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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자료실

작성자 한 빛
작성일 2006-09-13 (수) 19:42
홈페이지 http://www.hanbitkorea.com
ㆍ추천: 0  ㆍ조회: 10508      
혁명가 김산과 나운규의 부활을 꿈꾸며..


2006. 9. 5.
'참말로' 에서..
http://www.chammalo.com
( http://www.saramilbo.com )




“혁명가 김산과 나운규의 부활을 꿈꾸며”


[광복 61주년 특별대담] 분단을 극복할 이 시대 ‘애국’이란 무엇인가
 
이철우 기자  
 




▲'당신 누구요'가 남북 합동공연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김산의 아들, 고영광의 사인.     ©한빛코리아



이 시대의 김산은 누구일까?


<참말로>는 광복 61주년을 맞아 일제시대 조선의 혁명가이자 실천적 테러리스트인 김산과 ‘아리랑’의 나운규를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애국’이란 무엇인가를 모색해보는 순서를 마련한다.


최초 남북합동공연을 목표로 얼마 전 출간된 <당신 누구요? -김산과 나운규의 백년 아리랑>의 저자 김경원과 최동국 한빛코리아 대표의 대담 전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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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동국 : 김경원 선생님. 이번에 나온 새로운 책 제목이 <당신 누구요? - 김산과 나운규의 백년 아리랑>인데요. 역사학자이신, 이이화(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선생께서는, 이 책 출판에 대해 “김산과 나운규를 결합해 민족을 노래하였으니, 참으로 보람찬 작업을 해냈다. 우리 민족의 비극과 희망을 보았다!”라는 말씀을 건네 주셨다는데요. 어떻게 김산과 나운규를 엮어 만들 작품을 생각하셨는지요?





▲김산이 사형당하기 달포 전에 님 웨일즈가 찍은 사진.     ©한빛코리아



김경원 : “당신 누구요?”라는 물음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일 것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의 우리들에 대한 되물음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풍요사회에서의 ‘생존’이란 더 야비하고 거친 것 같습니다.

1세기 전 가난과 국가적 수모 속에서 ‘국가적 생존’에 몸부림쳤던 두 ‘아리랑 거인’을 통해 이 시대의 인물들을 찾아 보고 싶었습니다. 1993년 광복절 날 제가 도쿄(東京)에서 <아리랑(나운규)필름되찾기 100인회>를 결성했었는데, 이 책의 출판은 그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지요.


최동국 : 당시 최고의 지성인이자, 로맨티스트였던 김산은, 중국 옌안(延安)의 루쉰(魯邊)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났던 미국인 여성, 님 웨일즈의 눈에 과연 어떻게 보여진 걸까요? 님 웨일즈는 1997년 그녀가 죽기 직전까지 김산을 잊지 못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또한,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가 심화된 혼돈의 지금 시기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김경원 : 맞습니다. 김산은 님 웨일즈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동양의 혁명가였죠. 지식인들조차도 패싸움에 몰두해 있고 갈라져 있는 이 어둠의 시기에, 김산과 나운규 선생처럼 우리에게 등불을 밝히고자 하는 이가 어딘가에 분명히 숨어있을 거라고 봅니다. 정의, 사랑, 애국의 실천적 테러리스트인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제2의 김산, 나운규를 찾아내었으면 합니다. 정말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이 책은 남북합작을 염두해서 씌어진 것입니다. 우선, 많은 한국인 특히 김산과 나운규를 잘 모르는 청소년들, 그리고 재외동포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에게 기백과 희망의 횃불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남북한 통일문제도 이제는 각도를 달리해서, 1945년 해방 이전으로 돌아가, 그것의 실마리를 푸는 방법을 좀 달리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한일합방’ 역시도 몇몇 조선인들의 일본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이 없었다고 한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긴 것이고, 대다수의 조선사람들은 그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 바로 이 책 첫 장면에서 김산의 입을 통해 언급되고 있습니다.



                                               
*  님 웨일즈가 노후에 김산을 기억하며 지은 시

그는 겨우 나이 서른두살의
멋진 젊은이였지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 노력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네

그는 아리랑 열두고개를 넘었지
마지막 고개는 그의 운명
그는 1938년에
사형당했다고 했네

장엄한 오페라의 비극과도 같은
선과 악의 싸움
중세시대와도 같은 어둠에 의해
새로운 사상이 파괴되었네

그는 아리랑 열두고개를 넘었지
고개마다 대패했지만
스스로에게만은 승리를 얻었네
그곳에서만은 후퇴하지 않았네
그는 자신에게 명령했지
고문과 고통을 알았지만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자신에게 명령하고, 또 명령했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면  
새로운 종교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
우리에겐 신성함을 기릴수 있는
순교자가 필요하지



             
김산과 나운규의 만남의 단서, ‘아리랑’


최동국 : 이 작품 <당신 누구요? -김산과 나운규의 아리랑>에서는 김산과 나운규가 생존 시, 또 죽음 후, 두 번에 걸쳐 만나고 있는데요. 그들은 정말로 만난 적이 있었을까요?





▲나운규 감독 이후의 '아리랑' 포스터.     ©한빛코리아



김경원 : 저는 실제 두 사람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고 보는 겁니다. 물론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나, 그들의 활동무대를 보면 그렇습니다. 적어도 서로가 상대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 같은 시대 같은 공기 속에서 호흡한 사람들은 물리적 접촉이 없더라도 한 호흡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김산 선생은 190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셨고, 용천은 우리 민족의 큰 사상가, 함석헌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나운규 선생은 1902년 함경북도 회령 출생이십니다. 고향이 가깝고 나이 차이도 3살 밖에 안되지요. 또, 김산은 실제로 신흥무관학교를 나오셨고, 나운규도 그 언저리에서 독립운동을 하셨기에 그렇습니다.



김산은 33세(1938년)에, 중국 산간닝(陝西省)에서, 중국의 공산당 정부에 의해 ‘일본간첩’혐의를 받아 사형되어 소수민족의 공산당 혁명투쟁과정에서 그 공로를 가볍게 만들기 위한 처사인 것이죠. 산베이 고원 어딘가에 묻혀 있을 터이고... 나운규도 35세(1937년)에 경성(지금의 서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두 분이 사시고 돌아가신 시기가 흡사해요.



최동국 : 두 분의 생은 어쩌면 생의 목표가 많이 희박해진 요즘의 젊은이들보다는 정신적으로 따져볼 때, 오히려 행복하고 충실한 삶을 사신 걸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김산은 15세에 자진해서 비장한 각오로 압록강을 건너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지요.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받아주지도 않았다고 하죠?




독립군이 부른 옥중가 ‘아리랑’


김경원 : 무엇보다도 두 분이 만났다고 하는 결정적인 단서는, 두 사람이 똑같은 <옥중 아리랑>을 필사적으로 노래하고 있고, 그 노래를 죽기 직전까지 품안에 간직하셨다는 거에요. 그들은 분명 ‘아리랑’으로 연결된 동지들이었습니다.


제 책에는 김산과 님웨일즈가 써놓은 ‘아리랑 옥중가’가 응용됩니다. 김산의 자서전 격인 책  ‘Song of Ariran’(* 1937년 7월에 김산과 님웨일즈가 만나서 대화한 것을 1941년 미국에서 님웨일즈가 영어로 발행한 책)에 나와 있는 아리랑 가사가 있지요.



김 산은 「아리랑」에 대단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아리랑 열 세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의지를 마치 신앙처럼 지니고 있었어요. 그의 회고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사람들은 '아리랑 열 두 고개'에서 다음 '열 세 고개'를 넘지 못하고 말 것인가? 바로 지금 조선이 그 열두 고개를 넘어 열 세 고개를 넘으려 한다"



여기에서 '아리랑 열세 고개'의 의미란 극한 상황을 극복한데서 맞는 해방이며 독립이며 자유인 것이지요. 그렇기에 김산에게 있어 ‘아리랑’은 곧 혁명된 나라, 강대국의 예속에서 자유로운 나라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민족 수난사의 마지막 고개를 '열두 고개' 설정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각오를 노래한 것이지요.



다음은 신의주 감옥에서 어떤 독립군 사형수가 불렀던 아리랑입니다.



옥중가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구비
첫 번깨 고개를 넘어간다
내 들던 막걸리는 어디 있나
이제는 한강에 펌푸로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재판장 고개를 넘어간다
금시계줄은 어디로 갔나
쇠수갑은 맞지를 않으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감옥행 고개를 넘어간다
운명의 선고를 기다리며
나 이제 생사 갈림길에 서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련다
아리랑 고개에 간이역 하나 지어라
집행인 기차를 기다려야 하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
그대 열두 구비에서 멈추지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열세구비를 넘으리니.




김산은 자신이 신의주 감옥에서 들었던 이 노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운규도 영화감독이 되기 전, 독립운동의 도판부 사건으로 끌려가 청진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동안 이 아리랑을 듣는 거죠. 김위중, 김예지 조선광복(독립)열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에 부르던 그 노래인데요... 나운규는 그 노래를 잊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있다가 결국 영화 ‘아리랑’을 만들어 대힛트를 하게 되었거든요! (물론, 이 노래를 편곡하여 만든 아리랑입니다만.)

제 희곡에서 두 사람은 <아리랑>으로 동지적 언약을 맺고, 한 사람은 반도에서, 한 사람은 만주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활동해 나갑니다. 그리고 수차례 접선을 하여 일을 수행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로 이어지게 됩니다.



 
혁명가 김산과 체 게바라


최동국 : 책 ‘아리랑’은 1980년대 당시 조국을 위해 고민하던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책이지요. 저도 당시 용공서적이었던 그 책을 몰래 숨어서 본 기억이 새롭습니다.



님 웨일즈는 미국의 예일대학을 나온 실천지향적 지식인으로서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의 저자이기도 한, 그러니까 서방측 기자로서는 1936년 처음으로 중국 해방구로 들어간 에드가 스노우의 부인이기도 한데... 25명의 중국인 혁명가를 인터뷰해 그들의 자서전을 쓴 여성이죠. 그런데, 그녀는 인터뷰했던 누구보다도 김산에게 매료당했다고 고백하고 있지요!







김경원 : 네. 그녀는 김산과 생전에 했던 약속을 지킵니다. 김산은 님 웨일즈와 만난 다음해인 1938년에 죽게 됩니다만, 그녀는 잊지 않고 3년 후, 이 책 ‘송 오브 아리랑’(아리랑의 노래)을 미국에서 펴냅니다.


본명 장지학(張志鶴)을 김산(金山)으로 바꿔 발표한 것도 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지요. 김산은 금강산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김산과 님 웨일즈,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 김산이 님 웨일즈와 만나지 않았던들, 그는 이 세상에 존재의 흔적조차도 없는 사람이에요. 두 사람의 만남은 역사적인 ‘우연’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우연’ 안에는 ‘필연’이 숨어있는 것일 테고...


당시 님 웨일즈는 김산에게서 인간의 고통과 좌절, 정열과 희망을 봅니다. 모험과 투쟁으로 가득찬 이상주의적 조선인 혁명가를요. 민족주의자나 공산주의자라, 사회주의자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국제주의자이며 세계시민이었던 김산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비추어진 거에요. 생과 사를 초월한 두 사람의 로맨스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감동의 스토리입니다. 김산은 5개 국어 이상을 구사할 정도였고, 번역도 했지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라틴어 등... 또 독일어로 의학공부를 했을 정도였다는데.



최동국 :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 특히 전후세대(본인을 포함)는 나라를 뺏긴 아픔을 가름하기가 어려운 일이지요.


요새 젊은이들에게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Che Cuevara)라고 하는 문화 아이콘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만, 정작 우리 민족의 혁명가인, 김산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들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그들이 이 땅에서 잊혀온 현실은 서글프기까지 한데요...일단,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봐야겠지요. 김산의 이야기가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면 매우 새로운 운동의 르네상스 바람이 일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설가 박경리씨가 ‘토지’를 애초에 1권 분량의 소설로 기획했다가 김산의 일대기를 접하고 대하소설로 바꿨다는 일화도 있는데요.


또, 얼마 전에 돌아가신, 강원용 목사님께서 양극화를 극복하려고 애쓰시며 젊은 운동가들에게 하셨던 말씀 “한 눈에는 사랑을, 한 눈은 각성(늘 깨어있음)을.”이라는 구절이 떠오르는군요. 이 말씀을 실천했던 이가 바로 김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과연 우리는 김산처럼 가난과 핍박, 도망자의 신분 속,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그러할 수가 있을런지요?


김경원 : 김산은 실천적 테러리스트였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정의, 사랑, 애국을 실천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일제 때에는 테러 이외엔 선택의 여지, 방법이 달리 없었더랬죠. 적국이 나라와 민족을 지배를 하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 테러리스트란, 민족이 생존하는 길이라 여겼던 거죠. 안중근, 윤봉길 의사도 그 길을 택한 자들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 당시에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던 자는 모두 친일파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김산은 존경대상이 이광수, 안창호 선생에서 바뀌어갑니다. 이동휘 장군, 김원봉, 오성륜 등 젊은 테러리스트에게 매료되어 가지요. 물론, 이들이 훌륭했던 점은 자신의 사고와 이상을 실천으로 옮겼다는 것이에요.



동지들이여, 싸우자!                        
                                                                     
* 김 산이 지은 시

살아 있는 한은
혁명의 길을 걸어
이 세상의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총칼을 손에 들고
빛나는 내일의 세계를 위해
자! 붉은 내일의 세계를 위해
자! 붉은 홍기를 높이 들고 힘차게 춤추는 것이다!

강철같은 견고함은
우리의 진영.
갖풀같은 단결은

우리의 대오.
아무리 쓰러져도 이어지는 돌격은
우리의 방법.
12억 5천만의 피압박 인민들은
우리의 벗!
결코 다 벨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목이다!
흘러도 흘러도 다함이 없는 우리의 피다!
싸우자! 싸우자!
내일이야말로 인터내셔널이다!





민족의 혼을 부르는 주술, ‘아리랑’


최동국 : 이 책 <당신 누구요? - 김산과 나운규의 백년 아리랑>에는 소서노와 유관순 등의 여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여성들을 등장시킨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김경원 : 한국에서도 이젠 여성 지도자가 나와야 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 남성들이 못해왔던 일들, 그것이 21세기에는 우리 여성들의 몫이라 여겨져요. 제 책에서 유관순은 김산과 나운규의 정신적 리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소서노는 인류를 이끄는 평화의 상징으로 그려냈습니다. 아무래도 ‘평화’란 단어는 남성들에게보다는 여성에게 더 어울리지 않아요? (웃음)


최동국 : 네. 잘 알겠습니다. (웃음) 그러면,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에 대해 언급해 보기로 하지요.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아리랑’ 노래는 이 영화의 주제곡인데, 현대적으로 편곡된 4분의3박자입니다. 이 노래가 원래는 ‘아라리’ 음율로 추정되는 8분의 6박자의 민요였지요. (참고로 ‘진도 아리랑’ 이나 ‘밀양 아리랑’은 그 후에 만들어졌음) 나운규가 어린 시절 고향, 회령에서 철도노동자들이 흥얼거릴 정도로 유행했던 이 8분의 6박의‘ 전통 아리랑’ 곡조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 ‘아리랑’ 영화는 당시, 그러니까 1926년 경성에서의 제작, 상영 이후 전국적으로 급격히 퍼지다가 중국에서도 상영되었던 기록이 있습니다. 혹시 김산이 나운규의 영화를 중국에서 관람했을 가능성도 있는 거지요?






김경원 : 그렇습니다. 그 사실들을 증명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김신정 여사(1918년 생. 중국동포/애국독립투사 김기창의 외동딸)(*김기창: 1911년 105인 사건 때 박해를 받았음)인데요. 2002년 11월에 서울에서 만난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김산이 중국에 있는 독립투사의 자제들에게 ‘애국가’ ‘아리랑’ ‘도라지’ 등을 가르쳐 주었었다.”며 본인이 어렸을 적, 김산으로부터 배웠다고 하는 ‘아리랑’을 불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래는 다름 아닌, 나운규 영화의 주제곡 ‘서울 아리랑’(‘본조 아리랑’이라고도 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운규의 영화를 중국에서 김산이 관람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거죠.


진정, 나운규는 영화로 항일운동을 한 셈이구요. 나운규 선생께는 1993년 8월15일 한국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조선민족에게  '민족영화 제1호'로 평가되어지고 있는 이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 그러나, 현재 그 영화를 본 사람은 거의 생존해 있지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1시간 25분 짜리로, 제작과정에서부터 미스테리가 많습니다.


“그 살벌했던 일제 식민지 하에서 어떠한 경위로 이러한 반일(反日)을 주제로 한 영화가 제작되었으며, 게다가 조선인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가?” 또 “이러한 영화가 어떻게 검열을 통과하지 않고 캇트없이 상영될 수 있었는가?” 등등이 미스테리의 부분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나운규와 무성영화 ‘아리랑’(제작:1926년)의 수수께끼


김경원 : 이 영화의 첫 개봉일은 1926년 10월1일 서울의 단성사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날 오전 10시에는 이 극장에서 얼마 안떨어진 지금의 광화문에서 사이토 마고토(濟藤 實) 총독(總督)을 비롯, 신총독부의 청사(廳舍) 준공식이 행해졌었습니다.


당시는 무성영화 시대였습니다. 조선인에 의한 영화의 역사는 1919년에 시작되었었지만 이 <아리랑> 영화는 최초의 히트작품으로서, 그 민족주의적인 내용으로 인해 나중에 한국·조선영화를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총독부 청사의 준공과 영화 개봉이 묘하게도 같은 날이었기 때문에, 영화 '아리랑'은 일본지배에 저항하는 민족혼의 상징으로써 나중에 그 평가는 말할 것 없이 더욱 높아졌던 것입니다.


제작 및 촬영은 일본인이었지만, 감독·주연·시나리오를 담당했던 나운규(羅雲奎)는 민족적 영웅이 되고, 최근에는 한국의 국정 역사교과서에 사진과 함께 등장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주인공이 일본인 순사에게 끌려가는 라스트신에서 흘러나오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의 주제가로 인해, '아리랑'은 그 후, 그야말로 조선반도를 대표하는 노래로 다시 태어나기에 이른 것입니다.


대성황리에 상연된 이 영화 '아리랑'은 이후로도 17회의 재상연에 이어, 조선반도를 2, 3번이나 순회상연을 돌았으며 일본과 중국까지도 다녀왔다고 합니다.



최동국 : 그렇군요! ‘아리랑’은 우리나라 최초의 금지곡이기도 하지요. 일제 시기,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의 가사가 1926 년 7월5일에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활동사진·필름 검열규칙'에 의해 처음으로, 그러니까 그 해 10월1일 개봉된 그 영화를 탄압하기에 이릅니다. 민요 ‘아리랑’에까지도 여파가 미치게 되는데 1년 후인 1927년에 민요 ‘아리랑 음반’이 판매금지처분을 당하지요. 그 후 ‘아리랑’ 관련 출판 서적까지.




▲김산의 아들 고영광과 작가 김경원(오른쪽).     © 한빛코리아



김경원 : 그러나 세계에서 이토록 하나의 민요가 민요 이상의 전 쟝르에로까지 확산된 경우는 지금까지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을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2001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에서는 세계의 가치 있는 문화유산의 보존책으로 제정한 상을 ‘아리랑상(Arirang Master Prize)이라고 명명했죠.


김산, 나운규 선생 그 두 분은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살던 지식인과 예술인이었습니다. 저는 이 두 분을 조선민족의 자존심의 뿌리를 세워준 <<문화의 테러리스트>>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바람에 심지어는 적국, 일본에서도 상영되는데... 일본의 탄광으로 강제로 끌려가 노동을 했던 조선인노동자들을 위로하는 수단(오락물)으로 상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관람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키는 사건도 있었답니다.



최동국 : 그렇습니다. 김산은 일제라고 하는 이 민족의 수난사를 우리가 넘어가야 할 ‘아리랑 고개’로 인식했지요. 일본은 근대사라고 하는 그 고개를 무사히 넘어왔으나, 우린 서양열강과 일제에 먹혀 넘지 못해 이를 극복(넘으려는) 각오로 “동지여. 열두 고개에서 멈추지 않으리.”라고 마지막 고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최남선, 이광수와 같은 당시의 지식인 그 누구도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아리랑’으로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것인데요. 아무래도 우리에게 있어서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민요 이상의 것 같습니다.



김경원: 네. 그래서 이 ‘아리랑’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단지 민요로만으로 얘기되어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리랑은 적어도 민족사라는 프리즘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해석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리랑은 조선민족의 모든 것을 민중언어로 담아내고 있고, 그래서 아리랑은 어디에든 있고 어디에서든 불러지기 때문이지요. 조선민족이 있는 곳에서는 꼭 함께 했기에, 아리랑은 조선민족임을 증명하는 '존재증명'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조선민족을 "저 사람은 아리랑이다!"라고 차별을 받았다는 얘기를 재일조선인들의 입을 통해 들은 적도 있어요.


그러므로 이 같은 사정들에 의해 볼 때, 또 조선반도의 남과 북이 아직도 제대로 만날 수 없는 민족적 사정으로 견주어 볼 때, 이제 ‘아리랑’은  '세계평화의 노래'이며 동시에 '조선민족 통일원가(願歌)'라고도 인식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당신 누구요', 남과 북의 합작 무대로


최동국 : 이 책 <당신 누구요? - 김산과 나운규의 백년 아리랑>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 클리프 리처드, 신디로퍼,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 미국의 대중가수들이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데요...?


김경원 : 네. 그것은 연극을 염두해 둔 장치에요. 미국의 대중문화에 깊게 빠진 우리의 문화현실을 비유하고 있어요. 또,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닭머리의 벙거지 모자를 쓴 랩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하죠.


『 뻑뻑뻑 』

후아유(Who Are You)!!!

니들이 민족을 알아? 뻑뻑뻑
니 할아버지가 뭘 했는 지 알어? 뻑뻑

난 내 존재이유를 더이상 알 수 없어! 뻑뻑뻑
죽을까 살까 고민해 봤지! 뻑뻑

근데 세상은 왜 이 모양이야? 뻑뻑뻑
협박은 왜 해? 싸분질를거야! 싸분질러! 뻑뻑

태극기는 왜 저렇게 펄럭이는거야? 뻑뻑뻑
태극기든 성조기든 일장기든 난 상관없다구!! 뻑뻑  

니들이 민족을 알아? 뻑뻑뻑
니 할아버지가 뭘 했는 지 알어? 뻑뻑

후아유(Who Are You)!!!
후아유(Who Are You)!!!
후아유(Who Are You)!!!
(가운데 중지를 치켜 드는 동작으로) 뻑큐(Fuck You) !!!!  



무대 조명, 갑자기 아웃된다.....이렇게요. (미소) 좀 과격하긴 하지만 관객들을 잠시 소외시켜 보았습니다.



최동국 : 한 시대의 실천적 지식인, 김산과 위대한 예술가 나운규를 하나되게 하였던 ‘아리랑’! ‘아리랑’이라고 하는 평화의 시대정신을 대륙과 반도에서 승화시킨 두 사람! 그리고 님 웨일즈가 김산으로부터 전해들은 ‘아리랑’. 그래서 책제목을 ‘송 오브 아리랑’(아리랑의 노래)으로 지었구요. 김산에게 있어서 ‘아리랑’이란 “죽음의 노래이지, 삶의 노래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서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할 정도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님 웨일즈 역시 “‘아리랑’은 인간의 불멸성을 뜻한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1937년에 김산과 님 웨일즈는 향후 50년 자신들의 책 ‘아리랑’이 후세에게 반드시 읽혀져서 그러니까 모든 고난을 극복하는 힘과 희망을 주기 위해, 이 책을 공동저술하기로 결심했던 것이죠. 1941년에 영어로 출판된 후, 이미 반세기 동안 50여개 국어로 번역출판되었구요.



김경원 : 현대에 있어서 가장 피비린내 나고 가장 험악하며 가장 혼란한 대동아시아 한복판에 뛰어든 정의의 실천가인 지식인, 김산은 근본 바탕이 이상주의적인 혁명적 로맨티스트 시인이며 작가입니다. 지식과 행동을 겸비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텐데 말이죠!


“내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그러나 내 자신에서 만큼은 승리했다!”라고 말하는 김산. 이 말은 지금 현재 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로 보고 있습니다. “김산이 하고자 했던 그 운동은 아직도 살아있다!”라고 하는..




▲김산의 아들 고영광과 최동국 한빛코리아 대표(왼쪽).     © 한빛코리아



최동국 : 그것이야말로 바로 우리 이 민족이 넘어가야 할, 13번째의 마지막 ‘아리랑 고개’로군요! 김산과 나운규가 찾으려는 ‘아리랑’은 당시에는 조선의 완전한 자주와 독립이었으며, 현재의 우리가 넘어가야할 ‘아리랑 고개’는 남북 대단결로 민족주체를 확립하는 길인 것입니다.


수많은 김산과 나운규들이 살아낸 그 시절의 ‘아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아, 한반도는 외세의 간섭과 전쟁위협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 희곡 <당신 누구요? - 김산과 나운규의 백년 아리랑>은 남북 합작용입니다. 남북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에 있어서 ‘아리랑’ 이상의 것도 없지요. 그리고 북한 측에서도 이 연극을 남북합작으로 함께 만들려는 일에 대해 하등의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남북한이 여러 가지 대내외적 여건상, 정치적으로 아주 밀접해지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문화적으로 더욱더 가까워야 한다고 봅니다. 점진적으로 말이죠. 입으로만 아니라, 온몸으로 남북인이 함께 만나 연극을 만들어 가는 과정, 이 자체가 간접적 통일, 그곳으로 가는 길목이지요. 아주 작게 보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김산의 아드님, 고영광 선생님께서도 이 작품이 남북합작 무대로 올려지기를 적극적으로 희망하셨습니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어버리셨지요. 김산 선생께서는 작년 2005년 8월15일에 한국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으셨습니다.



김경원 : 네. 우리 한반도 통일의 문제를 이제는 해방 전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재정립하며 이에 대해 숙고해 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최동국 : 저는 ‘아리랑’을 어디까지나 학술적 자료나 강론이기 이전에, 또 가락과 소리이기 이전에 민족혼을 부르는 주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과 한을 풀어내는 해원(解寃), 상생(相生)의 정신, 즉 아리랑의 혼을 가지고 있는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굳이 한반도 안에서만 규정해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시아의 자랑스런 선조들의 자손임을 깨닫는 일도 중요할 것도 같은데요.



김경원 : 바로 그렇습니다. 최근에 이 ‘아리랑’을 ‘아시아의 공통애국가’로, ‘동북아의 노래’로 만들자는 주장도 여기저기에서 언급되어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해원, 상생 그 ‘아리랑의 정신’이야말로 21세기 우리 민족이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최강의, 최첨단의 평화적 무기라고나 할까요?!


이제 이 땅은 또다시 김산과 나운규 두 분의 정신과 실천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태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만큼 두 분의 부활은 절실하지요. 이제 두 분은 이 땅에서 꼭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특히 김산 선생은 우리에게 “육체는 빵으로 살찌지만, 정신은 기아와 고통으로 살찐다. 상징에 의해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구체적인 현실 속에 생각해야 비로소 지식인은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된다.”시며 실천적 지식인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또 지식인의 책임에 대해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역사적 변화를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자아를 버린 실천적 테러리스트, 김산이 오늘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실천 가능한, ‘테러’(진정한 의미에서의)란 과연 어떤 것일런지요?!


최동국 : 그렇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다함께 숙고해야 할 시점에 와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 대담은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춰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뿐이다.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 그 밖의 것은 모두 내 세계에서는 하나도 의미가 없다.
바로 그 투쟁의 대립물 속에 나와 인간생활의 일치가, 나와 인간역사의 통일이 존재하는 것이다.  
 
- '아리랑'(님 웨일즈, 김 산 지음)에서





김경원(金京媛) : 극작, 연극연출가                    
현재,「아리랑(나운규) 필름되찾기100인회」회장,「아리랑예술단」단장.
한국과 일본에서 연극 <바람매장> <歸天地>(무용극) <悲主流> <밀레니엄 베이비-바리데기> 등을 연출. 1995 논문<일본민요 ‘이츠키 자장가’와 ‘아리랑’의 관계> (제3회 아리랑연구상 -한완상 수상) . 2002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 (요코하마시립 교육회관)『일본·북조선·한국의 작곡가에 의한 '아리랑 주제에 의한 변주곡' 집』에서 특별초청 강연


최동국(崔東國) : 음악제작 및 작사가
현재, 「한빛코리아」대표,「한국문화세계화연합」공동대표.
음악제작 및 작사: ‘희망의 아리랑’ ‘치앙마이 아리랑’ ‘그날이 오면’ ‘히로시마를 기억하라’  ‘대마도 아리랑’ ‘비정규직 아리랑’ 외 다수.    




2006/09/05 [07:49] ⓒ참말로



(출처) http://www.saramilbo.com/sub_read.html?uid=5947§ion=sc3§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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