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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꼭 '주적'이라 해야 하나?
2002.4.29 오마이뉴스 북한을 꼭 '주적'이라 해야 하나? [심층기획] '주적' 표현, 이제는 고치자 (1) 정욱식 기자 civil@peacekorea.org 남북관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주요 현안으로 제기된 '북한 주적론' 문제가 5월에 발행될 예정인 <국방백서>에서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특정 국가를 '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이것이 남북관계와 국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리고 소모적인 색깔론을 최소화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및 우리 사회의 합리성 제고를 위해 어떠한 대안이 가능한지 세 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해 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 휴전선 철책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국군 병사들 ⓒ 국방홍보원 작년 11월 중순 <국방백서> 발간을 앞두고 군 당국은 고민에 빠졌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과 논리적, 현실적 모순관계에 있는 북한 '주적' 표현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특히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정세가 얼어붙고 있었고, 9.11 테러를 이유로 주한미군의 전력증강과 남한의 비상경계조치가 취해져 남북관계마저 경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또 주적으로 명시할 경우 북한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주적 표현을 삭제할 경우, 야당과 보수언론의 반발도 염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4년 국방백서에 '적'대신 '안보 위협'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보수진영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던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방부가 고육지책으로 발간 시기를 매년에서 격년으로 조정하고, 2001년 국방백서를 '2001-2002 국방백서'로 변경해 2002년 5월에 발간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과 자민련, 그리고 보수언론은 국방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다며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이미 남북관계는 물론 국내 정치적으로도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주적' 논란은, 임동원 특사 방북 및 대통령 후보 경선 및 대선 과정과 맞물리면서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5월달에 발간될 예정인 국방백서에서 '주적'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는 물론 국내 정치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불가피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색깔론과 특사 회담 때 북한의 주적 표현 삭제 요구는 5월 논란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적이라고 해서, 꼭 '주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보통의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북한을 적어도 군사적인 '적'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시대로 진입하고 있다지만, 군사적으로는 여전히 대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휴전선을 사이에 둔 양측의 막강한 군사력과 긴장 상태를 고려할 때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고 물리력과 정신력을 무장하는 것은 군의 본연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적으로 보고 이에 대비하는 것과, '주적'이라고 표현하면서 정치적, 군사적 논란을 키우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북한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최대 요소'라고 해서 이를 국가의 공식 문서에서 '주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보편성은 물론 남북관계의 특수성 마저 무시한 것이다. 흔히 대만, 이스라엘 등 남한과 비슷한 안보환경에 놓여 있는 국가들조차 '주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중국과 군사적 대결 상태에 있는 대만은, 내부적으로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문서상으로는 이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주변 국가들과 첨예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가들을 주적이라고 명시하기는커녕 평화협상의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정 국가를 '주적'이라고 표현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한 것이다. '주적'이라는 말이 보편성에 어긋난다는 것은 국어사전에도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적' 표현을 합리화하기 위해 분단 및 군사적 대치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더욱 어색하다. 남한보다 군사주의적 속성이 강한 북한조차도 공식적인 문건 어디에서도 주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 않다. '미제와 그 추종세력'에 대해 '과녁' 등의 표현을 쓰면서 사실상의 적으로 보고 있지만, '적'이라는 표현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적 표현의 고수는 대북전략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기도 하다. 세종연구소의 이종석 박사는 이와 관련해,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화해협력 및 평화를 정착하자고 하면서, 상대방을 주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화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특히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을 계속 '주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상황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소모적으로 남북관계 진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북한을 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남북관계의 비합리적인 특수성을 극복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 실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훈련 ⓒ 국방홍보원 '주적' 표현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파장은? 가장 큰 관심거리는 5월에 발간될 예정인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계속 '주적'으로 명시할 경우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이다. 4월초 특사회담에서 북한은 이미 주적론 철회를 강하게 요청한 바 있고, 이에 대해 임동원 특사 일행은 군사적 신뢰구축이 우선이라며 차후에 논의하자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양측의 입장 차이는 특사 회담에서 군사부문에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이 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국방백서에 주적이 또 명시될 경우 남북관계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 북한군사연구팀장을 맡고 있는 서주석 박사는 "북한이 주적론 철회를 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국방장관회담 등 고위급 군사회담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는 특히, 국방장관회담 등 군사문제에 있어서 진전이 없을 경우, 전력지원 등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적인 지지를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종석 박사는 "주적 문제는 북한에게 있어서 단순히 명분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북한이 해결하고 싶어하는 문제"라고 강조하면서, 국방백서에 또 주적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국방장관회담은 물론 경의선 연결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주적 표현에 대한 북한의 반발과 이에 따른 남북관계의 악화는 '연례' 행사처럼 벌어져왔다. 그러면서도 다시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북한 스스로도 군사적인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데다가, 최근의 정세는 전쟁 위기마저 거론되는 등 현 정세를 "민족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이번에도 주적 표현이 나오고 남북관계가 또 악화되면, 한반도의 위기는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에 대한 불신 및 비난이 높아지고, 북한은 북한대로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지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 사이에서도 '2003년 위기설'이 나오는 마당에 허비할 시간이 없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합리성 제고를 위해서 북한과 관련된 문제가 늘 그렇듯이 주적 문제 역시 남북관계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대선 과정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적 문제는 남한 내부의 정치적 문제라는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줄곧 주적 표현 삭제를 주장해온 <한겨레>조차 4월 5일자 사설을 통해, "북한이 색깔론이 판치는 남쪽 상황을 잘 알 터인데 소모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재를 제공하는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며, 특사 회담에서 주적론 철회를 요구한 북한을 질타한 바 있다.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시기에 북한이 신중치 못한 처사를 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볼 때, 남한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이지만 북한은 안보상으로 민감한 시기이다. 이는 남한이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는 이유로 북한의 요구를 부당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발전과 예상되는 위기 상황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남북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느끼는 안보불안은 상대방에게도 안보불안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고, 이는 상승작용을 일으켜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불안한 안보상황의 귀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지난 역사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대북강경책이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대승적인 결단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특정 국가를 주적이라고 명시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구태는 북한의 요구가 없더라도 이성과 합리성을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탈냉전 시대의 새로운 안보전략의 수립을 위해서 우리 스스로 풀어야할 숙제이다. "북한을 끌어들여서 우리 내부의 비합리성을 은폐시키고 합리적 안보 운용을 어렵게 한다"는 이종석 박사의 지적처럼, 북한과의 문제에 앞서 우리 사회의 비합리성을 바로잡는다는 관점에서 주적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재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korea.org)에서는 북한 주적론과 관련해 사이버 여론조사와 토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2002/04/29 ⓒ 2002 OhmyNews 정욱식 기자는 오마이뉴스의 통일-평화문제 담당기자이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네트워크>(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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