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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변화 임계점 돌입했다
진보누리 (펌) 이름 : kyunghyang (2004-06-07) 제목 : 북한 변화 임계점 돌입했다 남북경협을 하는 이모씨는 최근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이씨는 국내 애니메이션 업체와 밑그림 납품 계약을 맺은 뒤 북한의 컴퓨터 그래픽 회사에 밑그림 생산을 맡겼다. 국내 업체는 북한의 밑그림 실력을 믿지 않았다. 계약을 하기 전에 시작품을 봐야 한다고 고집했다. 10년이 넘게 대북사업을 해온 이씨는 당황했다. 과거 다른 사업을 할 때 제품에 하자가 있다고 지적했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무시하는 거냐"라며 대들던 북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마음씨 좋고 순박하지만 체제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하늘 같은' 북한 사람들은 자신과 북한체제가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험악하게 변하곤 했다. 하지만 국내 업체는 시작품을 봐야 한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씨는 별수없이 중국 단둥으로 날아가 북한 회사측 관리자를 만났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말을 꺼낸 이씨는 북측 인사들이 두말없이 시작품 제작에 동의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후 이씨는 국내 업체가 네 번이나 시작품에 대해 `'불가' 판정을 내리는데도 북측이 순순히 응하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1년 전만 해도 없던 큰 변화였다. 단둥 인근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서모씨는 얼마 전 자기 공장에서 근무하는 30대 북한 여성으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었다. 그 여성은 북한에서 온 종업원들을 감시하는 정보요원이어서 놀람은 더 컸다. 몇 년 전 부인과 사별한 서씨 역시 평소 그 여성에게 호감을 갖고는 있었지만 막상 고백을 듣자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얼마 후 그 여성이 북한으로부터 호출을 받아 귀국하는 바람에 결실은 보지 못했다. 고분고분해진 남한 기업 하청업체 북한이 변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는 탈북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1996년부터 조금씩 감지됐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및 서방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가속됐지만 본질적인 것으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그러면서도 한계가 있는, 변화하는 모양새를 내면서 외화를 벌려는 전략으로 해석됐던 것이다. 북한의 변화가 임계점에 돌입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먼저 평양국제새기술정보센터(핀텍-PINTEC)를 들 수 있다. 작년 11월 평양 서재동에 설립된 핀텍은 시장경제를 연구하고 북한의 신진 경제 엘리트들을 교육하고 양성한다. 올 초엔 캐나다인 2명이 평양에 들어가 핀텍에서 북한의 초급 엘리트 간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핀텍은 주한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와도 접촉을 하고 있다. 주한EU상의의 지원을 받아 북한 엘리트들을 유럽지역에 보내 시장경제 교육을 받게 하는 사업을 추진 중인 것이다. 주한EU상의는 핀텍에 시장경제 관련 서적을 기증하기도 했다. 남북경협에 종사하는 김모씨는 "핀텍은 북한 당국이 엘리트들에게 시장경제 마인드를 습득시키기 위해 만든 기관으로 안다. 체제 특성상 북한 전역에 시장경제를 도입하기는 어려우니까 충성심 강한 일부 엘리트에게만 시장경제 지식을 가르쳐 개혁-개방 업무를 보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핀텍 근무자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은 김성 사무총장이다. 올해 41세인 김성은 작년에 사망한 김용순 전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의 아들이다. 김 전 비서가 1970년 대사로 있던 이집트에서 생활한 적도 있는 김 사무총장은 남한의 민간단체 인사나 기업인들과 자주 접촉한다. 정보당국자는 "핀텍에 있는 북한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시장경제를 성공시켜야 북한이 현재의 어려움을 딛고 번영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북한 경제의 회생 여부가 남한 및 서방과의 관계에 달렸다고 믿는 것은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은 작년 말 북한 고위 인사들에게 "남쪽 사람들을 홀대하지 마라. 장사 상대가 남쪽밖에 더 있나. 그러니 정중하게 대하라. 당신들이 남쪽 사람 속이고 홀대하니까 남쪽 사람들이 당신들을 못 믿어 결국 장사가 안 된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발언 속에는 실리 추구 의지가 강하게 배어 있다. 자존심이니 체면이니 하는 말이 없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김 위원장은 작년 12월 초 모처를 현지지도 하면서 "채산성을 맞추지 못하는 기업과 기관은 통폐합해라. 노동자에게 월급을 덜 주더라도 기관-기업을 살려라. 인원을 감축해서라도 채산성을 맞춰라"라고 지시했다. 남북경협에 종사하는 북한 인사들이 남쪽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천지개벽'하듯 변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 연구 신진 엘리트 양성 북한의 시장경제 마인드는 고위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일반인의 생활에도 녹아들고 있다. 정보당국자는 "북한에 의미있는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2년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다. 직장에서 양권 대신 월급을 주고, 장마당이나 시장에 서 돈을 내고 식량과 물건을 구입하게 되면서 주민 생활이 크게 바뀌고 있다. 물품공급이 수요를 당하지 못해 인플레현상이 심하지만 주민들이 무엇보다 돈을 벌려고 한다는 것이다. 작년 말부터 평양에 불기 시작한 아파트 투기바람이 좋은 사례다. 처음엔 돈 있는 당간부들과 보위부원들이 판매가 금지된 아파트를 몇 채씩 사 모은 뒤 값을 올려 팔더니 지금은 아예 호화아파트를 지어서 돈 많은 무역업자들과 간부들에게 팔고 있다. 돈을 받고 아파트를 소개하는 `'부동산업자' 도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북한 처녀들이 선호하는 신랑감의 직업에도 변화가 눈에 띈다. 전에는 당간부나 `'반제국주의 혁명운동가' 같은 성분 좋은 집안의 자제가 인기였지만 지금은 돈을 많이 버는 무역일꾼이 일등 신랑감이다. 평양에 우리의 재래시장 같은 잡화시장이 잇따라 들어서는 것도 북한 경제의 변화상 가운데 하나다. 전에는 이런 시장에서 한국 상품을 취급하지 않았다. 혹시 한국 상품이 들어가도 중국 상표를 붙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지금은 평양시내 시장 진열대에 놓인 상품의 30% 이상이 한국제라고 한다. 한국 상품은 인기가 좋아 같은 종류의 중국산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이다. 속옷, 화장품, 전자제품 등이 특히 인기라는 게 방북 남한 인사들의 전언이다. 경제-관광 특구 개발은 북한당국이 경제회복을 위해 시장경제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잘 보여준다. 북한은 2002년도에 한 차례 개발을 시도했다가 양빈 행정장관의 구속으로 좌절한 신의주특구개발을 최근 재시도하는 듯하다. 중국 소식통들은 북한은 곧 화교 출신 여성재미사업가인 샤르상(54)이나 중국 선전시 관리였던 사람을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으로 임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샤르상은 부산에서 태어나 동아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식당업으로 돈을 모았으며, 1995년엔 캘리포니아주 풀러턴시 시장까지 역임한 재력가다. 미 공화당 당적을 갖고 있는 샤르상이 신의주특구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김정일 위원장에게 제의했다는 말도 있다. 단둥에 거주하는 한국인 사업가 김모씨는 "이달 초부터 신의주에서 건물 철거작업이 시작됐다. 북한 당국이 본격적인 특구 개발에 들어간 것 같다. 매일 오후 1~2시쯤이면 신의주 쪽에서 (건물을 철거하는)폭파음이 들려온다"고 전했다. 지난달 김 위원장의 방중을 수행한 박봉주 내각총리는 이달 초 중국을 방문해 신의주특구 개발 문제와, 동북3성과 북한 국경지역의 연계개발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전해졌다. 박 총리의 중국 방문에는 경제분야 내각의 관리들이 다수 동행할 것이라고 한다. 7, 8월쯤 권력 세대교체 작업 완료 그런가 하면 1997년 남한 주민들의 관광이 허용된 금강산 일대는 7년이 지난 지금 `'남조선해방구'나 다름없다.초기의 갖가지 제약들은 거의 사라졌다. 관광객들은 해금강호텔이든 현대상가든 제한없이 돌아다니면서 마음대로 행동 할 수 있다. 북한은 금강산관광을 위해 장전항에 있던 동해함대사령부를 신포로 옮겼다. 마찬가지로 개성공단을 개발하면서 최전방 기갑 부대를 후방으로 옮겼다. 군을 중시하는 `'선군정치'를 내걸긴 했지만 돈벌이를 위해서는 이마저도 버리는 것이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신의주-개성공단-금강산-나선 외에도 남포, 함흥 또는 원산을 새로운 특구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한다. 특구개발을 통한 북한의 개혁-개방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말해주는 사례다. 권력층의 세대교체 움직임은 북한의 변화가 본질적인 데까지 이르고 있음을 웅변한다. 당국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몇 년 동안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같은 `'혁명1세대'들을 퇴출시키거나 약화시키고 그 자리를 40~50대 테크노크라트로 채우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김성 핀텍 사무총장이나 북한 최고 연구기관인 태영철 사회과학원장은 모두 40대다. 최근에는 남북장관회담 단장도 45세의 권호웅 내각참사로 교체했다. 군부에서도 원로군인들을 내보내고 젊은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고 있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올 7월이나 8월에 권력층 세대교체 작업을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북한전문가는 "북한의 변화는 중대한 국면에 다다른 것 같다. 북한 당국은 조만간 체제고수냐 변화계속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을 맞을 것으로 본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는 김 위원장의 마음이겠지만 2천5백만 북한 주민들은 이미 변화 쪽을 택했으며 이를 돌이키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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