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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자료실

작성자 한 빛
작성일 2006-01-18 (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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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의 보수와 진보"에 대한 재론



"한국정치의 보수와 진보" 에 대한 재론

정병기/최형익

제1회 한국정치연구소 포럼(2003년 7월) 평가보고서

김세균 편. 2005.
『한국정치의 보수와 진보』.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167-196.



1. 들어가며


노무현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개혁세력의 약진이 이루어지는 등 한국의 정치지형은 커다란 변모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와 진보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시대적 과제로 부상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는 ‘한국정치의 보수와 진보’라는 주제로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 진보정치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변화된 상황 속에서 보수정치가 자신을 어떻게 재정립시켜 나가야 하는가 등을 심도 있게 토론하는 포럼을 개최하였다(2003년 7월 초).



포럼은 진보와 보수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논의를 필두로, 정치, 경제, 남북  대외관계로 나누어 이루어졌으며, 최종적으로 한국 정치의 방향과 관련하여 바람직한 보수와 진보의 장래에 대한 검토가 있었다.



제1주제는 “한국정치에서 무엇이 보수이고, 진보인가”였으며,

제2주제는 “정치개혁과 정계개편”이었다.

그리고 제3주제와 제4주제는 각각 “경제개혁과 노사관계”, “한미관계와 남북한관계”였다.

마지막 종합토론은 “한국정치의 방향”이라는 제목 하에 진행되었다.



발제와 토론은 각 주제별로 당해분야에 종사하는 정치가, 재계인사 및 학자들로서 진보와 보수를 대변할 수 있는 발제자가 각각 2명씩 배정되었고 그에 대해 지정토론자들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발제와 지정토론이 끝난 후에는 기타 참가자들의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이 포럼은 새로운 정치가 시험대 위에 올라 있고, 바야흐로 새로운 진보와 보수가 회자되고 또 필요한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평가된다. 또한 광범위한 주제임에도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는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고서는 각 발제와 토론이 진행된 순서에 따라 주제별로 작성되었으며, 결론은 보고서 작성자들의 입장에서 종합토론을 정리하고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 한국정치에서 무엇이 보수이고, 진보인가?


제1주제의 논의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어떻게 볼 것이며, 또 실제 어떠했는가에 대한 것으로서, 이 포럼의 서론격에 해당한다. 발제는 연세대 김호기 교수와 외국어대 김용민 교수가 맡았다.

김호기 교수는 중도주의의 형성 강화와 1990년대 시민사회에서의 진보주의 성장을 한국 사회 이념구도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으면서 공론장의 역할과 정치사회의 성숙을 통한 생산적 이념논쟁을 제안했다.

김용민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보수와 온건한 진보가 양 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두 축이 수렴하는 지점으로 자유주의를 강조했다.


두 발제자의 중도주의에 대한 공통적인 (직간접적인) 강조가 눈에 띄었으나, 중도주의에 대한 내용은 각기 달랐다. 세계주의적 진보와 중도를 포괄하려는 김호기 교수가 중도주의 특히 세계주의적 중도주의의 내용을 ‘제3의 길’로 본 반면, 김용민 교수는 자유주의를 보수와 진보가 수렴해야 하는 발전적인 중도로 보았다.


첫 번째 발제자인 김호기 교수는 “이념 구도와 이념 논쟁의 사회학”이라는 준비된 논문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김호기 교수는 이념을 “한 개인 내지 집단의 사고와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인식론적 문제틀”로 규정하고, 학문적 이념과 정치적 이념을 구분하여 전자의 관점을 놓치지 않는 가운데 후자에 초점을 두고 발제를 하였다.



정치적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진보주의는 좌파로서 변화를 중시하고, 보수주의는 우파로서 안정을 중시한다고 한다. 그러나 김호기 교수는 변화와 안정도 역사적 시점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서구사회에서 진보주의 혹은 좌파와 보수주의 혹은 우파라는 이분법이 오랫동안 관철되어 왔는데, 김호기 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입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좌파는 “마르크스주의에 직간접적으로 근거해 ‘자본주의 밖의 사회주의’(혁명)을 모색해온 반면에, 우파는 자본주의를 좌파보다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안정의 기조 위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등식은 오늘날에는 환경, 여성, 평화 등과 관련된 ‘삶의 정치’의 부상과, 세계화 및 정보사회의 도래로 인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고 김호기 교수는 주장했다.


그에 따라 서구사회의 이념구도도 좌-우축과 민족주의-세계주의 축으로 교차되는 네 가지 범주로 구분된다고 한다.


곧 <그림 1>과 같이

국가사회주의와 구사민주의와 같은 민족주의적 좌파,

구보수주의를 말하는 민족주의적 우파,

제3의 길과 같은 세계주의적 좌파,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세계주의적 우파의 정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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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서구사회의 이념구도


                        좌  파                                                    우  파

1) 민족주의   :   민족주의적 좌파                                  민족주의적 우파
                      (국가사회주의, 구사회민주주의)                (구보수주의)

2) 세계주의   :  세계주의적 좌파                                  세계주의적 우파
                      (제3의 길)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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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늘날 한국사회의 이념구도와 관련하여 김호기 교수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시각에서 바라보지만, 서구와 다른 특수성을 결합하여 <그림 2>와 같이 중도주의를 하나의 독립된 범주로 설정하였다. 중도주의는 1980년대 중반 민주적 개방 이후 서구의 제3의 길이 소개되면서 부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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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한국사회의 이념구도


                              진보주의                    중도주의                       보수주의

1) 민족주의   :   민족주의적 진보주의        민족주의적 중도주의       민족주의적 보수주의
                      (민족해방주의)                 (좌우합작론)                 (발전국가론)

2) 세계주의   :   세계주의적 진보주의         세계주의적 중도주의       세계주의적 보수주의
                       (세계적 좌파)                   (제3의 길)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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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교수의 구분을 좀더 상세히 보면,

“진보주의는 민족주의적 진보주의와 세계주의적 진보주의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민족주의적 진보주의가 민족해방주의로 대표된다면 세계주의적 진보주의는 이른바 ‘세계적 좌파’로 대변된다.


중도주의는 민족주의적 중도주의와 세계주의적 중도주의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민족주의적 중도주의가 해방직후 좌우합작노선으로 대표된다면, 세계주의적 중도주의는 한국식 제3의 길로 대변된다.


한편, 보수주의 역시 민족주의적 보수주의와 세계주의적 보수주의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민족주의적 보수주의가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발전국가론으로 대표된다면, 세계주의적 보수주의는 최근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으로 대변된다.”


김호기 교수는 또한 이를 다시 보수, 중도, 진보라는 구분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수성과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선 한국사회에서는 남북한 분단체제의 성립과 한국전쟁의 체험으로 인해 보수주의가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은 존재하나 이들은 수구나 반동과 동일시될 뿐, 보수주의 이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롭다고 김호기 교수는 지적하였다.

그리고 중도주의는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데, 김대중 정부의 경우는 세계주의적 중도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중도주의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전략을 절충하는 수준에 머물러 사회적 프로그램이 빈약할 뿐 아니라 정치세력도 여전히 취약하다고 한다.


한편 진보주의의 역사는 매우 드라마틱한데, 1980년대 중반에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가 1990년대는 열기가 식었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1990년대 진보주의의 영향력은 1980년대와 비교할 때, 지식사회 안에서는 약화되었으나 민주노총과 환경운동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민사회에서는 오히려 증가하였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이러한 보수와 진보의 변화를 짚어보면서 김호기 교수는 생산적인 이념논쟁을 위한 제안을 했다. 그가 보기에 한국 사회에서의 이념논쟁은 지금까지 소모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과잉정치적 성격으로 인해 지식인들의 소극성이 초래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김호기 교수는 언론의 객관적 태도를 요구하며 공론장의 역할을 강조하는 한편, 상대방의 이념과 입장을 존중하며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정치사회의 변화를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외국어대 김용민 교수의 관심도 발제제목과 같이 “한국 정치에 있어서 보수와 진보: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인가?”라는 물음이었다.

김용민 교수의 문제 인식은 한국의 정치지형이 지극히 보수적이라는 판단 아래 진보세력은 과연 무엇을 추구하며 또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김용민 교수는 조현연의 관점을 빌려 한국의 진보세력은 진보정당의 활성화를 통해 노동자와 민중에게 역사적 헤게모니를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곧, “진보진영의 실천에 있어서 선결과제이자 핵심적인 관건은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의 사회적 정치적 주체 형성과 함께, 무엇보다 민주변혁을 지향하는 진보적 민중운동세력이 자유주의 세력에게 ‘탈취’당한 민주화 투쟁의 역사적 헤게모니와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용민 교수가 보기에 지극히 보수적인 정치지형에서 이룩된 한국의 민주화는 기형적이며, 그 기반이 대단히 취약하다. 결국 바람직한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라는 두 다리에 의지하여 우뚝 서야 한다는 것이 김용민 교수의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수독점의 정치구조가 와해되어야 하며, 동시에 진보적 정치의 장이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보수세력 내부에서의 혁신을 기대하기 힘든 상태여서 현상유지라는 굴레를 깨기 위해서는 진보세력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것이 요구된다고 했다.



다른 한편, 김용민 교수는 자유주의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한다.

그는 보수-진보 논쟁에서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상의 중간에 위치하는 자유주의 세력이 양측의 공격에 노출되어 흔히 간과되기 쉽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또한 최근의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본질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를 오히려 왜곡 내지 협애화시키는 반면, 자유주의는 오히려 민주화 이전의 한국 진보주의의 이념이었으며,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서는 자유주의 이념의 실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수세력은 자신들이 지닌 냉전반공주의에 따라 자유주의 세력을 진보세력으로 여기며, 진보세력은 마르크스의 논리에 따라 자유주의 세력을 보수세력으로 몰아 부친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 자유주의자는 나름대로의 차별성을 유지해 왔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 평등, 인권을 불가침의 권리로 보고 그것을 존중하는 이념이다. 세계화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담론은 자유주의 담론의 일종인데, 시장지상주의를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담론이 자유주의의 본질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것은 자유주의를 왜곡시키고 협애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화 이전의 한국사회가 추구했던 것은 자유주의와 결합된 민주주의였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는 보수 독재세력에 맞선 당시의 진보세력이 추구했던 이념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자유주의 이념이 실질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데 놓여 있다.”



결론적으로 김용민 교수는 “반공주의에 기초한 보수주의는 비판적 성찰을 거쳐 합리적 보수주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보수주의에 대한 비판을 덧붙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의 두 다리를 버팀목으로 발전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친화력이 있고, 자유주의와 진보주의가 친화력이 있다면,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양립할 수 있다.

진보정치의 가능성이 열린 노무현 정부 하에서, 진보세력이 너무나 급진적인 정책을 추구하면, 보수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의 강한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 진보세력은 유선 자유주의 세력을 껴안을 수 있는 노선 개발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보수세력도 새로운 정치지형에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극우 편향의 감정적 태도를 버리고 자유주의 쪽으로 그 이념의 중심을 옮겨가야 하며, 자유주의와의 연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세 세력이 이성의 정치의 장에 참여하고, 공론의 활성화를 통해 공적 이성을 산출해 나간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두 다리에 의지하면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두 발제에 대한 토론은 다양하면서도 동의가 가능한 형태로 전개 되었다.

먼저 유홍림 교수는 생산적인 이념논쟁을 위해서는 이념적인 분류와 도식화보다는 레토릭의 구도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고 했다. 한국에서 다양한 정치세력들은 편의적으로 여러 이념의 조각들을 조합하여 자신들의 정당화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 지적이었다. 또한 구체적으로 그러한 논의는 먼저 이슈와 아젠다별 논의의 활성화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유교수는 절충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절충이란 오히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지혜의 형태로서 문제 해결에 매우 유용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보수-진보의 논쟁보다 실제 국민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김홍우 교수의 지적도 이러한 범주에서의 언급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송호근 교수는 이념이 파편화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부분적으로 동의하나,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은 확대된 우파 안에서의 영역 투쟁 즉, 영역을 확대하려는 갈등이라고 보았다.

이념의 파편화 문제도 보수층은 변화하지 않고 있는데, 중도파가 진보 쪽으로 투항 혹은 개종함으로써 보수-중도-진보라는 분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송 교수에 따르면,  문제는 중간 단계를 걸러 줄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의 구축을 위해서는 정당의 적극적인 활동이 요구된다고 한다.



끝으로 한나라당 함승희 의원은 보수는 우리 헌법이 기본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 시장경제질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등 이런 것들을 지키기 위한 보수여야 한다고 하며, 이러한 새로운 보수주의를 정치세력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 줄 것을 주문했다.



제1주제에 대한 발제와 토론은 한국사회의 보수독점적 과거를 청산하고 합리적 보수가 성립되어야 할 것이며, 활성화된 공론의 장에서 보수와 진보가 상호 인정하는 가운데 합리적 비판을 통해 정치와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데 합의가 이루어진 듯 하다.

반면 중도와 진보의 내용과 전망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한 가운데, 첫 발제자인 김호기 교수가 지적한대로 조심스러워 하는 접근태도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인상이었다.





3. 정치개혁과 정계개편


포럼의 두 번째 주제인 ‘정치개혁과 정계개편’에 관한 토론은 현실 정치에 역점을 두어 현역 의원인 민주당 신기남 의원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민주당 신기남 의원은 신당창당의 흐름을 대표하여 “한국 정치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국민참여신당의 방향”에 대해 발제를 하였으며,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주제 제목과 동일한 제목으로 정계개편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며 자신의 정치개혁 입장을 밝혔다. 두 의원 모두 현 시기의 위기감에 인식을 함께 하며, 정치개혁의 중심을 정당개혁에 두었다. 그러나 정당개혁의 구체적인 방식과 지향점은 매우 상이했다.


신의원은 우선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짚는 것으로 서두를 꺼냈다. 그가 짚은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지역주의 정치, 정파와 조직 중심의 폐쇄정치, ‘동원형, 투쟁형’으로 유지되는 극한의 대결정치, 고비용과 불투명 재정의 정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신의원은 현 시기를 “정치체제의 과도기이자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행히 2002년 대선을 거치면서는 낡은 지역주의 정치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국민참여정치를 정착시킬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낡은 것을 대체할 새로운 리더십이 확고하게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 때문에 현 상황은 새로운 정치시대로 가는 ‘과도기’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신의원은 정치개혁의 필연성을 도출한다. 정치체제가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국민적 불신임과 거부에 의해 피동적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종국에는 폭력적 정치변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라는 위기의식이다. 따라서 “사회변화에 조응하지 못하고 국민적 신뢰도를 상실한 구사회주도세력을 대체해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개혁세력이 지식기반사회와 참여민주주의라는 사회변화를 선도하고 ‘생산적?미래지향적 정치’를 정착시켜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을 이끌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신의원은 이러한 정치개혁의 핵심을 권력구조 개편이나 선거법 개정보다 정당개혁에 두었다. 그가 주장한 정당개혁의 최대 원칙은 국민참여를 통한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이었는데, 기존 정당의 내부개혁을 통해서는 더 이상 정당개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에 따라 정당개혁의 방향은 당연히 국민참여신당의 창당으로 귀결되었다.



그가 주장한 국민참여신당의 성격과 지향점은 지식기반사회와 참여민주주의를 선도하고 구현할 신주류가 주도하는 정당, 실질적 민주주의, 빈부격차?환경파괴?복지?사회적 차별 등 국민생활의 문제를 중심과제로 상정하는 생활정치이다.


그에 따른 국민참여신당의 주요 정치개혁 과제는 ① 국민참여 정치를 위한 당내 의사결정과정의 개방, ② 국민통합 정치를 위한 선거구제 개혁,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장치 마련 및 지역간 균형 관철, ③ 깨끗한 정치를 위한 정치자금과 정당재정운영의 투명화, ④ 투명한 정치경쟁의 정치를 위한 중앙당 슬림화와 정책정당화, 국회 내 각종 회의의 생중계 추진, 면책특권 제한, 생활현장의 여론 수렴 강화, ⑤ 자기개혁의 정치를 위한 정당옴부즈맨 제도 도입, 주민소환제 도입, 공직자 재산형성의 소명 및 공개 의무화 등이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의 문제의식은 현 정권 등장 이후 정치개혁이라는 화두가 처음에는 미국식 원내정당화로 가는 듯하다가 기성정치인들의 거센 저항으로 각 당이 공히 자리 나누어먹기 식의 미완의 개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홍의원은 김영삼 정권 시절부터의 정치개혁을 훑어보면서 정당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영삼 정권의 개혁은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성역 허물기, 권력형 부패 척결 등 정치부패에 관한 과감한 개혁을 시도했으나, 선개혁 후제도개혁이라는 기본적인 틀 속에서 이른바 이성적 개혁이라기보다 감성적 개혁으로 치달으면서 깜짝쇼에 그쳤다고 보았다.


김대중 정권은 IMF 극복이라는 목전의 과제로 인해 경제개혁에 중점을 두어 정치개혁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홍의원은 두 정권의 정치개혁에서 정당정치의 병폐인 보스중심의 정당정치 개혁이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음에 유의했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정당개혁이 양 김의 마지노선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반면 현 시기는 바야흐로 정당개혁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할 시기라고 했다. 정당개혁에 대한 강조는 신기남 의원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정당개혁의 구체적 방향과 내용에서 홍의원은 매우 상이한 의견을 개진했다. 홍의원이 주장하는 정당개혁의 핵심적 내용은 지구당 제도와 중앙당 조직의 폐지, 공천제도의 개혁, 비례대표제의 개선이었다. 지구당조직은 임시조직으로서 선거를 앞둔 3개월 전부터 활동하는 선거준비조직으로 개편되어야 하며, 중앙당조직은 원내정당화를 목표로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식 예비선거 제도를 도입하고, 공천제도는 기득권이 배제되는 형태로 개선되어 비례대표 후보명부도 예비선거를 거친 후보들을 공천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마지막으로 정계개편에 관해 홍의원은 “늘 정권을 잡은 측에서 소수당의 한계를 권력의 힘으로 풀어보려고 한다거나 과반수 정당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비민주적 발상”으로 일축하고, 각 정파가 선거 때 이념과 정책의 대결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민주당의 신당창당 움직임이 정계개편과 연결되지 않아야 한다는 간접적인 언질인 듯하다.




정치개혁과 정계개편에 관한 두 발제는 내용에 있어서는 천양지차였지만, 정치개혁과 그 중점으로서의 시급한 정당개혁이라는 대의에는 뜻을 같이 했다. 발제 후의 토론도 그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이견과 주문이 오가는 가운데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의 대의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발제가 양 당 대표자들에 의해 이루어져서 정치권 내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과 달리 토론에서는 더욱 다양한 보충과 주문 및 개혁방향에 대한 문제점 지적이 있었다.



첫 토론은 한나라당 김부겸 의원이 시작했다. 김의원은 보수와 진보라는 틀은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틀로 적합하지 않다고 단정지었다.

그는 과거의 민중과 엘리트의 이분성, 계급투쟁, 이념성을 강조했던 것이 낡은 정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곧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권력집중정당, 엘리트중심주의, 지역정당을 자신들의 강한 기반으로 하는 것이 낡은 정치라면, 새로운 아젠다로 떠오른 환경, 삶의 질, 시민사회에 대한 적절한 분배와 그것의 존재 이유를 인정하는 태도가 새로운 정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는 정치세력은 새 정치의 내용을 담을 정당을 통해 권력 분점, 국민 참여, 탈권위주의 등을 실천하여 지역주의와 전근대적인 정당구조를 해체하고 재편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정계개편은 그러한 정치개혁을 위한 전략적 수단이나 결과물이지, 정계개편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고 했다. 김의원의 토론은 보수와 진보라는 틀을 거부했으나, 제1주제에서 정리된 것처럼 보수와 진보의 개념 확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곧 그의 문제의식은 새로운 진보의 개념을 담을 수 있는 틀을 요구한 듯 하다.



민주당의 정범구 의원은 우리사회의 개혁논의는 총론만 무성할 뿐, 각론이 없다는 지적과 함께 토론을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김영삼 정권의 개혁이 원맨쇼 개혁이었고, 김대중 정권의 개혁은 포위된 개혁이었다면, 현 정권의 개혁은 코드중심의 개혁이다. 따라서 현 정권의 개혁은 각론에서 일정하게 성공할 수 있는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코드 중심의 개혁도 아젠다 설정에서 자의적이고 절차가 폐쇄적이라고 정의원은 덧붙였다. 논의가 기존 제도권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에 맞추어져 있는데, 개혁의 차원을 한국 정치 전반의 개혁과제로 높여 폭넓은 개혁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정의원은 또한 정치개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신당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를 실현하고 국민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기존의 법제도 개선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다른 한 입장에서 지정토론을 한 서울대 박찬욱 교수는 신의원이 발제한 내용 중에서 신당 창당의 당위성과 관련된 주장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새천년민주당을 만들 때 제기된 내용이 반복되어 나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의 수준을 더욱 높이고 고민을 심화시켜 이념과 정책에 대해서도 정리된 입장과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활 정치의 강조나, 낡은 정치와 새로운 정치의 구분 등이 중요해진 시대이기는 하지만, 사회 내에는 소외된 사람과 많이 가진 자, 적게 가진 자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경제적 정책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교수는 경직된 계급 정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계층을 염두에 두고 신당을 논의하는 것인지에 대한 더욱 심화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신당 창당에 있어 국민들이 첨예하게 느끼는 이슈가 존재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하며, 그에 대한 고려를 잊지 말 것을 당부하며, 지도자의 흡인력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2주제에 대한 발제와 토론은 발제자가 양대 정당의 대표자들로 한정됨으로써, 보수와 진보의 논의가 보수 진영 내에서 이루어진 듯한 느낌이다.


제1주제에서의 개념정의와 정치세력구분에 따른다면, 한국 사회의 진보는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이라 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수구로 불리든 보수로 불리든 분명 보수주의 진영에 속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에 따라 토론 또한 발제의 한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4. 경제개혁과 노사관계


세 번째 토론주제는 한국사회내에서 노사관계를 포함한 경제정책 전반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간의 입장 차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첫 번째 발제자인 정진영 교수는 ‘보수, 진보와 한국의 경제개혁’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정교수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경제정책노선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사이의 갈등은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 전제했다.

그 이유는 “정치적 경쟁이 인물이나 지역이 아니라 정책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고, 보수와 진보의 경쟁구도 속에서 정치적 합리성과 사회적 균형이 증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효과는 이념적?정치적 갈등이 정치적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절히 조정될 때에나 기대할 수 있다. 모두가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고자 하면서 남의 이익을 무시하고, 게임의 규칙을 준수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갈등은 혼란을 불러오고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충고와 주문도 잊지 않았다.



정교수는 현재 진보와 보수사이의 경제정책노선을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진 구조적 조건을 일별한다. 한국사회는 지난 10여년 간, 한국경제를 성장시킨 국가주도의 발전전략에 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세계화와 민주화라는 경제외적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적절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7-98년의 외환/금융위기는 한국으로 하여금 IMF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외적으로 강제된 구조조정의 과정을 거치게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경제의 관리방식이 상당히 바뀐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향의 변화는 여전히 불충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경제위기의 원인과 대응방법을 둘러싼 계급적?이념적 갈등이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요컨대, 현재의 경제정책노선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간의 갈등은 금융위기가 일단 소진되고 한국경제가 다소 정상화된 조건에서, 이후 경제발전전략을 어떻게 수립해 나갈 것이냐의 문제를 놓고 전개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교수는 크게 세 가지의 기준과 그것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대략적 입장 차이를 통해 경제개혁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했다.


첫째는 시장 자율 대 국가개입 기준이고,

둘째는 효율성 대 형평성 기준이며,

셋째는 세계화 대 반세계화 대립이었다.


이러한 기준에 대해 진보 측은 현재 국가개입-분배형평성-반세계화로,

이에 반해 보수진영은 시장 자율-효율성-세계화 지지라는  측면에서

다소 입장의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정교수의 글에서 흥미있는 대목은 국가와 시장의 다이내믹스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입장차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성장은 주로 권위주의적 국가에 의해 주도되는 시장중심적 발전연합에 의해서 견인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화, 특히 상대적으로 전후 가장 진보적이라고 평가받은 노무현 정권의 등장과  IMF 경제위기 이후, 국가와 시장은 다소의 불화와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



“국가주도적 경제개발 과정에서 한국의 보수주의는 국가개입을 선호하였다. 시장의 효율성보다 국가의 강력한 개입이 경제발전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민주화가 이룩된 이후 한국 보수주의의 시장과 국가에 대한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경제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진보진영은 시장의 불완전성과 폐해를 강조하고 있다. 시장기구의 작동이 부익부 빈익빈의 결과를 초래하고, 우리가 수호해야할 많은 가치들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보수와 진보 사이의 입장차이는 시장자율 대 국가개입과 관련된 주요 지표들에 대한 태도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즉, 오늘날 한국의 보수세력은 ‘경제는 시장의 자율에 맡겨라’, ‘사유재산권을 철저히 보호하라’, ‘정부규제를 철폐하라’, ‘국공영 기업들을 민영화하라’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는 반면에, 진보세력들은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유재산권을 규제하고 사회적 목적을 위한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며, 민영화를 중단하라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다.”



시장중심적 경제개혁은 한국뿐만 아니라 여타 나라들에서도 보수세력의 핵심적 경제정책으로 채택되어왔기 때문에 논란거리가 별로 없지만, 국가에 대한 태도는 이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정치학적으로 볼 때, 국가문제는 여전히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논쟁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이후 토론과정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지만, 이규황 전경련 전무와 조동근 교수는 보수 측의 입장을 대변하여, 경제정책의 운용을 가능한 한 국가의 규제없이 시장의 자율성에 맡기되, 시장의 흐름을 방해하는 노조파업 등에 대해서는 ‘법과 질서’에 따라서 국가가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임을 주장했다.


국가의 부재 문제와 관련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들에게 경영하기 좋은 조건을 보장하는 ‘강력한 정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개입 일반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자본 측에서 개입하는 정부를 선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시장 자율성 대 국가개입 선호의 기준만을 놓고 경제정책을 둘러싼 보수-진보 사이의 갈등을 이해하는 것은 난점이 있다. 이러한 난점은 현실에 있어서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딜레마, 특히 노사문제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의 상당한 어려움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구조적 딜레마와 어려움에 대해, 그 결과 노정권이 표방하고 있는 이른바 ‘협조적 노사관계’의 실험이 또 다시 좌절되어 이전의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처럼 ‘배제적 노동정책으로의 급전환, 곧 U-turn’이 반복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내다보고 있는 입장이 김수진 교수의 ‘노동정책과 노사관계’였다.

김수진 교수는 이전의 김대중 정권 방식으로 ‘노-사-정위원회’ 주도의, 사안별 접근보다 총체적, 일괄적 접근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하고, 그것이 결렬될 경우 대 국민직접 설득에 나서는 식의 노사관계에 대한 정책접근은 구조적 한계를 완전히 무시한 비현실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근저에는 보다 근본적으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사이의 괴리가 자리잡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경제정책은 “심각한 경기 침체, 소비위축, 투자부진, 국제수지 악화, 중산층 붕괴, 서민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경제상황”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기조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WTO 서비스 개방 양허안 제출 등 세계화와 자유화 적극 수용, 경제자유구역 설치, 자유무역협정 확대 등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건설, 조흥은행 매각, 철도 민영화 시도 등 구조조정 지속 추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에 비해서 노동정책은 이전 정권의 그것과 비교해 봤을 때 친노동자적이다. 그 전반적 특징으로 “사회적 파트너쉽 확립을 목표로 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지향하며, 개입주의적 노동정책, 노사정위원회의 기능과 위상 강화 등 포괄주의적 타협전략, 차별철폐, 사회적 안전망 확충,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 사회통합 프로그램 적극 추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기조가 상반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친노동정부 출범에 따른 기대감 증대 및 실질적 혜택 부재에 따른 실망감 증폭이 확산됨으로써, 기층 노동자 쟁의 욕구를 결과적으로 강력하게 자극하며 이와는 반대로 자본 측은 투자억제 등을 통해 노동정책의 보수회귀”를 강하게 요구한다. 노무현 정부의 기대와 달리 조직노동, 기층노동자들이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노동정책에 단기적으로 협력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고, 자본 역시 노동정책이 보수적 기조로 전환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요약하면,

“현재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기적이고, 현실적인 것인데,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들은 총론적이고, 중장기적 차원에서 노동자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들이다. 따라서 기층 노동자들의 불만은 따라서 여전하며, 현재와 같이 노사정위원회를 포괄적인 방향으로 운영할 경우 디제이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실패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교수는 “배제와 억압은 강성 노동운동만을 야기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기층 노동자들을 포섭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는 정책적 주문을 내놓고 있다. 전반적으로 적실성있는 분석과 예측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기층노동자들의 단기적 이익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 임금인상 및 고용안정 이외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김교수의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경제정책과 관련된 토론에서 쟁점으로 부상한 내용은 주로 세계화와 관련된 문제들이었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세계 금융자본의 투기적 성격과 자본의 국적성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이는 다시 재벌개혁 문제로 보다 구체화되었다.


토론자로 나선 이찬근 교수는  “경제정책에서의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자면, 세계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구분의 축이 되며, 여기에 더 추가하자면 글로벌 자본과 국적 자본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즉 자본의 국적성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운을 뗀 뒤, “글로벌한 차원에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진보와 보수 간의 핵심적인 논쟁점은 바로 자본 자유화 내지는, 글로벌 자본과 국적 자본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가 대립의 축이 된다”고 규정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을 둘러싼 최대의 경제적 모순은 과격한 자본 자유화로 인해서 초국적 금융자본에 국민경제가 포위되었”기 때문에, “재벌은 여러 가지 퇴행성에도 불구하고, 국적 자본으로서 사회적, 국민적 요구를 부정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외국 자본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 개방된 시장조건 하에서 현행 재벌 개혁방식을 강도 높게 추진할 경우 재벌의 지배권이 초국적 자본에 넘어갈 수 있으므로 이를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이찬근 교수의 핵심 논지였다.



자본의 국적성 주장에 대해 정진영 교수 역시 대체로 동조하는 편이었다. 정교수는 “자본의 국적성이 없다고 보기에는 외국 자본과 우리 기업을 비교했을 때, 한국자본은 너무 규모가 작으며, 외국에서의 자본 활동도 상대적으로 미약하기 때문에, 국제 경쟁력이 취약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재벌을 개혁하려고 하면, 결국 국제 금융자본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므로 경제주권의 종속이라는 위협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된 경제구조 하에서 경제개혁 역시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국내자본을 보호하면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 경제가 가진 딜레마”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재벌 해체를 말하는 쪽의 주장은 국제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피상적인 견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와 달리 상대적으로 재벌개혁론자라고 할 수 있는 참여연대 측의 김상조 교수는 자본의 국적성 문제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민족주의적 경향으로 치달을 우려가 있는데, “민족주의는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뭉뚱그려 오히려 외국 대 국내라는 단순화된 이해충돌로 단순화시키는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전제하며, 한국사회의 경제적 진보는 “재벌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교수는 “경제 측면에서의 진보란 사회적 자원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의 문제”라고 규정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재벌 혹은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 발전을 해 오면서 자원사용이 경제부문간에 대단히 왜곡되어왔다”고 분석한다.

실례로 “2001년의 통계 자료만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GDP의 160% 정도가 기업부문의 부채액 규모인데 반해, 가계 부문은 약 80%, 정부 부문의 부채는 30%에 불과”하다. 이는 굉장히 불균형적인 자원 사용의 비중으로 190%에 이르는 일본을 제외한 어느 나라의 기업 부문도 120%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현재 기업부문이 너무 많은 자원을 사용하고 있고, 가계 부문과 정부 부문의 자원 사용은 비정상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진보라는 입장이다. 다만 이것이 너무 단기간 내에 조정되면 불안정성의 문제가 야기되므로, 결국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원 사용에 결정적인 의사 결정권을 가진 재벌 등 대기업에 대한 감시가 경제적 측면에서 진보의 핵심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김교수는 전망했다.



한국사회의 경제개혁을 둘러싼 논쟁에서 국가 대 시장, 그리고 세계화 대 반세계화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갈등에 대한 토론은 활발히 전개된 것에 비해, 효율성 대 형평성의 문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이는 진보의 측면에서 노동자-기층민중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토론자가 부재한 데 일차적 원인이 있으며, 무엇보다 진보-보수 논쟁이 국가 대 시장의 대립구도로 펼쳐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가와 시장의 논리만이 아닌 사회적 시각을 대입하면 진보적 입장에서 상당히 다른 주장이 개진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1)



5. 한미관계와 남북관계


1990년대 탈냉전과 소련 등 사회주의권의 몰락 그리고 북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정세변화에 따라 한국사회에서도 미국과 북한을 바라보는 입장에 있어서 진보와 보수 사이의 분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최근 미군에 의한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및 미국의 이라크 침공, 북핵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 정부의 갈등 등 민감한 문제들이 터져 나오면서, 한미관계와 남북한관계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사안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는 인상이다.



‘한국정치의 보수와 진보’의 네 번째 토론주제는 ‘한미관계와 남북한 관계’였다. 첫 번째 발제자인 전제성 교수는 ‘한국의 외교정책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대립: 남북, 한미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발제문에서 현재 국제문제 및 외교정책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날카로운 대립을 요약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자유민주민족회의’로 대표되는 보수진영은 김대중 전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615 선언 및 합의를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반해서, ‘평화단체 연석회의’ 등 진보진영은 ‘평화와 주권이 보장되는 한반도를 위한 10대 정책 과제 요구안’에서 평화체제 구축, 전시작전권의 환수, SOFA의 전면개정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합의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한미, 남북관계를 둘러싼 이슈가 이토록 진보와 보수진영 사이에 인화성이 높은 정치적 사안으로 계속 남아있는 데에는 그만한 역사적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한반도가 동족상잔의 비국인 한국전쟁을 겪고, 휴전 이후 반세기 이상 고도의 냉전질서가 지배하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전제성 교수 역시 ‘현재의 보수, 진보 대립의 역사적 근원’에 대한 물음에 대해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2차 대전 이후의 정치상황이 현대의 보수, 진보 분기의 직접적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의 보다 직접적인 시원은 1997년이라고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한국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경제적 세계화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고, 세계화가 야기시키는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가 두드러지면서, 경제개혁을 중심으로 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발생했다.

둘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고양된 남북화해의 분위기 속에서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둘러싼 소위 보수, 진보간 남남갈등이 존재하였는바, 1998년 초 김대중 행정부가 본격적인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갈등이 심화되었다.

셋째, 정보혁명으로 시민사회 내 정치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고, 여론이 활성화됨에 따라 그간 응집되지 못했던 많은 의견들이 활발하게 개진되었다. 특히 인터넷 사용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견해들의 응집 및 발전과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가 외교정책의 결정 과정에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넷째, 2001년 9.11테러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신보수주의 외교정책과 대테러전쟁은 전세계의 외교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놓았는바, 한국의 외교정책 역시 이에 반응하면서 보수, 진보의 대립이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 행정부 하의 대이라크 파병문제와 현재의 대북 경제제재를 둘러싼 대립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세계화, 정보화, 탈냉전, 남북화해협력, 패권체제라는 변수들이 현대적 보수, 진보의 갈등을 첨예화시킨 요소들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토론자인 신욱희 교수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이 두 쌍무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외정책을 둘러싼 대립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진단했다.


그 이유는 대외관계에서 현상유지를 바라는 쪽이 보수이고 현상을 변경하려는 쪽이 진보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남북관계와 대미관계에 있어서는 현상변경을 원하고 있어 내용에 있어서는 다소 진보적이지만, 방법론적 측면, 곧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 신중하게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국제관계의 특성상 조금은 보수적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현재의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과거방식대로 현상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공지의 사실이라는 전제 아래, 관계전환을 하는 방식에 있어, 각각의 관계를 따로 떼어놓고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다시 말해서, 이 두 가지 쌍무관계가 상호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며, 한 쪽의 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 다른 쪽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다는, 이른바 일종의 연계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이해영 교수는 전재성 교수의 발제가 한국의 외교정책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고 있다는 평가를 전제로, 한미관계에 있어서 경제적인 측면, 즉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 WTO 등의 경제적 이슈 부분도 추가되어 한다고 주문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이정민 교수는 보수적 시각에서 한미관계와 남북관계의 변화지형을 분석했다.

이교수의 글은 21세기의 험난한 국제정치의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확고한 한미공조’ 및 ‘변화된 조건에서 한미동맹의 재정립’으로 짧게 요약할 수 있다. 이교수는 노무현 정권의 출범으로 한미공조에 이상기류가 흘렀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5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와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왔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안보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간의 다자간안보협력체제로 담보하는 것에 회의적이고, 특히 “중국에게 한국안보를 담보하는 그 자체가 한국의 국익에 부합되지 않기에 한미간의 쌍무적 틀에서 안보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대목, 그리고 북한의 내부적 조기붕괴 가능성에 대한 예측과 함께 흡수통일을 현실적인 통일과정으로 상정한 대목, 독일통일과정을 예로 들어 확고한 한미공조가 한반도의 통일과정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에서 국제정치관의 보수적 일단을 내비치고 있다고 여겨진다.


토론자인 이해영 교수는 위와 같은 주장이 전제하고 있는 사실적 전거의 불충분성 등을 들어 이정민 교수의 주장을 하나하나 비판했다. 이해영 교수의 반론은, 토론을 통해 스스로 인정했듯이 한국 국제정치학계에서 흔치 않게 진보적 시각을 대변하고 있고, 사실상 모든 측면에서 이정민 교수의 그것과는 정반대 지점에서 관점의 대립이 분명했기 때문에 토론이 자못 흥미로왔다. 이해영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5월의 한미정상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정민 교수의 주장에 대해,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미국으로부터의 한반도 전쟁위협 시나리오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한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한반도에서의 안보리스크를 증대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 안보를 다자적 틀에서 보장하는 것은 극히 비정치적, 비현실적이라는 이정민 교수의 주장에 대해, 과연 그것이 그렇게 비현실적인가, 오히려 현실적 대안으로 가능하지 않은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중국에 한국의 안보를 담보하는 것 자체가 우리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정민 교수의 견해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미국에 우리의 안보를 담보하는 것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밖에도 “팍스아메리카나가 2050년까지 지탱될 것”이며, “이라크 전쟁 발발을 전후하여 북한이 비전투적 군사작전, 고도의 심리전, 그리고 정치적 선동?선전 등의 작전들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라는 이정민 교수의 주장에 대해 과연 어떤 근거로 그렇게 전망하는지, 정보의 소스가 어디에 있는지, 실제로 북한이 그러한 식의 도발을 감행했는지에 대해서 되물었다.



이해영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이정민 교수의 글은 우리나라의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의 국제정치적 시각, 즉 미국은 영원한 우방이며, 다른 한쪽인 북한 정권은 ‘반드시 절멸해야 하는’(이른바 ‘멸공’), 불구대천의 적이라는 과도한 이분법에 기초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양 토론자의 견해대로, 국제정치적 쟁점들에 보수와 진보라는 잣대는 짧고, 진보 및 보수 내부에도 다양한 층위와 갈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로 뭉뚱그려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예측하는데 있어, 보수주의적 관점이 갖는 문제점은 과거처럼 미국과의 확고한, 물샐틈 없는 외교 공조 및 군사동맹이 전쟁억지력을 갖는게 아니라, 거꾸로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 이른바 ‘네오-콘’들이 스스럼없이 늘어놓듯이 한반도에 전쟁의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는 정책적 옵션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동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향후 면밀히 재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6. 결론: 진보와 보수의 생산적 의사소통을 위하여


이번 제1회 한국 정치포럼은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화두가 지닌 정치적 의미를 묻는 거의 전후 최초의 토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단순한 학술토론을 개최하는 일조차 한국사회에서는 50여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한국정치연구소의 제1회 한국정치포럼 개최가 지닌 의의는 자못 지대하다 할 수 있다. 먼저 이러한 토론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물을 수 있겠다. 그것은 우선 서론에서 밝혔듯이 정책노선에 있어 상대적으로 진보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이른바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현 노무현 대통령의 선출과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


박효종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작년 대선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진보는 약진했다. 하지만 이것은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의 한 자락에 불과하다. 그 흐름이 지난 대선을 통해 다소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라 하겠다. 지난 50여년간의 한국 사회의 성격은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등의 영향으로 보수적 담론과 정치만이 지배하는 반공사회였다. 동시에, 경제성장 및 민주화를 동시에 일궈낸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고, 한국의 보수세력은 기득권에 안주한 채, 경제성장의 과실을 독점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였다. 연고 자본주의와 지역주의 정치 구조가 활개를 쳤고, 이에 비례해서 이른바 ‘정경유착’을 통한 정치?경제적 부패와 타락은 그 도를 더해갔다.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진보개혁세력이 변화를 강제했다. 정치-사회적 역학 관계에 있어서 일정한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으며, 그 저변의 힘이 어느 정도 정치세력을 형성하여 노무현 정권의 등장에 일조했다고 보는 게 올바른 평가일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지형은 여전히 보수새력이 모든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구조이다. 박효종 교수는 현재 한국사회가 보수와 진보 어떤 입장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50:50의 사회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잘못된 규정이다. 아직 진보세력과 보수세력 간에 보합 내지 균형상태에 도달했다고 할 수 없다.



아무튼 한국의 보수는 진보세력의 계속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따라서 보수세력 역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다. 어떤 형태이든 전 세계적으로 몰아치는 변화의 물결을 피해갈 수는 없다. 현재 한국정치에는 일촉즉발의 정치상황, 인화성 높은 정치적 소재가 즐비하다. 가령, 반미, 북핵, 반권위주의, 재벌개혁 등등이 그러하다. 한 마디로, 도처에 지뢰밭이다. 한국에서 모든 사람이 정치가 내지 정치분석가가 될 것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비유컨대, ‘시계-제로’의 상황에서, 일단 진보세력이 변화의 주도권을 잡았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익숙해왔던, 그리고 당연시해왔던 기존의 관행과 통념에서 상당히 벗어날 것을 요구받는다. 이에 대한 보수세력의 움직임 역시 암중 모색의 ‘정중동’이라 할 수 있다. 보수와 진보의 생산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야만 하는 정언명령적 상황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종합토론 ‘한국정치의 방향’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었다.



첫 번째 발제자인 박효종 교수는 현재 한국사회가 진보와 보수가 균형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는 상당히 폭발력이 있는 위험상황이다. 가령, 현 맥락에서 볼 때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심의와 토론을 통하여 한국의 정체성과 대북?대미관계에 대해서 합의할 수 있을까.


이 점에 있어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만일 합의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합리적 설득의 과정보다 일종의 ‘회심(conversion)’과정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할 경우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타협이나 협상이 아니라 항복이나 백기들기로 표현할 정도로 완전한 양도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분출하고 있는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관계는 구성원들의 합의를 전제로 한 ‘합리적 다원주의(reasonable pluralism)’보다는 불일치를 전제하는 ‘경합적 다원주의(agonistic pluralism)’에 의해서 파악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는 합의하거나 하나로 귀의할 수는 없겠지만, 각기 서로 다른 실체로 남아 있으면서 경쟁하는 관계로 보아야한다는 의미이다.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다투고 있는 경쟁적 다원주의 사회에서 단 하나의 공적  이성을 설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경쟁적 다원주의(agonistic pluralism)’ 사회는 공적 이성과 관련하여 ‘순리적인 합의(reasonable agreement)’ 보다 오히려 ‘순리적인 비합의(reasonable disagreements)’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박교수의 주장이다.



우리가 ‘순리적 합의’보다 ‘순리적 비합의’의 가능성을 받아들일 경우, ‘합의적 민주주의’가 아닌 ‘경합적 민주주의’ 모델의 상정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 현실적인 관심의 초점은 한국의 보수와 진보가 상대방에 대하여 ‘전사’가 아닌 ‘경쟁자’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가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합의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협력의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설 때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손호철 교수는 이의를 제기했다. 만일 박효종 교수의 주장대로, 진보와 보수가 ‘전사’가 아닌 ‘경쟁자’의 관계로 진입하여 협력관계를 통한 경합적 다원주의 정치를 펼치려면, 진보와 보수가 경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치-사회적 게임규칙의 공정성이 필요한데, 현재의 정치적 조건은 보수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보수가 만일 공정한 경쟁을 펼치려 한다면 보수 스스로 진보세력의 진출을 가로 막는 장벽을 제거하는데 앞장 서야 한다는 게 손호철 교수 반론의 핵심내용이다.



‘진보적 시각’에서 한국정치의 발전방향을 진단한 손호철 교수는 한국정치의 최대 문제점을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분리 내지 정치사회의 비대표성에서 찾고 있다 이 같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괴리를 고려할 때 진보, 보수의 입장을 떠나서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진보정당이 성장하여 정치사회에 확실한 시민권을 획득하고 그동안 대표되지 못했던 민중 부문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 시급한 것은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를 가로막고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벽들, 가령 국가보안법 등을 폐지해야 한다. 진보대 보수로의 전환은 기본적으로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한 문제라면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다양한 참여민주주의 나아가 직접민주주의적 기제들의 극대화이다. 이중 가장 기초적인 것은 너무나 낙후한 채로 남아 있는 정당구조와 관련해 국민참여 경선제와 같은 민주적 상향식 공천제도의 제도화와 정당민주화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는 진보정당도 당 자체 내에서, 당지도자와 당활동가 간의 차이 속에서 부르주아국가의 구조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주민발의, 주민소환제 등 다양한 직접민주주의적인 기제의 발전과 확산이 필요하다.


한국정치의 발전은 소위 ‘토대’의 민주화가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1997년 IMF 위기이후 한국자본주의는 1978년 통계집계 후 최악의 빈부격차가 잘 보여주듯이 종속적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 내지 종속적 포스트포드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로 전환해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세계적인 지구적 신자유주의와 결합한 이같은 흐름은 결국 시장의 효율성이라는 신화에도 불구하고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비극으로 표상되는 1930년대로 후퇴하는 것으로서 칼 폴라니가 잘 보여주었듯이 경제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없이는 한국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사회 자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경영참여, 무비판적인 민영화 저지와 대안적 사회적 통제기제의 제도화 등을 통해 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 사회적 통제의 기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정진영 교수의 반론처럼 손호철 교수가 주장한 사회 경제체제가 과연 어떠한 모습을 띨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현실을 무시한채 너무 이상론에 경도된 것은 아닌가하는 회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학이란 언제나 인간들의 좀 더 나아지려는 이상의 추구 속에서 비판적 역할을 자임해야 않을까? 정치학이 현실을 올바로 해석하고 비추는 노력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실정성에 대한 분석만을 정치학의 최우선 영역으로 설정하는 것의 이면에는 자칫 기성체제를 정당화하는 기능만을 담지할 것이라는 게 역사적 사실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정치학은 기성 정치, 경제권력이라는 단일 중심으로 환원되거나 휩쓸리지 않는 채,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다양성과 다원성을 힘을 다해 확보해 나가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홍림 교수의 지적대로, ‘순리적 비합의’는 정치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의 선행조건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이것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현실에서 진보적 정치 또는 정치학과 보수적 정치 또는 정치학은 건전한 상호비판과 균형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진보와 보수를 떠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 내고 평화를 구축하는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 이유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이, 우리 존재의 유무를 결정하는 절대생존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일단, 시급하게 한반도에서의 전쟁회피 노력을 위해 진보와 보수는 생산적이며 건전한 의사소통의 장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간지, 곧 열정과 프루던스(prudence)를 동시에 응시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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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러한 관점에서의 진보적 시각은 추후 종합토론에서 손호철 교수의 글을 통해 보완되고 있다.








한 빛: (참고 내용 1.)  * 클릭 -->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7/board.php?board=hbboard&search=우익&shwhere=subject&command=body&no=58 [01/20-19:53]


한 빛: (참고 내용 2.) * 클릭 -->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7/board.php?board=hbboard&search=우익&shwhere=subject&command=body&no=72  [01/20-19:54]



한 빛: (참고 내용 3.) ** 클릭 -->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7/board.php?board=hbboard&search=보수&shwhere=subject&command=body&no=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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