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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무너지는 공동체..
2004. 7. 13. 중앙일보 (펌) [문창극 칼럼] 무너지는 공동체 에든버러공 펠로십으로 한달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머무르며 머릿속을 지배했던 생각은 역사와 공동체였다. 800여년 가까이 된 대학, 1000년이 넘은 성곽, 수백년 이상 된 성당들, 이런 건물들 속에서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는 오는 그런 반복을 계속하며 이 나라가 공동체를 유지해 온 것이 인상적이었다. 100년 단위의 역사현장을 보면서 매일매일의 현장을 쫓아 살아 왔던 기자는 왜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크고 심각한 일들도 100년 단위의 역사에서는 작은 물방울일 수도 있다"며 스스로 위안해 보기도 했다. *** 경제난보다 더 심각한 병 현실은 '역사 속의 이 순간'이며 곧 역사의 한 부분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역사의 시각에서 과연 건강한가. 서울로 돌아와 느끼는 생각은 '아니다'였다. 우리는 지금 병들어 가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것도 병이다. 경제난국이 눈에 보이는 병이라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역사 관점에서 더 심각한 병은 우리의 공동체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점이다. 하나의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를 묶는 끈이 있어야 한다. 지역.언어.혈연 등이 눈에 보이는 끈이라면 구성원 간의 연대감은 보이지 않는 끈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보이지 않는 끈이 풀어지고 있다. 같은 땅에 살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전혀 다른 생각들을 하며 싸우고 헐뜯기 시작했다. 어느 사회든 구성원들은 개인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애쓴다. 특히 시장원리 속에서는 개인의 이윤 동기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사회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장소만은 아니다. 그게 전부라면 그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를 떠나 공동체라는 전체를 생각해야만 하는 영역이 있다. 의사가 개인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의료행위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의술은 이익의 동기를 초월해 공동체 구성원의 건강을 보살피는 공공목적이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월급 때문에 선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공동체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신문기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기득권 보호에 앞장서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소통과 권력에 대한 감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공동체란 집단.정파.개인의 이익을 초월한 영역이 있다. 이런 공공의 영역을 지키고 보전해 가야만 건강해진다. 정치란 공동체 차원에서 공공선(公共善)을 추구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모습은 거꾸로다. 정치가 오히려 공공 영역을 와해시키고 적과 동지로, 기득권 대 반기득권이라는 논리로 공동체를 해체.분리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수도 이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 결정은 무엇이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하느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기득권 세력이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도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여당 원내대표도 수도 이전 반대가 "수도권 부유층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부자와 가난이 수도 이전과 무슨 관계인가. 왜 이런 문제를 놓고도 공동체를 이렇게 갈라 놓는가. 그들의 눈에는 공동체는 없고 적과 동지만 있는 모양이다. 매사가 투쟁이고, 대결이고, 타도뿐이다. 그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갈라 놓는다. '당신들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욕심 많은 기업인들 때문에 당신들이 손해보고 있다''당신들이 가난한 것은 부자들 때문이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 이제 나라에는 공동체는 사라지고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기업과 노조만 존재할 뿐이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곳에서 공공선을 말하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그런 말을 해봐야 기득권 옹호로 매도된다. 이것이 이 시대 우리의 병인 것이다. *** 매사를 투쟁과 타도로 몰아 역사에서 현재의 5년은 노무현 시대다. 누가 이 5년을 줄일 수도, 대신할 수도 없다. 온전히 그로 대표되는 기간이다. 노 대통령은 습관적으로 퇴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책임이 무엇인가 심사숙고해야 한다. 노무현 시대에 우리 공동체가 갈기갈기 찢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가. 경제난국은 그래도 치료가 쉽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공동체는 복원이 어렵다. 노 대통령은 특정세력.계층.집단의 대표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려고 공공선을 위해 애썼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은가. 문창극 논설주간 . 2004.07.12 18:25 입력 / 2004.07.13 09:50 수정 http://news.joins.com/opinion/200407/12/200407121825230401100010101012.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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