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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주류'가 바뀐다
2002. 12. 22 한겨레신문 (펌)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씨가 당선된 것은 기존의 정치분석 방식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한나라당과 민주당 후보의 정치적 대결이 아니었다는 평가가 많다. 과거의 질서 및 대세론을 존중한 세력과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며 틀의 변화를 추구한 세력이 대통령 선거라는 ‘공간’을 통해 충돌했고, 새로운 것을 요구한 세력이 극적인 ‘한판승’을 거두었다는 얘기다. 1997년 김대중씨의 대통령 당선이 정치적 사건이었다면, 2002년 노무현씨의 당선은 사회·문화적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 사회 밑바탕에서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과 그 결과에 깃들인 변화기조는 도대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네 차례로 나누어 살펴본다.편집자 소수권력층·보수언론서 20·30대 네티즌으로 여론주도 세력 교체 지난해 2월 한나라당의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는 일본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른바 ‘메인스트림’(주류)들이 자신을 지지해 새 정권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를 ‘비주류’들의 실험이라고 보고 있는 기존 보수층의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다수는 이 전 후보의 바람과는 달리 또다시 ‘비주류’인 노무현 당선자를 새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렇다면 ‘주류’가 바뀌고 있는 것인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주류’는 여론을 만들어 내고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을 지닌 계층이었다. 소수의 권력층과 거대언론의 논객들, 보수언론을 통해 사회적 명망을 쌓아가는 국외유학파 학자 등이 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자신들의 의견을 ‘여론’으로 포장해 내보냈고, 한 방향 교육과 전체주의적 권위에 익숙한 일반인들은 이를 그대로 자신들의 생각으로 받아들였다. 소수의 ‘주류’가 다수의 ‘주류 추종자’들을 양산해내는 체제였던 것이다. 이전까지 기득권층이 아닌 일반서민들이 보수정당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낸 것도 이런 원리가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에 맞서는 ‘비주류’의 주장은 제대로 전달하기조차 어려웠다. 이들의 목소리를 싣는 매체 역시 ‘비주류’였고, ‘비주류’의 주장은 그때마다 ‘주류’에 의해 왜곡·매도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비주류’는 늘 ‘소수파’였다. 이런 구도가 이번 대선에서 철저하게 깨어졌다. 대선 직전, 보수성향의 언론들은 △도청 △북한 핵문제 △행정수도 이전 등 갖가지 논쟁을 불러 일으키려 시도했다. 한결같이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하지 않은 주제들이었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목소리는 전날과 달리 사회적 반향을 제대로 일으키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젊은층은 이전과 달리 보수언론의 ‘정치적 의도’를 꿰뚫어볼 줄 아는 시각을 가졌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반박논리를 펴 이른바 보수언론과 ‘전면전’을 치를 정도로 무장했다.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지지 철회’가 있던 다음날, <조선일보>는 19일치 사설에서 ‘정몽준이 노무현을 버렸다’는 제목으로, 지금까지의 판단기준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뒤집으라고 노골적으로 시민들에게 ‘훈계’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이미 밤새 인터넷을 통해 사태의 전말에 대한 정보를 찾아냈고, 다른 네티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는 등 이 신문이 아침에 배달되기 전에 이미 ‘상황 끝’을 선언한 상태였다. 탈냉전·반 권위주의 시대적 대세로 떠올라 인터넷포털 ‘다음’(daum.net)이 운영한 ‘대선특집’은 대선 전날인 18일 하루 드나든 횟수가 500만회를 기록했다. 40장짜리 일간지 120만부와 맞먹는 구독수를 기록한 것이다. 정 대표가 지지철회를 선언한 직후 세 시간 동안 ‘네이버’의 뉴스는 300페이지뷰를 기록했다. 대선 기간에 네이버 대선토론장에만 8만개 이상의 글이 올라왔다. 사이버 공간은 보수층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진지’ 구실을 했다. 한 포털 사이트 대표는 대선 막판에 이번 대선을 ‘네티즌 세대’와 ‘조·중·동 세대’의 대결로 요약하는 글을 올려 인기를 얻기도 했다. <딴지일보> 최내현 편집장은 “이번 대선에서는 ‘조·중·동’ 등의 오프라인 보수언론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이 사회의 공리인양 일방적으로 만들어내던 ‘여론’이 힘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대선결과가 발표된 뒤, 보수신문의 한 편집국 간부는 기자들에게 “이제 신문이 대통령을 만드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종원 기독교청년회(YMCA) 시민사회개발부장은 “시대의 큰 틀이 변화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비주류’가 선택된 것은 그만큼 기존의 주류들이 만들어오던 질서에 대한 반감이 컸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주류가 주류를 전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우선 비주류의 수가 이제는 더 비주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에서 전체 나이별 유권자 중 30대 유권자가 25.4%(889만명)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23.5%(822만명)로 그 뒤를 이어 20~30대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여기에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이 1970년 26.9%에서 2002년 74.2%로 세 배가 늘었다. 기성세대와는 달리 다양한 교육을 받은 이들 세대는 대학에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키웠고, 인터넷을 활용한 정보 수집력으로 보수언론의 냉전수구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논리를 ‘수혈’받았다. 87년 이후 대학생활을 한 세대는 자신의 정치적 생각을 밝히는 데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개성과 자기 주장을 강조하고, 기존의 권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신세대 문화가 정치문화 현장에도 그대로 반영된 측면이 강하다.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세대의 문화적 감수성에는 구세대와 구분되는 반권위주의, 다원성 등의 지향이 있다”며 “한 가정 안에서 세대별로 지지가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도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주의가 해체되고 생활상의 민주주의의로 가는 건강한 진통”이라고 해석했다. 김기식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이번 선거의 세대 대결은 달리 말하면 냉전세대와 탈냉전 세대의 대결”이라며 “북한 핵문제 등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으로 미뤄 탈냉전 세대가 한국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앞으로 새 ‘주류’로 떠오를 이들 ‘비주류’에 대해 과거의 ‘주류’들은 이들이 이성보다는 감성에 지배당하는 등 선동에 쉽게 휩쓸린다는 점을 지적하며 심지어 ‘홍위병’이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주류’들은 폐쇄적 권위에 의존했던 이전의 ‘주류’들과는 달리 토론의 장이라는 자체 정화장치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태희 신윤동욱 기자 hermes@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3300000/2002/12/003300000200212221935975.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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