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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다자안보협력과 한반도 평화구축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기획학술회의 "동아시아 국제환경 변화와 남북관계의 향방" 2001. 8. 24 동아시아 다자안보협력과 한반도 평화구축 박건영 가톨릭대 국제대학원장 1. 동북아 다자간안보협력의 의미 1.1 협력적 안보 다자간 안보협력은 힘의 우위에 바탕한 전통적인 안보 개념과는 인식론적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형태의 안보적 시각과 방법론에 기초해 있다. '협력적 안보(cooperative security)'라는 새로운 개념은 냉전종식 후 제기된 다양한 안보위협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려는 시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이해는 안보개념의 역사적 조망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1차대전을 경험한 유럽 제국은 권력정치에 기초한 그간의 세력균형적 안정의 환상에서 깨어나 보다 제도적인 안전보장 장치의 구축을 열망하게 되었다. 그들은 '실익정치(realpolitik)'와 권력정치라는 국제관계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국가행위의 결정요인으로서 규범과 신념체계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그들은 국가들이 특정한 규범과 규칙을 이행하도록 하는 유인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이들이 자구적 세계의 구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소위 집단안보(collective security)의 제도 하에서 국가들은 군사력 증강이나 동맹에 의하지 않고 다수의 국가가 협력하여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소수 국가의 평화파괴 행위 또는 무력사용을 방지·격퇴함으로써 개별국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집단안보도 세력균형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규제되고 제도화된 균형잡기(regulated, institutionalized balancing)"로서 홉스적 무정부 상태에서의 균형잡기와는 차별화된다. 세력균형을 통해 안보를 유지하던 유럽은 1차대전 후 집단안보를 선택해 국제연맹에 안보를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제연맹으로 결실을 본 집단안보는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 열강이 팽창주의화하자 이내 무능력을 드러내었다. 2차대전 후 구미 열강은 보다 현실적이고 능력과 제도화 수준이 제고된 국제연합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개별국가의 안보를 증대하기 위한 대안적 수단으로서 억지(deterrence)와 봉쇄(containment) 개념에 기초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바르샤바조약기구(WTO)와 같은 집단방위(collective self-defense)의 개념도 동시에 도입하게 되었다. 집단방위는 한동안 개별국가의 안전을 효과적으로 보장해주는 기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냉전이 축적되어 첨예한 단계로 전환하면서 억지와 봉쇄가 안보를 오히려 감소시키는 결과를 산출하자 새로운 안보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었다. 즉 냉전기 유럽 제국은 기존의 핵억지를 통한 안보전략과 이에 따른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은 오히려 안보유지에 위협이 될 뿐 아니라, '핵전력의 평형(nuclear equilibrium)'에 따라 군비증대는 안보를 내적으로 침식하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대안으로서 '공동안보(common security)'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열강은 자국 또는 자신의 진영만의 안보를 모색하는 절대안보에 기초한 안정이 위험을 배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에, 안보를 '공동의 문제'로 보고 진영간의 신뢰구축, 이해증진, 나아가 군축을 통해 안보를 더불어 도모하는 것이 안보의 원래의 목적을 달성키 위한 효율적인 대안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면, 유럽 제국을 중심으로 힘에 의해 안보위협을 '억지'한다는 현실주의적 시각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오인과 오해를 제거하여 안보위협을 '해소'한다는 자유주의적 국제정치철학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확산되었던 것이다. 공동안보는 또한 '포괄적 안보(comprehensive security)'의 개념을 그 구성요소의 하나로 포함한다. 안보는 결국 국가의 생존이자 안녕이다. 따라서 국가적 생존과 안녕을 보장하고 증진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협력이 일차적이고 지배적이며 직접적인 것이 되겠지만, 경제, 과학, 기술, 환경문제와 관련한 국가간 협력, 그리고 인도주의적·문화적 협력 또한 방기될 수 없는 안보의 중요 구성요소라는 것이다. 1970년대 CSCE가 군사, 경제, 인권을 안보의 3대 바스켓으로 설정한 것도 포괄적 안보개념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와 같은 공동안보의 개념은 1970년대 유럽안보협력체계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고, 1980년대를 거치면서 국제안보 토론의 장에 중심적인 담론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되었으며, 냉전을 종식시킨 주요 결정인자로 간주되고 있다. 공동안보의 개념은 냉전종식 후 협력적 안보의 개념으로 재정의된다. 공동안보 개념을 구체화한 협력적 안보는 구성원들간의 정치군사적 신뢰를 구축하여 분쟁을 사전에 예방한다는 예방외교(preventive diplomacy)와 기존 분규(disputes)가 분쟁(conflicts)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한편 분쟁이 이미 발생한 경우 이의 확산을 막기 위한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를 강조한다. 특히 예방외교를 핵심으로 하여 '상호안심(mutual reassurance)'의 수준을 증대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호안심의 수준이 증대되기 위해서는 군사적 투명성이 제고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화, 정보교환, 그리고 의도의 정확한 전달을 실현할 수 있는 다자간 안보협력의 제도화가 필수적인 것이 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군축 실현으로 이어져 국제적 안보위협의 해소를 구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협력적 안보는 공동의 안보를 추구하고 안보위협의 '해소'를 지향한다는 면에서 안보개념의 철학적 전환뿐 아니라, 현상유지를 지향하고 (가상의) 적을 상정하는 집단안보나 집단방위 개념과는 달리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본원적이고 진취적이며 평화적인 접근으로 평가된다. 협력적 안보는 또한 보다 심화되고 확장된 포괄적 안보 개념을 수용한다. 냉전기 개별국가의 생존은 주로 군사적인 관점에서 파악되었다. 비군사적인 위협요인은 양대 진영 맹주의 '전략적' 지원에 의해 대체로 잠재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으로 보편경쟁이 보편화되면서 잠재화되었던 경제적 마찰 등 비군사적 안보위협 요인이 현재화되었다. 아울러 냉전의 종식이 세계화의 가속화를 야기하여 환경, 인구, 국제범죄 등 지구적 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킴으로써 국가의 생존은 이들 모두를 포괄한 포괄적 안보위협에 직면하게 되었고, 포괄적 대처에 의해 보장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범세계적인 문제들은 국경을 초월하여 발생하는 바 어느 한 국가의 일방적 행동에 의해 해결될 수 없으며 여러 국가의 협력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1.2 다자주의 협력적 안보는 "셋 또는 그 이상의 국가간의 관계를 '일반화된 행위원칙에 기초하여 조정하는 제도의 유형'"으로 정의되는 다자주의에 기초할 이유는 없다. 남한의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 특히 잠수정 침투 및 서해교전시 대북경협을 병행·지속시킨 사례는 일방주의적 협력적 안보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핵의 평화적 이용 의지와 양국간 핵 협력을 천명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1985년 '포스 데 이구아스 선언(Foz de Iguazu Declaration)'은 양자주의적 협력적 안보의 한 사례이다. 그러나, 전기한 바와 같이, 범주와 종류가 확대되어 가는 초국경적 문제들의 해결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다자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그뿐 아니라 다자주의는 국가간 협력을 촉진시키는 "공간적 차원에서의 포괄적 상호주의(diffuse reciprocity)"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주지하듯, 포괄적 상호주의는 특정 사안에 대한 특정 시공간에서의 명확한 가치교환을 상정하는 구체적 "상호주의(specific reciprocity)"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사안적·시간적·공간적 유연성을 허용하는 호혜관계를 의미한다. 특히 공간적 차원에서의 포괄적 상호주의는 다자간 안보협력에 대한 강력한 유인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다자간 틀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행위자 A가 B에게 혜택을 제공했을 때 B가 아닌 또 다른 행위자 C가 유사한 양의 가치를 A에게 제공한다 해도 A는 그것을 상호주의의 유지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수준의 자원 배열, 능력, 제약, 조건 등의 불균등성을 고려할 때 다자주의는 결과적으로 국가간 협력의 가능성을 높히는 작용을 한다. 1.3 다자간안보협력의 역사: OSCE의 사례 최초의 다자간 안보협력에 대한 구상과 이니셔티브는 소련에 의해 이루어졌다. 소련은 1954년 "범유럽안보회의"의 구상을 밝히면서 모든 유럽국가들이 참여하고 제도적 장치에 의해 지지되는 "50년 조약"의 체결을 제시하였다. 서방은 이러한 제의가 동독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서독의 NATO 가입을 방해하며 유럽과 미국간의 안보이익을 분리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여 거부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1960년대 중반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하고 체코 침략(1968년 6월) 등에 따른 서방의 대소 경계를 완화하며 서방과의 경제·기술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나아가 중·소 긴장고조에 따른 중국과의 대결구도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다시 한번 안보협력의 구상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즉 소련은 유럽의 전후 국경선을 재확인하고 동서 양진영간 경제협력을 촉진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유럽안보회의의 개최를 다시 제안한 것이다. 1969년 서방은 세가지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긍정적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소련은 미국 및 캐나다의 참여보장, 베를린의 법적 지위 재확인, 유럽에서의 군축에 관한 논의, 그리고 인권을 회의 의제로 삼는다는 서방의 조건을 대부분 수락하였고, 유럽에서의 안보협력을 위한 항해는 비로소 시작되었다. 참여국들은 1972-75년 동안의 협상을 거쳐 1975년 8월 1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정치·군사적 신뢰구축," "경제, 과학, 기술, 환경 협력," 그리고 "인도주의적 문화적 협력" 등 3개의 바스켓을 담고 있는 최종의정서에 서명하고, 이의 이행을 위해 정기적으로 회동하고 의견을 교환하기로 약정하였다. 이로써 소련은 전후 국경선 유지, 독일통일 가능성 배제 등 유럽에서의 전략적 안정을 기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 등 서방은 소련 및 동구에서의 자유화를 진척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아울러 양진영은 적대적 관계를 협력적 관계로 전환시킴으로써 평화와 안정 속에서 내적 발전에 진력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참여국들은 1984년 1월 17일-1986년 9월 19일 스톡홀름 회의에서 헬싱키 최종의정서 상의 신뢰구축조치(Confidence Building Measures)를 신뢰안보구축(Confidence and Security Building Measures) 조치로 강화하였고, 1994년 비엔나 문서(Vienna Document)를 통해 완성하였다. 냉전기에는 협의체로서의 신축적인 운영을 위해 상설 조직, 장기 계획 등이 상정되지 않았으나, 냉전종식 후 파리 정상회의(1990.11.19-2.1), 헬싱키 정상회의(1992.7.9-10), 부다페스트 정상회의(1994.12.5-6)를 통해 안보협력을 위한 CSCE의 역할 강화 및 기구화가 추진되었고, 1995년 비로소 CSCE는 OSCE라는 이름으로 "과정(process)에서 기구(organzation)"로 전환되었다. OSCE는 구성원간에 복잡한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있고 다루는 의제도 다양한데다 컨센서스에 따른 의사결정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토론이 어려우며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나아가 구속력과 물리적 수단을 확보하고 있지 못해 NATO 등 집단방위체에 비해 효과적 위기·분쟁 관리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OSCE가 군사활동 보다는 예방외교에 중점을 두고 있는 안보협력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평화와 안정 유지에 기여하는 규범적·제도적 가치는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나아가 CSCE는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유럽재래식무기감축협정(the Treaty on Conventional Armed Forces in Europe, 1990 CFE), 정치적 구속력을 가지는 유럽병력감축협정(CFE-1A, 1992)을 진수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영공개방협정(the Open Skies Treaty, 1992)을 성사시키는 데도 철학적·도덕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유럽의 지역안보의 증진에 유의미하게 기여하였다. 나아가 OSCE는 보스니아, 헤르쩨고비나,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체첸, 코소보 등에서 효과적인 평화유지·재건 활동을 펼침으로서 이 기구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를 증대시킨 바 있다. 2. 한반도 평화의 의미 2.1 적극적 평화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통해 분단을 완전히 극복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남북간에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고 남북 주민이 상호 적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태에서, 당장 분단을 해소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남북에 만연한 사회·문화적 적대의식을 거둬내고 군사적 분쟁의 가능성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평화는 단순히 분쟁이 사라진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분단은 그 자체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구조화된 폭력이다. 분단에 내재한 폭력성을 제거하고 궁극적으로 분단을 해소할 때,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이루어질 수 있다. 요컨대 한반도 평화는 분단의 극복과 분리될 수 없는, 역동적이고 전진적인 과정이다. 2.2 정전체제의 해체 o 평화협정의 체결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구축에 평화협정의 체결이 필요조건은 아니다. 당사자 문제로 인해 정전협정의 대체가 어려울 경우 러시아·일본의 방식을 따를 필요가 있다. o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 평화협정은 정치적 상징성의 측면에서 보면 다대한 의미를 지니나, 한반도 평화정착의 측면에서 보면 실질적인 담보와 조약 당사자 간의 평화의지가 없을 때는 휴지 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즉 평화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군비통제 조치가 필수적인 것이다. o 교류·협력의 확대·심화를 통한 사실상의 통일 지향 3.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과 한반도 평화구축간의 관계 3.1 남북간 안보딜레마 완화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의 예에서 보듯이, 레짐 형성을 통한 신뢰구축(의사소통의 개선, 배반 처벌에 대한 기대)이 행위자들로 하여금 suboptimal의 상황에서 optimal의 상황으로 옮아가도록 할 수 있다. 3.2 위기관리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여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고, 기존 분규가 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한편 분쟁이 이미 발생한 경우 이의 확산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다. 3.3. 미중갈등에 따른 남북에 대한 "줄서기 강요" 가능성 완화 미중관계가 갈등적으로 변하면 동맹대국들이 남북한에 대해 줄서기를 강요할 것이고, 남북은 일국 경도(傾倒)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월츠 식으로 말하면 "생존 확보"를 위해 "주권 양도"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맹국의 적과의 갈등이 야기되고 그 여파로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한반도 평화구축 노력이 훼손될 것이다. 3.4 한반도 평화체제 국제적 보장 3.5 한반도 군축 촉진 동북아 안보의 불안정으로 인해 이 지역국가들이 군비증강과 군 현대화 작업을 지속한다면 남북한만의 군축은 통일된 한반도의 안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안보·협력적 안보·포괄적 안보개념에 기초한 다자간 안보협력은 한반도 군축의 분위기를 조성·유지하는 중요한 촉진제가 된다. 4. 현 단계에서의 전망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의 제도화는 단기적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다양한 문제가 산재하지만 특히 대량파괴무기, 평화체제 구축 등 북한 및 한반도 문제의 해결 가능성이 불투명하고, 중국의 국내우선주의, 미·중/중·일 관계의 구조적 경직성, 그리고 미국을 중심에 둔 양자적 군사동맹에 있어 중대한 변동을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지역적 안보구도의 변화를 자극할 수 있는 변수들이 발견된다. 다자간 안보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주요 요인들에 대해 토론해보자. 4.1. 북한 및 한반도 상황의 변화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 구축노력에 최대의 장애는 북한이었다. 정상적인 국가간 관계가 이루어지기 전에 다자간 안보협력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체제붕괴를 우려케 하는 강한 대미/대남한 불신이 다른 하나의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2000년 들어 북한의 운명과 지역적 안보협력의 노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남과 북의 정상들은 2000년 6월 15일 한반도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남과 북의 통일여정에 대한 공동인식, 이산가족 교환 및 비전향 장기수 문제 해결, 각종 교류협력, 당국간 대화 개최, 정상간 교차방문 등의 문제에 합의하였다. 다자간 안보협력과 관련된 6·15공동선언의 핵심은 경제교류협력의 승단(昇段), 주한미군 문제의 사실상 해결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등을 포함하는 경제교류협력의 질적 변화는 남북간의 정치·군사적 신뢰가 구축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경의선과 경원선의 복구작업은 남북뿐 아니라 동북아 제국간의 신뢰구축과 상호의존의 심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판단된다. 남북의 지뢰제거 작업 자체가 이미 남북간의 군사적 신뢰가 일정부분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군사적 긴장완화의 증폭효과도 간과될 수 없는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CR, TSR)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동북아 제국과 유럽이 연결되어 거대한 물자와 인적 교류의 연결망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형성될 뿐 아니라 시베리아 및 중국 동북부의 개발에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동북아 제국은 '만남의 기회'가 많아짐에 따라 오인과 불신을 해소해 나가기 용이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요 경쟁자들 사이의 평화적 공생은 더 쉬워진다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 익숙해지고, 서로의 움직임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히 경험은 기존의 합의와 자주 받아들여지는 관행들에 더 잘 따르게"한다. 경쟁자간의 경험만이 아니라 태도도 닮아간다는 것은 그들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조정이 수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주한미군 문제이다.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은“자주라는 말은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북한쪽에서만 사용해 오면서 '반미, 미군철수'라는 개념으로 오해됐으나 이번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을 통해 '자주'가 외세배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완전히 정리한 것"이라고 공동선언 제1항에 대한 설명을 제시했다. 이는 '페리 프로세스'가 안정적으로 궤도를 타고 있고, 1992년 김용순-캔터 회담 이후 북한의 주한미군에 대한 전향적 태도가 반(半)공식화되어 왔다는 점, 후기할 북미간 10·12공동성명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지역적 안정자"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비교적 신빙성을 확보하고 있는 발언으로 판단된다. 북미 양국이 처해있는 구조적 조건은 타협의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사활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지 알고 있다. 체제보장과 대량파괴무기 확산의 카드가 교환되어야 한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는 미국이 북한에 어떠한 유인을 제공할 것인가에 문제의 핵심이 놓여있다. 미국의 입장은 어떠한가? 사실 냉전종식후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향적인 접근은 세계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용이하게 설명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북한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상이한 태도는 미국이 북한을 포용하지 않을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북한은 이라크와는 달리 지역패권을 노리는 것도 아니고 석유수송로를 방해하는 것도 아니다. 북한의 내구력은 익히 알고 있다.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국지전화하지 않고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미국은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북강경정책은 우방인 남한과 "대국" 중국 및 러시아의 반대에 직면하게 될 뿐 아니라 난민과 '타의에 따른 연루(連累)'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의 우려를 자아낼 가능성이 높고, 이는 미국의 전략계산에 중요한 투입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더욱 중요할 수 있는 문제는 미국의 대중국전략과 관련하여 북한이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가진다는 점일 것이다. 미국은 북한을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국제질서내로 편입시킴으로써 지역 패권에 대한 의도와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보여지는 중국을 '필요시(必要時)' 견제할 수 있는 입장에 서기를 바랄 것이다. 북한이 미국의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중국과의 결속도를 더욱 높혀간다면, 미국의 세계전략은 동북아에서부터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대량파괴무기 확산 등 한반도 및 동북아 안정 유지문제에 관해 합리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미국은 북한에 수용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중국이 아닌 미국 주도 하에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들이려 할 유인을 갖게 된다. 부시 요인도 찻잔 속의 폭풍이 될 개연성이 있다. '정치인들의 발언'과 '현직(incumbent)의 이행'은 서로 다른 이야기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클린턴은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중국의 기회가 미국의 이익"이라고 역설했다. 대중 영구적 정상무역관계법안(PNTR)의 의회통과를 진두지휘했던 인물도 클린턴이었다. 그러나 8년전 대선 후보지명 수락연설에서 "바그다드에서 북경에 이르기까지 폭군들을 결코 옹호하지 않는 미국"을 천명하면서, 중국에 부여된 최혜국대우(MFN)를 인권개선 조건으로 지속시키거나 경우에 따라선 박탈할 것이라고 하는 등 부시(Sr) 정부와는 차별화된 대중정책을 취할 것을 확실히 했던 인물도 바로 그다. 요컨대 미국의 대북정책은 작은 요동은 있을 수 있어도 전략적 변화의 가능성은 희박하고, 북한은 일탈 행동을 자제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북미기본합의에서 약속된대로 "미국과 북한은 상호관심사항에 대한 진전이 이루어지는 데 맞추어 양국 관계를 대사급으로까지 격상시켜 나갈" 가능성이 높다. 4.2. 중국의 변화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의 성사는 북한 못지않게 중국의 입장이 중요하다. 소극적으로 일관한 중국의 태도는 변화할 수 있는가? 몇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정치·군사 엘리트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짐에 따라 안보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 대해 중국이 이해의 폭을 넓힐 가능성이 있다. 섐보(David Shambaugh)에 따르면, 인민해방군의 현 지도부는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시피한 중국 내륙 군구(軍區)의 야전 경험이 풍부한 60대 후반 또는 70대의 원로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외국 여행이나 유학을 한 적이 없으며 외국어 구사 능력도 없다. 야전군 사령관으로서의 경험으로 인해 그들은 세계안보 또는 정치·군사적 문제들보다는 야전 전술과 관련한 토론에 훨신 더 익숙해있다. 따라서 그들의 세계관은 매우 패쇄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가깝다. 그들은 또한 "훈육과 비밀"을 보상하는 정치·군사적 문화에 잘 사회화되어 있다. 그 결과 그들은 군사적 투명성이 안보를 오히려 증진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바로 아래의 지도부는 40대 또는 50대의 장군/교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중 많은 수는 외국 경험과 외국어 구사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급자들에 비해 비교적 개방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들이 "민족주의적 신화"에서 벗어나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의 군비증강 및 자극적인 군사행동이 일본의 군사적 독자노선화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일부는 중국의 대일본 군사전략이 1930년대 일본과 1990년대의 일본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족해 한다. 물론 이들은 이러한 시각을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다. 숙청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5년 이내 현 지도부가 퇴진한다고 했을 때 21세기 초 인민해방군을 지도할 세력은 바로 이들이다. 이때가 되면 중국의 전략계산에 다자간 안보협력이 보다 진지하게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중국의 개혁개방에 따른 경제성장과 외부와의 교류 확대는 중국의 민족주의를 순화시키게 될 것이다. 중국의 경제군사력 증대는 외적 침투 및 착취에 대한 중국의 피해의식을 감소시켰고, 자신감을 회복시켰다. 지속되는 개혁개방이 이를 반증한다. 1997-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시 중국의 위엔화 평가절하 자제는 중국의 내구력과 지도력을 과시한 중요한 한 사례이다. 중국의 경제군사력 증대는 또한 정당한 국제적 위상에 대해 중국이 핏대를 올려 언급할 필요성도 감소시키고 있다. "중국의 기회는 미국의 이익"이라는 클린턴 미 대통령의 선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수모의 100년에 기인한 "표독한 민족주의(virulent nationalism)"는 중국 외교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 옥센버그(Michel Oksenberg)가 제시하듯, "자신감있는 민족주의(confident nationalism)"가 중국의 외교를 뒷받침할 미래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다자간 안보협력을 추동할 또 하나의 요인은 중국의 민주화와 관련되어 있다. "민주국가들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을 차치하더라도, 국가간 의사소통의 기준과 규범이 수렴하여 오해와 오인에 따른 경계와 증오의 가능성을 낮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언제 민주화될 것인가? 현시점에서는 비관론이 지배적이다.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과 먼로(Ross H. Munro)는 이들중 가장 극단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정치문화는 민주주의를 배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민주화 가능성이 현 시점에서 높지 않다 하더라도, 위의 묘사는 중국의 역사와 정치과정을 정형화하고 단순화하는 측면이 있다. 사실 로크가 근대민주주의의 기반을 세우기 200년 전 중국의 맹자는 "계약사상"과 "역성혁명론"을 담고 있는 왕도정치를 설파하였다. 민주적 이상뿐 아니라 제도면에 있어서도 중국은 서구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다. 서구 사회가 봉건세습제에 의해 통치되고 있을 때 중국은 이미 과거제도를 2000년 동안이나 시행하고 있었다. 고관대작의 자식들도 과거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중요한 벼슬을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요소인 기회평등과 사회적 이동성(신분 상승)을 보장한 제도로 간주될 수 있다. 또한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사헌 제도인 도찰원(都察院)과 국왕의 독주를 간쟁하는 사간 제도인 간원(諫院)은 정부 권력의 남용 및 제국적 악정(惡政)에 대한 견제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단지 서구가 먼저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민주적 전통은 중국의 몰락과 함께 시들어갔다. 특히 지난 수십년 간의 전체주의 독재 기간동안 민주적 이상과 제도는 질식해 있었다. 개혁 개방이 선언된 지 20여년, 중국은 변하고 있는가? 조심스런 긍정론이 우세하다. 중국은 1979년 이후 괄목할만한 경제성장 속에 인민공사 해체, 사유제 인정 및 확대, 국영기업 민영화, 가격자유화 등 경제개혁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1978년 중국의 GNP에서 국가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90% 이상이었으나, 1996년 45%로 감소했다. 국영통신사인 신화사의 시장점유율은 1979년 97%에서 1988년 33%로 급감하였다. 경제성장과 개혁의 지속에 따른 중산층의 등장과 부상 그리고 외국자본 유치 및 국제무역의 확대, 국제기구에의 편입에 따른 국제규범과 타문화와의 만남은 중국의 경제개혁을 추동할 뿐 아니라 정치적 민주화를 촉진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1982년 중국 인민공사의 해체는 향진(鄕鎭) 수준에서의 직접선거로 이어졌고 1990년대초에 이르러 90%, 현재는 100%의 지방인민대표대회가 선거로 구성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현(縣) 단위 인민대표대회 대표를 뽑는 선거가 복수의 후보 중에서 몇명을 고르는 차액선거제로 바뀌었고, 공산당 후보에 대항하는 농민들도 이제는 "인민의 적"으로 비판받지 않는다. 최근에는 문화혁명 때의 표현인 '반혁명죄'가 '국가안전 위해죄'로 바뀌었고 '법치국가 건설'을 신헌법에 명시해 개혁·개방의 법제화도 시도되고 있다．모택동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국가를 상대로한 재판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증가추세에 있다. 요컨대 외침에 대한 강렬한 역사의식이 지배적인 현 상황에서 또는 가까운 장래에 중국이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러나 중국정치 내부적으로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개혁개방의 성공적 지속이 민족주의를 순화시키며, 민주화의 과정이 안정적으로 재생산된다면, 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4.3. 양자동맹 관계의 변화 다자간 안보협력의 부담으로 작용하는 한·미/미·일간 군사동맹의 미래는 어떠한가? 힘의 공백 현상을 예방하고, 미국의 원거리 투사력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지역 주둔 미군은 지속되겠지만, 양자동맹의 '사실상'의 내용은 적대적 군사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 보다 정치적이고 협력안보적인 요소를 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장 높은 개연성을 확보한다. 주한미군과 관련하여 미국은 "군사력 유지 비용, 주일 미군, 대중 관계, 동아태지역 우방에 대한 안보공약 의지 재확인,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 문제" 등으로 인해 철수할 수 없는 입장이다. 남한도 미군의 주둔을 필요로 하고 있다. 대북 억지와 지역안정자로서 주한미군이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온건한" 김대중 정부도 억지와 포용을 병행하는 "복궤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바, 다음의 정권들은 통일 전까지는 주한미군의 대북억지력에 대한 대안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철수가 야기할 힘의 공백은 한반도가 겪어야 했던 조선 후기의 굴육적 역사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남한내 여론이다. 대통령이 "통일후에도 주한미군은 주둔해야 한다"고 한 발언은 군사전략적 고려와 함께 국내 보수여론을 의식한 탓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도 내심 주한미군의 '이중억지(dual deterrence)' 역할을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남북 어느 쪽이든 강제력에 의한 흡수가 미국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북한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주한미군이 없어진다면 진공상태가 되어 주변 강대국들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고, NATO를 봐도 잘 알 수 있듯이 동북아시아 전체의 안정을 위해 미군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논리도 수용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주일미군은 주한미군이 존속하는 한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군사전략 상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고, 미일동맹은 역시 일본에 대한 안보재보장을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함으로써 일본의 여론이 재무장과 우익세력의 "정상국가론"을 반대케 하는 정치적 기후를 조성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1996년 4월 17일 미일신안보선언은 "미국은 주일 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함과 동시에 이 지역에 전진배치된 10만여명의 병력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며," 그리고 일본 수상은 "상호협력안보 조약 및 주둔국지원협정에 입각해 시설과 기지의 제공 등 주일 미군의 유지를 위해 적절한 기여를 지속할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배적으로 보이는 추세는 남한 및 일본의 국내외적 변수간의 역학관계의 변동에 의해 상당 부분 제어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냉전이 종식되면서 동북아의 국제관계는 비대칭에서 대칭으로, 즉 보편적 국가간 관계로 복귀될 것이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즉 공적(公敵) 해체와 그에 따른 개별적 국가이익의 상충 가능성은 남한이나 일본에 공히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미일동맹에서 먼저 현실화됐었다. 1995년 이전에는 적지않은 미국의 전략분석가들이 "공적 부재에 따른 냉전적 협력구조의 이완은 미국의 대동아시아 안보공약 지속에 대한 의구심과 미일동맹의 표류"를 조장하는 가운데, 양국간 경제적 마찰을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시킬 수 있고, 이러한 갈등은 미일동맹관계를 침식하면서 주일미군의 철수와 일본의 군사 독자노선화로 이어져 지난 수십년간의 '위계적 상보관계'에 종지부를 찍게 하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사실 1995년 '나이 보고서(The Nye Report)'라 불리우는 United States Security Strategy for the East Asia-Pacific Region과 1996년 미일신안보선언의 배경에는 물론 중국을 견제하면서 "일본의 대미 군사 지원의 역할을 확대시킨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지만 "표류하던 미일동맹을 새로운 반석 위에 세움으로써 일본을 미국의 영향권 내에 확실히 묶어두자는 미국의 의지"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남한과 일본의 민족주의가 자극될 가능성이다. 역시 냉전의 종식이 상당한 결정력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의 "패권주의"가 이를 자극하는 면이 적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 여론조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먼저, 대다수의 남한 시민들은 주한미군의 시한부 주둔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즉 남한 시민의 76.8%가 통일 후에도 미군이 주둔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주한미군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고 보는 시민은 69%인 반면 통일에 기여한다고 보는 시민은 54.1%에 그쳤다는 사실과,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과 북 당사자가 자주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한 시민이 67.4%나 됐다는 사실은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은 '자주와 민족'의 화두에 각광을 보내고, 그 반작용으로 미군 주둔과 군사동맹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본의 민족주의도 자극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의 외교협회가 발간하는 영향력있는 저널인 Foreign Affairs의 기고문에서 모리히로 호소카와 전 일본수상은 "미국이 2차대전후 누려오던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허위적인 중국위협론을 퍼뜨리고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과대경고"함과 동시에 "아시아의 현실을 왜곡하여 주일미군이 일본의 재무장을 방지하는 확실한 수단"이라고 자국의 국민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주일미군의 철수를 지지한 바 있다. 셋째,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를 고려할 때 중국 및 러시아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남한과 일본에게는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1996년 중국이 대만 근해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국의 항공모함이 이 지역에 접근했을 때 일본이 보여준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동맹국 미국의 이러한 군사행동에 대해 "이해(understanding)"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일본열도를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 및 대만과 오랜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 사건이 일본을 위험에 빠뜨리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되며 우리의 입장은 미국보다 훨씬 취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과 말은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고 천명하였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남한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남북관계와 아울러 북미관계도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공동의 위험(common danger)의 공유"를 적시(適示)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시대착오적인 조항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현 시점에서는 동북아 제국 누구도 미군 철수에 따른 힘의 공백과 이를 메꾸기 위한 지역 패권 다툼의 발생·심화를 원하지 않는다. 지역수준의 세력균형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미국도 이해관계를 같이한다. 나아가 미국은 중대한 정치, 경제, 안보 이익이 걸려있는 한반도 및 양안에 자신의 힘을 효율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 전진기지를 포기할 입장에 있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한과 일본의 안보이익이 점진적으로 진화할 가능성이다. 즉 동북아에 냉전이 해체되고 보편경쟁의 국제체계가 자리를 잡게되면서 보다 유연한 지역 경쟁/협력의 구도가 구축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당 기간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주한/주일 미군은 냉전적 억지/봉쇄의 역할을 벗어나 소위 "정직한 중재자" 또는 "고독한 영광(splendid isolation)"으로 그 성격을 전환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중장기적 시각에서 양자동맹의 군사적 성격 탈피, 나아가 사실상의 해체는 다자간 안보협력 제도화의 가능성을 높히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5. 한국의 과제: 정책대안 동북아 다자간안보협력이 한반도 평화구축에 미치는 긍정적 요인은 위에서 적시되었다. 나아가, 동북아에서 군비경쟁과 세력균형 정치가 자리잡게 되면 첫번째 희생양이 남북한 또는 통일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또한 지적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체제 하에서는 동북아 4대강국중 누구와도 군사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따라서 효율화된 자주국방 능력을 우선적으로 도모하면서 다른 한편 억지를 넘어선 새로운 안보 개념에 기초한 다자간 안보협력의 형성을 추진해야 한다. 5.1 자주국방과의 병행·조화 국제체제는 힘의 논리에 기초해 있다. 약자의 리더십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자주국방을 지향하면서 승자연합을 구성하는 데 중추적 역할(pivotal role)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5.2 4자회담의 발전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4자회담이 진행중에 있다. 남북 문제가 의제에서 분리되어 남북이 직접 협상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남한은 4자회담을 고리로 하여 일본,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체를 조기에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주변국 특히 중국과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방안을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5.3 한미동맹의 재조정 한국정부는 통일외교의 측면에서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이는 타협할 수 없는 우리의 국익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접근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재건과 남북한의 경제통합으로 인한 비용을 해외에서 조달하기 위해 미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미국정부 차원의 지원은 물론이고 IMF, IBRD 등 국제금융기구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이미 우리가 경험한 바 있다.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통일한국의 군사·외교적 결정은 자본조달 과정에서의 큰 기회비용을 산출할 것이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해외민간투자자본의 역할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도 한미동맹의 유지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큰 의미를 가진다. 즉 북한재건과 남북경제통합 비용에 따른 순조로운 해외민간자본의 조달은 "통일 이후 한국이 해외투자자들의 눈에 얼마나 매력있게 보이는가"에 달려있고, "이는 그 사회가 얼마나 안정된 사회인가에 의존한다." 통일한국의 안정은 국가의 안전보장에 크게 달려있고 이에 기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며, 따라서 한미동맹과 그에 따른 미국의 안보공약은 외국투자자들의 위험부담 수위를 낮춰줘" 자본의 안정적인 조달을 위한 기본조건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이와 유관한 맥락에서 한미동맹은 전쟁억지, 대량파괴무기 확산저지, '일본요인'을 비롯한 '지역적 힘의 공백' 발생 방지 등 동북아의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통일한국의 경제 재도약을 위한 안정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함과 동시에 지역적 불안으로 인해 경제적 자원이 군사비로 전환되지 않도록 하는 공공재적 역할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은 통일한국의 안보 차원에서 가장 귀중한 군사적 외교적 자산이 될 수 있다. 통일이 이루어지면 한국은 강국 중국, 러시아와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직접 접하게 된다. 통일 전에는 발생할 수 없었던 안보위협이 새롭게 제기될 수 있다. 최근 일본 자위대의 "독도 상륙작전 계획"은 통일한국의 안보위협이 전통적인 우방으로부터도 제기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안이다. 따라서 이러한 잠재적인 전방위적 안보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의 유지와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의 견실성이 요구된다. 통일외교의 차원에서 보면 한미동맹의 지속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현재 한반도 문제 해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는 미국임에 틀림이 없다. 남북한이 동서독과 같은 전범국이 아니기 때문에 한반도통일에 대해 미국이 어떤 법리적인 권한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및 지역적 차원에서의 정치, 경제, 군사적 역학상 통일과정의 시작 여부나 그 속도를 실질적으로 통제·관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21세기 미국의 사활적 국익을 담보하는 대동북아 전략의 효과적 수행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하는 한미동맹의 폐기는 한국의 입장에서 바람직하거나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둘째, 한미동맹은 유지하되 중국, 러시아 등의 안보 우려를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동맹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통일한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상대로 비합리적으로 미국편을 들지 않을 것이며, 이들에 대해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일이다. 특히 중국의 전략적 계산이 미국의 지역내 동맹행위에 대한 자신의 인식에 의해 크게 지배되고 있다고 볼 때 한미 동맹의 조정은 중국의 통일한국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유효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정부는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주한미군 특히 지상군의 규모를 감축하는 등 한미 동맹의 군사적 요소를 완화시키고 그것을 정치적 요소들로 대체하는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 대규모 미군의 주둔을 전제로 만들어진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은 당연한 것이고, 통일한국에서 시장경제·민주주의가 확보되고, 군대주둔권이 유지되는 한 미국도 이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5.4 TKR + TSR + TCR 프로젝트의 능동적 추진 5.5 대북화해협력정책의 기략적(機略的) 추진 o 국내정치의 반성과 대미 적극외교 대미 자주외교는 문제의 핵심에 놓여있다. 그러나 여기엔 국내정치가 개입되어 있다. 미국과의 이견이 "해국적(害國的)"이라는 식으로 비난될 가능성은 대미 능동외교를 위한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게 될 것이다.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미국이 언제든지 한국의 외교와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여건이 지속적으로 마련된다는 사실이다. 한미간 이견 존재를 정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역감정을 국내정치 목적으로 악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요컨대, 남북관계 진전 등을 위한 미국의 협력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미국에 대한 건설적인 자극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국내정치적 공감대의 형성이 요구된다. 국익과 민족이익을 위한 '정치의 반성과 타협'이 필수적인 것이다. 남북관계 진전 등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에 대한 건설적인 의미에서의 자극은 남한의 탄력외교뿐 아니라 EU를 활용함으로써 주어질 수도 있다. EU는 북한을 명목상 대상으로 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계가 유럽의 전략적 안정을 위태롭게 할 수 있고, 남한이 아시아에서 EU의 3번째 큰 시장이며, EU가 한국의 가장 큰 해외시장임을 고려하여, 미사일방어체계 추진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한반도에서의 안정을 제고하기 위해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의 중단이 야기한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공백"을 메우려 하고 있다. 나아가, EU는 미국 주요 언론이 보도하듯,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남북관계의 증진을 위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스웨덴 외무장관 안나 린드(Anna Lindh)는, 한미정상회담의 과정과 결과에 실망한 유럽인들에게, 그렇다면 이제 "유럽이 개입해야만 한다"고 호소했다. 코소보 전쟁 등 자신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EU가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는 단순한 논리이다. 유럽 내부의 제조건과 이해관계의 차이로 인한 무결정이 한반도에도 그대로 투영된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코소보 전쟁시에는 결여되었던 부시 정부의 미사일방어체계는 그것이 지니는 반공공재적 성격으로 EU의 이해관계를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U는 북한과 이미 수교했고, 독일과 스웨덴은 주북대사를 파견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러시아와 함께 "지난해 6월 남북한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남북한의 긍정적인 노력들을 높이 평가하며 이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남한 정부는 KEDO 회원국으로서 북미기본합의의 이행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하고 있는 EU의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적극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상시협력 채널을 구축하고, 객관적이고 현장감 있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EU에게 북한이 같은 맥락에서 협조할 수 있도록 촉구할 필요도 있다. 혹자는 EU의 활용이 미국의 분노를 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 또는 러시아 카드를 사용할 경우 그러한 위험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EU는 "잠재적 적국"인 이들과는 달리 대부분 NATO를 통해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맹방들이다. 정치, 경제, 문화적 동질성 또한 중요한 완충역할(buffering)을 할 수 있다. 설사 EU의 활용 또는 EU의 중재자적 역할 지지가 부시 정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해도 부시 정부가 EU나 남한에 대해 급격한 정책변화를 추진하기는 어렵다. 요컨대 EU의 전향적인 역할 행사는 적은 부담으로 미국의 국제현실에 대한 현장감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적어도 부시 정부 외교안보팀 내에서 온건파인 파월 국무장관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남한 정부는 EU가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협력함으로써 미국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o 대북화해협력의 "전략적 접근" 남한 정부는 남한의 그동안 지속된 선도적 협조와 양보를 북한이 보상하지 않을 경우, "선의의 응징"으로 대처해야 한다. 많은 국제정치학자들도 "보복·보상전략(tit-for-tat)"이 장기적인 게임에서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단, 남한은 "과잉보복"이 아닌 "배반에 상응하는 보복의 양"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예로서, 금강산 관광사업의 부진과 북한의 '미국 방해' 선언에 관해 생각해보자. 북한이 금강산 관광사업의 침체원인을 '미국의 집요한 방해' 때문이라며 돌연 미국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합리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북측은 금강산관광 문제를 북·미대화를 놓고 미국과 밀고당기기 위한 카드로 이용할 계산인 것처럼 보인다. 즉 북한은 남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부여하고 있는 정치적 중대성을 간파하고, 남한 정부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함으로써 미국에게 압력을 가하도록 하는 우회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상선"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에 대한 선의의 건설적인 응징이 필요한 시기에 "왜곡된" 형태의 8·15남북공동행사에 참가한 것은 적절치 않다. 특히 (1) 6·15-8·15를 기념해 남북공동으로 열린 일련의 행사가 모두 북측의 금강산과 평양에서 열리고 북측인사들의 서울 방문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2) 그리고 금강산 육로관광 합의 불이행 등 북측의 불성실한 태도에 대해 비판을 삼가면서, 단지 (1) "내년을 기약하면서" 그리고 (2) "민간 수준의 교류협력 유지"를 위해 그러한 형태의 행사에 참여한 것은 북한의 무례한 행동을 지속시킬 가능성이 높고, 나아가 남북 당국간 회담 재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사료된다. 북한에 대한 선의의 응징은 공동행사 후 귀환할 예정인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일부 인사에 대한 원칙에 따른 처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북한과 국민들 모두에게 정부의 화해협력정책이 현실성에 기초한 신축성있는 정책이긴 하나 기본적 원칙과 게임의 법칙(rule of game)에서는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줘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 답방 등의 소위 가시적 성과를 내는 문제도 이러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요컨대, 정부는 (1) 북미관계 개선과 관련하여 미국 부시 정부의 성의를 계속 촉구하면서도, 다른 한편 (2) 북한에 대해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으나, (3) 민족문제를 무모하게 졸속으로 추진할 생각이 없으며, (4) 냉전세력의 비판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진정한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 시계를 넓게 길게 가지겠다는 식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수진을 친" 전진적인 의미에서의 "무해한 방치(benign neglect) 정책"은 북한을 건설적으로 자극하여 오히려 현 정부 임기 내에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산출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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