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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학 연구의 민족사적 의의/임헌영
친일문학 연구의 민족사적 의의 임종국의 '친일문학론' 재출간 임헌영 기자 ohmynews@ohmynews.com  임종국 씨(왼쪽)와 25년만에 재출간된 '친일문학론' '친일파 연구의 비조(鼻祖)' 고 임종국 선생(1929-89)의 대표작 '친일문학론'이 26년만에 재출간됐다. 그는 일본군 출신 대통령이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이룬 지 1년만에 나온 역저에서 이광수, 최남선 등 50여 친일 문인들과 작품에 대한 평가와 함께 일제하의 정치사회 배경과 각종 친일단체의 활동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친일문학론'은 당시만 해도 사회적 금기였던 친일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지만,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79년 가을 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1'에 실린 임종국의 글 '일제말 친일군상의 실태'를 통해 '친일파 연구의 고전'은 새롭게 조명받았다. 이후 외롭게 시작한 친일파 연구가 조금씩 힘을 얻었지만, 임종국 자신은 환갑을 맞은 1989년 가을 타계했다. 그의 유지를 받들어 91년 발족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학론'을 가로쓰기본으로 재출간했다. 오마이뉴스는 친일문학론의 재발간에 즈음, 그 의의를 설명한 민족문제연구소 부소장 임헌영 교수(중앙대 국문학과)의 소개글을 게재한다. 친일문학 연구의 민족사적 의의 1. 연구개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달 26일 현대적인 고전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을 영구보존 한정판으로 펴냈다. 친일파 일반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의 변천과정은 범박하게 말한다면 (1) 8.15이후의 친일파 청산 시도기, (2) 친일파의 친미. 친독재. 친군부 활동시기, (3) 친일파 비판과 청산의 고조기로 나눠 볼 수 있다. (1)은 1945 - 49년간 친일파 청산에 대한 국민적 정서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이다. 이때 여러 단체들의 강력한 주장 아래 <민족반역자, 부일협력자, 간상배에 대한 특별 조례법>이 과도입법의원에서 1947년 제정되었으나 미군정의 인준거부로 실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너무나 강력한 친일파 청산의 여론에 밀려 제헌국회는 1948년 <반민법>을 제정, 실시했으나 불과 1년도 못된 1949년 8월 그 종막을 내렸다. (2)는 8.15직후부터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인 청산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지속될 전망이다. 친일파가 친미파로 변신하여 이승만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비정상적인 정치체제에 이바지해온 사례에 대한 연구는 80년대 이후 활발히 전개되었다. (3)은 1980년 광주항쟁 이후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연구가 친일파 청산의 관심을 고조시켜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는데, 특히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이 그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후 민족문제연구소의 설립(1991년 창설 당시에는 반민족문제연구소였으나 1995년 개칭)으로 친일파 연구 전성기를 맞아, 문학과 관련이 있는 주요 저서만 보더라도 김삼웅.정운현 공저 <친일연구 1.2.3>(학민사 1990-93), 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친일파 99인>(돌베개 1993), 역사문제연구소 <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역사비평사 1993),반민족문제연구소 지음 <청산하지 못한 역사 1.2.3>(청년사 1994), 김삼웅 외 <친일 변절자 33인>(가람기획 1995), 민족문제연구소 지음 <친일파란 무엇인가>(아세아문화사 1997) 등 본격적인 연구로 궤도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2. 광복 직후의 불협화음  임헌영 부소장 감격과 곤혹스러움이 교차되어 여념이 없었던 1945년 8월16일부터 1년여에 걸친 격변의 시기에 문학인들의 친일파에 대한 내면풍경을 김윤식은 봉황각의 좌담회에서 그 화두를 잡는다. 1945년 12월 30일 전후 봉황각(천도교 연수관)에서 개최되었던 이 좌담회에는 김남천.이태준.한설야.이기영.김사량.이원조.한효.임화가 발언을 했는데, 임화는 "이번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지지 않고 승리를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살아갈랴고 했느냐"는 게 자기비판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면서, "일개 초부로 평생을 두메에 묻혀 끝막자는 것이, 한줄기 양심"이라면, "마음속 어느 한 귀퉁이에 강인히 숨어있는 생명욕이 승리한 일본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가?"고 되물으며 문학자의 삶과 진실의 문제를 제기한다(김윤식 <한국문학사논고>, 법문사, 3부1장, <한일문학의 관련양상>,일지사, 46-49쪽, <김윤식 전집 1>,솔, 524-530쪽). 임종국의 연구서에는 120여명이 거론되는데, 해방전후 문인이 백여 명이었던 사실로 미뤄 보면 거의 백 %에 육박한대도 할 말이 없을지 모른다. 더구나 임종국이 친일을 않았다고 언명했던 문인도 그 이후의 연구에서는 친일행각이 속속 드러나는 판이니 비판의 겸허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시기에 좌우익 문학단체가 다 '민족문학'을 거론하면서도 친일파 청산문제를 교묘하게 비켜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문학인 절대다수의 친일행각에 다름 아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좌우익이 그 치욕의 정도는 있으나 상대를 돌로 치기에는 스스로도 죄 없는 몸이 아니어서 단체의 슬로건이나 명분에서는 친일파 청산을 내세우면서도 문학이론 논쟁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초점을 비켜간 흔적이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상식으로 굳어져 더 언급할 가치도 없겠지만 8.15 직후 조선문학건설본부.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이 합친 조선문학가동맹의 강령 1항은 "일본제국주의 잔재의 소탕"인데, 이것은 문학건설본부의 강령 1항이었던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일체의 야만적이고 기만적인 문화정책의 잔재를 소탕하고 이에 침윤된 문화 반동에 대한 가차없는 투쟁을 전개한다"는 데서 한 발 물러서 있다. 좌익의 형해화 해버린 친일파 청산 의지는 이후 이광수. 최남선. 박영희 등 몇몇 속죄양으로서의 문단 주류세력에 대한 제동장치 정도로 제한적인 전략개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광수의 <꿈>과 박영희의 <문학의 이론과 실제>를 판금 조처하라고 미군정 당국에다 요구한 것은 좌익문학 단체로서 친일문학인에 대한 최소의 희생자 줄이기와 당면한 문학단체의 헤게모니 쟁탈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좌익의 명분과 구호로서의 친일문학 청산운동은 크게 두 가지 영향력으로 파급했다. 하나는 당시 어떤 문학단체도 반민법에 저촉될 수준의 문학인은 공공연하게 활동할 수 없도록 묶어두는 정화법적 효력을 발휘한 것인데, 이 결과 우익 문학 단체들(전조선문필가협회를 시발로 조선청년문학가협회 등)조차도 명망성 높았던 인사를 창립총회에서 배제시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령에서 친일문제를 아예 깡그리 배제시켜 버린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런 이념적 바탕이 분단 고착화 이후 친일문학을 옹호한 것으로 비판받을 여지를 남긴다. 다른 한편, 좌익 문학단체의 명목적인 친일문학 청산은 그 이후 오늘까지 이 문제를 미해결로 남도록 만든 요인이 되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조건에서 조선문학가동맹이 주력했으면 충분한 자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친일문학의 상당부분이 해결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친일문학 미청산의 책임은 그 경중은 있으나 8.15직후 좌우파 문학단체의 공동책임이라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3. 반성 없는 친일파 친일문학 연구의 효시이자 고전이 되어버린 임종국의 저서는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세 총독의 통치 특색과 사회적인 변모를 제시한 뒤 문화 기구론에서는 간행물과 각종 포상제도를 소개해 준다. 이어 본론인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단체활동과 개인활동으로 나눠 접근한 뒤 부록으로 관계작품 연보와 인명 해설을 싣고 있다. 친일문학 및 친일파 연구에 일생을 바친 이 저자인지라 항간에서는 그를 강경한 친일문학 배척론자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결론>에서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민족을 파는 글에 무슨 공로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냉정한 입장에서 그들의 글을 비판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이 저자는 매우 중요한 점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국가주의 문학론으로 이것은 그 동안 문학예술이 흔히 무국적의 미아처럼 오해받는 경향에 대비되는 요인이란 것이며, 둘째는 동양정신의 모색, 세째는 자유주의 서구문명의 대중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넷째는 그 친일의 속죄양 때문에 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탄압이 조금은 경감되었을 것이란 점을, 다섯째로는 서구 개인주의 문학에 대한 비판의식을 들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임종국이 친일문학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내리면서도 "인신공격의 수단화"가 되기를 막아야 한다는 진지한 연구 자세를 돋보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흔히들 임종국의 저서를 자료의 집적에 불과한 것으로 간과하기 쉬운데 대한 일침이기도 한 이 대목은 앞으로도 친일문학 연구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매년 3.1절이나 광복절이면 단편적인 화두로 올랐던 이 주제가 원로 문학인들에게는 가시방석일 수도 있었는데, 그런 시대적인 분위기를 타고 서정주와 김용제가 친일행위를 둘어싼 발언을 한 것은 바로 70년대였다. <오장(伍長) 마쓰이 송가> 등으로 그 친일행위가 자주 도마에 올랐던 서정주는 <나의 문학적 자서전>(민음사 1975) 중 <창피한 이야기>에서 "미국 태평양지구 총사령관 맥아더장군이 일본군에게 포로 되어 형편없이 끌려 다니는 영화"가 판치는 데다 "일본 중심의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것은 벌써 장차의 시베리아 총독엔 한국인을 기용한다는 소문까지가 길거리에 파다하게" 퍼진 분위기에 젖어 수치스런 친일행위와 작품, 최재서를 비롯한 일인 문학자들과의 교우록을 회고조로 쓰고있다. 그는 "그러나 이 무렵의 나를 '친일파'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의가 있다./ ....... / '이것은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하는 것을 / 어떻게 해서라도 익히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니 / 여기 적당한 말이려면 /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 같은 것이 괜찮을 듯 하다. / 이때에 일본식으로 창씨개명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 우리 다수 동포 속의 또 다수는 / 아마도 나와 의견이 같으실 듯하다."(시 <종천순일파?>)고 쓴다. 서정주의 이 고백은 8.15직후 조선청년문학가 협회의 주도자였다든가, 자진하여 이승만 대통령 전기를 집필한 사실,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웃음을 "오천년 이래 최고의 미소"란 찬사나, "한강을 넓고 깊고도 맑게 만드신 이여 /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1987.1.18)라고 노래한 점 등등으로 미뤄 볼 때 친일문학의 지향점과 분단시대 순수문학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여담이지만 서정주 사후 그에게 보낸 '민족시인' 운운하는 형용사는 민족과 시 두 가지에 대한 더할 수 없는 모독일 터이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김용제는 <고백적 친일문학론 - 大村교수에게 답하는 위장 친일문학의 진상>(<한국문학> 1978.8)에서 일본 프로문단에서의 역할, 4회에 걸친 투옥과 추방, 한국으로의 귀환, 이어 친일 행위, 8.15 이후 제1급 친일문인이라고 반민법으로 투옥 당했으나 7일만에 원인도 모르게 석방, 6.25 때는 "미군 최대의 정보기관"에 초빙되어 심리전과 흑색선전 책임자로 활약한 전말기를 털어놓았다. 이 글은 발표 당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논의의 초점은 김용제가 1938년 11월 친일 어용잡지 <동양지광>(발행인 박희도)의 주간 겸 편집장으로 근무한 것이 위장 전향. 친일이었다는 대목이었다. 자신이 밝힌 글만으로는 '위장'이란 증빙은 너무나 희박한데다 이광수의 친일행각까지도 "민족 실리 쟁취 촉진을 위한 합법적 친일"로 미화시킨 대목에서는 설득력을 잃었다는 중론이었다(김용제는 원래 大村 교수의 <시인 김용제의 궤적>, 일본 <三千里>(1977, 冬季號 게재)를 보고 위의 글을 썼다. 그 뒤 오오무라 마스오 大村益夫 교수는 김용제 연구를 총괄하여 <사랑하는 대륙이여 -- 시인 김용제 연구>,일본 大和書房, 1992,를 냄). 서정주. 김용제의 고백은 친일문학 연구사에서 진솔한 자기비판과 역사적인 관점에 입각한 진술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준 격이 된다. 이 점은 순수문인이든 프로문인으로 전향의 경력을 가진 문인이든 두루 적용된다는 입증이기도 하다. 4. 연구의 다원화와 앞으로의 과제 1979년 10월 15일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1권이 나온 것을 기점으로 친일문제에 대한 관심은 급상승하여 80년대의 친일문학 연구 열풍으로 이어졌다(이 책은 그 뒤 1989년까지 전6권이 속간되었음). 더구나 재일 사학자 강동진의 <일제의 한국 침략 정책사>(한길사 1980)의 번역 출간은 그간 감정적 차원의 친일문학을 명확한 증거를 지닌 역사적인 죄악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친일이 단순한 행위나 문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반민주. 반통일 이데올로기로 변질하여 분단시대의 미학적 주류로 남아있음을 입증한 <신친일문화론>(임헌영 <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 게재)은 친일문학 평가를 과거 지향성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바꿨다. 친일문학 연구에서 간과할 수 없는 두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문학이란 기록적인 특수성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친일'문학'은 가장 풍성한 자료와 증거가 남아있기에 상대적으로 너무 부풀려지기 쉽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사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상사적인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르트르는 프랑스 해방 직후 <협력자란 무엇인가>란 글을 썼다. 바로 독일에 협력한 사람을 어떻게 구분해야 되는가를 다룬 글이다. 그는 나치 점령 아래서 친독 협력을 했던 지식인. 정치인. 종교인들을 분석하면서 치밀하게 그들을 관찰했더라면 훨씬 먼저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친독 협력자의 정신사적인 맥락이 멀리 프랑스대혁명까지 소급하여 혁명반대의 국왕 옹호 보수주의자를 거론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하여 체질적인 반감을 가지며, 온갖 개혁과 개방과 진보를 외면하는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들이 결국은 정신사적으로 파시즘 - 외세 의존적 특권 향유 이데올로기를 신봉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가진다. 한국 근현대사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일제 침략을 전후하여 청빈하게 개혁과 국권 수호를 주장했던 지식인들은 왕으로부터도 배척 당한 채 재야에 있었으나 이후 민족운동에 투신했고, 권력의 측근에서 온갖 부정한 특권을 누렸던 세력들은 거의 친일파로 전락했음을 볼 수 있다. 친일파 문제는 이런 점에서 단순한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문제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에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과 내일의 민족적 이정표이다. 친일파, 친일문학은 단순한 반민족적인 일제 협력 행위자가 아니다. 어떤 학자는 '친일'이란 술어 대신 다른 말을 쓰자고 주장하지만 우리 근현대사에서의 '친일'이란 술어를 대신할만한 적절한 술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친일'이 단순한 행위의 차원이 아니라 민족사적인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친일파는 우선 일제의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동조한다. 친일 작품에서 천황은 그 충성의 중심축인데, 여기서의 천황은 파시즘, 침략전쟁, 수탈, 희생을 정당화하는 무오류(無誤謬)의 표상이다. 따라서 친일파는 파시즘체제를 선호하며 침략전쟁을 독려하고 수탈과 탄압과 강제징용도 합당한 행위로 미화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완결 구도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신앙에 가까운 인생관과 세계관의 문제로 비록 패전으로 일본제국주의가 붕괴했지만 그 이데올로기 자체는 영원한 재생력을 가지며, 그러기에 21세기의 가당찮은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도 탄탄하게 부활하고 있는것이다. 우리가 친일파를 청산해야 될 가장 중요한 원인도 바로 친일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사상사적인 이데올로기의 위력 때문이다. 사상사적으로 보면 친일은 전쟁범죄로 다뤘던 뉴른베르크 재판의 이념에 따라 (1) '고유의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 (2) '평화에 대한 전쟁 범죄', (3) '인도에 대한 전쟁범죄'까지 다뤄야 할 것이다. (1)은 전쟁에 참여 또는 동원된, 혹은 전쟁을 독려한 단순 범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로 친일파라면 이 점만 부각시켜 조사 연구해 왔다. 곧 전쟁에 협력한 행위 그 자체만 중시한 것이다. 그러나 (2)는 그 전쟁으로 말미암은 평화의 파괴 사상을 추궁하도록 만든다. 사실 친일문학은 전쟁 찬양시, 곧 침략 미화와 약탈의 합리화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데올로기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3)은 인도주의에 역행한 범죄로 가장 끔찍한 반문학적인 행위에 다름 아니다. 살육과 약탈과 인권 침해를 정당화한 작품이 친일문학이고 보면 반인도주의 문학이 곧 친일문학임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같은 친일 문학작품이라도 농촌에 들어가 생산 독려 이야기를 쓴 소설과, 학도병으로 자진 입대할 것을 독려하는 이야기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전자는 (1)의 단계에도 못 이르는 수준이라면 후자는 분명 (3)의 단계까지 넘나드는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일 터이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이데올로기적인 요인을 전제한 뒤 친일파 문제는 광복 후 어떻게 처신했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 즉 광복 후 (1) 민족의 이익에 상반되는 외세 의존적인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면서 그런 정파를 비호하며 분단 지지, 친일파 청산 반대, 독재정권에 협력했는가, (2) 그후 계속하여 군부독재 지지, 민주화 반대, 각종 개혁과 개방과 진보 반대로 일관했는가란 두가지 점을 대입시켜 볼 필요가 있다. 차라리 행위 그 자체의 범죄로 끝날 수 있는 범죄라면 친일파는 이제 새삼 문제 삼을 필요도 없을 것이나, 이게 사상사적인 맥랙으로 보면 두고두고 민족사의 정기를 좀 먹을 수 있기에 언젠가 한 번은 청산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를 이성적으로 청산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독일에서조차도 통일 후 나치즘이 부활하여 유럽과 세계를 긴장시키며, 특히 제3세계권 유학생들의 안전까지 우려해야될 처지임을 감안할 때 우리의 친일파 청산은 다른 어떤 과제보다 엄중히 먼저 청산되어야 할 민족사적 임무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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