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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자료실

작성자 한 빛
작성일 2011-01-07 (금) 22:37
홈페이지 http://www.hanbitkorea.com
ㆍ추천: 18  ㆍ조회: 4756      
일본! 국제사회에 대마도가 우리영토임을 공인하였다!
 
 
(논문 요약문)
 

 
일시 : 2010년 12월 7일 18:10 ~ 18:40
 
장소 : 대한민국 국회의원회관 131호
 
주최 : 대한민국 국회 대마도포럼
 
특강 발표자 : 김 상 훈 대령 (육군사관학교)
 
 

제목 :  일본! 국제사회에 대마도(對馬島)가 우리영토임을 공인(公認)하였다!
 
 
지난 11월 26일 육군사관학교에서 개최되었던 한일 군사문화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와 12월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실시된 대마도 정책포럼 특별강연에서 잇달아 발표된 김상훈(육군사관학교)대령의 논문에 의하면,
 
일본은 1854년 일본을 개항시킨 미국의 페리제독 방문이후 미국, 영국 등과 오가사와라제도 영토분쟁이 있었으며, 1861년 2월과 1862년 4월 일본은 미국의 해리스(Harris)대사, 영국의 알코크(Alcock)대사 등 당시 열강의 대사들에게 제시한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 판’을 통하여 대마도가 우리영토임을 국제적으로 공인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1876년부터 오가사와라 제도를 영유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논문에는 당시 국제 영토 협상지도인 삼국접양지도를 아래와 같이 수록하고 실물도 곧 대중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국제법상 공인지도인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 1832년 Klaproth제작>
 
 

 
또, 대마도가 우리영토로 기록된 삼국접양지도를 일본의 119대 光格天皇도 직접 열람하고 칭찬한 바 있으며 한일 합방의 주역인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 사학과교수로 재직하면서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규장각에 보관된 조선왕실 규장각의 비밀문서를 조사한 당시 조선사 편찬주임 일본인 다보하시 기요시(田保橋潔)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대마도가 우리영토인 것을 잘 알고 있던 일본 지식인들이 일제 강점기와 해방이후 어떻게 대마도관련 역사를 왜곡하고 은폐해 왔는지 그 연구결과도 추가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1924년 발간된 일본천황열람 ‘삼국통람도설’과 후기의 미.일 영토협상기록 > 


“삼국접양지도를 작성한 일본인 임자평을 막부말엽 일본제국의 대외 관계 수립 대 은인으로 칭송. 1853년 미국이 오가사와라(소립원)를 발견하고 이를 미국 식민지화 하였으며 이 때문에 당시 막부정권이 곤경에 처했을 때 임자평이 출판한 삼국통람도설을 독일인(클라프로토;Klaproth)이 번역, 출판하였다는 것을 듣고 이를 구해서 증거물로 제출함으로써, 미국대사가 이를 인정하여 오가사와라를 일본에 영구 귀속 확정토록 하였음. 모든 일본인은 임자평 선생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고 삼국통람도설이 광격천황께 바쳐져서 원본을 친히 열람하였다는 조선총독부 도서관 직인 문서.” 
 
 


아울러 논문에서,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고자 증거자료를 없애고 독도는 우리영토로 되어 있으나 대마도는 일본영토로 표기된 자료를 19세기부터 지금까지 다량 배포(Google : 삼국접양지도 , 이미지 클릭하면 확인가능)함으로써 우리를 기만해왔고 그 대표적인 예가 다음과 같은 자료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있다. 

 
 
 

<독도를 우리영토로 기록하고 있다고 언론에 공개한 삼국접양지도 일어(좌),
  불어(우) 세종대 호사카 유지교수 제시>
 

 
 
 
<독도를 우리영토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으로 가수 김장훈 구입 기증, 2008.9.22> 
 
 

 
김 대령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거나 박물관에 소장된 일본어판 삼국접양지도들, 심지어는 일본 극우단체가 제시한 프랑스어 판 삼국접양지도 조차도 모조품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그 이유와 근거를 당시의 자료를 이용하여 논문에서 설명하고있다.
 




 

<일본 극우단체(日韓 近代史會)에서 제시하고 있는 모조 프랑스어판 삼국접양지도> 
 
 
논문에는 또한, 삼국접양지도와 함께 수록된 조선팔도지도 원본을 일본 동북대에서 찾아내어 공개하고 있는데, 이 지도에도 분명히 대마도가 우리영토로 다음과 같이 표기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日本 東北大에서 발견한 ‘조선팔도지도’ 원본에 표기된

  우리영토 대마도, 우하단 임자평 서명>
 
 
 
시중이나 기존 박물관 등에 전시된 아래의 조선팔도지도들은 모조품이거나 필사본인 것을 확인해 주고 그 이유도 밝히고 있다.
 
 
 
<美 하와이대(좌)와 日 와세다대(우)의 ‘조선팔도지도’에 일본령 표기된 대마도, 

  우하단 임자평 서명> 
 
 

논문 연구는 미국정부가 미 의회 지시로 미.일 조약체결(1858년)에 따라 페리제독의 정찰결과를 토대로 일본의 지도를 작성하도록 지시한 미 국가기록문서소(NARA ;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당시기록과, 1862년 미.일 영토협상 후 미국에서 작성된 1864~68년 일본 지도의 대마도 우리영토 표기, 당시의 영국지도에도 대마도를 우리의 영토로 표기하고 ‘대마도는 일본영토에서 제외된다’고 지도에 직접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의 사실여부를 확인 하기위한 역사적인 배경과 관련 자료들을 추적하면서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美 국가기록 문서소(NARA)에 있는 미.일간

  조약체결에 따른 일본지도 작성 기록 > 
 

 

<1865년 美.日 영토협상 후 제작된 미국의 일본지도,

  대마도와 그 남단의 2개 섬을 우리영토로 표기>


 

또, 논문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요구는 선조들의 대마도 관련인식과 우리 영토관련 국제선언의 바탕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본 연구와 같은 국제공인 자료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었음을 1952년의 ‘대통령선언서’ 3항에서 찾아내고 이는 국제법적으로도 현재도 유효하고 타당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한.일간의 해상 국경선은 일본지명사전에도 ‘고래로부터 일본과 한국,대륙을 연결하는 통로’로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현해탄(玄海灘), 일본은 현계탄(겐카이 나다 ; 玄界灘 = ‘검은 경계의 바다’의미)으로 부르고 있는 곳, 즉, 대마도 남단 한참아래인 이끼섬과 일본 본토사이이며 현 해상국경(대한해협)은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에 의해 부산과 대마도 사이로 고착되고 있어 이의 정확한 위치를 이제 바로 잡아야 함을 밝히고 있다.


 
 
<GEN KAI NADA; 현계탄의 위치를 대마도아래 이끼섬 남단으로 표기한 1855년의 미국지도>
 
 
 
그리고, ‘대마도에는 왜구들이 많았고 왜구는 일본인이다.'’한국인들 스스로 대마도의 한국령을 부정하는 문서가 많다‘라고 하는 일본의 주장에 대하여, 왜구는 주로 고려~조선 시대인 12,3세기부터 15세기에 주로 있었고 세종정벌 이후 조선에 정상적인 조공과 무역이 성행하여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는 현 한.일 양국학자들의 의견이 지배적이며, 대마도를 한국인 스스로 한국령이 아니라고 부정한 문서가 많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학자 이찬선생이 기증한 ‘우리 옛 지도 모음집’을 확인하면 쉽게 해결되는 것으로 여기에는 오랜 과거도 아닌 18~19~20세기 선조들의 지도를 거의 총 망라하고 있는데 이곳에 있는 우리나라 전체지도와 경상도지방, 부산 지도 거의 모두에서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로 표기되고 있고 대한제국시절의 자료에도 대마도를 우리영토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 있음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대마도를 한국영토라고 주장해도 일본인들은 무관심할 것이라는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일제 강점기 지명사전에도 ‘일본국방의 최 일선’이라고 대마도를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임진왜란시 대륙으로 진출하려던가, 대륙으로부터의 침공을 막던가, 실제로 러.일전쟁의 결정적 전투가 바로 쓰시마 해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대마도의 중요성은 일본인들, 특히 지식인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보는 것이 그 이유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1930년) 백과사전인 日本地理大係에 國防第一線으로 설명하고 있는 대마도> 
 
 


아울러, ‘대마도는 1868년 일본에 귀속된 일본영토’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한 .일 양국 공히 도서지역에 대해서는 영토 수호개념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서구열강의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결과로, 미국의 페리함대가 일본을 향하던 1853년 조선은 대원군의 쇄국정책, 일본은 에도막부의 쇄국정책이 만연하였던 시기였고 일본도 19세기 중반 페리제독의 일본 강제개항을 계기로 식민지 정책을 구사한 서양제국과 영토협상 하면서 비로소 자국의 도서를 확인하고 이를 수호하려는 개념이 체계화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19세기 중반인 1861년 이후 일본은 삼국접양지도를 통하여 서양 제 외국에 대마도가 우리의 고유영토임을 공인해 주고도 그 후 7년 뒤 명치유신(1868년)과 더불어 제외국의 동의 없이 임의로 약취해갔다는 것이다.
 
 
 
국제법상의 영토취득 권원에는 선점(Occupation), 공인(Recognition), 시효(Prescription), 실효적 지배 등이 있는데 19세기까지 한.일 양국공히 선점(Occupation)에 대한 증거는 모두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1868년 이후 일본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의 실효적지배 6년 전인 1862년 일본 스스로 제 외국에 우리영토임을 공인(Recognition)하고 지도로 표기된 것은 국제법에 따르면 우리 영토로 확실히 '공인'된 것으로, 일단 국제적으로 한번 ‘공인’되면 後에 이 영토를 다른 국가가 귀속하는 것은 불법(禁反言의 Estoppel)이라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이것이 만약 허락된다면 국제사회에서 영토와 관련, 약육강식의 영토분쟁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1870년대 일본이 불법적으로 삼킨 우리영토를 반환해야한다'는 주장은 국제법적으로도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세사 국제조약(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해 대마도가 일본령으로 확정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 조약에서 대마도가 국제조약에 일본령으로 인정되었지만 여기서 오가사와라는 일본령에 누락되고 미국령이 되었는 바, 미국이 1862년의 국제 합의(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를 존중, 지금부터 42년전인 1968년 오가사와라를 일본에 반환하였으니, 일본도 동 조약에서 우리영토로부터 누락된 대마도를 1862년 합의(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를 존중, 조기에 반환하는 것이 국제조약과 국제적 신의에 입각해서도 타당하다는 것이다.
 
 
즉, 일본은 ’내 땅은 내 땅이고 남의 땅도 내 땅‘이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일본이 현재 독도를 자기영토라고 주장하고 분쟁화 하려는 의도는 대마도의 진실을 숨기기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것일 수 있으며 독도가 한.일간 분쟁화 되고 있는 한 영토문제가 대마도로 옮겨가지 않을 것임을 일본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름아이콘 한빛
2011-01-08 00:03
2010. 6. 25

아름다운교육신문

대마도 우리땅 결정적 사료 나와-국제사회 인정한 지도 원본 공개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7/board.php?board=free&command=body&no=263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7/board.php?board=free&search=대마도&shwhere=subject&command=body&no=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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