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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딜레마, 경제냐? 정권이냐?
이코노미스트 648호 ( 2002.8.6.) 정권 유지하자니 경제 피폐 국가경제 살리자니 정권 위태 -------------------------------------------------------------------- 김정일(60)의 북한이 변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월부터 기업 자율권의 확대, 식량배급제의 단계적 폐지, 달러 대 원화 환율 현실화 등을 골자로 하는 시장경제적 개혁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업 분야에서도 중국이 개혁·개방의 초기 단계에 시행한 것과 비슷한 형태의 가족 단위 농업생산 제도를 도입하고,거둬들인 곡물의 국가 수매 비율을 낮추는 한편 개인이 시장에 내다파는 양을 크게 늘리는 개혁 프로그램을 시범 실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 단위의 생산이란 말 그대로 가족끼리 하는 영농이다. 열심히 일하면 그 보상이 온전히 가계 소득으로 돌아오는 인센티브 시스템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북한의 제도 변화는 화폐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이며 성과급 도입, 가계 기업 허용 등으로 미루어 시장경제 메커니즘의 도입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시장경제 도입의 전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식량배급제 폐지에 대해서는 식량난의 만성화로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의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발 빠르게 ‘식량배급제 폐지, 현금 사용 확대 등의 정책 변화는 김위원장이 개혁주의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때마침 북한은 정세현 통일부 장관에게 전화 통지문을 보내 “얼마 전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북남 쌍방은 앞으로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에서 제7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열고 이미 쌍방이 합의한 남북 철도의 연결 문제, 이산가족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8월 초 금강산에서 남북 장관급회담 대표들의 실무접촉부터 갖자”는 제의도 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26일 이에 대해 "북한이 사실상 사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을 카운터파트로 하는 게임이다. 그에 대한 신뢰가 그 기초이다. 그가 북한을 장악하고 있고 믿을 만한 인물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김정일은 과연 믿을 만한가？ 햇볕정책에 대한 동조는 그에겐 대남전략의 일환일 뿐이다. 정권 안보에 도움이 될 때만 유효한 전략이다. 20세기 말 동구 공산권의 붕괴 과정에서 목도했듯이 공산주의 폐쇄경제의 개방은 권력층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더욱이 최고 권력자들은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가 가장 극적인 예이고, 고르바초프는 거의 유일한 예외이다. 김정일의 딜레머는 정권을 유지하자니 국가 경제가 피폐해지고 국가 경제를 살리자니 정권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는 당·군부 등의 권력 기구들을 서로 차단해 이들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충성 경쟁을 벌이도록 만들었다. 둘레를 따라 몇 개의 칸막이가 쳐진 둥그런 방 한가운데 그 혼자 서 있는 형국이다. 철저한 분할 통치이다. 1949년 인민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머니 김정숙을 여읜 그는 어려서부터 권력에 대한 욕망을 키웠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김일성의 우상화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91년 최고사령관이 된 그는 김일성의 생전에 이미 사실상 북한의 최고통치자가 돼 있었다. 영화광에, 헤네시 꼬냑을 즐기고 심야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밴 이 절대권력자의 존재를 떠나서는 북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 그이기에 그가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는 북한의 국가정책 노선이 바뀔 수도 있다. ‘우리 실정에 맞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주체사상과 시장경제의 공존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과연 자신을 제물로 바쳐 북한사회를 개방으로 나아가게 할 만한 인물일까？ 설사 그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판단할 만한 증거들이 부족한 것 같다. 이필재 기자·jelpj@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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