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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자료실

작성자 한 빛
작성일 2004-01-12 (월) 15:23
ㆍ추천: 0  ㆍ조회: 10794      
남,북의 '사대주의/민족주의' 논쟁에 대해서...


<1>

Name      눈팅족2  (2003-09-15)
Subject    민족주의에 관한 사색.



민족주의에 대해서 요즘 많이 생각해 보게 된다.

민족주의는 구시대의 유물, 별로 논쟁할 거리도 없이 간단하게 고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이론이라는 것을 배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닐찌.... 또한 흔히들 하는 말중에서 '민족주의 우파', '민족주의 좌파'라는 말을 사용한다. 나는 이러한 '민족주의 (좌)우파'라는 말이 그 실체가 불분명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민족주의에 대해서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한국이라는 상황에서 민족주의라는 것이 과연 어떤 효용이 있는가? 또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한국은 연이은 독재 정권과 첨예한 남북 분단의 대치 상황을 가져 왔고, 현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최근 북핵 문제가 고조되고,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화, 개방주의화가 만연하고 있다.
세계는 20 대 80의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역설적으로 세계화가 강하게 진행되면서, 민족주의-국가주의라는 것은 2차 세계 대전의 교훈을 벌써 잊은 듯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족주의라는 것이 한국이라는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1. 민족주의 (좌)우파의 개념.


흔히들 우리는 일제 시대의 지식인 사회라든가, 독립운동 진영에 있어서의 구분을 할 때, 민족주의 (좌)우파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단순 이원적 구분은 상황적 본질을 모호하게 만드는-결과적으로 역사적 본질을 오도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민족주의 (좌)우파가 아니라,

* 우파적 사대주의,
* 우파적 민족주의

그리고

* 좌파적 사대주의,
* 좌파적 민족주의 개념을 가져야 한다.



과거 국사책에서 배운 이분법적 사고는 우리는 사대주의라는 세력을 민족주의적으로 오류하게 만든다.

즉, 조병옥이나 윤보선, 이승만같은 경우는 우파적 사대주의자이다. 민족주의적 우파가 아니라.
김구, 안창호같은 인물은 우파적 민족주의자이다.

김일성처럼 외세 의존적인 좌파는 좌파적 사대주의자이다. 그리고 아리랑에 나오는 김산같은 인물은 좌파적 민족주의자이다.

개념 구분은 이렇게 해야 좀더 명확해진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국사책은 이러한 개념을 무시해 버린다. 그래서 이승만같은 본질적으로 사대주의자를 민족주의자라고 오인하게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또한 김일성 역시 사대주의자이긴 마찬가지였으나, 민족주의자로 오인하게 만들어 버렸다.


즉, 해방 전의 역사는 이러한 사대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이 공존하였으며, 오히려 민중적 지지는 좌우파를 막론하고 민족주의자들이 더 받았다고 본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소련과 미국, 중국이라는 거대한 외세에 의해서 이 땅의 민족주의 (좌)우파는 그 명맥이 거의 끊어져 버렸다.

이승만의 자유당에 대항했다는-입만 벌리면 말하는 정통 야당 50년의 민주당-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사실은 친일파들의 정당이였다는 사실 역시 민족주의자들의 왜소해진 입지를 나타낸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 윤보선은 나라 팔아먹고 일제에게 작위를 받은 윤웅렬의 손자요, 친일 기독교계의 대부인 윤치호의 조카다. 그리고 민주당의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의원의 아버지인 조병옥 박사 역시도 천황의 충량한 신민이 되어 총칼들고 미영 귀축과의 전쟁에 나서자라고 선전하고 다닌 '친일파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과거로 볼 때, 김대중 전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셈예, 저 도요답니더'라고 말한 것이 그의 사대주의자로써의 무의식의 한 맥락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봉암의 민중당이야 말로,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장 순수하게 지지하고 있던 세력이 아닐까, 한다.



2. 민족주의인가, 민중주의인가.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보면 외세로 부터 환란이 닥쳤을 때는 유독 없는 사람들인 민중들이 떨쳐 일어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민중 항쟁의 역사를 민족주의와 연결시켜 볼 것인가, 아닌가? 하는 점을 살펴 보아야 한다. 또한 한국이라는 상황에서 민중주의가 어떻게 민족주의로 오도되어 있는지를 알아 보아야 한다. 그리고 민족주의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해서 알아 보자.


1) 임진왜란의 의병은 민족주의인가, 민중주의인가.



임진왜란 때, 왜놈들은 동래성을 몰사시킴으로써, 그 존재를 드러냈다. 처음 왜군이 상륙했을 때에는 일반 민중에게 해코지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그러자 민중들은 오히려 왜군을 탐관오리들로 부터의 해방자로써 환영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왜군은 곧 그들의 본색을 드러내었고, 왜군이 가는 곳마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각 군마다 따라다니던 노예 상인들은 조선인이라면 눈에 보이는 데로 닥치는 데로 잡아서 목에다 밧줄을 걸어서, 등짐을 지우게 하고 그 효용이 다하면 가차없이 목을 베어버렸다.

-사실 우리는 왜군에 납치된 도공의 이야기만 알지, 이러한 왜군의 만행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얼마나 지독했는지에 대해서는 국사 시간에 배우지 않는다. 일종의 승리 이데올로기인가? 임란 7년 동안 조선의 인구가 절반 이하루 줄었음에도 이러한 비극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

왜군이 가는 곳마다 시체는 산을 이루었고, 조선인은 시체를 뜯어 먹고, 남편은 아내를 팔아먹고, 부모는 자식을 팔아먹고, 먹을 것을 두고 가족끼리 싸우는 것이 그 당시 조선 민중의 실상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인들의 의병 투쟁이 극렬했음은 당연하다.

우리는 이것을 자랑스런 민족주의의 성과라고 배우지만, 사실 있는 양반들은 도망치기 바쁘고, 그 와중에서도 권력 투쟁의 암투는 그칠 줄을 몰랐다. 또한 선조는 서울을 사수한다고 말해놓고, 자기들만 야반도주해 버리고, 서울에 살던 민중들은 궁궐을 습격하고, 노예 문서를 불태워 버린다.

즉 임란은 민족주의라기 보다는 민중주의의 자각을 일깨운 것이다. 또한 자랑스런 민중주의의 성과라고 봐야 한다.



2) 동학 농민 전쟁


일제와 친일 사대주의 우파들은 동학을 농민 전쟁이 아니라, 동학당들의 난리라고 오도했고, 우리들 역시 동학은 농민(-민중)들의 생존권 요구 차원이 아닌, 일종의 종교적 교조주의에 의한 반란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학은 구실에 불과했고, 실상은 민중들의 봉기가 정답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많은 세를 규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즉, 사대주의 우파(-친일, 탐관오리)들과 일본에 대한 배척 운동이 바로 동학 농민 전쟁의 본질이다. 일종의 계급 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계급 투쟁의 성격 역시 국사 교과서에서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3) 해방 이후 이승만 독재


는 좌파적 민족주의자들과 우파적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적대 행위로 동시에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보도 연맹 사건일 것이다. 이 사건은 빨갱이 척결을 이유로 수많은 민족주의자들이 걸려들어서 처형된 사건이다. 우파라고 해서 예외된 것은 없다.


4) 공고화 되는 사대주의


북쪽은 김일성으로 대표되는 좌파적 사대주의자에 의해서 수많은 좌파적 민족주의자들이 처형되었다. 그리고 남쪽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치면서 (좌)우파적 민족주의자들이 제거되었다.


5) 민중주의인가, 민족주의인가.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시작으로 이 땅에는 반미, 반독재 투쟁이 들불처럼 퍼졌다. 반미가 곧 민중해방의 시초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일면 위의 저러한 사대주의자들의 횡포에 비추어 보면,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정당성을 갖는다.

다만 북한의 김일성 정권을 좌파적 민족주의라고 상정하는 틀린 가정을 한 것이 잘못이다. 김일성 정권은 좌파적 사대주의자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반미가 결국에는 180도만 돌아야 될 상황을 360도로 돌려서 또다시 사대주의가 되어 버렸다고나 할까.

친미, 친일 우파적 사대주의자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좌)우파적 민족주의자들과의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북쪽의 좌파적 사대주의자들과의 연대마저 용납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친일, 친미 우파적 사대주의자들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상이 간략하게 한국의 민족주의-사대주의의 투쟁의 역사였다.

또한 한국에 있어서 민족주의란 결코 민중주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결론


우리는 지난 월드컵 때의 그 열광적 민중들의 거리 응원을 기억한다. 또한 이러한 민중들의 열정을 민족주의라고 우려하는 많은 좌파들의 시각을 기억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월드컵의 거리 응원을 우려한 것은 좌파들의 시각만이 아니라, 우파적 사대주의자들 역시 그 강도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러한 민중주의+ 민족주의는 '미선, 효순 압살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민족주의에 대한 일종의 자각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동안 친일 독재 세력과 군사 독재 정권에 억눌려있던 (좌)우파적 민족주의자들이 -민중들의 일반적 지지를 얻는 노선- 자신들의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총련이 비난받는 것 역시도, 바로 북쪽의 좌파적 사대주의자들과의 끈끈한 우정 과시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민중과 유리된 정치 투쟁, 민족주의 투쟁은 역효과만 가져 오게 될 것이다.

최근 세계의 움직임은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쪽으로 나타난다. 각지에 불법 노동자를 단속하고 있고, 이민을 제한하고 있으며, 지역의 분쟁이 빈발하고 있다.

그리고 동북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재무장과 미국의 노골적인 친미 요구와 북한의 핵무장-러시아, 중국과의 사대주의 노선의 붕괴로 생긴- 중국의 실리 위주 외교의 강화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에서 노골적으로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한국에서는 노무현 열풍을 타고, 정치에서 또 한 번-그의 반미면 어떤가?는 적절한 선거 전략이였다. 이회창도 소파 개정을 약속한 것을 보라.- 민중주의적 민족주의가 승리하는 결과를 나타내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는 아직도 사대주의적 우파들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언제든지 미국으로 보따리싸고 도망칠 준비를 끝내 놓았다.

우리는 한국 전쟁시에도 기득권 자녀들은 군대가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언제나 이 땅에서 땅파먹고 살 수 밖에 없는 민중들의 자녀들만 총칼을 들 뿐이였다.

이제 한국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야 한다. 적어도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서양이나 일본, 중국의 침략주의적 성격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과거 번번이 실패하기만 했던 민중들의 요구,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한국적 민족주의다.

과거 하멜이라는 네덜란드 인은 조선인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 나라에서는 돈없이도 여행을 할 수 있다. 어떤 마을에 가든지, 그 마을의 가장 부자 또는 순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여행객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

이렇게 보면 월드컵 때의 평화스러운 모습은 손님 접대하기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88 서울 올림픽 때 시위를 안하는 모습이라든지...

한국적 상황 논리에 입각해 보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민족주의란 여전히 추구해야 할 가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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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남/북의 사대주의/민족주의 논쟁  


Name      눈팅족2  (2003-09-18)
Subject    쏘빠떼 / 반론이요~~


1. 먼저 저의 좌파적 민족주의, 좌파적 사대주의, 우파적 민족주의, 우파적 사대주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 드리죠.

님말마따나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소위 이것 하나만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우익적 또는 좌익적 다른 사상과 함께 작용하지요.

제가 왜 진보누리에서 놀고 있겠어요?-제가 좌우를 넘나드는 민족주의자 같아요? ^^나는 20살 때부터 사민주의자였답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지식 뽀록납니다.^^ - 쏘빠떼씨두 참 의외스럽네요. 역사의 개념화, 추상화 이야기하시던 분이 이렇게 간단한 것을 무슨 큰 발견이나 한 것처럼 호들갑 떠시다니...

대충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시지....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요 그러시면 참 쪽팔립니다. (-제가 이런 분하고 토론하고 있었나해서요..^^)

좌우를 넘나드는 민족주의라는 것을 주장하시는 네티즌도 계시지만, 저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몽양 여운형 선생만 놓고 예를 들더라도, 그 분이 처음에는 기독교 신자에서 출발했지만, 차츰 사회주의자가 되어 가죠. 이분은 민족주의적 성향은 일관되게
견지했지만, 사상적 포지션은 우익에서 좌익으로 변해가요. 이런 것은 좌우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죠.

우파적 민족주의였다가, 조금씩  좌파적 민족주의로 변해가는 것이였으니까요.

쏘빠떼님께서 이런 부분을 가지고 한 말씀 하실 줄이야....^^ 참, 이런 쪽팔리는 것두 지적이시라구...

그럼 제가 왜 위의 저러한 민족주의를 중심에 두고, 좌파 혹은 우파를 주변부에 두는 분류법을 생각했는지 말씀드리죠. 사실 이 부분이 쏘빠떼씨와 나와의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정일이 아부지하고도 관계되니깐요.

먼저 저러한 분류는 아마두 제가 처음 한 것 같아요.-아니면 말고지만..
그럼 왜 저렇게 분류했는가? 그것은 제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상식처럼 쓰이는데 제 눈에는 본질을 오도하는 그런 상식이 통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뒤집기 한 거에요.   예)민족주의 좌파-->좌파적 민족주의로...

잘못된 상식의 첫번째로는 좌파적 사대주의자들이 존재했다는 겁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생소하게 생각하더군요. 그리고 좌파적 사대주의라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고 있구요. 정일이 아부지같은 경우가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죠. 정일이 아부지는 따로 번호를 붙여서 썰을 풀죠.



두번째로는 이승만은 제가 보기에는 사대주의자인데, 민족주의자로 인식된다는 점이에요. 물론 이승만이 민족주의자 맞아요. 그러나 민족주의 우파, 민족주의 좌파라는 식의 이분법으로는 이승만의 특성을 다 드러내지 못해요.

그래서 이승만은 우파적 사대주의자라고 딱지 붙인 거에요. 이승만도 정일이 아버지하고 같은 케이스인데요. 이승만이나 정일이 아부지나 민족주의적 특성도 있지만, 사대주의적 특성이 더 강하다고 본 거죠. 제 입장에서는 요.


한국적 상황논리라는 것이 있으니까.. 이 정도는 쏘빠떼님 스스로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는데..사실... 설명 길게하면 귀찮거든요.


세번째로는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민족해방파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우선을 하는 계통이 서로 대립해서 충돌했다는 거에요. 우파 사이에서도 민족해방파와 개량파 혹은 친일파들이 대립해서 충돌했구요.

우리는 여기서 한 번 의심해봐야 해요. 우파에는 분명히 친일파 혹은 친미파라는 사대주의자들이 있어요. 그렇다면 좌파에도 친소파, 친중파같은 사대주의자들이 있었을 거라는 것이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우선한다고 사대주의자라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국제 연대(^^;) 강조한다고 사대주의자라고 단정하지 않아요. 님이 오독하신 거죠. 이것두 단순한 건데,,,참...

정일이 아부지같이 소련에 착달라 붙어서 자기 욕심 채우는 자들 말이죠. 이런 자들을 뜻하죠. 아주 대표적 예로 정일이 아부지가 참 전형적이에요.


네번째로는 레닌도 말했지만, 사실 민족주의라는 것이 대중 선동에서 아주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거에요. 소련이 공산화할 때도 이 민족주의를 얼마나 잘 이용했어요? 레닌이 민족주의 선동질 잘했잖아요.


다섯번째로는 일제 시대 때 소위 말하자면 사회주의자라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서구 기준으로 하면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도 많아요. 요새 말로하면 책 한 권 안읽고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거요. 이 분들이 사실은 다 민족주의 세력이에요. 독립운동의 방편상의 사회주의죠. 이런 분들이 거진 많았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좌파냐, 우퍄냐, 하는 문제보다는 사대주의냐, 민족주의냐하는 것이 주가 되고, 좌파냐, 우파냐하는 것은 종이 되는 분류도 가능한거에요.


대충 이렇 점에서 저러한 분류법을 생각한 거죠. 그러니까 역사적 맥락을 이해 못하신 건지, 안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역사하고 따로 놀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쏘빠떼씨라는 거에요. -님이 나보고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양비론을 전개하며, 자위적 객관화를 시도한다고 하시는데, 그건 쏘빠떼씨의 무리하면서도 엉뚱하고 주관적인 독심술의 결과라고 봐요.

독심술 함부러 쓰면 큰 일난답니다. 쏘빠떼님^^ 특히 급수가 높은 사람 머릿속 들여다 볼려고 하면 도로 자기 머릿속만 들여다 보여지게 된답니다.

이제 제가 분류법을 뒤집기한 의도를 아시겠죠. 그리고 국제 연대 반대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아시겠죠? 저는 그 국제 연대라는 것 속에서 사대주의자들도 있는데, 이러한 작자들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너무 개념을 오도하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는 것이죠. 대표적인 예가 정일이 아부지죠. 자꾸 정일이 아부지만 예로 들어서 미안해요^^; -너무 적합한 예다 보니...

그리고 그 국제 연대가 혹 사대주의적 습관때문에 민족 해방파들의 적극성에 비해서 좀 약하지 않았나하는 거에요.

실제로 북경에서 고려공산당인가, 조선공산당인가..하면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당을 만들 때, 중국공산당에 소속되어 있던 조선인들 중에서 님 표현대로 하면 국제 연대(^^;)를 강조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우선의 작자들하고 유혈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더니...저는 이 작자들이 소위 말하자면 사대주의적 사고가 작동한 것이 아닌가하는 거에요.



그럼 두번째 문제 제기로 넘어갈까요?

2. 정일이 아부지(김일성)가 사대주의자일까요? 국제 연대(^^;)주의자일까요?


저는 사대주의자라고 봐요. 왜냐구요. 저는 정일이 아부지가 권력욕 때문에 변절했다고 봐요. 33세에 별기반도 없는 북조선에 와서, 쟁쟁한 경쟁자들-조만식, 박헌영같은 인물들- 물리치고 북조선 정권 잡는데....소련군이 없으면 힘들죠.

제가 사대주의자라고 보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어떤 행동을 했느냐"하는 것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죠.

정일이 아부지가 과거에야 빨치산 게릴라 활동했겠죠. 그러나 쏘빠떼씨가 보기에 어느 시기가 가장 중요한 시기 같아요? 제가 볼 때는 해방후, 즉 1945년 8월 15일 이후 수년간이라고 보거든요.

정일이 아부지가 이 기간에 철저하게 친소 정권 수립에 몰두했죠. 소련 점령군의 꼭두각시가 되어서요. 더 설명 안합니다. 도서관 이용하세요.


게다가 님은 정일이 아부지가 무슨 국제 연대 강조하시는데요... 소련군이 발전소 뜯어가고, 공장 기계 뜯어가고, 그 때 돈으로 현금 3천만원 뜯어가고, 북조선 인민들도 굶주리는 판국에 한해에 쌀을 300만섬, 400만섬씩이나 강탈해갔더군요. 게다가 광물까지도...

그리고 일본이 남긴 재산은 모두 소련의 것이라고 문서에 명시했더군요. 정일이 아부지라는 꼭두각시를 내세워서요. 모르면 도서관 이용하세요. 공부합시다.

님 "스타린 대원수 만쉐이~~"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에요. 큰 일 날 소리죠. 소련놈들 똥구녕 핧을 준비된 자만이 할 수 있는 소리죠.

그럼 이 정도로 넘버 2.는 넘어가구요. 요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무슨 짓"을 했냐에요.


정일이 아부지는 남북 분단 획책, 국내 자산 소련군 주기, 친소 친스타린 위성국가 수립해서 바지 사장하기, 우파적 민족주의자 및 좌파적 민족주의자들 숙청하기.... 요런 짓을 했더군요.



3. 여운형 선생이 북한으로 갔다면, 정일이 아부지에게 숙청당했겠죠. 정일이 아부지가 숙청 좀 잘하나요? 종파분자로 몰렸겠죠. 여운형 선생같이 입바른 사람이 정일이 아부지가 무슨 우상화 정책 내세우고, 소련에게 무기만 주면 남한을 침공해서 적화시키겠다고 조르는거 그냥 보고 있었겠어요?


내가 볼 때 여운형 선생의 행적으로 봐서는 김구 선생처럼 휴전선을 베고 죽을지언정 동포끼리 전쟁은 안된다,,,그랬을 것 같아요.

님이 자꾸 여선생의 자녀들이 북으로 간 것을 가지고 얘기하시길래, 제가 여선생의 평소 성품과 정일이 아부지의 행적을 비교해서 말씀드린 거에요.

4. 미국에 대한 것도 말씀하셨네요. 입은 삐뚤어져두 말은 바로 하랬다구, 어째서 대북 봉쇄 50년 이에요? 소련 공산당 망하기 전에는 북한도 소련하구, 중국하구 잘 지냈잖아요.

그리고 남한도 소련하고 중공, 북한에게 경제 제제 조치를 근 40년 간 받아 왔잖아요. 그래도 잘만 사네요. 푸헐~

대북 봉쇄라는 말은 틀린 말이구요. 또 50년이라는 것두 틀렸어요. 북한이 남한한테 경제 제재한 거는 생각안하세요? ^^;

소련 중심으로 생각하면 미국도 왕따에요. 결국 북한의 무능이죠. 베트남이나 중국같은 나라는 공산주의라도 유연성이 있지만, 개인 우상화 정책과 선군 정책이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혹한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니, 변화할래야 할 수가 없었죠.

미국 경제 봉쇄 50년이 아니라, 정일이 아부지가 스타린 흉내해서 개인 우상화 열심히 하고, 한 술 더 떠서 세습체제-무슨 김일성 왕조 개국했나-까지 만든 것이 제일 큰 문제죠.

님이 제기한 문제 중에서 대충 반론 한 셈인가요? 맥락 이해 안되는거나 궁금한 거 있으면 적어주세요. 가까운 도서관을 추천해 드리거나 제가 대답도 해드릴께요. 쏘빠떼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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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Name      쏘빠떼  (2003-09-18)
Subject    아이쿠.. 많이도 적으셨네요.. ^^


민족주의란 사대주의 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
해방당시의 국제적 관계 속에서 완전한 자주형 국가가 수립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여운형 선생이나 김구선생이나 좌우합작을 통한 자주적 단일민족국가 수립이라는 데에 힘을 많이 쏟으셨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님 말마따나 여운형 선생이나 김구 선생(막판에 찬탁으로 돌아섰지요)이나 말년에 좌파적 입장으로 선회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지만 말입니다. 그 결과로 암살당했다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님의 사대주의 vs 반사대주의(민족주의와 같은 의미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구분법에 의하면  신탁통치안과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설명하는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정치인들 거개가 모두 외국세력들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눈팅족2님 식의 구분법과 관점에 따라, 그리고 위와 같은 당시의 정세에 비추어 짐작해 볼때,  통일정권 이건 단독정권이건 간에 사대주의(?)적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겠습니까?..  ^^

중요한 것은 수립된 정권이 자생적 역량을 축적해나가고,  그 과정에서 식민지문제 처리에서 부터 얼마나 민족적이었는가?  하는 문제들로부터 여러가지 것들이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

북한 이야기를 하시는데, 특히 해방직후의 북한의 좌파정치세력 내부간의 경쟁이야, 당연 남한의 우파(?진짜 성격규정하기 애매모호하군요)정치세력 내부간의 경쟁과 마찬가지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 양 지역의 내부경쟁과정에 있어서는 각각 다른 양상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좌파세력들이야 기본적으로 친일파와 친일기생자본가 세력들을 정리하였지요.  즉 기본적으로 반민족 문제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평가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당연하고 잘 알려진 일이지요.. ^^)

님 논리에 따르면 북한의 좌파정권은 어떤 그룹이 짱을 먹었어도 사대주의적인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중공의 괴뢰가 짱을 묵거나 소련의 괴뢰가 짱을 묵거나.. ^^   박헌영이나 기타 국내 소그룹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들이야 말로 코민테른으로부터 짱 허가를 받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던 사람들이지요... ^^   님의 그 사대주의 vs 반사대주의 관점으로 보면 그렇게 될 듯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찌되었건,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 그룹이 짱을 먹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그 위대한 명장 김일성과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님과 나눠야 할지가 걱정스러워 집니다. ^^ 김일성 부대가 얼매나 열심히, 그리고 조직적으로 어떤 수준에 있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여기저기서 읽었던 (님 기준에 의하면 좌파적일) 책들에서는 상당하다고 하더군요. ^^

여하튼 김일성그룹이 짱을 먹었고, 김일성 그룹은 소련과 연계를 가집니다. 아마 당시 국제사회의 신생 사회주의 국가들은 예외없이 소련과 연계를 가졌습 니다.  머 사회주의권의 미국인 셈이지요. ^^  사대주의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스탈린에 대한 평가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유고사건과 사회주의권 내부의 종속문제도 좀 지나면 터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사대주의적이고 종속적인 국가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북한사회의 성격과 정치권력이 자주권을 어떻게 발휘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부터 이야기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

물론 당시의 자본주의권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북한도 예외없는 소련의 위성국가라고 보여질 것입니다.  대신 민족문제에 관한한 올바른 해결을 하였던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역사적 맥락과 과정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가 나눠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정일이 아버지는 민족주의자에 가깝다는 평이 많습니다.  제가 일전의 님의 글에 쪽글 달면서 민생단 사건에 관해서 조사를 해보시라고 했었지요. 당시 항일전쟁 시기에 사회주의 세력 내부에서의 내부검열투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지점에서 정일이 아버지가 보여준 모습은 민족주의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당시의 극좌적 분위기에서 비추어 본다면 김일성 주석은 투철하지 못한 공산주의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소련군이 발전소 뜯어가고, 약탈 행위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  그런 것은 지엽적인 사건사고 소식이라 봐야지요.  오히려 당시의 좌우파를 막론하고 자주적인 민족해방을 획득하지 못한 상황자체에서 이미 외세의 지분은 일정 존중될 수 밖에 없다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소련과 미국의 역할은 그 뒤로 가면 많은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신탁통치에 관한 각 세력들의 태도와 입장에 대해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님의 기준에 따르면  사대주의자 아닌 자들이 없다고 봐야지요. 반탁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지요. ^^

그리고 말이지요. 북한이건, 남한이건 당연히 합법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해당지역 군정들이 짱을 먹었으니 그때까지 관리권을 소련이나 미국이 가질 수 있는 것 아닌지요?.. ^^   여운형 선생이 북한으로 갔으면 숙청되었을지도 모르지요. 아닐지도 모르고.. ^^  여운형선생과 김구선생이 반사대주의자 였는지 아닌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네요.  그 분들이 안타깝게 일찍 돌아가셔서 말이지요. ^^ 그 분들을 기준으로 하여 사대주의 반사대주의 혹은 어떤 정통성이나 기준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은 쏘빠떼가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이네요.. ^^

그 만큼 역동적인 시대였고, 국제관계, 새로운 국가건설에 있어서 좌우간의 갈등 문제들이  그 무엇보다도 식민지배를 자력으로 청산하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된 것들이니 말이지요. ^^

여하튼, 여운형 선생의 식솔들이 북한에서 잘자라고 여연구 선생은 조국전선인가 하는 북한의 통일사업기구에서 활동한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쏘빠떼의 생각은 여기까지 적어둡니다.



그리고 대북봉쇄 50년이 틀린 말이 아니지요.  6.25 전쟁이 끝난지 50년 쯤 되어가지 않습니까?... ^^  사회주의 경제권의 몰락이 있기 전까지... 그러니까 1970년대 말, 80년대 초(?)까지 북한의 경제사정은 남한보다 나았다는 평가가 있더군요.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부터 북한의 경제가 내리막길을 걸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구요.   님 말을 빌어, 70년대말, 80년대초(?)까지는 북한이 적어도 무능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 보릿고개 탈출이나 머 이런것도 북한이 빨랐다고 합니다.  곡창지대가 크지 않은 북에서 식량자립을 위해 백쌀을 무쟈게 먹지는 못했겠지만  여하튼 식량자립도도 90년대 중반까지 90% 이상을 넘겼다고 하구요. (이거는 세계 식량기구나, 농업기구 자료등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하여튼 북한도 열심히 살았겠지요?.. ^^

베트남이나 중국이야기를 하시는데,  걔네들이 다 먹고 살만해진게 미국과의 관계개선 이후라 할 수 있지요.  

북한과 미국이 여러가지 충돌을 가질 때 마다 북한이 미국에게 관계개선을 요구해다지요.  북한과 미국이 정전상태로 언제까지 가야 하겠습니까?  ^^  세계사를 한 번 살펴보세요.    미국과 북한처럼 이 만큼 오랫동안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관계가 또 있는지를.. ^^  그리고 저 한줌도 안되는 가난한 나라를 못잡아 먹어 안달이 난 미국이 하는 짓이 얼마나 치사한지도 말이지요.

북한하고 미국하고 사이가 좋아지면 나쁠 것이 뭐가 있습니까?  ^^  안그렇습니까?



머 글 적다보니 구분해서 잘 설명하지는 못한 것 같네요.  쟁점별로 나눌 이야기가 있으면 더 나눠보지요.

눈팅족2 님.. ^^



http://www.jinbonuri.com (펌)
 





한 빛: 위 토론 내용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들은 , '자유게시판'에 관련 내용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01/12-15:28]


한 빛: (참고 내용)  * 클릭 -->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7/board.php?board=hbboard&search=민족주의&shwhere=subject&command=body&no=38 [01/12-16:48]


한 빛: (참고 내용) * 클릭 --> http://hanbitkorea.com/technote7/board.php?board=freeboard&search=일제&shwhere=subject&command=body&no=1964  [10/01-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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