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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에 보내는 긴급편지 / 손석춘
노대통령에 보내는 긴급편지 번거로운 예의차리기는 생략하겠습니다. 한겨레신문의 손석춘입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더 늦기 전에 긴급히 편지를 띄웁니다. 조금 전에 한총련 5·18시위와 관련해 "자기 주장에 맞지 않는다고 사람을 모욕하고 타도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며 "난동자에 대해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라"고 지시했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접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들으면서 잠시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5월19일. 23년 전 오늘은 광주에서 학살이 한창 벌어진 날입니다. 대통령은 오늘 오전 수석보좌관회의 자리에서 '난동자' 발언을 했습니다. 대량 검거령으로 오월의 대학가가 얼어붙고 있습니다. 기막힌 일입니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 묻지요. 벌써부터 권력에 그렇게 깊이 취했습니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지금 노 대통령은 큰 과오를 범하고 있습니다. 난동자라니요. 도대체 누가 난동자입니까. 대통령이 아끼는 장관인 강금실 법무도 거들었더군요. 엄벌에 처하겠다는 다짐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의 표현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학생들이 "5·18정신을 훼손했다"는 발언은 난동자로 인식하는 대통령의 발언과 더불어 묵과하기 어렵습니다. 오월의 그 날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오월의 민주시민을 난동자와 폭도로 몰아 살육에 명분을 준 수구언론, 그리고 그 학살극을 '승인'했던 나라가 미국이 아니었나요. 바로 그 미국에 대한 굴욕적 외교활동을 비판하는 젊은 지성인들을 '난동자'로 규정하는 대통령은 , 5·18정신을 훼손했다고 엄벌에 처하겠다는 법무장관은, 도대체 제 정신입니까. 김두관 행자는 합법화를 재검토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겨우 석 달도 되지 않은 '권력의 맛'이 노 대통령과 그리고 두 사람의 이른바 '40대 개혁 장관'을 그렇게 타락시켰습니까. 명확히 밝혀둡니다. 저는 한총련의 시위에서 오히려 이 땅의 희망을 읽었습니다. 수구언론과 싸우겠다고 다짐해놓고 어느새 포로가 된 노 대통령의 모습에서 참담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것이 과연 저 혼자만 일까요. 아닙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민중이 시퍼렇게 살아있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눈 맑은 사람들은 지금 대통령의 언행을 배신감과 노여움 속에 지켜보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잘못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참된 용기는 잘못을 변명하지 않고 시정하는 데 있습니다. 서슬 푸른 검거령을 즉각 취소하십시오. 수구언론이 조성한 여론에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지금 사로잡혀 있다는 진실을 조금이라도 빨리 깨닫길 바라며 총총 줄입니다. 2003년 5월19일 손석춘(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겨레사설 [사설] ‘한총련 5·18시위’ 엄단할 일인가 노무현 정부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5·18 기념행사장 시위와 관련해 서슬 푸른 검거령을 내렸다. 정부는 정재욱 한총련 의장 등 주동자 10명에 대한 검거 착수는 물론이고, 60여명으로 긴급 편성한 수사전담반이 시위 학생 119명을 ‘끝까지 추적’해 구속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은 학생 시위로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이 늦어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져 ‘국가원수 경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한총련의 시위 목적이 국가원수의 신변에 위협을 가하려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번 시위의 본질은 노 대통령이 미국 방문 때 보여주었던 행보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저자세 굴욕외교’라는 비판여론을 학생들이 대변한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학생들의 집회는 사전에 예고된 것이기에 대통령의 기념식장 입장이 늦어진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현장 경찰의 ‘판단 착오’로 빚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난동자에 대해 법을 엄격히 적용하라”고 지시하고, 이른바 ‘개혁장관’이라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앞다퉈 엄벌을 다짐하고 나선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김 장관이 이번 사태를 두고 ‘합법화의 걸림돌’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한층 적절치 않다. 한총련 불법화의 근거가 ‘이적단체’로 규정한 색깔론인데도 이번 시위를 합법화의 걸림돌로 내세운 행자부 장관의 주장에선 다분히 ‘보복 감정’마저 읽혀진다. 최근 들어 노 대통령이 틈날 때마다 강조한 ‘통합’을 위해서라도, 후보 시절과 다른 언행을 보인 방미 활동에 대해 비판한 한총련의 시위를 젊은 지성인들의 ‘목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가 엄단 대처를 재고하지 않는다면, 노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한층 더 커질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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