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의주 특구에 대한 기대와 우려
민주노동당 (펌) 글번호 : 707 올린이 : 장상환 등록일 : 2002년 10월 10일 {이론과 실천} 2002년 10월 '신의주 특구에 대한 기대와 우려' 장상환(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1980년대말 90년대초 동구 현존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한 지 벌써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국가사회주의 체제에서 전환하는 경로로서 러시아의 충격 요법(shock therapy)보다는 중국의 점진주의적인 정책(incrementalism)이 시장경제로의 이행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십년 동안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두 배로 증가한 반면 러시아는 국내총생산이 절반으로 줄고 불평등은 두 배로 늘어났다. 중국 정책결정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신중하게 나아간 반면 러시아 지도부는 시장절대주의라는 교과서적 모델을 신봉하는 (엉터리?)예언자들의 말을 따랐다. 밑으로부터의 참여도 중요하다. 소련의 위로부터의 급격적 체제붕괴와 국영기업 사유화는 구체제 엘리트들이 마피아로 탈바꿈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반면 중국에서는 향진기업 등 비정부 협동조합 기업의 역할이 컸다. 따라서 구소련체제 붕괴 후 변화를 거부해왔던 북한이 개혁 개방 등 변화를 시도하면서 중국 모델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은 지난 9월 중순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신설하고, 독자적인 입법ㆍ행정ㆍ사법권과 토지 개발ㆍ이용ㆍ관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신의주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채택했다. 법에 의하면 신의주 특구는 독자적으로 대외사업을 할 수 있고 여권도 자체 발급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특구에서는 투자자들이 토지를 50년간 장기 임차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달 24일 북한은 신의주 특별행정구의 행정장관에 어우야그룹 회장인 39세의 네델란드 국적 중국인 양빈을 임명했다. 정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파격적인 개방조치이다. 신의주 특구는 홍콩의 정치·행정적 제도와 심천·상해의 경제개방 경험을 선별 수용하여 병합한 '북한식 개방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신의주 특구는 상품 및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가 특구를 매개로 국제자본주의경제와 북한 내륙간에 유통될 수 있도록, 자본주의에 기초하여 운영되는 '경제개방 완충지대'로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경제침체의 원인에 대해서 북한측은 그동안 미국의 경제제재조치 탓이라고 해왔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국가사회주의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북한정부의 경직적 경제운영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제 중국식 모델을 따라 스스로의 변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은 과거 나진선봉지구 지정 때와 같은 오류를 다시 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의 가격·임금 현실화 등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실무관리들이 유럽 국가에서 자본주의제도를 학습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한 후에 추진되었고, 이 조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자 유치와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교역 확대를 통한 상품공급 확대가 긴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정부가 그동안 우여곡절 속에서도 화해 협력정책을 지속해온 것도 이러한 진전에 기여했다. 북한은 합리적 자세 취해야 신의주 특구 사업이 성공을 거두어서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과 남북통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북한과 관련 국가들의 기존태도 변화가 요구된다. 우선 북한은 이제부터 모든 일을 합리적이고 안정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다. 경제개혁과 개방의 방향은 올바로 설정했다고 할지라도 구체적 방법상의 문제는 많이 남아 있다. 첫째, 북한은 9억달러의 재산을 소유하고 중국에서 2번째 가는 갑부인 양빈을 신의주 특별행정구 장관으로 임명했는데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양빈은 유로아시아농업지주회사와 관련된 탈세 및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고 중국정부는 양빈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중국정부는 양빈이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국내 언론이 보도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은 신의주 특구에 대한 투자열기를 냉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양빈이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과거 금강산 사업에서 범한 실책을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사업에서 현대그룹 정주영과 특수한 관계를 맺고 무리한 계약을 한 결과, 사업 유지와 발전에 곤란을 겪고 있다.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 독점은 상업적으로 큰 실패였고 사업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처음부터 마땅히 국영기업인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고, 여러 업체들이 다양한 관광상품을 제공하여 경쟁하도록 하며, 관광객수 등 사업 실적에 따라 북한측에 이용료를 지불하는 방식을 취했어야 했다. 향후 경제특구로 지정될 예정인 개성공단 개발사업도 이제까지 현대가 독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가 현대그룹이 금강산 관광사업 손실 등으로 이를 수행할 힘이 없게 되자 삼성그룹이 독점 수행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북한 정부는 경제개방에서 특정재벌에 의존하고 사업을 독점시키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이것은 일을 추진하는 데는 편할지 모르지만 사업의 왜곡이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사업이 잘 되면 특정 재벌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할 것이고, 사업이 잘 되지 않으면 일개 자본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사업이 지속되기 어려워진다. 신의주 특구 개발에서는 양빈을 매개로 한 재벌기업과의 특수관계가 아니라 모든 투자희망 기업들에게 문호를 공정하게 개방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신의주 특구의 행정책임자는 북한 내에서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익힌 사람이 맡고, 중국에서 특구사업의 경험을 쌓은 인사와 국제경제기구의 자문을 구해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안정성 있는 사업방식이 될 것이다. 이것은 개성공단 개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다. 둘째, 북한 정부는 이제는 경제통계를 작성 정비하고 대외적으로 발표해야 한다. 정확한 경제실상의 공개는 외자 유치와 국민들의 경제활동 의욕 강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의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듯이 경제문제에 대해서도 실사구시의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실속 없는 자존심 때문에 경제적 실패를 숨기는 구태를 유지하는 한 경제개혁과 개방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신의주 특구 설치는 장기적으로는 자본에 의한 북한경제 지배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경제특구를 설치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노동기본권 제한조치를 하는 것에 대해 노동조합은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신의주 특구에서도 외국자본과 북한정부의 부당한 인권억압이 없도록 북한 노동자의 기본권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한·미·일 정부의 역할 한국 정부는 신의주 특구 개발에 한국기업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곧 연결될 경의선의 북한쪽 선로 복선화와 근대화를 위한 지원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신의주 특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인데 북한정부는 이를 감당한 능력이 없고, 국제경제기구로부터의 차관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전제되는 등 시간이 소요된다. 한국정부가 이 공백을 메꿀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국내총생산의 0.5% 내지 정부예산의 1-2%를 매년 북한에 지원한다는 파격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 경제는 디플레이션 공황의 위험에 처해 있고 그 영향으로 한국경제도 불안하다. 북한 경제개방과 개혁이 수요의 부족으로 고통받는 한국경제에 활로를 제공하면서 북한도 경제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북·일 국교 정상화를 서둘러서 1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이야기되는 식민지 지배 배상금을 북한 경제 재건과 동시에 일본 경제의 투자처 확보에 사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경제개방과 개혁을 위해 미국의 역할은 중요하다. 신의주 특구 지정을 통해서 확인되듯이 북한의 변화가 실질적인 것임을 인정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가에서 제외하고 경제제재조치를 해제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미국에 대해 실질적인 적대적 입장을 고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도 핵개발 의혹을 해소하고 군사력을 축소하는 등의 조치를 함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신뢰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신의주 특구 사업 성공을 위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의 열쇠도 결국 북한이 쥐고 있는 것이다. |
| 
|
