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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진보주의란 무엇인가?
(펌) 이름: 최용식 (ecnms21@hanmail.net) 홈페이지: http://www.taeri.org/ 2003/7/9(수) 신 진보주의란 무엇인가? 神도 죽었고, 니체도 죽었고, 전통적 이념도 죽었다. * 다음 글들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있었던 '신 진보주의(新進步主義)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을 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진보는 과학이다 마르크스의 가장 큰 업적은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 진화시켰다는 데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상적 사회주의의 역사는 오래 되어서 자본주의가 태동한 직후라고 해야 할 정도이지만, 사회주의를 과학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사람은 마르크스였고, 현대 사회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역시 마르크스경제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는 과학이고 과학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여기에서부터 '신 진보주의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풀어나가 보도록 하자. 비록 사회주의의 과학적 기초인 마르크스경제학은 그 현실적용성과 정책적 유효성이 떨어지고 인기도 점점 시들어가고 있지만, 자본주의가 진화했듯이 사회주의도 진화해야 하고 진화할 것으로 본다면, 사회주의의 장래에 희망의 불빛을 던져주는 것은 역시 사회주의의 과학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과학적 접근방법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이란 무엇이고, 과학적 사회주의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과학은 반복적인 현상에서 규칙성을 발견해내고, 그 규칙성에서 운동원리를 도출하여 이론화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과학은 어떠한 경우에도 현실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가 없다. 현실을 떠나면 이미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가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보는 과학이므로. 그러나 현대 사회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넘어서 관념적 사회주의로 변질되어 버렸다. 무엇이 과학적인가, 다시 말해서 무엇이 현실적인가를 먼저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정의인가를 먼저 따지는 행태도 바로 이런 관념적 사회주의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의 사회주의는 더욱 심각해서, 관념적 사회주의를 지나서 감성적 사회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내가 왜 이런 평가를 하는지는 이 강연이 더 진행되면 차츰 밝혀질 것이다. 진보는 겸손해야 한다 인간의 오만성이 과학의 발달과 함께 이제는 극단에 이른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과학은 현상 중에서 반복적인 현상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반복적인 현상은 사회현상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과학이 해명해낼 수 있는 것 역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 않는가 말이다. 과학이 이룩해낸 것이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과학은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진보가 흔히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곤 하는 '관념이 현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함정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과학적 사회주의를 진화시킬 수 있는 첫걸음이다. 사실, 관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지만, 현상은 자연(또는 신)의 섭리가 창조해낸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자연의 섭리를 이겨낼 수 있고, 신의 섭리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인가? 관념이 현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지 않는 한, 사회주의의 진화는 기대할 수 없다. 실제로도 오만한 사회주의는 망했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노동자 독재, 국가기획 경제, 계급혁명 등은 일시적으로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결국은 현실에 의해 강제적으로 폐기처분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학은 사회현상 중 극히 일부분인 규칙적인 현상을 대상으로 할 뿐이므로, 진보는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을 이제라도 버려야 한다. 과학적 사회주의 본연의 자세, 즉 겸손한 자세를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진보도 진화할 수 있고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 전통적 이념은 죽었다 전통적 의미의 자본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 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서 이미 죽었다. 자본과 시장이 자본주의의 본질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서 자본주의가 아직도 살아 있으며, 사회주의를 패퇴시킨 위대한 이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자본과 시장은 자본주의가 태동도 하기 전, 인간이 경작을 시작하던 석기시대부터 존재했었다. 석기도 자본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은 인간이 교환을 시작하던 때부터 이미 존재했으며, 교환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이뤄졌었다는 것이 고고학에 의해 입증된 지 오래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자유방임주의'에 의해 특징지어져야 한다. 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은 오로지 '자유방임주의'라는 이념이 존재하는가의 여부일 뿐이다. 자유방임주의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신고전파 경제학이다. 완전경쟁만 보장하면 경제는 완전균형을 이루면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신고전파 경제학이 믿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이런 신념은 무너졌고, 정부의 정책적인 개입이 일반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전통적 의미의 자본주의는 이제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사회주의는 옛 소련이 1960년대에 시장을 도입한 뒤에 이미 죽었다. 경제란 불균형구조로서 정부가 직접 나서서 기획과 생산 그리고 분배를 모두 행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 전통적 사회주의인데, 불균형이 이를 수밖에 없는 시장을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도입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도입되면 사회주의의 이상인 계급간 평등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시장의 이윤은 자본의 개인적 축적을 피할 수 없도록 한다. 쉽게 말해서, 시장의 허용은 자본가를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변신은 사회주의를 확인사살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야 한다. 이념의 과학적 해체 사회주의의 과학적 기초는 마르크스경제학의 노동가치론이고, 자본주의의 과학적 기초는 신고전파의 효용가치론 또는 균형가격론이다. 그런데 두 가치론은 모두 절대적 가치론이라는 공통적 특성을 안고 있다. 완전균형의 관점에서 구축된 가치론으로서 정태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차원을 도입하여 표현하자면, '시간이 없는 2차원'의 가치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때에나 어느 곳에나 적용되어야 할 가치론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간이 있는 3차원'의 세계이다. 참고로, 4차원은 시간여행이 가능한, 즉 옛날과 미래를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는 차원의 세계를 뜻한다. 그러나 절대적 가치론으로는 현실을 읽어낼 수 없다. 절대적 가치론은 '시간이 없는 2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인데 비해, 경제현실은 '시간이 있는 3차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차원이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서로 조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울 속의 사람이나 그림 속의 사람은 현실세계의 사람과 만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절대가치론에 입각한 가치 즉 노동가치나 균형가격(또는 효용가치)은 현실세계의 재화를 측정할 수도 없다. 절대가치는 정태적인 것인데 비해, 현실가치는 동태적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저울이 무게를 측정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다 하려면, 우선 저울의 눈금이 일정해야 하고 측정물체의 무게가 항상 일정해야 한다. 만약 저울의 눈금이 변하고, 측정물체의 무게도 변한다면, 저울은 아무런 쓸모도 없다. 노동가치론이나 균형가격이 현실경제를 읽어내는 데에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겠다고 파리채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날아다니는 파리는 '시간이 있는 3차원'의 존재라면, 그림으로 그린 파리채는 '시간이 없는 2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의 문제가 노동가치론과 균형가격론(또는 효용가치론)을 과학적으로 쉽게 해체해버린다. 노동가치론과 균형가격론이 해체되면, 마르크스경제학과 신고전파경제학도 해체되지 않을 수 없으며, 당연히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도 과학적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다. 두 이념의 과학적 기초는 마르크스경제학과 신고전파경제학이며, 이 두 경제학의 과학적 기초는 두 가치론이기 때문이다. 건물의 기둥이 쓰러지면, 건물 전체가 무너지지 않을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한편, 노동가치론은 생산의 시각에서 경제를 보게 한다(투하노동가치가 모든 가치의 기준이다). 그런데 생산이란 노동이라는 대가를 먼저 지불해야 하고, 생산물의 분배라는 갈등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생산의 시각에서 본 경제는 갈등구조이고 불균형구조이며 비관적인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다. 혁파해야 할 대상이고, 초월적 존재(국가)가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하는 것이다. 진보주의는 바로 여기에서 태동했다. 반면에, 균형가격론은 경제를 교환의 시각에서 보게 한다. 교환을 쌍방에게 모두 이익을 주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경제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고, 따라서 지켜내야 할 체제로 보게 하며, 경제는 안정적일 것이라는 미신을 심어준다. 보수주의는 바로 여기에서 태동했다. 한편, 신고전파를 성립시켰던 효용가치론은 소비의 시각에서 경제를 보도록 하는데, 역시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경제란 소비의 측면이나 교환의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생산의 측면만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경제란 생산과 분배 그리고 소비와 교환이 모두 이뤄지는 곳이다. 생산, 분배, 소비, 교환 등이 별도로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순환하면서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경제는 이런 순환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고, 동시에 동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동태적 순환의 시각에서 바라본 새로운 가치론을 도출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구축한 경제학이 바로 [21세기경제학]이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구분 19세기까지는 자본축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자본가가 우대를 받던 시대였으며,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자본이 노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소했으므로, 자본의 생산성이 노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자본가의 수입은 노동자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는 자본축적이 상대적으로 풍족한 시대이다. 이에 따라 자본의 생산성은 노동이나 기술 등에 비해서 뒤떨어지게 되었고, 자본가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신세가 되었다. 자본가는 경영일선에서 점점 퇴진하고, 그 자리를 전문경영인들이 차지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장경제의 무한경쟁이 자본가 전성시대의 막을 서둘러 내리게 하기도 했다. 능력이 검증 안된 세습 자본가보다는 능력이 검증된 전문경영인이 훨씬 탁월한 경영성과를 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문경영인은 노동자일까, 아니면 자본가일까? 전문경영인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신분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계층을 자본가와 노동자로 대별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현실적으로도 노동자가 언제든지 자본가로 변신할 수가 있고, 자본가 역시 언제든지 노동자로 변신할 수 있다. 은행 지점장으로 일하다가, 환란 때에 직장을 잃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포장마차를 시작했고, 돈을 좀 벌어서 인근에 가게를 차렸으며 종업원도 몇 사람 두게 되었다. 노동자에서 자본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직도 은행지점장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노동자로 다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경계가 이처럼 허약하다. 그런데 노동자와 자본가를 이분법적으로 갈라서 계급투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짓일까? 영원한 자본가는 없다 계급투쟁은 현실적으로 소멸했다 30년전의 100대 기업 중 겨우 20개만 살아 남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30년 후에는 대기업도 80%가 도산할 것으로 봐야 한다. 일반 기업의 생존율은 50년 후가 1%이고, 100년 후에는 0.007%라고 한다. 자본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이처럼 희박하고, 자본가로서의 생명도 당연히 이처럼 짧다. 겨우 1%의 자본가만 50년 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고, 100년 후에는 10만 명의 자본가 중 겨우 7명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이런 불쌍한(?) 자본가들을 일시적으로 노동자보다 더 부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적대시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노동자와 자본가가 서로 존중하면 안 되는 것일까?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계급투쟁을 하라고 선동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자본가들과 이들을 옹호하는 자들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50년 후에는 거의 대부분이 사라질 자본가들이 마치 영원히 경제적 풍요를 누릴 것처럼 행세하고, 노동자들을 얕보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노동자를 종처럼 여기는 자본가들까지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본가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자들의 의식개혁이 필수적이다. 이념은 상대적인 개념일 뿐 현실의 이념은 상대적인 개념을 뿐이다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이미 붕괴되었지만, 진보와 보수는 정치적 실체로서 세계 각처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진보와 보수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서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역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진보와 보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대 민주주의 체제는 자유와 평등을 두 축으로 움직인다. 평등 없는 자유란 의미가 없고, 자유 없는 평등은 존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자유란 경쟁을 전제로 하는데, 평등하지 않은 경쟁은 우월한 자의 독점을 의미하며,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지배와 속박의 관계로 귀결되어진다. 또한, 자유가 없는 평등은 추동력의 박탈을 의미하고, 추동력이 박탈된 체제는 국제경쟁시대에서 존립할 수가 없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는 자유와 평등의 상호작용 속에서 안정과 성장을 이어간다고 말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상호작용 속에서, 상대적으로 평등에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진보이고, 상대적으로 자유에 좀 더 중점을 두면 보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와 보수는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한 존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절대적인 평등과 절대적인 자유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념의 스펙트럼 이념의 스펙트럼은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진보와 보수의 스펙트럼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이동해왔다. 1960년대까지는 진보와 보수가 한꺼번에 좌측으로 이동해 갔었고, 1970년대 이후에는 진보와 보수가 한꺼번에 우측으로 이동해 왔다. 다시 말해서, 1960년대의 보수는 지금의 진보보다 훨씬 좌측에 위치해 있었고, 현재의 진보는 1960년대의 보수보다 훨씬 우측으로 이동해 있다. 대표적으로, 토니 블레어의 영국 노동당의 정책은 1960년대의 보수당 정책보다 훨씬 더 우경화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프랑스나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이며, 미국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 진보는 유난하게도 1960년대의 화석화된 이념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개방을 종속이라고 비난하고, 외자유치를 국부유출로 치부하며, 공기업 민영화도 앞장서서 반대하며, 경제특구도 노동노예지구로 명명하여 반대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마저 개방, 공기업 민영화, 외자유치, 경제특구 지정 등을 통해 지금과 같은 경제번영의 기틀을 잡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문제들은 다음에 하나하나 따로 거론할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 진보가 만악의 근원으로 배척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을 채택하지 않은 나라 중에서는 단 하나도 번영하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은 먼저 지적해두고자 한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이 채택되어 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던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진보로부터 다양한 반론들이 제기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찍이 채택했던 영국경제가 프랑스나 독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연해진 1990년대 이후에는 반론의 목소리가 많이 잦아들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진보가 반동일 수는 없다. 진보는 과학이어야 하고, 과학은 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현실에 발맞추어 진보도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진보도 이제는 진화할 때가 되었다.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빈부격차 해소 진보의 핵심과제는 빈부격차 해소 '돈이 돈을 번다'는 명제는 전통적인 진보이념의 핵심이다. '자본가는 영원한 자본가이고, 노동자는 영원한 노동자이다'와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진다'는 소명제를 도출하게 하여 계급투쟁의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이 돈을 번다는 명제는 불변의 진리일까? 그것은 아니다. 반대로 '돈이 돈을 잃는다'는 명제도 동시에 성립한다. 기업의 생존율이 매우 낮다는 사실은 이 반대명제의 결정적인 증거일 것이다. 따라서 이 명제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돈이 돈을 벌기도 하지만, 돈을 잃게 하기도 한다'고 바꿔야 한다. 여기에서, 진보가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사실 하나가 있다. 선진국이 후진국에 비해 빈부격차가 적다는 점이 그것이다. 왜 선진국의 빈부격차는 상대적으로 적으며, 왜 후진국의 빈부격차는 상대적으로 클까? 이 의문을 규명하면 빈부격차의 운동원리를 도출할 수 있고, 진보의 지상과제라고 할 수 있는 빈부격차 축소를 위해서도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 빈부격차는 어떤 경우에 줄어들고 어떤 경우에 늘어나는가? 먼저, 빈부격차는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때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면 실업률은 낮아지고, 실업률이 낮아지면 임금상승률이 높아지며, 임금상승률이 높아지면 당연히 빈부격차는 완화되기 마련이다. 다만, 경제가 지나치게 빠르게 성장할 때에는 빈부격차가 더욱 커지는 경우도 나타난다. 임금상승에 앞서 이윤이 먼저 커지고, 이윤의 대부분은 자본가나 경영자 등 부자들에게 돌아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경제가 정체하거나 후퇴할 때는 빈부격차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경제가 정체하거나 후퇴할 때는 실업률이 높아지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임금 상승률이 낮아지거나 오히려 하락하기도 하며, 이에 따라 빈부격차는 확대되기 마련이다. 빈부격차가 한 순간에 확대되는 경우도 있다. 경제가 환란이나 공황 또는 초인플레이션과 같은 재앙을 빠져들 때이다. 중남미 경제의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큰 것은 이런 재앙을 여러 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빈부격차 축소가 진보의 지상과제라면, 진보는 경제의 정체와 후퇴 그리고 경제재앙을 어떤 경우에도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빈부격차가 확대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진보는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최고의 정책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빈부격차가 완화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진보는 어떤 주장들을 하고 있는가?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해치는 주장을 해온 것은 아닌가?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는 환란 전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상위권의 끝자락을 차지하고 있었다. 환란이 발발한 뒤 빈부격차가 일시적으로 확대되었지만, 지금은 점차 개선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는 OECD 국가 중에서 중위권에 속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로서 소득수준이 세계 50위권인 나라로서는 빈부격차가 비교적 적은 편에 속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빈부격차가 비교적 양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경제가 수십년 동안 고도성장을 안정적으로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진보가 얼마나 될까? 이것이 신진보주의 이것이 신진보주의 : 빈부격차 완화의 중요성 진보의 지상과제는 빈부격차의 완화여야 한다. 빈부격차 완화는 경제적 평등의 첫 번째 조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빈부격차 완화는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신진보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이룰 명제이다. 일반적으로 부자들의 소비성향은 낮은 편이고, 가난한 자들의 소비성향은 높은 편이다. 우선, 빈부격차가 확대된다는 것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소득이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또 소비성향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따라 유효수요의 부족을 부를 수밖에 없다. 유효수요가 부족해지면 경기는 침체되지 않을 수 없고, 극단적일 경우에는 경제공황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빈부격차는 더욱 커지고, 경제는 장기간 후퇴하거나 더욱 심각한 재앙에 빠져드는 악순환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반면에, 빈부격차가 완화되면, 소비성향이 높아지고 유효수요는 커지며, 이에 따라 경기는 팽창국면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경기가 팽창국면을 지속하면 실업률이 낮아지고 빈부격차는 더욱 축소되면서 경제는 선순환에 들어선다. 한 마디로, 빈부격차의 축소는 경제의 안정적 성장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빈부격차 축소를 위한 정책적 노력은 어떤 경우에도 꾸준히 기울여져야 한다. 빈부격차 축소를 위한 당면과제 : 재산세의 국세화 빈부격차를 축소시키기 위한 첫걸음은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하는 것이다. 소득뿐만 아니라 재산에도 세금이 누증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소득세는 누증세의 특성을 갖고 있으나, 재산세는 그렇지 못하다. 2천만원 짜리 자동차세가 5억원 짜리 아파트의 세금보다 더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재산세가 지방세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간단하게 말해서, 재산세를 지방세에서 국세로 전환하여 누증세 체제를 갖추도록 해야 빈부격차를 더욱 완화시킬 수 있고, 국민경제도 더욱 안정적인 성장가도를 달릴 수가 있다. 물론,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나라가 재산세를 지방세로 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 봉건영주시대의 전통일 뿐이다. 봉건영주시대를 거치지 않은 우리나라가 무조건 선진국의 과세체제를 따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빈부격차 완화는 국가정책적 목표이므로, 여기에 지대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재산세는 당연히 국세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 대신, 빈부격차 완화와는 상관없는 간접세, 즉 부가가치세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함으로써, 지방정부의 세수를 확보해줄 필요가 있다. * 필자는 21세기 경제학연구소 http://www.taeri.org 소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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