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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KBS
작성일 2020-07-25 (토) 11:31
ㆍ추천: 0  ㆍ조회: 677      
일본 개화의 창 규슈 '나가사키 데지마'









일본 개화의 창 규슈 '나가사키 데지마'

(KBS여행 걸어서 세계속으로)

1636년, 나가사키 앞바다!
일본은 왜 인공섬 ‘데지마‘를 만들었던 것일까?
4천 평의 조그만 섬, 그곳에는 일본사의 새로운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인공섬 나가사키 ‘데지마’
여인까지 바치며 조총의 기술을 확보했던 곳!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탄생무대가 됐던 곳!
일본 최초의 근대회사 ‘미쯔비시’가 시작된 곳!
막부 체제를 타도하고 메이지 유신을 이끌어낸 곳!
오늘의 일본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나가사키 데지마'

외래의 기술과 문물을 받아들여 가장 빨리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일본 민족.
이 전통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곳이 큐슈의 나가사키 항이다.

1543년 나가사키 인근에 포르투갈의 배가 표착하면서 일본의 개방 역사는 시작된다.

조총과 통일국가 완성과의 관계,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 미쓰비시 전기의 탄생 등
지금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있는 데지마를 통해 일본이 서구사상과 문물을 개방함에 있어
어떻게 개방과 통제를 절묘하게 해나가는지 당시의 일본역사와 함께 흥미롭게 추적해 본다.


▷ 서양과의 첫 만남, 조총과 카스텔라

1543년, 우연히 표류한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일본은 조총을 얻는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서양식 신무기는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총의 제작법을 알기위해 여인까지 바치며 기술을 확보했던 일본은 전국에 일본산 조총을 퍼뜨린다.
조총은 일본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조총부대는 혼란했던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총으로 한반도를 유린한다.
포르투갈이 전한 신문명은 현재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음식, 카스텔라를 만들었다.
1682년,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는 우리나라 사람 최초로 카스텔라를 먹게 된다.


▷ 인공섬 ‘데지마’- 바늘구멍으로 세계를 향하다

나가사키 데지마(出島), 약 4천 평인 이곳은 1636년에 만들어진 인공섬이다.
데지마는 기독교를 전파하던 포르투갈인을 수용하기 위한 국립감옥이었다.
부채꼴 모양의 데지마에서 육지로 나갈 수 있는 통로는 오직 다리 하나뿐.
포르투갈과 무역은 하되, 봉건제에 위협이 되는 기독교의 확산을 막기 위한 일본의 전략이었다.


▷ 기독교는 No, 무역은 Yes! - 일본 막부의 이중정책

1637년, 막부의 기독교 탄압과 지역 영주의 폭정에 대항해 농민들이 봉기한다.
일본의 기독교인들까지 참여해 3만여 명이 집결했으며, 막부는 12만 명의 군대를
동원해 겨우 진압에 성공했다.
시마바라 운젠은 농민군들의 처형장으로, 유황연기와 뜨거운 열탕의 모습이 지옥을 연상하게 한다고 해서지옥천으로 불렸다.


▷ 일본 속 네덜란드‘나가사키’

기독교도들의 반란으로 포르투갈은 일본에서 완전히 추방된다.
일본은 네덜란드와 새로운 무역 거래를 시작했다.
네덜란드는 망원경, 지구본, 시계 등 첨단 물품 뿐만 아니라
서양의학과 과학지식을 보급했다.
나가사키에는 당시 네덜란드인이 거주했던 1만평의 이국적인 정원과 서양식 저택들이 하나의 공원을 이루고 있다.


▷ 일본 근대화의 싹, 난학(蘭學)

1774년에 출간된 해체신서는 일본열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해체신서는 일본 최초의 의학 번역서로, 일본인 의사였던 스키타 겐파쿠가 서양해부학서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해체신서로 시작된 난학(蘭學) 열풍은 천문학, 물리학, 군사학 등 다른 분야로 확산됐다.
나가사키는 서양 지식의 핵으로 일본 지식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800년대 초, 난학 전문가들의 수는 천명을 넘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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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빛] 일본(왜)은 백제의 분국이었다! (2020-06-2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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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아이콘 KBS
2020-07-25 11:33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a1drLcfdw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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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아이콘 매일경제
2020-07-25 11:35
[매경시평] 조선에는 없고 일본에는 있던 것들

[김대기 KDI정책대학원 초빙교수]
기사입력 2016.09.04 17:24:06

기록을 보면 최소한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우리가 더 앞선 것 같다.
당시 조선은 일본을 오랑캐 취급했으니까. 1592년 왜선들이 부산 앞바다로 쳐들어왔을 때 형님나라에 조공 바치러 오는 줄로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

왜군 선봉장 고니시가 한양에 입성하면서 뱉은 첫마디는 "보귀롭다"였다.
성벽과 기와집들의 조형미에 감탄한 것이다. 그만큼 조선의 수준이 일본을 앞지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조선이 어쩌다가 일본에 뒤지게 되었을까?

가장 큰 요인은 세계 변화 흐름을 타지 못했기 때문이다.

16세기 이후 세계는 두 번의 큰 변화를 겪는다.
첫째는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고, 둘째는 산업혁명이다. 대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가 먼저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느냐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던 시대이다.

일본 역시 임진왜란 이후 내부 안정을 위해 쇄국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선진국인 네덜란드와 무역을 위해 나가사키항은 열어두었는데 이것이 신의 한수였다.

여기서 유입된 선진문물이 일본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지식층들은 의학, 천문학 등에 감탄하면서 네덜란드어를 배우는 열풍까지 불었다.
쇼군 역시 늘 세계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17세기 조선은 대륙의 주인이 청나라로 바뀌는데도 명에 대한 충성만 고집하는 우를 범했다.
선진문물이 중국을 통해 들어왔는데 청나라를 오랑캐 취급하면서 그 통로를 스스로 닫았다.
수명을 다한 성리학에 젖어 당파 싸움, 예송 논쟁이나 벌이면서 세월을 보냈다.

19세기 들어서도 조선은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수천 년간 우상이던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조그만 영국에 무참히 깨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미국에 혼나면서 서구와의 엄청난 기술격차에 놀란다. 결국 1868년 무능한 막부체제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시대로 가면서 세계 변화 흐름을 적극 수용한다.

조선이 뒤진 두 번째 이유로는 상공업에 대한 시각이 없어서다.

조선은 사농공상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상공인을 무시했다. 일본은 상공인을 우대했다.
조선에서 천민 취급을 받던 도공들을 최고계급인 무사로 대우해준 것이 좋은 예다. 그들이 결국 도자기 수백만 점을 수출해서 부를 쌓은 주역이 되었다.


19세기 일본은 유럽식 공장을 마구 유치하고, 장관 월급의 3배를 주면서 외국 전문가들을 모셔왔다.
기업을 키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이때 미쓰비시, 미쓰이 등 근대 기업들이 탄생했다.

그 결과 메이지유신 이후 불과 30년 만에 국력이 급격히 신장하면서 세계 열강에 합류했다.

세 번째 요인은 정치 리더십에서 갈렸다.

일본 지도층의 국가 발전에 대한 의지는 대단했다.
1871년 100명이 넘는 관료를 구미 선진국에 2년간 시찰을 보냈다. 이들이 보고 배워온 선진 제도와 산업화 전략이 일본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민법, 상법 등 근대 법체계도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19세기 조선은 순조 헌종 철종 등 존재감 없는 왕이 세도정치에 휘둘리면서 관료체제가 무너지던 시기이다. 일본의 인재들이 해외문물을 습득하는 동안 조선의 인재들은 낙향하여 시서화나 그리고 있었으니 나라가 잘될 리 없었다.

종합해보면 조선은 세계 변화의 흐름에 무심했고,
상공업을 경시했으며, 국가 리더십이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 당했다. 아주 처참하게.

역사는 반복한다.

무늬는 바뀌어도 본질은 같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세계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가? 상공인을 우대하고 있는가? 인재를 잘 활용하고 있는가? 관료 제도는 잘 작동하고 있는가? 정치 리더십은 믿을 수 있는가?

지금 돌아가는 행태를 보면 우리나 조상들이나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소녀상을 세우고 독도에 가서 만세삼창 부른다고 일본을 이길 수 없다. 우리 DNA를 바꾸지 않으면 언젠가는 또 당한다.

[김대기 KDI정책대학원 초빙교수]

http://epaper.mk.co.kr/?exec=viewsearch&GCC=AB00699&CNo=236303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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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아이콘 한국일보
2020-10-14 09:32
[같은 일본, 다른 일본] "배울 건 배우자"는 옛말..日 향한 한국의 시선, 어떻게 변했나?

입력 2020.10.14. 04:30 수정 2020.10.14. 08:26 댓글 866개

<22> 변한 것은 한국 사회다

일제 식민주의라는 역사적 그늘 탓에, 혹은 외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경쟁 의식이 솟기 쉬운 이웃 나라다 보니, 한국이 일본을 보는 눈에는 곱지 않은 정서가 깃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랬던 인식이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는 것을 부쩍 느낀다. 한국 사회가 일본 사회를 보는 눈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

https://news.v.daum.net/v/2020101404301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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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아이콘 한국일보
2020-10-14 09:49
[같은 일본, 다른 일본] 일본 시민들은 왜 가만히 있는 것일까?

입력 2020.05.06 01:10

<11> 무능한 정부를 꾸짖지 않는 일본 시민 사회

◇“일본 시민들은 왜 가만히 있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헛발질이 계속되면서,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일본의 시민들은 왜 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는가”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시민의 힘으로 폭주하는 권력을 응징한 경험이 생생한 한국 사회에서 익히 나올 수 있는 궁금증이다.

신종 전염병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계절이 바뀌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진단 검사를 늘리면 의료 붕괴가 되네 마네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질질 끌고 있다. ‘긴급 사태 선언’은 했지만 시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요청할 뿐 이렇다 할 방역 대책이 없어 불안감은 커질 뿐이다. 국가 원수가 한가롭게 애완견과 노는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 공분을 사는가 하면, 엄청난 국가 예산을 써서 지급한 천 마스크는 불량품이 속출한다. 게다가 이 마스크의 공급처는 정치권과의 유착이 의심되는 정체 불명의 유령 회사란다.

이쯤 되면 시민의 인내심도 바닥날 만한데, 시민들이 정부를 꾸짖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일본의 시민들은 스스로의 생명과 건강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일본의 시민들은 왜 무능하고 오만한 권력을 묵인하는 것일까?

◇역사 속으로 사라진 ‘데모의 시대’

한국에서는 정치적 이슈뿐 아니라 성차별, 직장내 괴롭힘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집단 행동이 끊이지 않는다. 광화문 광장은 늘 시끌벅적하고 혼란스럽지만, 덕분에 사회적 과제가 공론화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시민들의 대규모 집단 행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혐한 시위’ 같은 인종차별적 집단 행동은 종종 있지만, 이런 움직임은 막연한 배타주의와 혐오의 감정을 드러내는 정치적인 이벤트에 가깝다.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해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 운동과 동급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과거 일본에도 지금의 한국에 못지 않게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우렁차던 시절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이 터지자마자 일본의 시민들이 연대해서 대규모 반전 시위를 지속적으로 실행에 옮겼던 일이 잘 알려져 있다. 전국의 300여개 단체가 연대한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 연합’(줄여서 ‘베평련’)이 주도한 시위에는 수백만명의 시위대가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베평련’은 일본 정부에게 전쟁에 협조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요구했을 뿐 아니라, 미국 정부에도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당당하게 전달했다. 1965년 11월 미국의 신문 <뉴욕타임즈> 1면에 일본 시민의 힘을 모은 ‘베평련’의 이름으로 “폭탄은 베트남에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호쾌한 캐치프레이즈의 전면 광고가 게재될 정도였다. 무기력한 지금과는 전혀 딴판인 ‘데모의 시대’가 일본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어디까지나 반 세기 전의 역사일 뿐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사회적 변화 속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옅어졌다. 학생 운동의 주역들이 정치권으로 대거 진출한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 시민 운동을 이끌던 리더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데모의 시대’에대한 기억의 끄트머리에는 급진 좌파 학생들의 과격한 무장 투쟁 (일명 ‘전공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남아 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5040923757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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