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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미학] 엽기적인, 그 보다 엽기적인...
진보누리 쟁점토론실 (펌) 유민호 (2003-05-01) Subject [죽음의 미학] 엽기적인, 그 보다 엽기적인... 예전에 일 때문에 만난 어떤 남자가 말끝마다 이런다. "목숨 걸고 하겠습니다." "목숨 걸고 하겠습니다." 듣기 부담스러운 그 말이 반복되니,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알아보니 역시나 젊은 시절에 일본 살다 온 사람이란다. 어린 나이에 일본에 건너간 조치훈도 조국에 돌아와 그랬다. "저는 바둑 한 판 한 판마다 목숨을 걸고 둡니다." 잇쇼겐메이(一事懸令)! - 목숨을 건다는 이 글자는 상통하는 의미인 이찌꼬이찌에(一期一會)와 함께 일본영화에서 헐리웃의 성조기처럼 자주 등장한다. 어느 가정의 벽면에나 걸려 있는 액자글이다. 우리 가정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처럼. 2차대전 시 미국은 자신들이 이상한 종족과 전쟁을 치루고 있음을 깨달았다. 당시 유럽 전장에서 포로와 사망자의 비율은 124 : 1 였는데, 태평양 전장에서는 1 : 54. 유럽 전장에서는 퇴로가 차단된 채 포위되면 항복하는 게 관행이었지만, 일본인들은 동굴 속에 갇혀서도 항복 대신 옥쇄를 선택했다. 이에 미국은 일본종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이렇게 나온 책이 '국화와 칼'이다. 국화와 칼은 말한다. 일본종족은 죽음의 미학에 길들여진 특이한 민족이라고. 흔히들 이러한 습속을 사무라이 전쟁 시대의 전통이라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전쟁시대에 죽음은 일상화되었으나, 그 죽음을 이데올로기 미학으로 완성한 것은 전쟁 후의 일이다. 전쟁을 끝낸 토요토미는 통일 일본을 통치할 지배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그가 선택한 사람은 일본정신의 원류로 불리는 센리큐라는 다도(茶道)가였다. 센리큐는 다도를 통해, 전쟁으로 황폐해진 사무라이들에게 세련된 문화와 잇쇼겐메이의 정신을 가르쳤다. 그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일본인들은 센리큐를 토요토미보다 우러르게 되었다. 이에 질투심을 느낀 토요토미는 센리큐에게 죽음을 통해 그가 평소에 주장하던 다도 정신을 보여줄 것을 요청한다. 그는 기꺼이 자신을 죽이는 퍼포먼스를 통해 다도 미학의 진수를 완성한다. 이 센리큐의 죽음 장면은 시로, 소설로, 영화로 수없이 묘사되었다. 이 죽음 장면이 바로 일본 미학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 옮겨주려고 검색하니 없다. 그만큼 우리가 아직 일본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일본문화 개방을 주장하는 유지군씨가 혹 자료 갖고있다면 옮겨주었으면 고맙겠다. 센리큐라는 영화에 이 죽음의 장면이 세밀히 묘사되어 있는데, 이런 거 들어오면 적잖은 문화적 충격이리라. 일본문화가 개방된다면 걱정이다. 들어올 것은 거의 들어왔고, 앞으로 들어올 일본 영화는 대개 이런 류의 야쿠자 영화이다. 일본 역사 속에는 영화로 만들만한 센리큐의 후예들이 쌔고 쌨기 때문이다. 아래 진중권의 글을 보니, 마시마 유키오의 죽음이 적잖은 충격이었던 모양인데, 그는 센리큐의 숱한 후예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당시 세계는 충격이었지만, 죽음의 미학에 길들여진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 아, 벚꽃이 한 이파리 떨어지는구나. 일본인들이 죽음의 미학에 길들여진 것은 역사 전통도 아니요, 일본민족의 특이성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매사에 목숨 거는 일을 배우고, 각종 문화를 통해 죽음의 미학을 주입 받은 것이다. 단지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몇 해 전, 죽음의 미학에 길들여진 일본인들조차 놀라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 해안에 표류한 뗏목에서 일곱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들은 석유가 없어 뗏목을 타고 고기잡이 나왔다가 일본해안으로 떠밀려온 북한어부들이었다. 그 북한어부들의 가슴속에서는 장군님에 대한 충성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목이 말라 죽어가면서 그들은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편지를 썼고, 젖지 않게 비닐로 고이 싸 가슴에 품은 채 죽어간 것이다. 이 또한 놀랄 일이 아니다.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들의 의식은 그 순간에 그렇게 행동하도록 형성된 것뿐이다. 이데올로기 앞에서 인간의 의식이란 얼마나 허약한가? 보편상식이란 과연 가능한가? 남의 일이 아니다. 아직도 냉전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고, 지역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 - 어처구니없지 아니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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