 협상, 납치 암살 침투의 중지 같은 것이다.몽둥이에는 1994년 美北 제네바 합의 破棄(파기), 비무장지대 일대의 도발, 해안 침투, 미사일 판매, 미사일 시험 계속, 미국 일본 한국과의 여러 대화 채널 중단 또는 그 위협이 포함 된다. 그러나 북한이 주로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외부세계로부터 원조를 얻으려고 한다면, 그들의 행동범위는 원조를 끌어내는 데 필요한 위협의 수준을 下限(하한)으로 하고, 원조를 중단시킬 수 있는 도발의 수준을 上限(상한)으로 한 중간에 국한될 것이다.

Ⅴ. 대량파괴 무기와 미사일의 심각성

생존을 위한 카드 미사일

북한 정권은 그들의 대량파괴 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이 생존을 위한 기초가 되고 중요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네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첫째, 이런 능력 때문에 이 정권은 필수품을 구걸하지 않고도 협상이나 협박으로 얻을 수 있다.
둘째, 이 점에서 대량파괴 무기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 계획 자체에 부여된 중요성과 그것을 추구하려는 이 정권의 결의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계획은 하룻밤 사이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核(핵)전문가를 모집하는 일은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 북한은 1960년대에 核전문가를 영변에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은 북한이 경
제적 파탄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가지게 되거나, 그 결과 협상의 「카드」로 사용할 필요가 있기 훨씬 이전에 생긴 것이다.
셋째, 대량파괴 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은 金正日의 「强盛大國(강성대국)」을 건설하는 데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우선 그는 강대국들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약소국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그는 틀림없이 그런 능력이 자신의 역사적 사명에 중요하며, 따라서 자신의 주체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와 그의 정권은 항상 이런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들이 그런 능력을 박탈당하는 상황, 다시 말해서 그들이 한 번도 취해본 적이 없는 자세로 「복귀」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넷째, 이런 능력은 시리아와 이스라엘, 인도, 중국, 그리고 북한까지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와 연결시켜서 보아야 한다. 바로 2류 및 3류 국가들이 서방의 재래식 戰力 우위에 대항하기 위해서 非대칭적 대항 능력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분석은 폴 브라켄의 「동방의 불」에 잘 정리되어 있다.그는 이 저서에서 우리가 냉전 후기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스코 다 가마 후
기시대에 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아시아 국가들은 500년 이래 처음으로 최신 군사기술로 그들의 의사를 강요하려는 서방국가에게 반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같은 새로운 능력으로 태평양에 있는 미군 기지를 공격하고, 궁극적으로는 美 본토를 공격해서,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미국이 간섭하는 비용과 위험성을 높일 것이다. 브라켄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아시아 국가들은 이런 새로운 무기, 특히 射程(사정)이 연장되고 정확성이 향상된 미사일을 보유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무차별적인 대량 파괴만이 아니라, 무력과 무력의 위협으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결에 있어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 대답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수십년 동안, 그리고 매주
일마다 駐韓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해오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동등한 강조」, 「先軍정책」, 「총포의 중요성」, 「강성국가」 등 여러 가지로 그들의 정책을 부르고 있지만, 金가족이 지배하는 북한은 처음부터 군사력에 최대의 우선권을 두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대량파괴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그들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정책으로 돌아가게 만들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현재 북한 정권은 공격 능력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한편,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면서, 원조에 기초를 둔 생존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화해, 개혁, 개방은 거부한 것 같지만, 외부로부터 원조를 끌어들이는 데 필요하면 때때로 그런 선택을 가장할 태세는 되어 있다.때로는 그런 거부가 非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거부는 非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고도로 非정상적인 환경에서 운영된 합리적인 사고라고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분단 국가의 시나리오, 경제적 성공에 적합하지 않은 극단적 이데올로기, 남한
에 대한 적대적 행동기록 등으로 해서 북한 정권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만든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지도자가 있는 정상적인 국가의 정상적인 선택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의 생존에 대한 비극적인 딜레마가 있다. 주민들에게 藥(약)이 되는 것은 정권에게는 毒(독)이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익은 고대 어느 전제국가 못지않게 對立(대립)되어 있다.

Ⅵ. 우리가 얻을 수 없는 이유

自主는 주한 미군 철수를 의미

앞에 언급한 이야기가 難解(난해)한 것은 아니다. 金家정권의 非정상성과 무능력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많은 명석한 사람들이 그것을 看過(간과)하고 있는가? 적어도 여섯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우리들의 경험은 대부분 정상적인 국가에 대한 것이고, 자연히 정상적인 외교 도구와 국제적인 교섭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우리는 북한 정권이 암호를 제공해도 金家정권 성명의 목적을 선전이라고 생각하고 그 암호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1948년의 조선노동당 규약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조선노동당은 美제국주의 침략군과 내부의 反動支配(반동지배)로부터 우리나라의 南半部 (남반부)를 해방시키고, 북과 남의 광범위한 대중을 공고히 단결시켜 민주적 기초 위에서 완전한 국가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투쟁한다…>
이것은 異論(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것이 半세기 전에 발표된 것이란 이유로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또 하나의 예가 있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에서 양측은 民族大團結(민족대단결)의 원칙에 따라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1972년 7월
15일, 북한의 미디어는 全조선이 金日成의 영도 아래 통일될 것이라고 다시 선언했다. 더 중요한 것은 金日成 자신이 그 여름 이후 일본의 마이니치(每日)신문과 월간지 세카이(世界), 그리고 북한 간행물과의 인터뷰에서 그 용어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자주」는 「美제국주의자를 남조선에서 축출하는 것」이고, 「평화적」은 남한의 군사력을 감축하고, 軍 현대화 계획을 중지시키는 것이며, 「민족대단결」은 대한민국에서 親北韓(친북한) 전복 및 혁명집단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우리는 북한의 협상자들이 이런 용어를 2000년 6월 頂上회담의 議題(의제)에 포함시키자고 고집한 사실을 하찮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모든 용어가 두 경쟁 정권 사이의 주도권 쟁탈전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 문제는 나선 모양 기둥이나 비잔틴 문양의 장식은 거의 없지만, 그 표면에 쓸데없는 장식을 달아서 그 밑에 있는 기초적인 단순성을 내려다 볼 수 없게 하는 경우가 많다.이 경우 우리는 非현실적 예측을 하고, 국가 이익과 정권 이익을 구분하지 않는 해결방식으로 스스로 쓸데없는 장식을 달아놓고 있는 것이다.
넷째, 정책수립자들은 정책의 목표를 그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도록 개념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종의 정책수립 함정이 있으며, 우리가 분석을 할 때 목표에서 빗나가게 만들 수 있다.
다섯째, 우리는 무역 증가, 기술 확산, 국경을 초월한 사상과 사람의 이동 같은 「세계화」라는 인기 있는 개념이 번영을 만들어내고, 공통의 이익 의식이 국제적 긴장과 적대적 대립을 완화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1914년, 영국과 독일 간의 활발한 무역과 독일인의 셰익스피어 심취에도 불구하고 이런 원리는 작동하지 않았다. 한반도의 경우에 그것이 작동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여섯째, 북한의 정치 문화와 정권의 의도를 진지하게 연구해 보면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에서 大勢(대세)가 되어 있는 일부 희망적인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생길 것이다.

Ⅶ. NPEC(Nonproliferation Policy Education Center)의 질문 검토(생략)

Ⅷ. 駐韓미군의 역할과 북한의 非대칭적 반격

북한 정권은 때때로 미국이 그들을 질식시키려 한다고 비난해 왔다. 그것이 미국의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駐韓미군의 역할이 극히 중요하다는 것은 반영하고 있다. III항에서 논의한 것처럼, 金家정권이 제로섬식 생존투쟁에서 패배자의 편에 서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고, 그것의 유일한 현실적인 방법이 무력이나
그 위협이라면, 駐韓미군은 그들의 생존을 위한 길을 가로막고 앉아 있는 셈이 된다.북한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떤 방식이든 모두 조만간 이 장애물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金日成이 1972년에 발표한 「자주」통일의 의미다.
1956~1971년에 한국 외무부 관리였고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코리아-2000의 연구원인 이활웅은 1999년 11월9일의 NAPSNET 논문에서, 페리보고서는 195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과 북한 간의 오랜 대결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을 말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전쟁을 했으며, 북한의 대량파괴 무기계획은 駐韓미군에 대해서 자신을 방위하려는 불가피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는 駐韓미군이 남쪽에서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한 북한은 대량파괴 무기계획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진지하게 평화를 생각하고 있다면, 駐韓미군이 북한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을 시인하고, 북한이 대량파괴무기계획을 완전히 포기하는 代價로 단계적 철수에 동의함으로써 그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계당사자들의 군축 및 불가침조약을 위한 정치적 협약」을 제의했다. 그러나 그는 그 건의가 한국의 안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1999년 11월에 있었던 「말」誌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조국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박영수는 북한이 1999년 2월, 세 가지 조건에 기초를 둔 남북한 고위회담을 제의했던 사실을 회상시켰다. 그 조건은 反북한 활동을 위한 외세협조 중지,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운동 보장이다. 물론 그 조건은 1972년 7월4일에 발표된 원칙과 흡사한 것이지만, 이 두 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駐韓미군의 철수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박영수는 『우리는 미국과 평화조약에 서명하는 일과 駐韓미군 철수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장래에 대해서는 『통일이 없는 평화는 불가능하다』
고 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언급을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의 지도자 金正日은 남쪽에 대해서 솔직하고 명백하게 말을 했다. 1999년 10월8일자 노동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이 「위대한 지도자」가 말한 것으로 인용했다.
『만약 미국이 무력으로 남조선을 강점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절대로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조선의 통일을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오래 전에 민족통일을 이룩했을 것이다』
이 기사는 남쪽이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이고, 「인민」의 베일을 쓴 現 괴뢰지도층은 제국주의자의 시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따라서 이렇게 주장했다.
<괴뢰지배도당과 같은 통일의 적이 권력을 잡고 있는 한, 우리나라의 자주적 통일은 기대할 수 없다. 무력으로 남조선을 강점한 미군과 그들을 추종하는 파쇼 정권이 우리 인민의 자주통일을 막고 있는 암이다>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선전상의 용어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위에 인용한 대한민국의 식민지적 지위와 駐韓미군의 철수 필요성에 대한 반복적인 주장은, 반세기 동안 북한의 일관된 자세였고, 변경할 수 없는 독트린이며, 金正日 정권에게 안전한 궁극적인 한반도의 상황--북한 정권 주도하의 통일--은 실제로 駐韓미군의 존재 때문에 방해받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에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다.

Ⅸ. 2000년 6월의 남북 頂上회담

원칙적 合意의 함정

2000년 6월 중순에 있었던 남북 頂上회담에 대한 가장 큰 의문은 북한이 중요한 고비를 맞을 때마다 우리가 가졌던 의문이었다. 북한은 정말 변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새 병에 담은 똑같은 낡은 포도주인가 하는 것이다. 시간만이 그 대답을 해 줄 것이지만, 북한의 과거 행동 기록을 돌아보고, 달리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큰 기대를 걸지 말
고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다.그러나 이미 분명해진 것은 이 頂上회담이 北의 위협에 대한 인식을 감소시키고, 駐韓미군을 平價切下(평가절하)했으며, 북한에게 유리하게 발전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을 가속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金正日이 왜 金大中 대통령과 頂上회담을 갖기로 동의했는지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입수할 수 있는 증거에서는 세 가지 주요 요인이 시사되고 있다.
(1)원조에 기반을 둔 생존전략이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자신감 증대,
(2)원조가 절실하며, 다른 나라보다는 한국에서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원조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
(3)金大中 대통령이 이미 국가보안법의 개정과 駐韓미군의 地位變動(지위변동)가능성, 聯邦制(연방제) 통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金正日을 개인적으로 『지도자로서 상당한 정도의 판단, 능력,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 점 등으로 판단, 金大中 정부가 만만한 파
트너라고 인식한 것 등이다.요컨대 金正日은 공산주의 동조자와 북한 협조자들의 세력이 남쪽에서 기반을 확대하고 있으며, 金正日은 그들에게 강력한 지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어쨌든, 평양頂上회
담은 경쟁에 새로운 국면을 추가했으며, 이미 확인된 몇 가지 趨勢(추세)를 강화했다. 형식적인 절차에서 이 頂上회담은 1972년과 1991년에 있었던 남북합의와는 달리 대한민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이 공식적인 자격으로 6월 선언문에 서명했다는 점에서 전진적인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먼저 있었던 合意書(합의서)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것을 하나씩 읽어보면, 왜 기본적으로 동일한 분야에 관한 합의를 되풀이해야 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의 頂上회담에 대해서도 하나의 우려할 만한 측면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이 선언도 과거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원칙적인 합의에 불과하고,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약속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선언 역시 궁극적으로는 앞서 있었던 협정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첫 단계가 구체적 약속 없이 일련의 원칙 합의일 경우, 그 다음 단계는 그 원칙의 올바른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되고, 세 번째 단계는 상호 비난 속에서 대화가 결렬되고, 북한은 대한민국이 합의정신을 배반했다고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북한의 경제적 파탄 때문에 지금의 경우는 예외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북한의 원조 필요성은 새로운 요인으로 보이지만, 金正日이 예상되는 미국과 대한민국 내의 정치적 변화에
앞서 신속한 得點(득점)만을 노리고 있는지, 아니면 장기간에 걸쳐 외부 원조를 얻어야 하는 필요와 정권의 권력을 유지할 필요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태세가 되어 있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어떤 경우이건, 그 頂上회담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1972년과 1991년에 「돌파구」라고 널리 찬양되었던 것에 비해서 더 陶醉的(도취적)이고 非現實的(비현실적)이다. 金大中 대통령의 반복된 신중한 성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 頂上회담을 미디어에 보도된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북이 드디어 관계 개선과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위한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점점 더 드러나기 시작한 「위협 부정 사고방식」(threat denial mindset)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을 뿐이다.

反美운동은 反대한민국 운동의 초기 단계

금년(편집자注-2000년)에 있었던 북한의 기록적인 군사훈련을 모르고 있는 많은 남한 사람들은 경제적 실패 때문에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에 대해서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약화되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위협」이 이전 권위주의 정부가 만들어낸 假想(가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한반도에서 또 하나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가능성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태평양전쟁이나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기억이 없고, 교육을 받은 일도 거의 없으며, 美軍을 裁判管轄權(재판 관할권)이나 土地問題(토지문제)로서만 보고 있다.
끝으로, 한국 내의 親북한 세력은 대부분의 남한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조직되어 있고 더 효과적이다. 그것은 駐韓미군에 대한 계속적인 선동과 남북 화해에 대해서 신중한 견해를 가지고 駐韓미군의 유지를 옹호하고 있는 사람을 「보수주의자」라고 공격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現시점에서 反주한미군 운동이 궁극적으로는 反한국 운동으로 발전
할 광범위한 운동의 초기 단계라는 것을 알고 있는 한국사람은 별로 없다.金正日의 의도에 대해서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긴 하지만, 그가 頂上회담에서 얻은 소득은 쉽게 알 수 있다.
(1)경제원조 증가. 金大中 대통령이 金正日에게 얼마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7월5일 통일부 발표에 의하면 올해(2000년) 전반기 한국의 경제원조는 합계 750억원(6700만 달러)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8%가 증가했다. 이 원조의 85%는 정부 원조이며, 4월~6월의 기간에 보낸 비료 20만t이 포함되어 있다. 7월26일, 한국 정부는 10만t을 더
보낸다고 발표했다.
(2) 金正日의 개인 이미지 회복. 그는 하룻밤 사이에 한국에서 미디어의 스타가 되었다.
(3) 駐韓미군 감축 또는 철수 요구 증대. 주한미군에 반대하는 운동은 韓美행정협정 개정요구와 범죄와 환경 문제를 둘러싸고 미군司와 주둔국 사회 간의 각종 마찰에 대한 민감한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 그것은 또 이익집단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도 했다. 신문을 더 팔고, TV 시청률을 더 올리려는 욕망, 젊은 저널리스트의 민족주의적 열정, 외세의 영향을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역사적 이유를 가지고 있는 외국인 혐오 편견, 그리고 좌익과 親北韓(친북한) 운동권의 駐韓미군 및 대한민국 반대 목표 같은 것이다.金正日은 당분간 駐韓미군 문제에 대한 전술적 접근방식을 변경한 것 같다. 金正日은 6월30일 미국 신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駐韓미군을 철수하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먼저 자신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미국은 스스로 駐韓미군의 문제를 검토해서 조선인민의 통일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서울에 있는 서강대학교 李相禹(이상우)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이 말은 이미 상당한 활력을 얻은 한국 내 反주한미군 운동과 관련시켜 보아야 한다. 金正日은 그의 修辭的(수사적) 발언을 自制(자제)함으로써 북한의 노선에 봉사한다는 비난에 대해 이 운동을 사실상 擁護(옹호)한 것이다. 그는 주한미군에게 직접 압력을 가해 철수시키기보다는 놀이대를 기울게 해
서 주한미군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도록 하려는 것이다.
(4)한국 內 사상적 갈등과 당파분쟁 증가. 북한의 미디어는 한국 정부에 대한 공격을 중단했지만, 남쪽에 있는 이른바 「反통일」 세력, 특히 前 대통령 金泳三, 한나라당 대표 李會昌과 朝鮮日報에 대해서는 辛辣(신랄)한 공격을 계속했는데, 그 목적은 남쪽의 보수세력을 길들이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 공격으로 한국 內에서 치열한 정치논쟁이 벌어졌고, 야당은
金大中 정부가 북한의 공격에 대해서 지나치게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보수주의자들은 북한과의 포용에 몰입한 나머지 지난 반세기 동안 反共(반공)을 내세운 대한민국의 업적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고, 진보주의자들은 이른바 「냉전」 분단에 대한 선입견이 남북화해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이르렀다.청와대에 親북한 인사들이 있다고 한 한 야당의원의 주장은 이 시점에서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조차 동조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점점 더 북한과 남북관계에 관한 중요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방위와 안전에 적절한 우선권이 부여되지 않고 있다는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이 문제가 2002년 한국 대통령 선거 이후 누가 이 나라를 장악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정치적 동요와 투쟁은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Ⅹ. 정책의 딜레마

北의 근본적 변화는 金家정권이 무대에서 퇴장해야 가능

북한 정권의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현실적으로 기대하려면, 金家정권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획을 만들거나, 金家정권이 무대에서 사라지도록 강요할 수 있는 계획이 있어야 할 것 같다. 前者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고, 後者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불가능하면, 정책 수립의 중심 과제에서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우리가 어떤 유인을 제공해도, 개혁이나 상당한 규모의 개방 같은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 정권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그것을 항상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 金正日은 잘 알고 있다.핵문제가 등장한 이래, 우리는 제네바 합의서, KEDO(한국에너지개발기구·對北경수로 건설담당), 식량원조, 4者회담, 미사일회담, 그리고 관계 정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북한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도록 노력했다. 영변의 활동 동결과 극도로 제한된 남북 경제협조에도 불구하고 金家정권은 개방과 개혁이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 진상은 다음과 같은 것 같다.
(1)외부원조에도 불구하고, 金家정권은 改革(개혁) 없이는 경제를 고칠 수 없고, 체제를 해체하지 않고는 개혁을 할 수 없다.
(2)金家정권은 정권 생존의 근본이기 때문에 非對稱的(비대칭적) 이점(核미사일 개발)을 협상으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3)문제는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새롭고 환상적인 구조적 장치로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4)이른바 「합리적 선택」이나 「소프트랜딩」 생각은 현실적인 정책이기보다는 가망이 없는 희망이다.
우리가 「후기 소프트랜딩 妄想(망상)」단계라고 부르는 것의 특징은 북한의 딜레마를 드러내 주고 있다.
(1)시간이 지날수록, 金家정권의 전략적 선택은 더 제한된다.
(2)개혁과 개방을 제외한다면, 이 정권은 한국, 미국, 일본, 유럽으로부터 원조를 얻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수십년 간의 적에게 대한 의존을 감내할 수 있다고 해도, 원조가 더 많이 들어올수록 내적인 모순을 스스로 극복할 능력이 감소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현상유지를 하는 것은 실패의 妖怪(요괴)를 물리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3) 당분간 북한의 非대칭적 무기계획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딜레마는 북한에게 대량파괴 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결정적인 조처가 전쟁의 위험을 증대시키거나, 최소한 그 위험 증대에 대한 인식을 초래하고,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수년 안에 우리는 훨씬 더 위협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적대적인 敵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包容政策(포용정책)이 대한민국에게 경제적 부활을 위한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고, 시간을 벌어 준다는 주장은 논의할 여지가 있지만, 문제는 그 시간이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만약 우리 정책이 개혁과 대량파괴 무기 포기, 남북화해를 奬勵(장려)하는 희망으로 북한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라면, 성공의 전망은 없을 것이다.그 이외의 측면에서는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호랑이를 채찍질해서 고양이새끼로 훈련시킬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이유는 거의 없다. 한편, 그 목적이 현상유지를 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그 현상유지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본질적으로 불안하다는 것이다.
(1)북한이 남한의 원조를 받는다고 해도 金家정권의 敵對行動(적대행동)은 계속된다.
(2)더 크고 개량된 미사일과 더 많은 대량파괴 무기
(3)북한의 외부원조 의존 증가
(4)언젠가 북쪽의 도발이나 원조제공 국가의 정치권력 균형 변화로 원조가 중단될 수 있는 위험.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것은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테이블 위의 칩을 더 많이 올려놓는 과정에 불과하다.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정책은 非현실적인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대외적으로 문제를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조차 대량파괴 무기가 한국에 주는 적대적 위협의 깊이, 강도, 필요성 등 문제의 곤란성을 정말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제네바합의의 부적절성이나 4者회담 및 포용정책의 실패가 아니다. 이런 장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증상일 뿐이다.결론은 외교나 포용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며, 목을 졸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 결론은 좀더 기본적인 것이다.
(1)평양에 있는 정권은 심각한 분열의 위험을 각오하지 않고는 이탈할 수 없는 노선에 묶여 있다.
(2)북한의 엄청난 내적 모순과 거기서 기인하는 사회적 혼란 때문에 아무리 잘 생각해 내고,아무리 신중하게 만들어 낸 정책도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극히 제한된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우리들에게 사태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지 못한다.
(3)좋건 나쁘건, 별로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는 다시 累進的(누진적)인 역사에서 發作的(발작적)인 변화의 순간으로의 전환을 목격할 것이다.
駐韓미군에 대한 마지막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북한 정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가 그들을 질식시키려 한다고 비난해 왔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며, 북한군의 배치(그리고 탈북자의 증언)도 金正日이 우리측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고, 점점 더 부유해 가는
한국은 金家체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것은 남북 간의 경쟁을 한국이 의문의 여지 없이 우월한 경제적 측면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6월 頂上회담에 대한 한국의 陶醉感(북한에서는 頂上회담의 결과에 대해서 미디어가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은 한국과 미국의 정치평론가들에게 駐韓미군의 철수가 화해의 전개과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보게 되는 분위기를 조성해냈다. 駐韓미군이 그런 과정의 출발에 장벽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이런 주장이 상황을 결정해서, 駐韓미군이 철수하게 된다면, 미래의 역사가들은 두 가지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만약 남북대결이 궁극적으로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된다면, 철수하기로 한 결정은, 현명치 못한 모험이었으나 어떻든 잘 넘어갔다고 판단할 것이
다. 북한의 계속되는 군사적 준비 상황을 고려할 때 철수 결정이 또 하나의 파멸적이고 가슴 아픈 한국전쟁으로 발전한다면, 그 결정은 후세의 무자비한 시각으로 볼 때 엄청나게 어리석은 행동으로 드러날 것이다.
(월간조선 4월호)


편집자 注〕:이 글은 미국의 육군 대학 및 非확산 정책 교육 센터(NPEC=nonproliferation policy education center)가 주최한 연구회에서 작년에 발표된 것이다. 스티븐 브래드너씨는 올해 70세로서 1963년 이후 주한미군 사령부에서 한반도 전문가로 일해 왔다. 예일대학 출신인 그는 1963년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학위논문은 4·19에 관한 것이었
다. 부인은 왕년의 농구스타 박신자씨이다.



한빛코리아: 위 글(논문)은 스티븐 브래드너의 주장 내용입니다. '한빛코리아'는 위 주장 내용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각도'에서 한반도와 북한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위 글을 올린 것입니다!  [06/12-13:56]

좌우날개: 위 스티븐 브래드너의 주장은 일면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듯하나, 실제로는 매우 무책임한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대안 제시'가 없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내부적, 또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갑자기 붕괴되었을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와 세력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최악의 위기에 봉착했을 경우, 할 수 없이 최후 수단으로 '전쟁'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문제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무책임한 '비판' 보다는 현실적인 '대안' 제시가 필요합니다.  [06/19-11:13]

인민: 김정권이 무너지면 우리민족은 대경사를 맞을것입니다. 활발한 민주주의
는  북쪽에서 비약적인 발전변화가 일어나 남한을 따라잡고 초월해갈 수
도있습니다.지금 북쪽은 김정권의부패와 무지로 생산력이 침체되여있습
니다.상층건축의 변화는 생산력을 크게 해방시킬것입니다  [07/15-19:21]

노랑: 불리하면 꼭 말하는게 '대안' 제시.   상투적이지.  위의 글 구구절절 너무나도 학문적이다.  강추.  [08/04-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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