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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한미동맹교(敎)
2003-04-20 진보누리 (펌) 글쓴이 : 진중권 한미동맹교 - 기독교 버전 일제 시대에 '내선일체'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한미동맹'이 있다. 전쟁 후 수십 년 동안 이 사회의 국시처럼 통하던 신앙이라, 그 광적인 열정이 실로 종교를 방불케 한다. 실제로 몇 달 전 시청 앞 광장에는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몰려든 기독교 반공주의자들의 난장판이 벌어졌다. 하필 3.1절 날 성조기를 걸어놓고 미국을 위해 기도할 건 또 뭔가? 바리새인들처럼 요란하게 통성 기도를 하는 한미동맹교 신도들. 도대체 저들이 믿는 신이 내가 믿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니, 매우 당혹스럽다. 왜 저들은 미국이 하나님이나 되는 양 저렇게 광적으로 그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걸까? 저 해괴한 신앙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한국의 개신교는 미국식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아 유독 극성스럽다. 거기에 토속적인 샤머니즘의 전통이 겹치면 그 신앙은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과도한 열정을 띠게 된다. 게다가 보수교단에는 북에서 탄압을 받아 월남한 이들이 있었고, 또한 지금도 있다. 이 실향민 정서가 사회 보수층의 이데올로기와 맞물리면, 그 종교적 열정은 이제 반공주의의 광기로 승화한다. 기독교 반공주의의 선악이원론에 따르면 북한은 사탄, 미국은 천군 천사다. 따라서 광화문에서 열린 반미 촛불시위가 그들의 눈에는 사탄의 역사로 보였을 테고, 그 앞에서 그들의 신심은 반공 샤머니즘의 광란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뻘겋고 퍼런 성조기, 뻘겋고 노란 해병대 군복과 십자가. 이 조합은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엽기적 컴퍼지션이리라. 로마 교황청은 이번 전쟁을 단호히 성토했다. 독일의 개신교도 이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했다. 부시가 속한 미국의 개신교단도 전쟁에 반대했다고 한다.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도대체 이번 전쟁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찬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성조기를 내걸고 미국을 위해 통성 기도를 올리던 그 많던 기독교인들. 그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왜 그들의 모습은 반전평화를 염원하는 현장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왜 그들의 고귀한 분노는 미국이 저지른 범죄 앞에서는 맥없이 사그라지는 것일까? 침략자를 향한 그 사랑의 10분의 1이라도 죄 없이 죽어 가는 이라크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안 되는 것일까? 인도의 어느 문인이 종교적 광신이라는 점에서 빈 라덴과 조지 부시는 동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지 부시는 자신이 "신적인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했다. 제 눈에 악으로 보이는 대상을 절멸시킬 사명을 신에게 직접 받았다고 느끼는 것. 이게 광신의 특징이다. 문제는 이런 광신도가 있다는 게 아니라, 이 광신도를 교주로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엉뚱하게 대한민국에. 이들이 즐겨 찾는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는 "미국은 기독교, 이라크는 이슬람의 나라, 따라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신의 뜻"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십자군 전쟁의 논리다. 이들은 이렇게 21세기에 중세에서 살고 있다. 한미동맹교 - 샤머니즘 버전 이것이 한미동맹교의 기독교 버전이라면, 더 엽기적인 버전도 있다. 얼마 전 <전원일기>의 일용 엄니가 갑자기 참전을 하겠노라고 기자회견을 했다. 파병군인을 따라가서 김치라도 담가 주겠다는 것이다. 빙의(憑依) 체험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귀신을 떨쳐내고 새로 얻은 삶을 나라를 위해 쓰겠노라고 장한 결심을 했다. 그 애국적 결단의 첫 표현이 바로 한미동맹을 위한 김치 담그기란다. 그리고는 횡설수설한다. "찬반을 떠나서 모두 전쟁 없는 세상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를 미국에게, 부시대통령에게 확실히 알려야죠." 반전의 염원을 부시에게 알리려고 파병 군인들에게 김치를 담가 주겠다는 것이다. 근데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가? 아무래도 빙의가 덜 끝난 모양이다. 김치 담그기 전에 푸닥거리부터 한 번 해야겠다. 우리 일용 엄니의 노망은 애국적 노망이다. 주관적으로는 진지한 노망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는 우습게 보여도 그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의 천진난만한 의식 속에 당연하게 들어와 있는 어떤 전제, 즉 새로 얻은 삶은 마땅히 나라에 바쳐야 하며, 나라를 위하는 길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전제다. 이게 어디 순진한 일용 엄니만의 일이겠는가? 전쟁 후 수십 년에 걸친 국가주의와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공세로 '나의 삶 = 애국 = 한미동맹'이라는 괴상한 등식이 아예 사회적 무의식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오랫동안 사회 성원들의 의식세계를 집요하게 사로잡아 왔다. 그게 일용 엄니에게서 김치 파동의 해프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 주입해 준 그 얘기를 하는 것. 이것도 일종의 신들림, 즉 정치적 빙의 현상이다. ☆ 올린이 : 참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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